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가 이 정도 실해지면 가을입니다.
일년을 반으로 하절기와 동절기로 나누면 추분부터는 동절기입니다.
이 무렵을 우리는 환절기라 부릅니다.
아침에 세수하고 수건을 집으려고 하는데,
허리에서 뚜둑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사진 찍고, 물리치료 받고, 파스 사 붙이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처럼 뒤뚱뒤뚱 걷습니다.
고위험군 고위험군 하더니, 환절기 고위험군을 실감합니다.
후쿠오카에 가 있는 둘째에게 동절기 옷가지와 보던 책 몇 권을 부쳐주려고,
허리에 손을 얹고 우체국으로 갑니다.
해외탁송용 박스 하나 사서 포장하고 있는데 직원이 물어 봅니다.
어디로 부칠 거냐고..
일본으로..
일본 어디로요?
후쿠오카로..
후쿠오카는 접수불가지역인데요..
아뿔사, 어디는 가능해요?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만 가능하답니다.
한 순간에 모든 동작이 정지되고 맙니다.
에러난 컴퓨터처럼..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업무시간이라 그런지 대답이 없습니다.
박스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장시간 궁리를 합니다.
결국 도쿄에 있는 처종이질녀에게 보내기로 합의를 보고,
다시 카트를 끌고 집을 나섭니다.
옷 두어 가지와 책 서너 권, 10kg 남짓, 요금은 6만원을 훌쩍 넘고,
빠르면 열흘, 늦으면 보름 쯤 걸려 도착할 거라 합니다.
미구에 도쿄 갈 일 있으면 가서 인수받던지, 중계송달을 하던지..
이웃집 간 듯하던 아들 하나가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가버린 느낌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이 내 삶을 왜케 힘들게 하나요?
해답이 있을까 해서 책을 집어들지만 눈이 아파 이내 접습니다.
컴퓨터를 켜서 무슨 서류 몇 장 인쇄를 하는데,
덜커덕 프린터가 멈추고 빨간 불이 깜빡깜빡합니다.
폐토너통을 교체하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고 어찌어찌 해결을 했었던 기억은 있는데 자세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네이버샘에게 물어 봅니다.
폐토너통을 분리해서 가루를 털어내고 닦아서 다시 끼우고 나니,
멀쩡하던 시안카트리지 호환 안 됨이라니, 또 이거 원..
이건 몇 번째 당해 본 일이라 방법을 압니다.
카트리지와 커버의 접점을 깨끗이 닦아서 커버를 다시 닫아 주니,
비리비리 남은 몇 장이 인쇄되어 나옵니다.
인쇄는 되었는데 이제는 모니터 화면이 꼼짝을 안 합니다.
강제로 전원을 껐다가 새로 켭니다.
5분이면 될 일이 꼬이니 50분도 넘게 헛시간을 보냅니다.
이 놈 폐토너가루는 수용성도 아니고 워낙 미세하여 구석에 큰 종이 펴고 쪼그려 앉아서 청소를 했더니,
해는 짧은데 허리는 끊어질라 캅니다.
기계도 주인 따라 환절기 고위험군 되었는지, 가을이라도 타는 건지..?
이래 저래 환절기에는 사람도 기계도,
몸도 마음도 에러관리를 잘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