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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예절 2 절 기타
01 여자의 절에는 큰절과 평절이 있는데, 남자에게도 큰절과 평절이 따로 있습니까?
예서(禮書)에 보면 여자의 절을 숙배(肅拜)라고만 했지 큰절, 평절의 구분이 없고, 숙배(肅拜)는 큰절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남자의 절에 계수배(稽首拜․큰절), 돈수배(頓首拜․평절), 공수배(空首拜․절)의 구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의 절에 큰절과 평절이 행해지는 까닭은 생활 습속으로 지방(地方)에 따라 행해지던 여러 가지 절의 모습에 따라 보다 정중하고 깊은 절을 큰절로, 간편한 절을 평절로 구분해, 절을 받는 어른이 절을 하는 아랫사람을 편하게 해 주려고 간편한 동작의 절을 허용한 것이 평절로 굳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1599년에 저술된 우리나라의 예서(禮書)인 가례즙람(家禮楫覽)에 보면 우리나라의 절로 숙배(肅拜 큰절)가 소개됐고, 평절로는 주자(朱子․중국(中國) 송대(宋代)의 학자)의 말씀으로 평절과 닮은 절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음을 미루어, 큰절은 우리나라의 원 절이고, 평절은 고대 중국식(中國式)의 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02 어떤 이가 여자가 공수(拱手 손을 맞잡는 것) 할 때에 왼손이 위로 간다면, 그 이유를 여자는 일을 하는 오른손은 거칠고 왼손은 고우므로 고운 왼손으로 거친 오른손을 덮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까?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생활예절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남좌 여우(男左女右), 또는 남동 여서(男東女西)라고 해서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 맞잡는 것이 우리의 유구한 생활문화를 통해 정착된 것이며, 또한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향(南向)으로 하는 것이 생명(生命)보존(保存)을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태양(太陽)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는 방향)이고, 그렇게 하면 뒤쪽이 북(北)이고, 앞쪽이 남(南)이며 좌측(左側)이 동(東)이고 우측(右側)이 서(西)가 됩니다.
동쪽은 해가 뜨고 밝음이 오니 양(陽)이고 서쪽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깃 드니 음(陰)이며, 남자(男子)는 양(陽)이고 여자(女子)는 음(陰)입니다.
양(陽)인 동쪽이 좌측(左側)이므로 양(陽)인 남자(男子)는 좌측(左側)을 숭상(崇尙)해 왼손을 앞세우는 것이고, 음(陰)인 서쪽이 우측(右側)이므로 음(陰)인 여자(女子)는 우측을 숭상(崇尙)해 오른손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03 어떤 사람은 제사(祭祀) 때나 상가(喪家)의 빈소(殯所)에서 절을 할 때 두 번 반(半)이라고 합니다. 반(半) 번의 절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말을 더러 듣게 되는 데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은 있어도 횟수에 반 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이란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어른이 답배(答拜)한 경우 정중(鄭重)하게 하지 않고 간략(簡略)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 번은 없습니다. 생각컨대 남자(男子)의 배례(拜禮)에 읍(揖)을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表現)하거나 아니면 부인(婦人)들이 절을 한 다음에 공경(恭敬)하고 사양(辭讓)하는 뜻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읍(揖)이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간략한 예(禮)의 표시(表示)이지 절(拜)은 아닙니다. 혼동(混同) 없으시기 바랍니다.
04 남녀간(男女間)에 어른에게 절할 때 평소에는 한번 씩 하고, 제사(祭祀) 지낼 때는 남자(男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하는데, 회갑(回甲) 때는 몇 번씩 해야 합니까? 한번씩 하자니 너무 가벼운 것 같고, 제사(祭祀) 때와 같이 하자니 산 어른에게 제사(祭祀)의 절을 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런 질문(質問)이 많습니다. 고례(古禮)에 보면 절을 많이 할수록 극진(極盡)한 공경(恭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의 기본(基本) 횟수(回數)는 남자(男子)는 양(陽)이기 때문에 최소 양수(陽數)인 1회(回)이고, 여자(女子)는 음(陰)이니까 최소 음수(陰數)인 2회(回)입니다.
그것은 전통혼례(傳統婚禮)에서 신랑(新郞)은 2번 신부(新婦)는 4번 절하지만 각기 기본(基本) 횟수(回數)인 신부(新婦)가 2번, 신랑(新郞)이 1번의 절을 두 차례(2회 반복(反復)) 하는 것으로 이해(理解)됩니다.
제사(祭祀)의 절은 극진(極盡)한 공경(恭敬)일 뿐 아니라 상대(相對)가 음부(陰府 저승)로 가신 혼백(魂魄)이니까 남자(男子)가 음수(陰數)의 절을 하기 위해 2번 하고, 그것이 기본(基本) 횟수(回數)의 배(倍)이기 때문에 여자(女子)도 기본(基本) 횟수(回數)의 배(倍)인 4번을 하는 것입니다. 회갑(回甲)도 평소(平素)와 다른 의식(儀式)이며 극진(極盡)한 공경(恭敬)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남자(男子)는 2번, 여자(女子)는 4번해야 할 것입니다. 폐백(幣帛) 때의 절도 신부(新婦)는 4번씩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을 받으실 어른이 절의 횟수를 줄이라고 명(命)하시면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이 예(禮)에 맞는 것입니다.
05 곧 설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절을 하기 위해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質問)입니다. 절은 공경(恭敬)의 뜻을 나타내는 동작(動作)입니다. 자기(自己)가 공경(恭敬)하는 대상(對象)에게 공경(恭敬)의 동작(動作)을 하면서 어른보고 "절 받으라", "앉으라" 라고 수고(手苦)를 시켜서는 아니 됩니다.
공경(恭敬)해야 할 어른을 뵈옵는 즉시 공경(恭敬)의 예(禮)를 올리는 것입니다. 어른이 앉았으면 더욱 좋겠지만 서 계시면 어떻고, 누워 계시면 어떻습니까? 절을 받기 위해 수고(手苦)를 시키지 말고 절을 올리는 것이 옳습니다.
07 저는 아직 20대(代) 초반(初盤)의 신입(新入)사원(社員)입니다. 지난 신정(新正)에 중학교(中學校) 때 각별(恪別)히 사랑해 주시던 선생(先生)님과 직장(職場)의 아버지 같은 상사(上司)에게 세배(歲拜)를 갔었습니다. 선생(先生)님도 상사(上司)도 모두 무척 반기며 고마워 하셔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다 저의 절을 그냥 앉아서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 인지요?
절을 하는 예절(禮節)도 중요(重要)하지만 절을 받는 예절(禮節)도 깎듯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릴 때 가르친 제자(弟子)라도 성년(成年)이 되어서 하는 절에는 반드시 반(半)절로 답배(答拜)를 해야 합니다. 직장(職場)의 상급자(上級者)도 하급자(下級者)가 미성년(未成年)이 아닌 성년(成年)이라면 그 절을 답배(答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傳統的)인 관습(慣習)에 의하면 '얘', '너', '해라' 하며 절을 그냥 받던 아랫사람이라도 관례(冠禮)(成年禮--男子는 15-20歲, 女子는 15歲)를 올리고 나면 '자네', '하게'를 하며 반드시 그 절을 맞아(答拜) 주었습니다. 근친(近親) 관계(關係)가 아니면 성년(成年)의 절은 반드시 답배(答拜)를 해야 합니다.
08 저는 설날만 되면 세배(歲拜)돈 때문에 고민(苦悶)이 됩니다. 세배(歲拜)돈 은 몇 살 까지 주며 얼마나 줘야 합니까?
세배(歲拜)돈은 절 값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절하는 법(法)을 가르치고 칭찬(稱讚)하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분별(分別)하는 나이가 되면 세배(歲拜)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어린애 취급(取扱) 같아서 불쾌(不快)한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형(兄)이나 누이에게도 절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나이를 먹더니 어른스럽고 절을 잘한다." 고 칭찬(稱讚)하면서 다과(茶菓)나 세배(歲拜)돈을 주는 것이니까 부담(負擔)이 되는 액수(額數)라면 더욱 곤란(困難)합니다. 아이들이 부담 없이 즐겁게 받고 쓸 수 있는 적은 돈이어야 합니다.
09 "아버지가 야단쳤어요"라고 말했다가 버릇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같은 뜻의 말이라도 어휘(語彙)의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야단쳤다"는 말은 "아버지가 밥 먹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해도 "아버지가 밥 잡수셨다" "아버지께서 진지 잡수셨다"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어휘(語彙)인지 짐작될 것입니다. 밥은 진지, 먹었다는 잡수셨다가 좋지 않습니까?
'야단쳤다' 보다는 '걱정하셨다'가 맞는 말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어른이 근심(걱정)을 하시는 것이지, 내가 잘못한 것을 꾸중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른은 아랫사람이 잘못하면 근심․걱정을 하십니다.
10 요새 버스나 전차(電車) 속에서 여자가 발을 괴고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러는 어떤 행사장(行事場)의 단상(壇上)의 점잖으신 분이 발을 괴고 앉습니다. 단하(壇下)의 참석자(參席者)를 무시(無視)하는 것 같아 보기가 싫은데, 그게 맞습니까?
남녀(男女) 간에 다리를 괴고 앉는 자세(姿勢)는 예(禮)스러운 앉음새가 아닙니다. 친구간이나 아랫사람과 좌석(座席)에서 휴식(休息)을 취(取)하는 것이라면 편한 자세(姿勢)가 좋을 수도 있지만 대중(大衆)의 앞이나 의식(儀式)행사(行事) 같은 정식(正式)의 정중(鄭重)해야 할 좌석(座席)에서 다리를 괴고 앉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리를 괸 자세(姿勢)는 건방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한 무례(無禮)로 비춰집니다.
11 저는 고등학생(高等學生)입니다. 성인(成人)과 같은 복장(服裝)에 머리도 길렀지만 분명(分明)히 미성년(未成年)입니다. 그런데 존댓말로 말을 합니다. "이봐요, 여기가 어디죠", "지금 몇 시입니까?", 자리를 양보하면 "고맙겠습니다." 등등입니다. 더러는 한참 대화(對話)할 때도 있는데 계속 경어(敬語)를 쓰십니다.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미성년(未成年)은 미성년(未成年)의 대접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고, 성년(成年)은 성년(成年)의 대접을 받아야 제 몫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년(成年)인지 미성년(未成年)인지 분간(分揀)할 수 없어서 어른들이 성년(成年)대접을 하고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미성년(未成年)인데도 아무 말 없이 성년(成年)대접을 계속 받으면 아이들이 분수(分數)없이 어른을 능멸(凌蔑)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르신네, 저는 미성년(未成年)입니다. 말씀을 낮추시지요"라고 자기가 미성년(未成年)임을 밝히는 것이 떳떳한 예(禮)스러움 입니다.
12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回甲)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지어 태우고 잔치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고례(古禮)에 의하면 돌아가신 부모(父母)의 생신(生辰)에 관한 의식(儀式)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禰祭)'인데 일반적(一般的)으로 음력(陰曆) 9월 15일에 사당(祠堂)에서 부모(父母)의 위패(位牌)만 모시고 지내는 제사(祭祀)로써 원래(元來)의 유래(由來)는 처음 '이제(禰祭)'를 지낸 이의 아버지의 생일(生日)이 9월 15일이었다는 데에 연유(緣由)합니다.
또 하나는 사당(祠堂)에 '생신제 고사(生辰祭 告祀)'를 하는 것인데 사당(祠堂)에 모신 모든 신위(神位)의 생신제(生辰祭)로써 이퇴계(李退溪) 선생은 예(禮)가 아니라 했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은 인정(人情)의 발로(發露)라고 했습니다.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한 자손(子孫)이 조상(祖上)의 생신(生辰)에 잊지 않고 의식(儀式)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명(著名)한 분의 탄신(誕辰) 백주년(百周年) 행사(行事)를 사회적(社會的)으로 치르기도 하는데 돌아가신 자기(自己) 아버지의 회갑(回甲)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인정(人情) 상 차마 어려운 일입니다. 마땅히 '이제(禰祭)' 지내듯이 위패(位牌)(神位)를 모시고 가까운 친척(親戚)이 모여 제사(祭祀)를 지내며 추모(追慕)한 다음 함께 음복(飮福)하면 자연(自然)히 추모(追慕)하는 경건(敬虔)한 잔치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복(衣服)을 지어 태우는 일은 속설(俗說)일 수는 있으나 전통의례(傳統儀禮)에는 없는 일입니다.
13 문화민족(文化民族)일수록 전통문화(傳統文化)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예절(禮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근래(近來)의 시중(市中)에 나오는 예절(禮節) 책(冊)을 보면 '예의(禮儀) 바르다'고 정평(定評)이 있던 우리 집의 방법(方法)과 너무도 다릅니다. 아무리 가가례(家家禮)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좋은 질문(質問)입니다. 우리나라는 가가례(家家禮)라고 해서 집집마다 또는 고장마다 예절(禮節)에 차이(差異)가 있는 것을 당연(當然)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現代)는 그 가가례(家家禮)를 방치(放置)해 둘 수만은 없습니다. 높은 산(山)이나 깊은 강(江)에 막혀서 왕래(往來)가 수월치 못해 사투리가 생길 정도로 생활양식(生活樣式)이 서로 다르던 때와는 다릅니다.
당연(當然)히 어느 쪽이든 통일(統一)된 의식(儀式)을 필요(必要)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한다" 고 고집(固執)하면 통일(統一)이 안됩니다. 논리적(論理的)인 근거(根據)에 의해서 모두가 따라 올 수 있는 방법(方法)이어야 하겠습니다.
14 우리의 전통예절(傳統禮節)은 격식(格式)이 중요시(重要視)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례(祭禮)는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는 정성(精誠)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되는데 왜 격식(格式)이 그렇게 중요시(重要視)됩니까?
당연(當然)합니다. 인간(人間)이 하는 표정(表情), 언어(言語), 행동(行動)이 모두 격식(格式)에 의해서 이뤄져야 상대(相對)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격식(格式)이란 그 사회(社會)에서 공통(共通)된 방식(方式)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를 걷고 소제(掃除)하고, 세수(洗手)하고, 면도(面刀)하고, 밥 먹고 옷을 챙겨 입고, 신을 신고, 대문(大門)을 나설 때까지의 절차(節次)를 순서(順序)대로 기록(記錄)한다면 제례(祭禮)절차(節次)보다 더 복잡(複雜)하겠지만 복잡(複雜)하다거나 까다롭다고 하지 않고, 일상적(日常的)으로 수월하게 행(行)합니다. 그 이유(理由)는 격식(格式)이랄 수 있는 절차(節次)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례절차(儀禮節次)를 복잡(複雜)하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절차(節次)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성(精誠)스러운 사람은 격식(格式)을 알아서 그대로 행(行)합니다. 우리가 먹는 상차림도 밥(飯), 국(羹), 수저(匙箸), 간장(淸醬), 김치(沈菜) 찌개(湯) 등을 놓는 자리가 격식(格式)이 있습니다.
우리가 양식(洋食)을 먹을 때도 스푼(Spoon), 나이프(Lnife), 포크(Fork) 를 쥐고 쓰는 법(法) 등 격식(格式)을 따라서 행(行)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祖上)을 위하는 제상(祭床)의 차림은 아무렇게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모든 의식(儀式) 절차(節次)를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격식(格式)을 모르는 사람의 변명(辨明)이고, 그런 변명(辨明)을 하는 사람은 정성(精誠)이 모자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 제가 알기에는 명절(名節)의 차례(茶禮)가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 등 세 차례라고 생각됩니다. 한식(寒食)과 추석(秋夕)의 차례(茶禮)는 산소(山所)에 가서 지내는 것이 일반화(一般化)되었는데 설의 차례(茶禮)도 산소(山所)에 가서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례(茶禮)란 조상(祖上)에게 명절(名節) 특식(特食)을 먼저 드리는 제례(祭禮)입니다. 그러니까 설에는 떡국, 추석(秋夕)에는 송편, 한식(寒食)에는 화전(花煎)을 올린다고 하겠습니다. 전(前)에 사당(祠堂)에 조상(祖上)의 위패(位牌)를 뫼시던 때는 사당에서 차례(茶禮)를 지내고 산소(山所)에는 그냥 성묘(省墓)만 하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인 방법(方法)이었고, 더러는 어떻게 산소(山所)에 빈손으로 가겠느냐면서 간단(簡單)한 제수(祭需)를 준비(準備)해서 산소(山所)에서도 지냈습니다. 결국(結局) 자손(子孫)의 정성(精誠)이 지극(至極)하면 두 번 차례(茶禮)를 지내는 결과(結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당(祠堂)이 없어지고 산소(山所)만 계시니까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산소(山所)에서만 지내는 것이 근래(近來)의 풍속(風俗)입니다. 한식(寒食)은 언 땅이 녹을 때이고, 추석(秋夕)은 초목(草木)이 자라고 장마 끝이라 산소(山所)의 안위(安危)가 궁금해 반드시 성묘(省墓)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소(山所)에서 차례(茶禮)를 지내는 것이 자연(自然)스럽습니다.
그러나 설은 몹시 추운 때라 성묘(省墓)하기가 마땅치 못하며 설의 특식(特食)인 떡국은 국물이 있고, 뜨겁게 끓여야 하기 때문에 산소에서는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의 차례(茶禮)는 집에서 신주(神主), 지방(紙榜), 사진(寫眞) 등 위패(位牌)를 모시고 지냅니다.
16 남좌 여우(男左 女右)란 남자(男子)는 왼쪽, 여자(女子)는 오른쪽이란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혼인(婚姻) 예식장(禮式場)에서 신랑(新郞)과 신부(新婦)가 주례(主禮)를 향(向)해 섰을 때와 하객(賀客)에게로 돌아서서 인사(人事)할 때는 서로 위치(位置)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질문(質問)이십니다. 저희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質問)이 '남좌(男左) 여우(女右)'에 관한 것이니까요. 첫째, '남좌(男左) 여우(女右)'에 좌 우(左 右)는 어떤 의식(儀式)장소(場所)에 참석(參席)한 사람들 각자(各自)의 좌우(左右)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상좌(上座)의 좌 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서(禮書)에도 "좌우(左右)란 존장(尊丈 上座)의 좌우(左右)"라 고 못이 박혀 있습니다.
혼인예식장(婚姻禮式場)의 상좌(上座)는 주례석(主禮席)입니다. 그러니까 혼인예식장(婚姻禮式場) 안에서의 좌우(左右)는 주례(主禮)의 왼쪽이 좌(左)이고, 주례(主禮)의 오른쪽이 우(右)가 됩니다.
신랑(新郞)과 신부(新婦)가 방향(方向)을 바꿀 때마다 위치를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주례(主禮)를 향(向)할 때나 하객(賀客)을 향(向)할 때나 모두 신랑(新郞)은 주례(主禮)의 왼쪽, 신부(新婦)는 주례(主禮)의 오른쪽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좌우(左右)란 동서(東西) 라는 뜻입니다. 예절(禮節)에서는 상좌(上座)를 북(北)쪽으로 간주(看做)하는데 그 이유(理由)는 북(北)쪽이 제일 높고(북극성(北極星)이 있으니까), 북(北)쪽에서 남향(南向)해야 햇볕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어른이 북(北)쪽에서 남향(南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소(場所)의 형편상(形便上) 어른이 자연(自然)의 북(北)쪽에 위치할 수 없을 때는 편리(便利)한 대로 아무 쪽에나 위치(位置)하더라도 어른이 계신 상좌(上座)를 북(北)쪽으로 간주(看做)합니다. 그러니까 상좌(上座)의 좌측(左側)은 동(東)쪽이 되고 우측(右側)은 西쪽이 됩니다. 그러므로 남좌 여우(男左 女右)란 남동 여서(男東 女西)라는 의미(意味)입니다.
17 실천예절(實踐禮節)을 읽으면서 현행(現行) 신식(新式) 예식장(禮式場)에서의 신랑(新郞)․신부(新婦) 위치(位置)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전통혼례(傳統婚禮)나 종교의식(宗敎儀式) 등에 비추어 보아도 잘못 되었는데 왜 고치지 않는지요?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常識)인데도 신식(新式) 혼인예식장(婚姻禮式場)에서는 신랑(新郞)과 신부(新婦)를 죽은 이(死者)의 위패(位牌)나 묘지(墓地)의 시체(屍體)매장(埋葬) 위치(位置)에 세우고 있습니다.
예식장(禮式場)에서 고치지 않는다면 혼인(婚姻)하는 신랑(新郞)․신부(新婦) 당사자(當事者)가 제자리를 찾는 슬기를 발휘(發揮)해야 합니다.
조상(祖上)의 제사(祭祀)를 지낼 때 모시는 신주(神主)나 지방(紙榜)을 보면 서(西)]쪽에 남자(男子), 동(東)쪽에 여자(女子) 조상(祖上)을 씁니다.
묘지(墓地)에 시체(屍體)를 매장(埋葬)할 때도 서(西)쪽에 남자(男子), 동(東)쪽에 여자(女子)의 시체를 묻습니다.
그런데 현행(現行) 예식장(禮式場)의 상태(狀態)가 신랑(新郞)이 서(西)쪽이고 신부(新婦)가 동(東)쪽이라 죽은 이(死者)와 같은 위치(位置)입니다.
신랑(新郞)과 신부(新婦)들이 전통혼례(傳統婚禮)나 모든 의식(儀式)에서와 같이 산사람(生者)의 위치(位置)에 서려면 주례(主禮)의 좌측(左側)인 동(東)쪽에 신랑(新郞)이 서고 주례(主禮)의 우측(右側)인 서(西)쪽에 신부(新婦)가 서야 합니다. 각자(各自)가 챙길 일입니다.
18 어른을 모시고 택시나 자가용 등 승용차를 탈 때 문제가 있습니다. 어른이 타고 내리기에 편리하게 인도(人道)쪽으로 모시려면 아랫사람이 먼저 타야 하니 실례이고, 어른을 먼저 타시게 하면 내릴 때는 아랫사람이 먼저 내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승용차는 운전기사의 옆자리인 앞에 한 사람, 뒤에 세 사람, 모두 네 사람이 탑니다. 그런데 어디가 상석(上席)인가는 택시와 고용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으로 같고, 자가 운전하는 자가용은 다릅니다.
자가 운전하는 자가용의 경우는 운전석의 옆자리인 앞이 제일 상석(上席)인 1번이고, 뒷좌석의 인도 쪽인 우측(右側)이 2번이고, 차도(車道) 쪽인 좌측, 즉 안쪽이 3번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4번 좌석입니다.
그러나 네 사람이 탈 때 제일 아랫사람이 여자일 경우는 여자를 3번 좌석(우측 좌석)에 앉히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 이유는 차(車)의 구조가 가운데는 높은 축(軸)이 있어 발을 벌리고 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운전이 아닌 자가용이나 택시의 경우는 뒷좌석의 우측인 인도 쪽이 제일 상석(上席)인 1번 좌석이고, 좌측이고, 안쪽인 차도(車道) 쪽이 2번 좌석이고, 뒷좌석의 가운데가 3번 좌석이며, 앞자리인 운전기사의 옆자리가 4번 좌석입니다.
역시 차례대로 앉을 때 여자가 뒷좌석의 가운데에 앉게 될 때는 앞자리나 차도(車道) 쪽 자리와 바꾸는 것이 예의입니다.
만일 승용차가 '짚' 차라면 자가운전이 아니라도 운전기사의 옆자리인 앞이 상석(上席)인 1번 좌석이 됩니다. 그러니까 '짚'차의 경우는 자가 운전하는 승용차와 같이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19 새로 취임(就任)한 대통령(大統領)이 권위주의(權威主義)를 청산(淸算)하기 위해 각종 모임에서 상하(上下)석(席)의 좌석(座席) 구분(區分)을 없애고 있어 각 단체(團體)나 사회적(社會的) 모임에서도 좌석(座席)배치(配置)에 논란(論難)이 많습니다. 상하(上下)석(席)의 구분(區分)은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없애야 합니까?
시기(時機)에 적절(適切)한 질문(質問)입니다. 결론(結論)부터 말씀드리면 좌석(座席)배치(配置)에 있어서의 상하(上下)석(席)의 구분(區分)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설사(設使)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비록 같은 모양의 의자(椅子)를 둥글게 놓았다 하더라도 같이 앉아야 할 사람 중 가장 상급자(上級者)가 앉는 자리가 상석(上席)이 되는 것이고, 그 상석(上席)을 기준(基準)으로 차례가 지어집니다. 그래서 의자(椅子)가 같다 든가 둥글게 좌석(座席) 마련을 하는 것은 큰 문제(問題)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좌석(座席)준비(準備)를 해 놓으면 하급자(下級者)들이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 더욱 혼란(混亂)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또한 원탁(圓卓)이란 같은 계급(階級)의 사람들이 계급(階級)을 염두(念頭)에 두지 않고 "모두 같다"는 인식(認識)을 갖는 배치(配置)인데 상급자(上級者)와 하급자(下級者)가 원탁(圓卓)에 앉았다고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상하급(上下級)이 이런 식(式)으로 해서 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 사회(社會)는 혼란(混亂)과 무례(無禮)의 늪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20 '사돈'과 '사장어른'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사돈(査頓)이란 혼인(婚姻)으로 인(因)해서 맺어지는 인척(姻戚)관계를 말합니다. 같은 사돈(査頓)이라도 일가간에 항렬(行列)이 있듯이 사돈(査頓)의 항렬(行列), 사항(査行)이 있어 그 호칭이 달라집니다.
시집간 아낙의 시부모와 친정부모는 같은 세대(世代)인 동항(同行)이므로 '사돈(査頓)' 이라 말합니다. 다만 안사돈이 바깥사돈을 부르려면 '사돈어른'이라 하고, 바깥사돈이 안사돈을 부를 때는 '사돈어른' 또는 '사부인'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시집간 아낙의 시조부와 친정아버지는 세대(世代)가 달라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이므로 부자 '父子'의 항렬(行列)에 해 당합니다. 그래서 '사장어른(査丈)' 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형수(兄嫂)의 동기간(同氣間)이나 누님의 동기간(同氣間)은 같은 세대(世代)니까 '사돈' 이지만, 형수(兄嫂)나 누님의 시부모나 친정부모는 '사장어른'입니다. 역시 사항(査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1 요사이 명절(名節)에 한복(韓服)을 입는 사람이 많아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한복(韓服)을 입고 구두를 신은 것을 보면 양복(洋服)입고 갓을 쓴 것 같아 개운치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복(韓服)에는 미투리나 짚신을 신어야 걸 맞는다고 생각하기가 싶군요.
그러나 우리가 양복(洋服)을 입기 전(前), 그러니까 한복(韓服)이 유일(唯一)한 우리의 의상(衣裳)일 때도 서민(庶民)들은 미투리나 짚신 아니면 나막신을 신었지만 사대부(士大夫)나 여유(餘裕) 있는 상류층(上流層)에서는 가죽신도 신었고, 가죽신에 징을 박은 진신도 신었습니다. 옛날의 가죽신과 지금의 구두가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가죽신이라는 데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22 금년(今年) 신정(新正)에 TV를 보았더니 각 정당(政黨)이나 단체(團體)의 신년(新年) 하례식(賀禮式)이 방송(放送)되는데 한복(韓服)두루마기에 목도리를 두른 채 의식(儀式)에 참석(參席)한 저명인사(著名人士)들이 많았습니다. 목도리도 우리 한복(韓服)의 정장(正裝)에 속(屬)하는지 궁금합니다.
목도리는 방한(防寒)하는 장신구(裝身具)이지 통상복장(通常服裝)의 일부(一部)는 아닙니다. 비단 한복(韓服)뿐 아니라 양복(洋服)을 입었을 때도 실내(室內)에 들어가면 목도리를 끌러야 깍듯한 예절(禮節)이라 하겠습니다. 신년(新年) 하례식(賀禮式) 같은 의식행사(儀式行事)에 한복(韓服)에 목도리를 두른 채 참석(參席)한다면 방한장비(防寒裝備)를 한 채 의식(儀式)에 참석(參席)한 것이 됩니다. 당연(當然)히 실내(室內)나 의식행사(儀式行事)에서는 목도리를 풀어야 합니다.
23 어떤 책에서 보니까 10촌(寸) 이내를 일가(一家)라고 한다 했고, 다른 책에서는 8촌(寸)이 넘어야 일가(一家)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일가(一家)의 범위(範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일가(一家)란 엄격(嚴格)한 의미(意味)에서는 동성 동본(同姓 同本)의 혈족(血族)을 총칭(總稱)하는 것이고 더러는 혈족(血族) 남자(男子)의 배우자(配偶者)를 일가(一家)의 범주(範疇)에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하(貴下)의 질문(質問) 취지(趣旨)는 엄격(嚴格)한 의미(意味)에서의 일가(一家)가 아니라 일반적(一般的) 대화(對話) 중 호칭(呼稱)으로서의 '일가(一家)'에 대한 것이라 이해(理解)됩니다.
대화(對話) 중에 "저 분은 저의 일가(一家)입니다" 라고 말하는 일가(一家)를 10촌(寸) 이내(以內)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 10촌(寸)이라는 한계(限界) 기준(基準)이 모호(模糊)합니다. 일반적(一般的)으로 친족(親族)의 친소(親疎)를 구분(區分)하는데는 8촌(寸)(동고조(同高祖)을 한계(限界) 기준(基準)으로 하는 바 그 이유는 8촌(寸)은 죽었을 때 복(服)을 입는 유복지친(有服之親)의 한계(限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8촌(寸) 이내(以內)를 일가(一家)라 말하는가?, 아니면 8촌(寸)이 넘어야 일가(一家)라고 하는 가? 가 문제(問題)입니다.
8촌(寸) 이내(以內)는 근친(近親)으로서 남에게 말할 때의 호칭(呼稱)이 특정(特定)되어 있습니다.
8촌(寸) 형제(兄弟)면 "삼종(三從) 입니다",
6촌(寸) 형제(兄弟)면 " 재종(再從) 입니다" 라고 말하지 일가(一家)라고는 않습니다.
따라서 '일가(一家)'라고 말하는 경우는 8촌(寸)이 넘어 특정(特定)의 호칭(呼稱)으로 말하기가 곤란(困難)한 혈족(血族)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24 저의 아버지께서는 회갑(回甲)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어머니의 회갑(回甲)을 당(當)해 조촐한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周邊)에서 말하기를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回甲)잔치도 같이 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살아 계신 어머니의 회갑(回甲)잔치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回甲)잔치를 겸(兼)한다면 얼른 보면 극히 효성(孝誠)스러운 것 같지만 깊은 의미(意味)로는 불효(不孝)라 할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다른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잔(盞)을 드리는 헌수(獻壽)를 한다는 말인데 산 어머니 옆에 죽은 아버지의 위패(位牌)(神主)를 모셔야 할 테니 살아 계신 어머니가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원래(元來) 돌아가신 부모(父母)의 생신(生辰)에는 ‘이제(禰祭)‘를 지낼 수 있으므로 죽은 아버지의 회갑(回甲)에는 ’이제(禰祭)‘를 성대(盛大)히 지내고 손님을 청(請)해 아버지의 유덕(遺德)을 기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어머니의 회갑(回甲)잔치는 어머니에게만 헌수(獻壽)하고 잔치도 어머니의 회갑(回甲)잔치만 해야 합니다.
25 부모(父母)님의 회갑(回甲)에 헌수(獻壽)를 할 때 자손(子孫)이 향(向)해서 왼쪽에 아버지, 오른쪽에 어머니를 앉으시게 하는가 본데 맞는지요?
회갑(回甲)잔치의 좌석(座席)배치(配置)는 병풍(屛風) 치고 병풍(屛風) 앞에 당사자(當事者)가 앉고 그 앞에 상(床)을 차린 다음 자손(子孫)들이 당사자(當事者)를 향(向)해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절(禮節)의 동 서 남 북(東 西 南 北)은 병풍(屛風) 친 것이 북(北)쪽이고 자손(子孫)들은 남(南)쪽에서 북향(北向)해 서는 것이 됩니다.
이런 방위(方位)로 보아 귀하(貴下)가 말씀하신 부모(父母)님의 위치(位置)는 아버지가 서(西)쪽이 되고 어머니가 동(東)쪽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남자(男子)가 서(西)쪽 여자가 동(東)쪽에 위치하는 것은 죽은 사람(사자(死者)의 위치(位置)입니다.
제사(祭祀) 때 지방(紙榜)을 쓸려면 향(向)해서 왼쪽인 서(西)에 남자(男子), 향(向)해서 오른쪽인 동(東)에 여자(女子)의 신위(神位)를 쓰고, 묘지(墓地)에 시체(屍體)를 매장(埋葬) 할 때도 신주(神主)와 같이 서(西)쪽에 남자(男子), 동(東)쪽에 여자(女子)가 묻힙니다.
그런데 살아 계신 부모(父母)님을 죽은 사람의 위치에 모신다면 그런 불효(不孝)가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當然)히 아버지를 자기(自己)들의 왼쪽인 동(東)쪽, 어머니를 자기(自己)들의 오른쪽인 서(西)쪽에 모셔야 합니다.
고례(古禮)에 보면 시부모(媤父母)가 새 며느리의 폐백(幣帛)을 받을 때 구동 고서(舅東 姑西), 즉 시(媤)아버지는 동(東)쪽 시(媤)어머니는 서(西)쪽에 앉는다고 명시(明示)되어 있습니다.
예절(禮節)에서의 동 서 남 북(東 西 南 北)은 상좌(上座)를 북(北)쪽으로 간주(看做)해 상좌(上座)의 좌측(左側)이 동(東)이고, 우측(右側)이 서(西)쪽이 되는 것이며, 생자(生者)는 동(東)쪽을 상(上)으로 해 남자(男子)가 동(東)쪽으로 가고,
사자(死者)는 서(西)쪽을 상(上)으로 해(以西 爲上) 남자(男子)가 서(西)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26 실천예절(實踐禮節)의 내용(內容)에 '이조(李朝)' 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조선(朝鮮)'으로 고쳐 주십시오.
'이조(李朝)'란 일제(日帝)가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기 위해 '이씨(李氏)의 부족국가(部族國家)'란 뜻으로 쓰인 것으로 한국인(韓國人)이라면 쓸 수 없는 낱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예절(傳統禮節)을 바로잡는 잡지(雜誌)에 우리나라를 멸시(蔑視)하는 '이조(李朝)'란 용어(用語)는 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먼저 오해(誤解) 없으시기를 바라면서 뜻 높은 충고(忠告)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는 '조선(朝鮮)'이란 국호(國號)를 사용(使用)한 시대(時代)가 단군(檀君)의 조선(朝鮮), 기자(箕 (奇)子)의 조선(朝鮮), 위만(衛滿)의 조선(朝鮮), 이씨(李氏)가 왕(王)이었던 조선(朝鮮)이 있었고 지금은 북한(北韓)이 '조선(朝鮮)'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조선(朝鮮)'이라고 하면 어떤 조선(朝鮮)인지 분간(分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때문에 역사학자(歷史學者)들은 단군(檀君). 기자(箕(奇)子), 위만(衛滿)의 3조선(朝鮮)은 고대조선(古代朝鮮)이라 하고, 이씨(李氏)가 왕(王)이었던 조선(朝鮮)을 근세조선(近世朝鮮)으로 구분(區分)하고 또 고대조선(古代朝鮮)을 왕조(王朝) 별(別)로 나눌 때는 건국왕조(建國王朝)의 성(姓)을 따라 구분(區分)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제(日帝) 이전(以前)에는 이씨(李氏)가 왕(王)이었던 조선(朝鮮)을 그냥 '아조(我朝)' 라고 도 했습니다. 즉 우리나라(조정)란 뜻이 되겠습니다.
일반적(一般的)으로 '아조선(我朝鮮)'이라고 널리 쓰였지요. 그러나 본 실천예절(實踐禮節)에서 더러 '이조(李朝)' 라고 표기(表記)하는 경우는 ‘우리나라’ 라는 뜻이 아니고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조선(朝鮮)'이란 뜻으로 쓰여지고 있고, 그것을 줄여서 '이조(李朝)'라고 쓰였습니다. 혜량(惠諒)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