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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메츠의 데이빗 라이트,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지금의 비대해진 본즈가 아닌 1990년대 중반 날렵한 외모의 배리 본즈), 신시내티 레즈의 켄 그리피 주니어의 공통점은? 바로 공수주를 두루 갖춘 일명 5툴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야구의 7가지 재능(타격, 장타력, 주루플레이, 수비센스, 강한 어깨, 도루능력, 클러치 능력) 중 1가지만 제대로 갖추어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야구지만 5가지 이상을 가진 불공평한 선수들에게 야구천재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역사가 짧은 한국 프로야구에도 이런 반칙같은 선수들이 있었다. 원조 타격천재 이영민,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4할타자 백인천, 10승을 올린 타점왕 김성한, 타격3관왕 이만수 등 올드스타들도 있지만 여기서는 1960년대 이후에 출생하여 한국야구에 강한 임팩트를 주었던 야구천재들을 찾아보았다. 장종훈, 양준혁, 김기태 등은 타격에선 나무랄데 없지만 수비에서의 임팩트가 없으므로 제외했다.
1.바람의 아들 이종범
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종범은 1998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를 주도한 야구천재였다. 유격수로써 화려한 수비실력을 뽐내 김재박, 류중일로 이어지는 명유격수 계보를 이었으며 1994년 타격, 도루,최다안타, 득점 등 타이틀을 독식하며 한국 최고의 야구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데뷔 첫해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으며 1996, 1997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으로 2001년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전성기적에는 미치지 못했고, 2006 WBC에서 4강의 주역으로써 임무를 완수했지만 정작 시즌에선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공격, 수비(범위), 주루, 장타력, 강한 어깨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데 없는 5툴 플레이어의 대표적인 선수.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타격에 관한 기록은 양준혁이 아닌 이종범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2.적토마 이병규
타격에 관한 재주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 못지않은 평가를 받을 정도. 제2의 장효조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타격의 천재. 전혀 안타를 기록할 수 없는 볼도 안타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발도 빠르고, 수비실력도 뛰어나다. 강한 어깨는 아니지만 정확한 송구능력을 가지고 있어 주자에 대한 견제도 뛰어나다. 1997년 LG에 입단하여 그해 신인왕을 획득했다. 슬러거는 아니지만 30-30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이 있으며 조금만 각성하면 4할까지 노려볼 수 있는 타자. 그러나 전형적인 배드볼 히터로 어이없는 볼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경향이 있다. 초구공략도 빈번하여, 팀공격의 맥을 끊어놓는 경우도 있다. 2007시즌부터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게된다. 일본투수들의 유인구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타격을 펼치는 것이 최대 과제.
3.비운의 야구천재 박노준
1990년대가 이종범의 시대라면 1980년대는 박노준의 시대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프로에서가 아니라 아마츄어에서 였다는 것이다. 박노준이 왼손잡이인 관계로 내야포지션은 소화할 수 없는 대신 투수와 타자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야구천재였다. 이종범과 마찬가지로 5툴을 갖춘 만능선수였다. 그러나 1981년 야구관계자들과 수많은 여고생들마저 안타깝게했던 봉황기 결승전에서의 부상 이후 숱한 부상에 시달리며 프로에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너무나 뛰어났던 재능은 혹사로 그의 몸을 갉아먹었다. 투수로써의 혹사는 그 어깨를 망가뜨렸고, 타자로써의 그의 플레이는 잦은 부상을 몰고왔다. 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3할대 타율에 43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그해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그것으로 박노준의 활약은 끝이었다. 지금은 해설위원으로써 활약하고 있지만 아직도 박노준이라는 이름 앞에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놓이는건 그가 보여준 재능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4.짧게 불타올랐던 또다른 천재 강기웅
A로드, 데릭지터, 마이클 영 등 MLB스타들은 제쳐두더라도 이종범, 김재박, 류중일, 박진만 등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내야수의 꽃은 유격수다. 그에 반해 2루수는 유격수의 보조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스타플레이어를 찾기도 쉽지않다. 그럼에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2명의 걸출한 2루수를 꼽을 수 있으니 이는 상당한 행운이다. 근성과 투지의 대명사로 롯데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박정태와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의 강기웅이 그렇다. 특히 강기웅은 실업무대에서는 비교상대가 없을만큼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다. 5연타석 홈런, 3루타가 하나 비는 사이클히트 등 적어도 타격에선 최고의 선수였다.(사이클히트를 위해 홈런을 3루타로 만들기 위해 누를 지나쳐버린 해프닝도 있긴 했다.) 또한 2루수로썬 웬만한 유격수 못지않은 화려하고도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기웅에겐 뛰어난 재능과 함께 약한 체력의 소유자였다.(종목을 막론하고 천재라 불리운 선수들에겐 항상 약한 체력이 발목을 잡곤한다.) 시즌 초반엔 무시무시한 기세로 타격전부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후반에 들어가면 평범한 성적에 그치곤 했다. 그래서 최고의 2루수 논쟁에서 그는 한때 임팩트가 강력했던 선수에 그칠뿐이지만 적어도 짧았던 그 임팩트는 매우 강했다.
5.천재의 그늘에 가린 2인자 유지현
1990년대를 지배한 야구천재 이종범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기량을 지니고도 2인자의 자리에만 머물렀던 또다른 신동이 유지현이다. 그는 실제 나이보다 앳돼보이는 외모덕에 당시 유난히 여성팬들이 많았다.(그 당시에 서용빈, 김재현등 LG트윈스 신인트로이카도 여성관객 몰이에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 외모는 물론 기량 또한 천재라 불리기 충분했다. 빠른 발 , 정확한 타격, 숨겨진 일발장타, 안정된 수비 등 천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았다. 1994 데뷔시즌에 신인왕은 물론 팀을 우승시키는데 일조하는 등 맹활약으로 LG트윈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가 천재로 불리지 못한건 당대 최고의 야구천재 이종범이 존재했고, 유격수로써 약한 어깨가 문제였다. 충암고 재학시절만해도 이종범보다 한수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어깨부상으로 자신의 무기 한개를 빼놓은게 되었다. 또한 동기인 서용빈보다는 타격의 정교함이, 김재현보다는 장타력이 모자랐다. 올스타나 슈퍼게임 멤버를 선발할때도 그 포지션은 유격수가 아닌 2루수였다. 이종범이 없었다면 천재라는 호칭은 아마도 유지현의 차지였을 것이다.
첫댓글 여기에 'No.11 게으른 야구 천재'도 추가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