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 검사들이야기가 자주 나오네요.
2003년에 도민일보에 나왔던 기사입니다. 용마출신 검사들 이야기입니다. 호시절 이야기지만....
(주선회(39), 김성찬(47) 검사 이야기는 없습니다.)
고금산책
마산 용마고 출신 검사들에 대한 기억
홍중조(논설실장) /
[홍중조의 고금산책]향토 출신 검사들
검찰의 우두머리를 일러 지엄하기가 부동명왕 같고 힘세기로는 사천왕 같으며 냉철하기엔 문수보살 같다고 빗댈 수 있다. 그만큼 권력의 중심부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그 위세는 참으로 막강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러니까 송광수 검찰총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따라 정계 재계에 드센 돌개바람을 일으키고 있음을 본다. 그런 그가 바로 이곳 마산 출신이라고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일찍이 그는 성호초교를 거쳐 마산중학교를 나온 준재였다. 그 후, 서울고 서울법대를 나온 그야말로 연부역강한 50대의 검찰총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대통령 측근비리와 대선불법자금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흔들림 없이 적극적인 수사를 펴는데 많은 국민들은 호응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함안 태생인 안대희 중수부장과는 환상적 콤비라고 부를 만치 손발이 척척 맞는 것 같다.
특검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검찰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도입되는 한시적 제도가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 검찰이 정치개혁을 위해 명예를 걸고 고군분투하는데 국회서 특검 가결하는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측근비리 수사는 특검에 넘기고 대선자금 수사에 전력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특검 한시적 제도일 뿐
그동안 검찰의 측근 비리와 대선자금 수사로 검찰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립성을 과시한 때는 일찍이 없었다. 장차 검찰 독립을 향해 진일보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해 마지않는다. 이 모든 것이 선배 향토 출신 법관들의 밑거름이 있었기에 그 전통을 이어받아 파사현정의 화신으로 나선 것이라고 믿고싶다. 오늘 이 글자리는 향토 특히 용마고(전 마상고)출신 검사들을 위주로 간략히 언급해보고자 한다.
용마고 출신으로 변호사 제1호인 허만호(6회 졸업)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제 때 독학으로 조선변호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전주지검장, 대검검사 등을 두루 거친 후 재야변호사로 활약한 바 있다. 뭐니뭐니 해도 ‘호랑이검사’로 별명이 붙은 권오병(10회 졸)은 공화당정부 시절 가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킨 화제 인물로는 단연 으뜸이다.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그는 추진력 강한 관료인 것만은 분명했다. 박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그는 전국구 5번의 의원직에 지명될 정도였다. 65년 법무차관에서 문교장관으로 옮겨 앉아 그토록 말 많은 한·일회담 반대시위 등 학원정상화에 검사 출신답게 불도저 식으로 밀어붙이는 솜씨에 탄복한 박 대통령은 1년 뒤 일약 법무장관으로 기용했다. 문교장관 재임시절, 중학 무시험 학사등록제 등 굵직한 일을 해낸 걸출한 인물이었다.
메이지대 출신인 이장근(12회)은 서울지검 부장검사로 활약할 때 늘 인간존엄을 강조한 ‘인권검찰’로 명성이 대단했다.
16회 졸업생인 강종수는 독학으로 청운의 뜻을 이룩한 입지전적 인물로 김천지청장을 지냈다. 부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지낸 이영욱(26회)은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해마다 스승의날을 맞을 때엔 심양섭(전부상고교장) 홍순천(전 부산교육감) 등 제씨를 모시고 보은의 정을 나눌 만치 인정미가 넘쳤다고 한다.
후배법관 부단한 노력 기대
‘떡장사 아들’로 소문난 조정제(29회)는 1968년 천안지청 검사로 근무할 당시 ‘난중일기 사건’이 터졌다. 난중일기를 훔친 이가 바로 동기생인 박모였다. 조 검사가 학생회장일 때 범인은 대대장을 지낸 막역한 사이였다. 그는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친구를 구해준 다음 옷을 벗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동문들에겐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다. 이 바람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2001년 숙환으로 이승을 떠난 김경회(32회)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지내고 말년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의 직함을 가졌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86년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는가 하면 연합철강분규 등을 말끔히 해결해낸 대쪽검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듯 향토를 빛낸 선배검사들의 공적에 못지 않게 후배법관들의 부단한 노력을 기대해 본다. 어디까지나 여론을 포함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파헤치는 서슬 퍼런 검찰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싶다.
* 경남도민일보는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입니다.
기사게재일자 : 2003/12/12
첫댓글 역사를 알수 있는 좋은글 감사 자주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