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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53 - 도전 2
S#1. 학교 뒤 동네 길 / 새벽
아직 새벽 어스름이 깔린 길.
주위의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인데 민재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
(밤새 공장에서 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S#2. 민재의 방
잔뜩 지쳐서 들어서는 민재. 잠이 덜 깨서 반쯤 눈이 감긴 정태가 가방을 챙기고 있다가 본다.
정태 : 뭐야. 지금까지 공장에 있다가 오는거야?
민재 : 어.. (비실비실 침대를 찾아가는)
정태 : 고생 좀 한 모양이구만. 얼굴이 팍 삭었다.
민재 : 니 얼굴도 피장파장인데 뭐. (침대로 기어들고 있다)
정태 : 그래서. 그 아저씨한테 도움은 좀 되고 온거냐?
민재 : 코일 감는 솜씨가 형편없다고 구박만 듣다 왔다. 말 시키지 말고 너 나갈거면 빨랑 나가.
정태 : 야야 옷이나 벗고 자라.
민재 : 잘 거 아냐. 잠시 허리만 피는거다. 으그그그..
정태 : (가방 집어들다가) 참 너 자면 안된다.
민재 : 안 잔대니까.
정태 : 진수네 벤처말야. 이따 아침 10시에 투자자 만나기로 했댄다. 너 꼭 나와야 된다든데?
민재 : (거의 자고 있다) 지금 몇신데.
정태 : 시계 여기 있으니까 니 눈으로 봐.
책상의 탁상시계를 들어서 민재가 안보이게 돌려서 바닥에 놓고는 나가버린다.
민재, 으이그.. 해서 할수없이 침대에서 기어내려와 시계를 본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심해서 얼굴을 부빈다.
S#3. 전자동 복도
대욱이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 보면 저만치에 민재가 벽에 기대 서있는데 눈을 감고 있다.
대욱 : 어 선배 거기 서서 뭐하십니까?
민재 : (눈 감은 채로) 뭐하는 걸로 보이냐?
대욱 : 선 채로 말하면서 자는 걸로 보이는데요.
민재 : 잘 봤어. 지난 사흘 동안 세시간쯤 잔 거 같다.
대욱 : 뭘 도와드릴까요.
민재 : 동아리방까지 나 좀 끌구 가봐.
대욱 : 동아리방입니까? 거기 애들 있어서 잠자긴 시끄러울텐데요.
민재 : 자긴 임마. 거기서 투자자 미팅이 있대잖아.
대욱 : 진수의 벤처..말입니까?
민재 말해놓고 아차해서 눈을 뜨고 대욱을 본다.
대욱 어정쩡하니 서있다가 민재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정쩡하게 웃어보인다.
S#4. 동아리방
마이클 : 마이클 지금 화나고 있어. 마이클 화내는 거 싫어하는 사람. 그런데 화나. 부글부글 끓어. 지금.
지민이 테이블 위에서 작업중이던 대자보 종이(신입생 모집에 관한)며 매직펜 등을 챙기면서..
지민 : 글쎄 그냥 가재니까아. 딴데 가서 하면 되잖아.
진수는 프린트를 뽑는 작업중인데 돌아보지도 않고 있다.
마이클 : 뭐야. 이거. 여기는 미스터 동아리 방이고. 마이클은 미스터 동아리 사람이야. 그리고 지금 지민이하고 나는 동아리 일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가 왜 쫓겨나.
진수 : (작업하며) 누가 쫓아낸다는거야. 두시간 정도만 방을 비워달라는 거지.
마이클 : 그게 그 말. 우리가 왜 우리 방을 비워야 돼.
민재와 대욱이 들어오다 본다.
마이클 : 그리고 나 진수형 말투 맘에 안들어. 이건 부탁을 하는 게 아니고 명령을 하고 있잖아. 내가 쫄병이야? 내가 형 자식이야?
대욱 : 뭐야. 왜 그래? (지민에게) 얘 왜 이러냐.
민재, 이그.. 귀찮아지면서 침대쪽으로 가서 등을 돌리고 누워버리고 아이들 대화 계속..
지민 : 포스터작업 중이었거든. 우리 미스터, 신입생모집 해야되잖아. 근데 진수오빠네 투자자 미팅있다구 나가라고 하니까
마이클이 삐쳐서.. 그래서.. (대욱과 진수의 눈치를 보는데)
진수 : (프린트물 챙기며) 기업 사람한테 우리 로봇들을 보여주면서 말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말야. 장소를 일루 정했어.
마이클 : 그럼 미안하다고 부탁을 해야지. 부탁이 아니었잖아.
대욱 : (마이클에게) 지금 공장동 비었어. 글루 가서 해라.
마이클 : 지금 그 문제가 아니야. 마이클 화나는 건 딴 문제야. 이건..
지민 : (얼른 마이클을 끌어당기며) 그래 그럼 되겠네. 가자. 공장동 비었대.
마이클 : 아아 정말 미치겠어. 화나면 한국말 더 잘 안돼. 이거 미쳐..
대욱 : (괜히 버럭.. 진수에 대한 서운함이 마이클에게 터지듯) 까짓 포스터 작업이야 아무데서 하면 어때? 꼭 여기서 하란 법 있어?
나가 임마. 얼른.
마이클 : 이건 또 뭐야. 대욱이 형이 왜 나한테 화내. 이거 뭐가 이래.
지민 : 아이구 참. 얼른 가자니까.
지민, 마이클을 끌어나간다.
마이클 : 마이클 진짜 열받아. 터져. 나 터져버렸어. 아아 미쳐.
하면서 끌려나간다.
진수, 말없이 프린트물들을 테이블에 늘어놓는다. 페이지 별로 분류중.
대욱 말없이 진수를 보고 있다가..
대욱 : 나도 비켜줘야 되겠지?
진수 : 아직 시간 있어. 볼일 있으면 보고 가. 컴퓨터 쓸 거야?
대욱 : 아니 볼 일은 없어.
진수 : (대욱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대욱 : 그럼.. 잘해봐라. (문쪽으로 가는데)
진수 : 대욱아.
대욱 : (보면)
진수 : 미안하다.
대욱 : 뭐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으려하며) 방 쓰는 거? 신경 쓰지 마. 브리핑이나 잘해.
진수 : 니가 섭섭해하는 건 아는데..
대욱 : 내가 뭘 섭섭해해. 친구라는 놈이 나 빼고 사업한다고? 그게 왜 섭섭해. 고마워할 일이지. 왜 고맙냐..(웃음기 이젠 완전히 걷혀서)
니 사업은 망할거니까. 망하기 전에 나 빼준 건데 고마운 일 아니냐? 안 그래?
진수 : 대욱아.
대욱 : 내가 말이 좀 심했나? 할수없지. 나야 원래 심한 놈이니까. 잘해봐.
문을 소리나게 쾅 닫고 나가버린다.
진수, 우두커니 서있다가 문득 돌아보면 민재가 상체를 벽에 기대고 앉아 보고 있다.
진수 : ..각오했던 일이에요.
민재 : (그저 보기만)
진수 : (거칠게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던 서류들을 챙기기 시작하며) 우린 지금 동아리 모임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사업이라구요.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자고 만드는 게 아니구요. 선배도 이해하시죠?
민재 : 그러니까... 넌 재미도 없는데 하고 있는거야? 벤처 기획이란 거?
진수 : 사업을 재미있자고 한단 말이에요?
민재 : 재미도 없는데 그럼 왜 하려는 거지?
진수 : (보는)
민재 : (으쓱하는 기분) 아직 20분 쯤 남았지? 나 좀 잘게. 깨워. (드러누우며) 근데 너 그 서류들 페이지 맞추고 있던 거 아니었나.
진수, 그제야 아무렇게나 걷어들인 손 안의 서류를 내려다본다.
S#5. 센타 랩
경진, 부산스레 책상 위의 자료들을 챙겨서 다른 책상에 달려가 놓고 마악 문을 향하는데 석우가 들어온다.
석우 : 어디로 또 새려는 거야?
경진 : 시키신 일은 여기 이렇게 말끔하게 처리가 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잠깐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올까 하는데요.
아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석우 : 경진이 너 요새 창업준비 한다고 우리별은 아예 잊은 거 아냐.
경진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우리별이 그리워서 밤에 잠도 안오는 사람입니다. 그럼 아주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경진 슬슬 문밖으로 빠지려는데.
석우 : 누가 허락했다고 다녀오겠습니다야.
경진 : (할수없다는 듯 석우 앞에 서더니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는 시늉을 하고, 손을 등뒤로 감췄다가 내밀며) 오른손. 왼손.
석우 : 어쭈.
경진 : 승부를 피하지 마십쇼. 동전은 어느 쪽입니까.
석우 : (어이없어 웃다가) 오른손.
경진 : (오른손을 펴보인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럼 다녀옵니다.
석우 : 왼손 펴봐.
경진 : 승부에 미련을 남기는 건 추한 겁니다.
경진 재빨리 문으로 간다.
석우 : 야 임마. 민경진.
경진 문으로 나가며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펴서 흔들어보이며..
경진 : 너무 기다리지 마세요오...
경진 문 밖으로 사라졌다.
석우, 어처구니가 없다.
S#6. 동아리방
테이블에 스폰서(40대, 오락기회사 간부)가 앉아서 손에 들린 축구로봇을 이리저리 돌려서 보고 있다.
그 앞에 민재, 경진, 지원, 진수 앉아있다. 민재는 좀 뒤쪽으로 앉아있는 상태.
스폰서는 다시 앞에 놓여진 기획서를 몇장 들춰본다.
모두 조용히 긴장해서 보고만 있다. 이윽고.
스폰서 : 아이디어 자체는 좋아요. 허나 이 계획서 내용대로 간다면 장사는 못해.
진수 : 저희도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해봤는데요.
스폰서 : 글세 학생들이 시장조사가 뭔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우선 이걸 게임방에 팔아야 될 거 아닌가.
그리고 게임방에서는 이걸 사서 장사를 해야되고.
진수 : 그렇죠.
스폰서 : 이 게임이 로봇 여섯 마리가 움직이는 거라고 했지.
진수 : 예. 3 대 3 게임입니다.
스폰서 : (혼자 껄껄 웃는다)
아이들 : (보기만)
스폰서 : 이거봐. 그럼 여섯명이 있어야 게임이 된다는 얘기잖아. 학생들은 게임방에 갈 때 여섯명씩 떼지어 들어가나?
아니면 게임방 주인이 그때마다 손님 여섯명씩 짝을 지어줘야 되겠나?
경진 : 잠시만요. 이 얘기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회사에서는 투자를 할 생각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 주셨구요. 왜 그러셨을까요.
스폰서 : 그러니까 우리가 투자를 한다면 아주 위험한 투자가 된다는 얘기지.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사장님께서 젊은 고급 인력들을
키워준다..이런 의미에요. 그건 또 어떤 얘기냐하면..
지원 :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만.. 그건 이익배당 문제에 이의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스폰서 : 그것도 그렇고. 그리고 학생들이 현실을 잘 모르니만큼 개발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 생각을 따라줘야겠다.. 이 말이지.
진수 :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스폰서 : 우선 3대 3 게임은 안돼. 이거 두 사람이 하는 게임으로 바꿔줘. 그러니까 1대 1 게임이 되나?
아이들 언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민재 : 그렇게는 곤란한데요.
사람들..민재쪽으로 다 돌아본다.
스폰서 : 곤란하다니?
민재 : 1:1은 굳이 저희가 아는 로봇 축구 아니더라도 만들수 있는 겁니다. 그저 모형 자동차 수준이면 되거든요.
그렇다면 신제품 개발이라고도 할 수 없는 거고...
스폰서 : 허어.. 이래서 학생들하고는 얘기하기가 아주 어려워. 우리가 지금 장사를 하자는 거지, 뭐 거창한 신기술을 개발하자는 게
아니잖아.
민재 :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거라면 우리가 아니더라도 선생님 회사에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스폰서 : 맞아. 솔직히 말하면 우린 학생들의 이름이 필요해. 카이스트 로봇축구 동아리. 홍보하기도 좋잖아.
일종의 캐릭터 산업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거지. 어때. 이런 게 장사라는 거야.
민재 어이없어 보다가 진수를 돌아본다. 진수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만 내려다보며 앉아있고.
경진이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S#7. 학교 건물 앞 주차장
자동차 한 대가 출발해가고 있다.
진수와 민재가 나란히 서서 배웅을 하고 있다. 그렇게 서서 가는 차를 보고 있다가..
진수 : 선배는 그런 식이라면 싫은거겠죠?
민재 : 싫다기보단 웃기지 않냐? 이제까지 열심히 공학연구라는 걸 해왔는데 말야. 갑자기 서커스단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은 거 같잖아.
진수 : 어차피 사회라는 게 서커스단 아닐까요.
민재 : (돌아본다)
진수 : 죽을 때까지 연구실에 박혀 살겠다면 모르지만 어차피 사회에 들어갈 거라면 말이죠. 줄타기도 하고 삐에로 분장도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닐까요.
민재 : ...그럼 전에 니가 나한테 말한 건 뭐였냐. 단지 돈 때문에 창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로봇 축구 를 널리 알리고 싶다.
연구마당이 동아리방에서 회사로 바뀌는 걸로 생각해달라.. 그러지 않았었나.
진수 : 연구든 뭐든 일단 돈이 있어야 되는거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서커스든 뭐든 돈을 벌어놓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연구를
폼나게 해보겠다. 이렇게 생각할 순 없을까요.
민재 : (.... 웃는다)
진수 : 제 말이 웃겨요?
민재 : 아니. 글세..진수 너의 목표라는게 대단히 편리한 거 같아서 말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목표라고 할까.
진수 : 비웃는 건 쉽겠죠.
민재 : 어이 비웃는 게 아니라...
진수 : 그래도 저는 언제나 10년 후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선배나 친구한테 잘 보이는 게 아니구요.
진수, 먼저 돌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민재, 그런 진수를 보고 있다. 그 위로...
정태 : (E) 1대 1하고 3대 3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죠.
S#8. 석학의 집
정태와 지원이 테이블에 서류들을 늘어놓고 앉아있고 그 옆에 미순이 붙어 앉아있다.
미순 : 어떻게 달러. 로봇이 두 마리가 있냐 여섯 마리가 있냐.. 그거잖아.
정태 : 쉽게 말해서 1대 1이면 로봇 축구의 초창기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한 거에요. 솔직히 그걸 무슨 기술이라고 하긴 챙피하죠.
그냥 리모콘 잘 듣는 로봇하고 조이스틱만 있으면 될걸요. (지원에게) 민재한텐 씨도 안먹혔겠다.
지원 : 그런 거 같애. 특히 카이스트 이름을 홍보용으로 쓰겠다는 말이 나오고 난 담에는 아예 돌아앉아서 관심을 끊어버리드라구.
미순 : 그거 시제품 만드는 데 얼마나 든다고 했지?
지원 : 한세트당 6백만원 정도 드나봐요.
미순 : 60만원 정도면 나도 대 줄수 있는데..거 뭐냐. 중소기업청인가 뭔가에서 벤처기업에게 돈 빌려 주는 거 있대매. 그걸 빌려보지 왜.
지원 :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게 자본회수 방법이에요. 판로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일만 벌이면 소용이 없죠.
미순 : 하이고... 그건 그래. 나야말로 가게 수리한다고 돈만 쳐들이고 이거 신입생은 빨랑 안들어오고..죽겄어.
(일어나 가며) 니들도 물만 마시지 말고 비싼 거 좀 주문해.
정태 : (웃으며 미순을 보다가 문득) 점심 먹었어?
지원 : 먹었다고 했잖아. (앞의 서류들을 들추며) 이게 이번에 나온 실험 결과니? 박교수님은 직접 실험을 보고 싶어하시든데.
정태 : 넌 어때.
지원 : 뭐가.
정태 : 진수의 벤처. 모양새가 어떻든 같이 해볼 생각이야?
지원 :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좀 미안해. 진수처럼 열정을 가진 것도 아니고, 민재처럼 기준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옆에서 구경하는 기분이니까. (자료들을 분류하는데)
정태 : (말없이 편한 자세로 미소지어 지원을 보고 있다)
지원 : (그 시선이 불편해서) 왜?
정태 : 생각해보는거야. 니가 열정을 가지고 빠져들만한 건 뭘까. 그런 게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지원 : (딱딱해지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정태 : (지원과 사이의 공간을 가상의 벽을 만지듯 더듬는다) 그냥 점검 중이야.
지원 : 뭘.
정태 : 너의 방어벽. 아직 얼마나 튼튼한가. 어디 틈새가 난데는 없나..
지원 웃지 않고 정태를 보고 있다. 정태 싱글거리며 미순을 향해.
정태 : 누님. 여기 비싼 커피 좀 더 주세요.
S#9. 이교수 랩
명환, 정태 각자 흩어져 앉아 작업하는 자세로.. 만수만 중앙에 의자를 타고 돌며..
만수 : 스폰서는 구했대매.
정태 : 문제는 스폰서 요구조건이 애들이 감당하기에 좀 벅찬가봐.
만수 : 그게 다 정만수가 없어서 그래. 스폰서는 그렇게 다루면 안되지. 그래서 접대문화가 생긴거 아냐.
접대 문화 알지, 은밀한 룸살롱에서 오고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거래.
명환 : 정태야.
정태 : 예.
명환 : 혹시 나중에라도 말이야. 정만수가 사업이란 걸 한다면 하다못해 구멍가게라도 한다면 니가 말려라.
애국하는 기분으로 말려. 알았지?
정태 : (웃는)
만수 : 아아 정말 왜 그러세요. 저도 이제 석사2년찹니다 2년차. 제발 2년차 대우 좀 해주세요. 제에발.
명환 : 정태야.
정태 : 예.
명환 : 넌 저런 식으로 석사 2년차가 되면 안된다. 내 말 알겠지?
정태 : (웃으며) 알겠습니다.
만수 : 우씨.. 자꾸 그러시면 저 정말 일냅니다.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일내고 말거라구요.
그때 후회하지 마시고 있을 때 아끼고 위해줘봐요.
명환 : 정태야.
정태 : 예에.
명환 : 중희 학회에서 언제 오냐. 중희라도 있어야 쟤가 좀 가려질텐데. 쟤 일 안하고 노는 꼴을 더 이상 못 봐주겠다. 어뜩하냐.
만수 : (심통이 나서 우당탕거리며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S#10. 센타 랩
경진이 수화기를 들고 통화중이다.
경진 : 한번만 더 검토해주시면 안될까요?..네...알겠습니다.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밝게 인사하며 수화기 내리고는 옆에 보던 명단을 구깃구깃해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다. 한숨 쉬고 책상에 엎드려버린다.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던 민재가 경진을 보고.
민재 : 그쪽도 거절이야?
경진 : 엉. 사업계획서 보내준대는 것도 싫대. 요즘 자기네 회사에 들어오는 사업계획서가 너무 많아서 검토할 인력이 없대.
민재 : 전문 투자회사 쪽에는 연락해봤어?
경진 : 물론이지. 다같이 합창하네. 노.노.노. 그 스폰서 말이 맞나 봐. 1:1로 간다해도 투자 망설이는 데가 태반이야.
3:3은 어림도 없는 분위기라구.
민재 : (난감해서 보다가 에이.. 작업 계속하는)
경진 : 이민재.
민재 : 왜.
경진 : 만약에 3:3게임으론 제작이 불가능할 경우엔 어떡할건데?
민재 : 말했잖아. 그건 생각할 가치도 없는 얘기야.
경진 : 그래도 한번 더 생각해보지 않을래? 이제 다른 대안은 없어. 내일 중엔 그 스폰서한테 확답을 줘야하구 그래서 오늘중에
우린 어떤 결론이든 내야한다구.
민재 : 니 결론은 뭔데.
경진 : 그건 이민재 맘에 달렸지.
민재 : 내 의견에 무조건 따르겠다는거야?
경진 : 널 도와주기로 한게 내 초심이었으니까. 사람은 초심을 잃으면 안되거든.
민재 : 초심이라...그럼 나도 내 초심이 뭐였는지 생각해보면 되겠구만.
경진 : 어째 불길하군.
민재 : 뭐가.
경진 : 이민재의 초심은 웬지 무서워. (일어나 저쪽으로 가며 흥얼거리듯) 자 흔들리지 않게 민재 서있어. 자 흔들리지 않게 민재 서있어.
물가에 세워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민재, 그런 경진을 본다.
S#11. 캠퍼스 전경 / 밤
S#12. 박교수 랩 / 밤
남희 혼자 작업중인데.
박교수 : (들어오며) 오늘도 지원양 안왔나?
남희 : 오전에 잠깐 다녀갔어요.
박교수 : 사업진행이 잘 되나보구만. 좋은 현상이야.
남희 : 그게 아니라 문제가 좀 있는거 같애요.
박교수 : 당연히 문제가 있어야지. 그게 벤처의 매력인데.
남희 : 스폰서 요구조건하고 애들하고 안맞나봐요.
박교수 : 오호 드디어 1차 관문에 도달했구만. 그 관문이 또 아주 재미있지. 암..
남희 : 애들 사이에도 의견이 안맞고 복잡한가봐요. 만수한테 들어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진 모르겠지만요.
박교수 : 팀원간의 불화. 고게 또 2차 관문이지. 잘 나가고 있구만. 순서대로 잘 나가고 있어.
남희 : 교수님. 그렇게 재미있어 할 문제는 아닌거 같아요.
박교수 : 아니지. 벤처라는 게 이 재미로 하는건데. 이때가 아주 중요해. 시험대에 오른거잖아.
각자의 기업관 인생관을 속일 수 없게되는 순간이거던. 아..궁금해라. 분명히 지금쯤 열심히 싸우고들 있을텐데..
S#13. 민재의 방 / 밤
민재와 진수, 지원, 경진 있다. 다들 심각한 분위기.
진수 : 지금 중요한 문제는 1대 1이냐 3대 3이냐가 아니고 스폰서를 맺는 조건인 거 같아요.
그쪽에서는 이익 배당을 너무 세게 부르는 거 같고 이렇게 계약이 되면 차후 다른 기술을 개발할 때도..
민재 : 아니 잠깐. 차후 다른 기술이라니. 지금 내놓은 기술이 뭔데. 1대 1 로봇을 놓고 그걸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나.
지원 : 좀 더 발전적으로 생각해보는 게 어때. 우린 지금 졸업연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로봇 축구대회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화 시키고 안정권이 되면 민재 니가 하고싶은 기술부분..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봐.
민재 : 그럼 지원이 넌 1대 1이라도 오케이다 이건가.
지원 : 지금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생각해보는 자리잖아.
진수 : (민재에게) 그리고 1:1에서도 어느정도 지능은 부여할 수 있어요. 거기에 몇가지 인스트럭션을 넣으면 충분할거에요.
민재 : 그 정도의 로봇을 내놓고 우리 미스터 동아리 이름을 팔겠다는 거야?
진수 : (답답해하며 경진에게) 선배 생각은 어때요.
경진 : 난 영업담당이니까 정책결정은 세분이 하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좌중을 둘러보는)
진수 : (민재에게)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요. 선배. 이 아이템은 제가 먼저 기획한 거에요.
그러니까 일단은 제 기획대로 따라와 주면 안될까요?
민재 : 나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난 아직 너의 벤처에 참여 한다고 말한 적 없어.
그러니까 너의 기획에 따를지 아닐지 그걸 지금부터 결정해야 되는거고.
경진 : 여러분 잠깐만. 이러지 말고 우리 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지원 : 누구 생각이 이성적인지..그걸 누가 판단할 수 있는데?
경진 : (할말이 없는)
다시 말없이 앉아있는 네사람....
S#14. 캠퍼스 전경/ 낮
S#15. 교내 건물 복도
진수 걸어오며 핸드폰 통화중이다.
진수 : 사장님께서 더 시간을 주시면 좋겠어요.. 내일중엔 반드시 결정을 드리겠습니다... 네. 물론 1:1게임쪽으로 생각하고 있구요...
네. 다시 연락드리죠.
진수 핸드폰 닫는다. 이어 울리는 벨.
진수 : (받고) 네.....박교수님께서요?
S#16. 박교수 연구실
진수가 들어오면 민재, 지원이 이미 와서 테이블에 앉아있고 박교수가 분주하게 커피잔을 나르는 중이다.
경진 : (박교수의 뒤를 따르며) 어우 교수님 제가 할께요. 주세요.
박교수 : (자기가 끝까지 나르며) 됐어 됐어. 나 이런거 좋아해.
경진 : 교수님이시잖아요.
박교수 : 왜 교순 학생들한테 커피를 나르면 안되지?
경진 : (언뜻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야...
박교수 : 자자 일단 앉으라고. 진수도 일루 와.
박교수 진수가 테이블에 합류한다.
박교수 : 음 소문을 듣자하니 자네들 요즘 전쟁중이라고?
모두 언뜻 대답을 못하고.. 박교수 아이들을 흥미있게 둘러보고..
경진 : 사실은 제품 결정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뭘 팔아야 하는건가.
박교수 : 듣자하니 1대 1 게임이냐. 3대 3게임이냐. 이게 문제라며.
경진 : 다 알고 계시군요.
박교수 : 원래는 모른척 할려고 그랬어. (민재에게) 민재군은 1대 1게임은 시시해서 싫다. 이런 쪽이라고?
민재 : 그렇게되면 저희가 가진 로봇축구 기술은 별 소용이 없거든요. 전 저희 기술을 살릴 수 있는걸 하고 싶습니다
박교수 : 오호..그럼 앞서가는 신기술.. 이런게 있어야만 벤처정신인가? 그런 거룩한 뜻이 없으면 아니고?
민재 : 물론..그런건 아니겠죠.
박교수 : 진수군 자넨 왜 창업을 하려고 하지?
진수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망설이는)
박교수 : 그 중에서 가장 솔직한 이유는?
진수 : 일단은 돈을 벌고 싶기 때문입니다.
박교수 : 돈 벌어 뭐하게?
진수 : 돈이 있어야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테니까요.
박교수 :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 그럼 자기만족이 벤처정신인가?
진수 : ....
박교수 : 지원양.
지원 : 네.
박교수 : 자네가 생각하는 벤처정신이란 뭐지?
지원 : 시험 문제 답안처럼 말씀드려요?
박교수 : 아니아니 교과서에 나온거야 나도 알지. 그런 거 말고 현장의 실무자들 얘기가 듣고 싶어서 말야.
지원 : 아직 실무자라고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데요.
박교수 허어 곤란하다는 듯 일어나서 자기 책상 컴퓨터로 가며..
박교수 : 이거 참. 오늘 중으로 이 신문 칼럼을 써줘야 되는데 말야. 벤처를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얘기거든.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넣고 싶은데 도움이 안되구만. 도움이 안돼. 얘기 다 끝났어. 이제 가봐도 돼.
모두 어이없어 교수를 본다.
S#17. 박교수 연구실 앞 복도
걸어나오는 민재, 진수, 지원, 경진.
진수 : 민재형 저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민재 : 지금은 곤란한데. 선약이 있어.
진수 : 중요한 일 아니면 좀 연기하면 안되겠어요?
민재 : 중요한 일이야.
지원 : 혹시 그 부품공장 아저씨 일이니.
민재 : 어.
진수 : 이런 상황에서 다른데 신경쓰는거..좀 자제해 주면 안되겠어요?
민재 : (멈추고 진수를 본다)
진수 : (같이 멈춰서서 보며) 지금 우린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어요. 형이 그 분 도와주는거 이해는 하지만..
우리 앞가림부터 해야되는 게 순서 아닌가 해서요.
민재 : (대꾸하려다 관둔다. 기분이 상했다)
경진 : (얼른 나서며) 이미 선약한 일이래잖아. 우리 문제야 지금당장 해결날 일도 아니구.
민재 : (진수에게) 미안하다. 오후에 시간있으니까 그때 보자.
민재, 간다.
경진 : (분위기 바꿔보려고) 아우..나도 센타에서 쫓겨나기 직전이야, 투자루트 알아본다구 센타에 동돌리고 살았잖니.
지금쯤 내 책상을 내놨을지도 몰라. 이따 봐아..
경진 간다.
지원 : 어떡할 생각이니. 결국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라면 말야.
진수 : (잠시 말없이 있다가) 배를 산으로 가게 할 순 없잖아요. 사공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먼저 걸어가다가 움직이지 않는 지원을 돌아본다) 안가요?
지원 : 진수야.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진수 : 반대의견이라면 충분히 들었고 충고는 지금은 듣고 싶지 않은데요.
지원 : 그래도 얘기해야겠어. 나하고도 상관되는 문제니까.
진수 : (짜증스러운 얼굴로 보는)
지원 : 니가 생각하는 배가 어떤 종류인지 모르겠는데.. 사공이 없으면 배는 갈 수가 없어.
진수 : 선장의 말에 따르지 않는 사공은 없는게 낫죠.
지원 : 그래도 선장 혼자서 배를 움직일 수는 없지. 자기 배의 사공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건 선장 자격이 없는거고.
진수 : 내 자격문제를 말하는 거에요?
지원 : 아니면 니 배는 그냥 유원지에서 타고 노는 일인용 놀이배니?
S#18. 석학의 집
자현 병석이 들어온다.
미순 : 어이 얘들이 누구야. 바쁘신 석사1년차들께서 왠일로 이시간에?
자현 : (의자에 털썩 앉으며) 탈출했어요.
미순 : 탈출?
병석 : 오늘 교수님이랑 선배님들 프로젝트 미팅땜에 서울가셨거든요.
자현 : 으아....이 얼마만의 자유냐!!
병석 : 자유는 무슨. 빨리 밥먹구 가서 숙제해야지.
자현 : (미순에게) 누나! 여기 김치볶음밥 3인분 곱빼기로.
병석 : 같은 여자끼린 언니라구 부르는거야.
자현 : 이 자식이 근데 오늘따라 잔소리가 심하네.
대욱이 들어온다.
자현 : 어이 강대욱. 살아있었냐?
대욱 : 왜, 누가 내가 죽었대?
자현 : 일루와 앉어. 내 옆에 앉어.
대욱 : 싫습니다.
대욱이 자현의 테이블과 떨어진 다른 테이블에 앉는다.
자현 : 저자식 봐라. 일루 오래니까. 내가 밥한끼 사멕일라 그런다.
대욱 : 됐습니다. 인간들이 싫습니다.
자현 : 너 이제 정진수 그놈이랑 친구하지마.
대욱 : 왜.
자현 : 너만 쏙 빼고 창업인가 뭔가 한대매. 그래서 니가 인간들이 싫어진거 아냐.
대욱 : 그거 내가 거절한 거야. 그리고 왜 멀쩡한 남의 친구를 욕하는 거야?
자현 : 강대욱. 진짜 의리있는 자식이네. 양병석. 들었지? 저게 친구라는 거야 임마. 옆에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는 게 친구가 아니고.
(윽박) 알았어?
병석, 턱짓으로 대욱이쪽을 가리키고. 자현 보면..
대욱 다시 일어나 문쪽으로 가며.
자현 : 어라 강대욱.
대욱 : (미순쪽으로) 나중에 다시 올게요. 어이 시끄러.
대욱 거칠게 나가버린다.
S#19. 신소재 응용 기계설계 랩 앞
민재가 용만과 함께 온다.
용만 : 모타를 새로 손봤으니 오늘은 문제없겠지?
민재 : 그러길 바래야죠.
저기서 자현과 병석이 오는 길이다.
자현 : 어. 스핀들 아저씨네. 또 실험하러 오셨어요?
용만 : 저번엔 정말 고마웠어. 급히 가느라 인사도 못하고 갔네.
자현 : 에유 별말씀을요.
민재 : 오늘도 좀 부탁하자.
자현 : 걱정마. (용만에게) 오세요. 안내하겠습니다.
병석 : (낮은 목소리로) 추자현. 숙제는 대체 언제할라 그래?
자현 : (병석에겐 대꾸없이 용만을 안내해 가며) 제가 말이죠. 이래뵈도 이 기계과는 꽉 잡고 있슴다.
어떻게 잡고 있느냐. 이 미모와 이 재능과 이 열정. 대충 아시겠죠?
병석... 으이그해서 보다가 할 수 없이 따라간다.
S#20. 신소재 응용 기계 설계 랩
지난번과 같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실험장비가 작동되고, 그 결과가 나타나는 모니터 앞에 모여있는
(이 랩의) 학생, 용만, 민재, 자현.병석 모니터 결과는 지난번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민재 : 지난번과 별 차이가 없는데요?
학생 : 그럼 구조쪽에 문제가 있는건가..회전축의 밴딩 스티프니스가 낮아서 공진이 생길수도 있거든. 공진이 생기면 변형이 커져서
에어베어링 유막을 깨버릴 수 있고..그렇게 되면 회전축이 하우징에 닿아서 제 속도가 안나오게 돼. 진동도 심하게 되고..
자현 : 잠깐 스톱! 그러니까 그 문제들의 해결방법이 뭐냐구요.
학생 : (어이 없어서) 그걸 알면 내가 학생하냐. 교수하지.
용만 : (겨우 끼어들며) 교수님이라면 아실까. 해결방법을?
학생 : 그야... 아마.. 아직은 모르시겠죠.
자현 : 오케이오케이 그럼 이제부터 문제를 해결보면 되는거다 이거죠.
병석 : (자현의 뒤에서 자현을 잡아당기며) 너 지금 뭔소리야. 니가 뭘 해결봐.
자현 : 야 지금 니 눈으로 봤잖아. 문제가 있대잖아. 그럼 해결을 봐야지. (민재에게) 안그러냐?
민재 : (저도 모르게 시계를 보고 있다가) 오후에 애들을 만나야 되는데.
자현 : 아 그건 오후에 걱정하고. (팔소매를 걷어부치며 학생에게) 그러니까 문제는 구조의 공진 문제다 이거죠.
학생 : 글세.. (들여다보며) 우선은 그렇게 추측되는데.
자현 :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용만 : 뭘 시작해?
자현 : 문제 해결이요. (그러다 멀뚱 서있다가 민재에게) 뭐부터 시작하지?
민재도 멀뚱이 서있다가 문득 잠바를 벗으며 학생에게.
민재 : 뭐부터 시작할까요?
학생 : (어이없어 민재를 보고 자기 시계를 보고 난처한)
자현 : 병석아.
병석 : (역시 시계를 보고 있다가) 뭐.
자현 : 둘 중에 하나 택해라. 여기서 우릴 도울거냐. 아님 너 가서 내 숙제까지 해줄거냐.
병석 : 뭐야? 아니 너 지금..
뭐라 더 말하려는데 눈치만 보던 용만이 갑자기 학생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여보인다.
용만 : 고마워. 학생들. 정말 고마워서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어. 오늘 일이 잘되든 못되든 내 평생 안 잊을게. 정말 고맙다고.
아이들 난처해서 어쩔줄을 모르는...
S#21. 위성센터 외경 / 저녁
그 위로 들리는 경진의 소리.
경진 : (E) 이와같이 위성이 자세를 잡고 25분 동안 회전하며 관측하면,
S#22. 센타 세미나실
서교수랩의 랩세미나가 진행중이다. 경진이와 서교수, 석우, 연구원이 있고,
스크린에 [Sky Survey를 위한 과학위성 1호의 운용 방법]이라는 제목과...지구, 위성의 운용을 그린 그림이 떠있다.
경진 : (그림을 보며) 핌스의 시야가 8도이므로 폭이 8도인 반원 모양의 띠가 얻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년이면 전 우주의 영역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슬쩍 시계를 본다)
서교수 : 질문.
경진 : 아 질문입니까.
서교수 : 우주 원자외선 영역에서 핌스에 영향을 줄 정도의 밝은 빛을 내는 별이 몇 개나 되지?
경진 : (자신있게) 대략 25000개 정돕니다.
서교수 : 계속해봐.
경진 : 계속이요? 아.. 계속.. 아 (겨우 생각났다) 이런 별들은 주위의 공간을 보지 못하게 하므로 스카이 서베이의 훼방자들이죠.
별들 말고도 달도 가끔씩 핌스의 시야를 가리므로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하면 실제로는 다섯번이 아닌 일곱번의 패스 동안
스카이 서베이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만족스러운 듯이) 이제 정말 이상입니다.
서교수 : 잘했어. 훌륭한데.
경진 : (휴우....해서 시계를 다시 보는데)
서교수 :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경진 : (울상이 되서) 예?
서교수 : 뭐 한가지가 또 빠졌지? (연구원들 쪽을 둘러본다)
대희 : SAA라고 들어봤어?
경진 : 네, 브라질 상공에 위치한 지역으로 지구 자기장이 지구의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지구의 방사선 벨트가 지표면에
많이 내려와 있는거잖아요.
석우 : 그렇지. 그래서 그 지역에는 고에너지를 가진 입자들이 많이 분포하게 돼.
경진 : 그런데요?
석우 : 위성과 고에너지 입자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경진 : 아! (깨달은 듯) 위성의 전자 부품이 고에너지 입자에 맞게 되면 손상을 입거나 오동작을 하게 되겠네요. 그럼 안되니까,
우리 위성에도 뭔가 대비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서교수 : 맞아. 그래서 모든 위성들이 SAA 지역에서는 관측을 하지 않고 안전 모드로 동작을 하지. 우리 위성도 마찬가질거고.
경진 : 그렇군요... 그걸 또 고려해야 하는군요. 죄송합니다. 그게 빠졌습니다.
서교수 : 민경진이 정신도 어디 딴데 빠져있는 거 같은데.
경진 : 그..그렇게 보였습니까?
서교수 : (석우에게)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일어선다)
학생들 모두 일어서서 서교수 나가는데 인사를 하고..
경진 슬슬 자료를 챙기며 튈 준비를 하는데.
석우 : 민경진.
경진 :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석우 : 도대체 니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경진 : 물론입니다. 세미나 준비도 형편없고, 발표는 버벅거리고, 그나마 준비해온 것도 빠뜨리고 그리고 그 주제에 또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면서 슬슬 문으로 이동)
석우 : 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경진 : 용서하십시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석우가 뭐라 더 말하기 전에 문으로 나가버렸다.
석우 정말 화가 나려는데 대희가 웃으면서.
대희 : 석우선배한테도 천적이 있는 줄 몰랐는데요.
석우 : 뭐가 어째.
대희 : 아닙니다. 그럼 랩에 가 있을게요.
대희도 도망치고... 그 위로.. 경진의 소리.
경진 : (E) 뭔 소리야? 계약을 하기로 했다구?
S#23. 빈 강의실 / 밤
경진이 놀란 얼굴로, 지원은 담담한 얼굴로, 앞의 진수를 보고있다.
세사람은 빈 강의실에 드문드문 떨어져 걸터앉아있는 상태.
진수 : 네. 내일 하기로 했어요. 일단 1:1게임기로 시제품 들어가는 걸로 해서.
경진 : 민재하고 얘기 된거야?
진수 : 민재선밴.. 창업멤버에서 빼고 갈 생각이에요.
경진, 지원, 언뜻 할말이 없어서 보고만 있다.
진수 : 민재형 때문에 더 이상 지연시킬 순 없다고 판단했어요.
경진 : 우리 창업준비한지 며칠이나 됐다구 그래? 이런 식의 결정..너무 빠른 거 아니니.
진수 : 함께 준비한 시간은 짧지만 저 혼자 준비해온 시간은 길어요. 더 이상의 시간낭비는 하고싶지 않구요.
경진 : 민재 제외시키는 거.. 난 반대야. 반대. (손까지 든다)
진수 : 창업준비하면서 멤버 이탈은 언제나 있는 일이에요. 남아있는 사람들이 진행해가면 돼요.
경진 : (어이없어 지원을 돌아본다) 이건 너도 아는 얘기니?
지원 : 나도 지금 듣고 있는거야.
경진 : 아아.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정진수 혼자 독단으로 처리하는 문제다 이거지.
진수 : 경진선배는 어디까지나 민재선배를 따라온 건가요? 개인의 생각은 없어요? 민재선배가 하는 대로 하는거에요?
그래서 민재선배가 빠지면 선배도 빠져요?
경진 : (말이 막혀 진수를 본다)
진수 : 그런 식이라면 곤란한데요.
경진 : (자세를 바로 하더니) 맞어. 난 민재를 따라온거야.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내가 좋아하고 도와주고 싶은 친구를 따라가.
너는 성공이나 돈을 따라가잖아. 마찬가지야.
진수 : 그렇다면 결국 내가 실수한 거네요. 이런 식의 창업멤버를 모았다는 게.
경진 : 니가 실수한 거라면 더 많은 거 같은데.. (일어선다. 지원에게) 나 있지. 더 열받기 전에 나갈래.
난 진짜로 열받으면 변신을 해버리거든. 내가 뭘로 변신할지는 나도 몰라. 아주 끔찍한 게 될거라고 생각해. 그럼 안녕.
경진 요란하게 나가버린다.
지원, 진수 조용하게 앉아있다. 그러다가...
진수 : 선배는 안나가요?
지원 : 나갈거야. 너 먼저 나간 다음에.
진수 : (웃는) 그게 선배식으로 날 위로해주는 건가요?
지원 : 왜 그랬니?
진수 : 뭘요.
지원 : 너.. 창업하기 싫은거니?
진수 : ....
지원 : 얘기할 기분이 아니면 관두고.
진수 : 난.. 이 학교가 싫어요.
지원 : ...
진수 : 젊음이니 순수니 하면서 위선을 떨고 있는 모습들도 싫구요. 온실 속에 앉아서 말로만 잘난척 하는 것들도 싫어요.
어차피 나중엔 다 변질될 거면서.
지원 : ...
진수 : 난 학교라는 데가 맞지 않나봐요. 정말 ...싫어요.
지원 : 너 자신이 싫은 게 아니고?
진수 : (돌아보는)
지원 : (똑바로 보는)
진수 : 선배는 자기 자신이 좋아요? 좋아할 수 있어요?
지원 : 나도 내가 싫어. 그렇지만 최소한 그걸 남의 탓으로 돌리진 않어.
진수, 지원을 보다가 일어서서 가방을 챙겨든다.
진수 : 그럼 먼저 나갈게요.
지원 : 그래.
진수 문쪽으로 걸어가다가 돌아본다.
진수 : 뼈아픈 소릴 듣고 싶을 땐 아무때나 찾아와도 되요?
지원 : 아무때나는 안돼. 나한테 방해되지 않을 때는 괜찮아.
진수, 그제야 웃더니 나간다.
S#24. 캠퍼스 / 밤
교정이 널리 내려다보이는 언덕 정도.. 진수, 걸어오다가 문득 선다. 저 아래 보이는 교정.. 불켜진 건물들..
S#25. 신소재 랩 앞의 길
진수 건물들을 기웃거리며 찾아온다. 그러다가 문득 열려진 방문을 본다. 그 방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진수, 슬그머니 다가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문 틈으로 보이는 내부에서 민재가 뭔가 부품을 하나 들고 부지런히 지나쳐가고 있다.
S#26. 신소재 랩 / 밤
용만, 민재, 학생, 자현, 병석까지 아예 자리를 잡고 퍼질러서들 일하고 있다. 기기를 분해해서 보기도 하고.. 데이터를 검토하기도 하고.
용만 : 그러니까 요 회전축의 재료가 문제다 이거지.
민재 : 그렇죠. 그러니까 이거보다 진동 감쇠특성이 높은 소재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거거든요.
학생이 자료철을 용만에게 들고 오며..
학생 : 이거 한번 검토해보실래요. 여기 신소재들이 있는데.
용만 : 내가 보면 뭐 아나.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는데..
자현 : (분해한 부품들을 늘어놓고 병석에게) 이거 진짜 재밌네. 얘 봐라. 너무 잘 빠졌지? 반하겠다야.
병석 : 기계를 보고 반하는 여잔 세상에 너밖에 없을거니까.
자현 : 봐봐. 섹시하게 생겼잖아.
병석 : 으이그.. (자현의 입을 막고 싶다)
낄낄대는 자현과 병석. 자료철을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보는 민재와 용만. 등등....
S#27. 외부/ 밤
문 옆 벽에 기대 서있던 진수. 혼자 좀 쓸쓸하게 웃더니 자리를 뜬다.
S#28. 기계동 전경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백곰이 아침의 흥겨운 기분으로 주차장의 자전거들을 둘러보고 있다.
쓰러져 있는 자전거를 바로 세워놓기도 하면서 흥얼흥얼 노래하고 있다.
백곰 : 아침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랫니 닦자..
S#29. 신소재 랩 부근 길
백곰, 슬렁슬렁 걸어오며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 보면 활짝 열려져 있는 신소재 랩의 문.
백곰 : 허어참. 연구실 문은 꼭꼭 잠그고 다니라고 내가 사만팔천번은 얘기를 했다. 어이그...
하며 다가서다 안을 본다.
S#30. 신소재 랩 내부
민재와 용만이 실험기구 앞에서 재실험 중인데 둘다 졸려서 멍하다.
그 옆에는 학생이 대충 잠이 들어있고. 그 옆에 자현도 퍼져 자고 있다.
병석은 기기 작동을 돕다가 백곰을 돌아본다.
병석 : 어 안녕하세요.
민재와 용만도 돌아본다.
민재 : 안녕하세요.
백곰 : 아이 난 신경쓰지 마세요. 하던 연구 계속하세요. 저런저런 밤을 꼴딱 새셨구만. 계속하세요. 계속계속...
하면 살금살금 자현에게로 간다. 자현을 흔들며 작은 소리로.
백곰 : 어이. 추자현. 넌 남들 연구하는데 뭐하고 있냐. 핼로우..
자현 : (꿈툴거리며 잠꼬대처럼) 그게 아니라니까..
백곰 : 뭐가 아니라고?
자현 : 그거 말고.. 아이참. 전에 내가 봤는데.. 그걸 어디서 봤드라.. 그게... (하다가 번쩍 눈이 떠지더니 벌떡 일어나 앉는다)
백곰 : 에그머니..
자현 : 맞다. 로봇 축구.
자던 학생까지 깨서 돌아본다.
자현 : 그거! 탄소섬유!
민재 : 뭐?
자현 : (자다 깬 와중이라 비틀거리며 넘어질 듯 실험대로 오며) 회전축을 탄소섬유 강화 복합재료로 바꾸는 거야.
민재 : 탄소섬유라면 로봇 축구때 일본 쇼군팀이 로봇 바디로 썼던 거?
자현 : 그래 바로 그 재료. 으아 미치겠다. 난 알고보니까 천재였어.
민재 : 아아.. 탄소복합재료라면... (후다닥 학생쪽으로 뛰어가 자료철을 뒤진다) 강철하고 밀도가 어떻게 되죠?
병석 : 강철보다 밀도가 3분의 1정도로 작지 아마.
자현 : 그렇지. 스티프니스는 높고.
학생 : 진동감쇠특성은 강철보다 열배쯤 크지. 그래..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용만 : (어리둥절해서 보다가) 그런 재료가 잇단 말이야?
자현 : 어이구 아저씨. 이렇게 되면 공진 주파수를 강철 회전축보다 2배 이상 크게 증가시킬 수 있을거에요. 제 말 믿으시라구요.
학생 : 아직까지 이런 스핀들에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적용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없는데..
자현 : (용만에게 계속) 이거 설계만 잘 하면 국제특허도 받을 수 있을지 몰라요. 우와. 이민재 이거 내가 생각해낸거 맞지?
용만, 갑작스런 상황에 얼떨떨하고.. 모두 들뜨는 분위기인데..
백곰 살금살금 문으로 가며.
백곰 : 뭔가 또 하나 탄생한 모양인데.. 계속하세요. 계속 계속...
백곰도 아주 기분이 좋다.
S#31. 이교수 연구실 / 낮
명환, 만수. 정태, 이교수와 회의중. 야단 맞는 분위기.
이교수 : 유진산업 시제품 계획안 누가 정리하구있지?
명환 : 중희가 하고 있었습니다
이교수 : 어디까지 된지 알어?
명환 : 마무리만 하면 된다고 하든데요.
이교수 : 마무리건 뭐건 안끝냈다는 얘기잖아. 중희 얘 언제 와.
명환 : 주말에 올 겁니다.
이교수 : 김정태.
정태 : 예.
이교수 : 니가 마무리해놔. 마무리만 안된건지 첨부터 안된건지 체크해보고.
정태 :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이교수 : 할수 없다는 거야. 하기 싫대는거야.
정태 : 해보겠습니다.
이교수 : 정만수.
만수 : (움찔) 예 교수님.
이교수 : 넌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만수 : 아주.. 많은데요.
이교수 : 그 많은 일 중에 어떻게 결과가 하나도 안보여.
만수 :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이교수 : 무슨 최선을 어떻게 다했다는 거냐고.
소리 : (호출기 벨소리)
이교수 : 누구야?
분위기 살벌한데 정태가 후다닥 일어나 주머니의 호출기를 꺼내 황급히 끈다.
이교수 : 회의하는 거 알면서 호출기를 꺼놓지도 않니?
정태 : 죄송합니다. (하면서 슬쩍 호출기에 찍힌 번호를 본다)
S#32. 구내 공중전화
나란히 두 대가 있는 장소.
민재가 전화를 하고 있다. 밤을 내리 새서 몰골은 형편없는데 아주 기분이 좋다.
민재 : 너 언제 볼 수 있을지 몰라서 메시지 남긴다. 어이 김정태. 우리 스핀들 해결봤어. 방법을 알았다구.
이 얘기 해주고 싶어서 말야. 끊어.
그 옆에서 역시 밤샌 티가 나는 용만이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용만 : 기업체에서 내 스핀들 쓰겠다고 하면 제대로 해볼 참이야. 여기 학생들이 기가 막힌 소재를 발견해줬거든.
...뭐라고 하면 당신이 알겠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여보 이제 돈을 벌면 스핀들 연구소도 세울 참이야.
외국땅에 내 스핀들을 수출도 하고..허허..뭐? 아 사람도.. 김칫국물이라니. 이건 갈비찜이야. 한우 갈비라고.
S#33. 도서관 내부
처장이 책을 훑어보며 서가를 지나치고 있다. 책 하나를 뽑아들고, 내용을 훑어보며 걸어오다가 문득 한 곳을 본다.
거기 서가 중간에 민재가 고개를 책장에 박고 서서 잠이 들어있다.
처장, 빙긋 웃고 지나치려다가 다시 와서 본다.
민재는 책을 서가에서 뽑다가 잠이 들었는지 한 손이 반쯤 빠져나온 책을 잡고 있어서 위태롭다.
처장, 그 옆으로 가서 빠져나오려는 책을 도로 꼽아넣는다.
그 바람에 민재 반쯤 잠이 깨서 어슴프레한 눈으로 처장을 보며.
민재 : 어. 고마워. (다시 잠들려다가 번쩍 잠이 깨서 처장을 확인한다. 당황해서 고개 숙여 인사하며) 죄송합니다. 잠결에..
처장 : 잠을 못 잤어요?
민재 : 예. 요 며칠.. 죄송합니다.
처장 : 재미있었어요?
민재 : 예?
처장 : 억지로 밤을 샌건가. 아니면 재미있어서 하다보니까 밤이 새진건가 묻는 거에요.
민재 : 아... 재미있었습니다.
처장 : 그럼 새해 복을 많이 받았구만요. 밤에 보면 학교 건물 여기저기 불이 밤새 켜져 있는데 말이에요.
그 중에 몇 명이나 재미있어서 밤을 새고 있는지 그게 궁금할 때가 있거든.
민재 : 아 예.. (아직 잠이 덜 깨서 벙하게 웃는)
처장 : 그걸 잊지 말아요. 재미가 있어서 날새는 줄 모르던 그 순간들. 복이란 게 딴 게 아니에요. 자기 하는 일을 재미있어 할 수 있는 거,
그게 복을 받은 거라고 하는 거에요.
민재 : 예..
처장 : 그런데 잠은 원래 누워서 자는 겁니다. 서서 자는 건 별로 도움이 안될거에요.
민재 : 알겠습니다.
처장 웃으면서 가고. 민재 고개 숙여 인사하고..
S#34. 도서관 앞
민재, 지쳐서 터덜터덜 걸어나오다 보면.
그 앞에 정태가 자전거를 옆에 놓고 기다리고 서있다가 민재를 본다.
민재 : 어이. 들었어? 메시지 남겨놓은 거.
정태 : 들었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전화를 했드만. 그 책들 이리 줘.
민재 : 왜.
정태 : (민재가 들고 나온 책을 뺏어가며) 센터에 전화했더니 니가 책 빌리러 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대신 전해주겠다고 했지.
민재 : 니가? 왜?
정태 : 그리고 넌 오늘 집에 있을거라고 했다. 넌 한시간 전부터 위경련이 일어난거야.
민재 : 내가?
정태 : (자전거를 민재 앞에 세워주며) 자전거는 탈 수 있겠냐?
민재 : (벙...) 자전거? 이건 왜?
정태 : 아 자식. 진짜 눈뜨고 못 보겠네. 자전거 못 타겠으면 질질 끌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가. 가서 자.
민재 : 야. 그치만... 랩에 지금 일이..
정태 : 경진이가 알아서 한댔으니까 잔말말고 하란대로 해. 으이그. 꼴보기 싫은 놈아.
민재 : 내가?
정태, 들고 있던 책으로 민재를 퍽 치고는 먼저 걸어가며...
정태 : 너 오늘 중에 다시 학교에서 내 눈에 띄면 반 죽을 줄 알어.
민재, 멍해서 정태를 보다가 다시 잠들 거 같아서 고개를 흔들며 얼굴을 부빈다.
S#35. 쪽문 근처
자전거를 질질 끌고 걸어오는 민재. 쪽문 쪽으로 가는데, 막 쪽문에서 들어서던 진수가 민재를 본다.
진수 : 지금 막 선배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집에 있는 줄 알고.
민재 : 안그래도 지금 가는 길인데. 참 어젠 회의에 못 가서 미안했다.
진수 : 할 말이 있는데요.
민재 : 지금 해야되겠냐? 다섯시간만 있다가 하면 안될까.
진수 : 간단히 말할게요. 로봇 축구 벤처 창업에서 선배를 빼기로 했어요.
민재 : (잠시 진수를 보다가 정신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고) 그래? 잘 생각했어.
진수 : 그랬더니 경진선배도 빠지겠다고 했구요.
민재 : 그랬나.
진수 : 그리고, 저도 뺐어요.
민재 : ....뭐?
진수 : 아직 벤처할 기본이 안 되있는 거 같아서요.
민재 : (바로 입력이 안되면서 보는데)
진수 : (들고있던 몇권의 책을 건네준다) 선물입니다.
민재 : 이게 뭔데.
진수 : 벤처창업에 대한 책들이에요.
민재 : 이게 니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진수 : 언젠가 민재형이 벤처 창업을 하는 걸 보고 싶어요.
민재 : 내가? 벤처? 넌?
진수 : 전 따로 할 게 있어요. 그럼 전 가겠습니다. 형 가서 주무세요.
민재 뭔가 이상해서 본다. 진수 웃음 남기고 돌아서 가는데.
민재 : 진수야.
진수 : (돌아보는)
민재 : 너 지금 방금 나한테 민재형이라고 했냐?
진수 : 예. 민재형.
민재, 허허 해서 보고, 진수는 고개를 좀 숙여보이더니 돌아서 간다.
//이만치에 세워져 있는 진수의 차.
진수 다가오는데 보면 본넷 쪽에 대욱이 기대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욱 : 책 줬어?
진수 : 줬어.
대욱 : 말했어?
진수 : 어떤 말.
대욱 : 너 당분간 학교 쉰다는 말.
진수 : 학교를 쉬는 건 아니지. 벤처 연수를 나가는 거니까.
대욱 : 했어?
진수 : 아니. ... 그 말은 너한테만 하고 갈 생각이야.
대욱 : 왜?
진수 : (운전석 문을 열려다 말고) 너밖엔 말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됐냐?
대욱 : 아니 아직 안됐어. 노천극장으로 가자. (조수석으로 가는)
진수 : 야야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대욱 : 이 자식이. 끝까지 친구 말을 엿같이 아네. 넌 임마. 오늘 내 주먹 맛을 보기 전엔 아무데도 못가.
진수 : 고맙다. 그래도 계속 친구라고 말해주니까.
대욱 : (문 열며) 시끄러. 넌 친구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뼈아픈 건지 좀 알아야 돼. 아 뭐해. 빨랑 시동걸어.
진수, 할수 없다는 듯 웃으며 운전석으로 들어간다.
S#36. 민재의 방
민재, 진수가 준 책을 책상에 던져놓고, 윗도리를 벗어 아무데나 팽개치며 침대로 직행한다.
마악 침대로 파고드는데 들리는 전화벨 소리.
민재, 손을 뻗어 침대 옆에 놓아둔 탁상시계를 집어 자명종을 꺼보지만.
전화벨은 계속 울리더니 갑자기 녹음된 정태의 목소리.
정태 : (E) 여기는 민재한테 얹혀사는 정태의 방입니다. 이 전화기는 정태가 설치한 것이구요. 용건이 있으면 녹음해주십쇼. 이상.
민재, 이건 또 뭐야 해서 부시시 일어나 두리번거리는데
책상 저쪽에 놓여진 새 전화기(녹음용)에서 녹음되는 목소리가 들린다.
용만 : (E) 이 전화번호가 맞는 모양이네. 어이 민재학생. 나 용만이야. 스핀들 아저씨. 이거 참 미안한데 하나만 더 도와줘. 시간 있어?
나한테 좀 와줄 수 있겠어? 내가 소주 사놓고 기다릴게.
민재, 어이구 해서 다시 베게 위로 쓰러진다.
S#37. 용만의 공장 내부
테이블 위에 서너병의 소주를 올려놓는 용만.
용만 : 가만 있자. 안주는 지금 땅콩밖에 없는데 괜찮지?
민재 : 그럼요. 근데 제가 필요하다는 일이..
용만 : 가만 있어봐. 우선 한잔씩 하고...
부지런히 소주병을 따고 종이 소주컵에 소주를 따른다.
민재 얼른 두손으로 술을 받고 용만의 술을 따르고..
용만 : 학생, 회사 만드는 절차 좀 알어? 그러니까 그 사업계획서 쓰고 그러는 거.
민재 : 아아... 스핀들 공장 새로 만드시게요?
용만 : 알어?
민재 : 그야 책이 있으니까 공부를 하면 될거 같은데..
용만 : 잘됐군. 잘됐어.
민재 : 사업계획서 써드려요?
용만 : 내거 말고 학생거를 한번 써봐.
민재 : ....예?
용만 : 학생 회사 하나 차려보라고. 요즘에 대학생들도 회사 잘 차리잖어왜.
민재 : ...무슨 말씀이신지..
용만 : 회사를 차리는데 그게 무슨 회사냐. 나같은 사람 도와주는 회사.
민재 : ... (벙)
용만 : 아이디어만 있고 뭘 어떻게 할지 몰라 방황하는 우리같은 중소기업들 도와주는 데 말야.
민재 : (용만을 보며) 제가요? (농담으로 듣고 웃으며) 제가 어떻게요?
용만 : 지금까지 해온 식으로 하면 되잖아. 기술자문도 해주고.. 본인이 못하는건 그런 기술을 가진 학생들을 연결해주고...
그럼 학생들도 자기가 공부한걸 실천해보는 기회가 되고..우리같은 사람들은 또 도움 받아서 좋고...
민재 : (잠을 깨기 위해 머리를 흔들어본다)
용만 : 왜. 우리같이 이론에 약한 공돌이를 위해 문서도 작성해주고 내 거래처 중엔 특허내는 법을 잘몰라서 대기업에 특허를 뺏겨버린
사람도 있거든.
민재 : (본다)
용만 : 어때 해볼테야?
민재 : 글세요. 그게 그러니까..
용만 : 글세요 할 얘기가 아냐 이거. 큰일났네.
민재 : 큰일나요?
용만 : 내가 벌써 광고를 해놨거든. 이러이러한 학생이 있다. 그랬더니 이놈 저놈이 다 학생을 소개해 달래잖어. 근데 바쁜 학생을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나. 그래서 그 학생이 이러저러한 회사를 낼거다. 그러니 돈을 내고 정식으로 일을 부탁해라. 이랬지.
민재 : 아니 잠깐만요. 이런 건 좀 생각을 해보고..
하는데 입구가 왁자하며 서너명의 사내들이 들어선다.
민재 놀라서 일어선다.
사내1 : 어디 보자. 벌서 시작했구만. 이 학생인가.
사내2 : 학생이 뭐야. 사장이래잖어. 벤처 사장.
사내1 : 나 이갑석이야. 내가 만든 모터가 하나 있는데 지금 가서 볼래? 이거 제품으로 내놓으면 무조건 수십억 버는건데.
용만 : 어허 우물에서 숭늉을 달래라. 우선 소주 먼저 마셔야지. 자 다들 앉어. 민재학생 뭐하고 있어. 잔 돌려.
민재, 완전히 얼이 빠져서 보고 있는데,
중년들 중에는 무작정 민재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는 이도 있고. 민재의 머리를 만지며 이 학생 머리가 그렇게 좋다는 거야? 믿어도 돼?
떠들고 있다.
S#38. 학교 뒤 동네 / 밤
민재가 술기운이 있어서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 문득 길 가운데 선다. 주위를 둘러본다.
민재의 시야에 들어오는 화려한 간판들. 노점상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
그러다 보면 저만치 벽에 취객이 하나 중심을 못잡으며 기대 서있다.
민재 그 옆으로 가서 선다.
민재, 취객을 흘낏거린다. 취객, 그런 민재를 보고.
취객 : 머요 할말 있어요?
민재 : 아뇨... 아.. 예. 한가지 여쭤 볼 게 있는데요.
취객 : 여쭤봐요
민재 : 저기.. 사는 게 재밌으세요?
취객, 취한 눈으로 민재를 본다. 뭐 이런 놈이 있나..하는.
민재 : 저는 사는 게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취객 : 그래서요.
민재 : 그냥.. 그렇다구요.
민재, 벽에 기대선다.
취객, 휘청하고는 그저 민재와 나란히 서있다.
민재, 아주 편해진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그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