해방 후 약 한 달 후인 9월 21일에 선생은 미군정청 편수국장에 취임하였다. 이때 군정청 안에 사회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조선교육심의회’가 구성되어 있었는데 선생은 그 중의 교과서편찬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때 ‘조선교육심의회’가 결의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은 첫째로 초․중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한글로 하되, 한자는 필요한 경우에 괄호 안에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며, 둘째로 교과서는 가로쓰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어문정책의 큰 틀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10월, 한글만으로 쓰되 얼마 동안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한자를 병용한다는 내용의 ‘한글 전용법’이 국회를 통해 공포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말 출판물이 모두 한글만을 쓰되, 가로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이때 정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으로 인한 것이다. 당시의 신문을 비롯한 모든 출판물은 모두 세로쓰기를 하고 있었고 한글보다 한자를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시작된 한글만 쓰기와 가로쓰기를 일반 출판물 모두가 따라오게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몇 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편수국은 그 주요 업무가 각종 교과서를 펴내는 일이다. 1945년 9월 21일에 편수국장에 취임하여 1948년 9월 21일에 퇴임하기까지 만 3년 동안 선생은 그 유명한 ‘한글 첫걸음’을 비롯한 각종 교과서를 50가지 이상 펴냈다.
우리말 교과서를 한글로 편찬하자면 일본말이나 한자어로 된 용어들을 우리말로 다듬는 일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컨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름, 반지름, 반올림, 마름모꼴, 꽃잎, 암술, 수술’이라고 하는 말들은 각각 ‘직경(直徑), 반경(半徑), 사사오입(四捨五入), 능형(菱形), 화판(花瓣), 자예(雌蕊), 웅예(雄蕊)’를 우리말로 바꾸어 만든 용어로써 선생이 편수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편찬한 교과서에 처음 등장하여 쓰이기 시작한 것들이다. ‘후미끼리, 벤또, 젠사이, 혼다데, 간스메’ 등 당시 흔히 쓰이던 일본어가 우리말인 ‘건널목, 도시락, 단팥죽, 책꽂이, 통조림’로 대체되었고 이 밖에 ‘짝수, 홀수, 세모꼴, 제곱, 덧셈, 뺄셈, 피돌기’ 등, 오늘날에는 익숙한 용어들이 당시에 선생의 손길을 거쳐 탄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