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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경문 번역과 의미연구 성구경 M26.
봄봄 추천 0 조회 187 15.01.17 19:35 댓글 4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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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5.01.17 19:39

    첫댓글 法에 대한 해석과 번역은 좀 유보하시라는 아위자님의 충고를 어기고
    감히 시도해 봅니다.
    본 경은 法을 번역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식이든지 해석되어야 할 듯 해서 감히 시도해 봅니다.
    어감은 정확하지 않으나...

  • 15.01.20 16:17

    <A가 B에 묶여있다>거나, <A와 B는 C로 결박되어 있다>라는 표현을 부처님께서 하실때는
    묶여있는 대상이나 결박되는 대상을 반드시 <法(dhamma)>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禪(자나)상태>때문입니다.[=어렵습니다]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지 마시고, 부처님의 표현을 존중하신다면,
    <禪>이라는 상태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설명을 하려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경전을 조사해 보시면 <반드시 그러함>을
    아실 수 있으십니다. 전문가들 조차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보통 혼동되는 것이 아닙니다>만
    그래도 알아두시면~~~~~~~~~~~~~

  • 15.01.20 16:22

    @아위자 아마도..... 위빠사나가 <法(dhamma)>에 대한 위빠사나... 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禪(자나)상태>에서 '대상'만 <法(dhamma)>으로 지칭되는되요.... 이 때 주의하실 점은
    <사실은 우리가 주관이라고 여기는 것도> <法(dhamma)>라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경전에는
    '대상'만 <法(dhamma)>라고 표현됩니다. 이상하시지요?

  • 15.01.20 16:30

    @아위자 예를 들어 보면요........ 대표적으로 <탐진치>가 그러합니다.
    <탐진치>가 <탐法, 진法, 치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동일한 경문에서 그렇게 등장하는데요.........
    바로 이 상황이 <法을 보는 방법>의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하나는 '연기'를 보는 것임] ..............<탐진치>를 <탐法, 진法, 치法>으로 보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의 최종단계>라고 저는 봅니다. 그 직전의 단계가 <쌍요자나에 대한 智集滅道>이고요, <욕탐에서 '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요.... 이탐의 원리가 <탐을 '탐法'으로 보아서 위빠사나>하는 것이거든요......... 어렵지요?
    위빠사나는 반드시 대상이 <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수행.

  • 15.01.20 16:32

    @아위자 대상으로 <法(=경계, =위사야)>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禪(자나)의 기능>이라고 저는 봅니다.

  • 15.01.20 16:15

    <기억>과 관련하여 인터넷기사에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501/e2015012010175194230.htm

    이 실렸네요......... 흥미롭습니다.

  • 15.01.23 08:31

    어제부로 주변의 번잡한(=잡다한) 일을 마치고서 오늘부로 또 본격적으로 카페일을 시작합니다. ㅋ.
    [=어느 정도 집중할 상태가 다시 되었다는 말]

  • 15.01.23 08:36

    하던 말을 계속 해 보면요.................

    우리가 흔히 "빠알리가 한국어와 많이 닮았다."라고 합니다. 특히, <복합어의 배열>에서 <뒤에 언급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요...........

    <붕어빵>은 <~빵>이 '핵심'용어입니다. 그와 같이 dhamma(法)이라는 용어가요.........
    <복합어에서 '앞'에 위치하는 경우>와 <복합어에서 '뒤'에 위치하는 경우>를 구분하여야 하는데요........
    예를 들면,

  • 15.01.23 08:48

    @아위자 (1) <dhamma~>로 표현되는 복합어의 경우, 즉 <복합어에서 dhamma(法)가'앞'에 위치하는 경우>에는요...

    A니미따, B니미따, C니미따, 法니미따 ... 의 경우에는, 전부 <니미따>가 핵심용어 입니다.
    그러할 때, 그 모든 <니미따>는 <法니미따>에 섭수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오근이 경험한 것을 意는 모두 경험한다>라는 '이치'가 성립하는 이유입니다. 그러하기에 <意가 法을 이끄는 '법구경'>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 15.01.23 11:05

    @아위자 나아가 'Sati'가 意(마노)를 의지처로 하여야 하는 이유도 'Sati'는 <法에 대한 Sati>가 핵심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념처의 구조가 <身(까야)에 대한 Sati---法에 대한 Sati>, <受(느낌)에 대한 Sati---法에 대한 Sati>, <心(마음)에 대한 Sati---法에 대한 Sati>, <법(담마)에 대한 Sati---法에 대한 Sati>인 것입니다.

  • 15.01.23 11:10

    @아위자 말하자면, '身受心법'은 <네 곳의 대상일 뿐>이고 그 곳에 대한 <Sati의 확립(=세워둠, 지킴, 기억함)>이 '핵심'이라는 말. 나아가 <法에 대한 Sati>가 <결론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어렵나요?
    이 맥락이 어려우시다면 그 다음의 흐름이나 맥락은 '상상을 불허 할 만큼' 난해해집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시더라도 '이 맥락'을 이해하셔야만 하십니다. 남아 있는 부분이 '엄청난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 15.01.23 13:33

    <윗 글 '(1)'의 경우>, 즉 <복합어에서 dhamma(法)가'앞'에 위치하는 경우>를 세밀하게 구분하면요........
    (a)외입처계열만 언급되는 <복합어에서 dhamma(法)가'앞'에 위치하는 경우>와
    (b)내외입처가 모두 언급되는 <복합어에서 dhamma(法)가'앞'에 위치하는 경우>와
    (c)오직 내입처계열만 언급되는 <복합어에서 dhamma(法)가'앞'에 위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15.01.23 13:35

    (a)외입처계열만 언급되는 경우는

    相(니미따), 想(산냐), 思(제따나), 愛(땅하) 등이 그러하고요..........

  • 15.01.23 13:37

    (b)내외입처가 모두 언급되는 경우는

    觸과 受가 그러합니다.[=이 경우는 '두 갈래'라는 표현이 등장함]

  • 15.01.23 13:45

    (c)오직 내입처계열만 언급되는 경우는

    識의 경우 뿐인데요,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는 六識이 그러합니다.
    이 경우에는 <오직 내입처계열의 識 뿐!>이라는 점을 경전이 강조하는데요.....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시는 바가 있는 부분은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취급하여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六識이 모두 <내입처계열 뿐>이라는 점을 모두들 이해하시지 못하거나 그 의미를 납득하시지 못하시는 분들이 태반이십니다. 보통 어려운교설과 관련되는 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번은 많은 분들 앞에서 설명해 보았는데[=약 1시간 정도 소요 됨] ........ 결과는 '꽝~~~'

  • 15.01.23 13:51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 무슨 이야기인지 자체를 못 알아 들으시더라구요. ㅋ.
    ........... "왜 識의 한계가 名色인 것인가?"가 바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는 내입처계열의 六識 뿐!>이라는 점 때문이거든요........... [=잘 생각해 보시길 바라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 <육촉입처의 구조>에서 그러한 점이 또 다시 강조 됩니다.[=아예 '육촉입처의 구조'에 대하여 모르시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간단하게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5.01.23 14:32

    @아위자
    (1)안과 色들과 眼識, 眼識에 의해 분별될 法들.
    (2)이와 聲들과 耳識, 耳識에 의해 분별될 法들,
    (3)비와 香들과 鼻識, 鼻識에 의해 분별될 法들
    (4)설과 味들과 舌識, 舌識에 의해 분별될 法들
    (5)신과 觸들과 身識, 身識에 의해 분별될 法들
    (6)意와 法들과 意識, 意識에 의해 분별될 法들.

    위와 같은 <육근, 육경, 육식> and <육식에 의해 분별될 法들>이라는 구조가
    육촉입처의구조입니다.

  • 15.01.23 14:35

    @아위자 위에서 <육근, 육경, 육식>의 다른 이름이 <명색>이고요,
    <육식이 분별하는 것>은 <法들>입니다.

  • 15.01.23 14:41

    @아위자 일단 여기에서요......... <육근, 육경, 육식>에서 <육경과 육식>은 연기된 것입니다. 생겨난 것들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육근>이 <명색>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識의 한계>는 바로 그 <육근(=명색)까지>라는 말씀을 부처님께서는 하시는 것입니다. 識은요.... <육근(=명색)>을 넘어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心과 意도 역부여시]

  • 15.01.23 14:57

    @아위자 그런데? 어떻게 해서 육근의 경험을 모두 경험하는 것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은[=實相은...ㅎㅎㅎ...] 니미따(相)들을 분별하는 것입니다......ㅋㅋㅋㅋ....

  • 15.01.23 15:05

    @아위자 <육근(=명색)>이 제공하는 <색성향미촉법-니미따(相)>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 결국은 <法-니미따(相)>를 분별하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5.01.23 15:19

    @아위자 여기까지가 육촉입처에 대한 <초보자용 '기초'>이고요......... 이어서 <중급자용 '기초'>는.......
    無見無對인 <法>을 보는 것입니다.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론적>으로나마 이해하는 것입니다.
    가장 빠른 길이 <부처님의 지적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위에 나와 있지요! 모든 것이 <육식에 의해 분별되는 法들>이라고요............. 여기에서 <막가>라는 가르침을 알아채시면 <전문가용 '기초'>에 드시는 것입니다. 육촉입처는 그러한 <갈림길>입니다. 말머리에 매달아 논 당근처럼, <선법이라는 당근을 따라가느냐? 불선법이라는 당근을 따라가느냐?>에 따른 <갈림길이라는 '두 막가'(=팔사도와 팔정도)!>

  • 15.01.24 09:40

    @아위자 대충 위와 같은 <(c)오직 내입처계열로만 언급되는 경우인 '六識'>이 개입하여
    <(b)내외입처가 모두 언급되는 경우인 '觸(=삼사화합)과 受(=촉을 조건으로하고 촉에서 생겨난 受)>가 성립합니다.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경우에는 識이 이미 <육근이라는 이름의 '名色'>에 파고들어서 <'六識'이 되어버린 상황>이기에(=엄밀한 의미에서는 여기서부터가 '알음알이'라고 부르는 것] '육촉입처'라는 <새로운 '아야따나(=處)'>가[=일종의 識의 증장을 위한 생태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15.01.24 09:59

    @아위자 <觸受想思> 四無色蘊에서, (ㄱ)산냐(想)를 문제로 삼아 수행하시게 되면 넓게 수행하셔도 구차제멸(=구차제정)이고요 그 수행을 통하여 상수멸을 성취하신다고 하더라도 아라한이 될 가능성은 50%임. (ㄴ)좁게 수행하시면 無色界 禪定인 사무색을 수행하시게 되시는데요 '망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해탈'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청난 희열과 초능력>이 생겨난다고 합니다만 '망한 것'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올바른 삼매(=正定)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삼매(=正定)는 <니미따(相)라는 것을 파악하여 들어가는 삼매>여야 합니다. 識때문에 그러하는 것입니다. 識은 니미따(相)를 따라다니고, 니미따(相)를 쫓아

  • 15.01.24 10:05

    @아위자 밖으로 흩어지는 것이며, 니미따(相)에 머물러[=住] 증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불선법들은 니미따(相) 때문에, 니미따(相)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경전은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 하면요 <識이란 놈을 주의하라!>는 말씀이거든요. <觸受想思> 四無色蘊을 쌓아가는 놈은 識이라는 것이고요, 識이 아니면 성립조차 하지 못하는 놈들이 <觸受想思> 四無色蘊들이라는 말씀이십니다. 소위 <오로지 識(=唯識)>이라는 것인데요, 엄청 어렵습니다. 만만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 15.01.24 10:16

    @아위자 이쪽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면요 ......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서 <본 맥락을 잃어버리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그래도 한 말씀은 드려야 합니다. 간단하게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불교는 오직 '한 놈'만 두들겨 패는 것인데요.... 바로 識이라는 놈입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무명>이 아니냐? ...라고 하시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에서 조심를 하셔야 합니다.
    무조건 두들겨 패고 배제하는 것은 '六識'입니다. '識'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입니다. 이 태크닉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六識'만 버리면 거기가 <禪(자나)>입니다. 제가 '길따라'님에게 제시하는 <禪(자나)의 공식>이 <까마-六識=禪>인데요

  • 15.01.24 10:22

    @아위자 설명을 듣지 않으시면 그 공식이 의미하는 바가 이해가 오지 않습니다만, 까마(kaama)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아비담마를 올바르게 하신 분들은 '아하!!!!'라고 탄성을 지르실 것입니다. 까마(kaama)는 識이 法들을 분별하면서 즐기는 것인데요..... 현실적으로는 '니미따(相)들'을 분별하면서 <영화를 재미있어 하듯이 즐기는 것>입니다. 이 맛과 재미 때문에 識은 '니미따(相)들'에 머물면서 증장하는 것이고요 그 결과로 <觸受想思> 四無色蘊들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어렵지요? 어렵습니다. 쉽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 15.01.24 10:30

    @아위자 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는 <法들(=담마들)이 출구라는 점>입니다. 無見無對인 <法들>이 '출구'라는 이야기는 <거기를 통하여 들어온(='입구') 것>이라는 말씀이십니다. 들어 온 곳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육촉입처라는 교설이 하시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나가는 비상출입구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봄봄'님! ...... '아위자'가 정신병자는 아닙니다. '아위자'가 "제발 dhamma(法)'라는 용어 하나만 '그냥 놓아 두시라!"라고 간곡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아위자'가 아는체 하고 싶어서가 아닌 것입니다. 도리어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dhamma(法)'은 우리가 아직은 알 수도 없구요 對할

  • 15.01.24 10:34

    @아위자 수도 없는 대상입니다. 흔히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에서 <이것과 저것>이 <dhamma(法)>이라고 설명하십니다만, .............. 에효~~~~~~~~~ 미칩니다. 미쳐요. 맞기는 맞습니다. 이 法界에 <dhamma(法)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물 속에 사는 물고기에게는 주위 사방이 다 '물'인데요, 무엇이 '물'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온통 '물'이다>라고 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 15.01.24 10:38

    @아위자 無見無對인 <法들>을 두고서 <이것과 저것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라고 한정지으면 <니미따(相)을 두고서는 무엇이라고 부르실 것입니까?> ........ 보이거나 對할 수 있는 것들은 .... 그것들이 法이 아닌 것은 이니지만 <그렇게 좁게 용어를 정의 하시면> 후회하시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 15.01.24 10:40

    @아위자 특히 <禪(자나)>라는 것은 <이해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 15.01.24 10:47

    경전을 번역하는 기본 태도에 있어서는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이 그래도 '스님들'이십니다.
    남들이 불친절하다고 불평하든 말든, 그 무엇이라고 아는 체 하든 말든 .... <dhamma(法)>라는 용어는 건들지 않고 그냥 놓아두는 태도가 그러하다는 지적입니다. 하기는 '각묵스님과 대림스님 조차도'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번역>을 시도하신 경우가 있으십니다만, '봄봄'님께서는 그러한 경우라도 <나 '봄봄'은 모르는 것이 자랑이다!>라고 여기시어 '그 부분' 조차도 그냥 法이라는 용어 하나로 그냥 넘어가신다면......... '각묵스님이나 대림스님께서는 상상도 하시지 못하시는 놀라운 점'을 발견하시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 15.01.24 10:49

    부처님 가르침의 하일라이트이고 깜짝 놀랄 부분이며 <24시간을 禪(자나)>에 드셔 있으신 분의 <표현>이신 것입니다. 삼계는 法界!

  • 15.01.24 11:01

    '아위자'는 욕을 밥먹듯이 하는 놈이고, 개차반 같은 놈이며, 싸움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교학자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인정 받는 놈입니다. <불교학>으로 법 얻어먹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지, 나름대로는 전문가의 길을 걸어 온 놈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 길을 평생 걸어 온 것입니다. 이제는 '회향'을 할 나이도 되었지만 <'회향'은 커녕> ..... '절망' 앞에 두 무릅을 ................ 그래서 제 '후회'를 인터넷에 남기는 것 뿐입니다.
    후회막급입니다. 戒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니미따(相)'라는 것만 재대로 파악하면 될 줄 알았던 바보가 '아위자'입니다.

  • 15.01.24 11:11

    <'니미따(相)'라는 것만 재대로 파악하면> 저절로 '六識'이 제거될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ㅋㅋㅋㅋ .........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이 法界>가 제공하는 '니미따(相)'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더라구요.
    더군다나 <禪(자나, =올바른 삼매, =正定)>은 <'현실'이 제공하는 '니미따(相)'를 파악하여야만 되는> 그러한 곳이더라구요. 아차~~~차~~!!!!!!!!!!! 하였을 때는 이미 늦은 시기 였습니다. 미칩니다, 미쳐요.
    어쩐지 <팔정도>에 <정어, 정업, 정명>이라는 것이 들어 있더라구요......... 미치는 것입니다. <전문가용 '팔정도'>를 경전에서 보면요....... <정어, 정업, 정명>이 빠져 있는대요.. 이 경우에는 그 앞에

  • 15.01.24 11:14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이 빠져 있는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戒를 닦았으므로"라고 하시더라구요.
    닦기는 뭘 닦았습니까. 저는 戒를 닦은적 없거든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늦은 것입니다. 이미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지니지 못한 것입니다. 망한 것입니다.

  • 15.01.24 11:20

    <부끄러움과 창피함>! 쉬운 것 같으시지요? 어떤 사람에게는[=戒를 닦은 적 없는 분들에게는] 거의 불가사의한 것이 바로 이 <부끄러움과 창피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문가용 '팔정도'에 입장하는 입장권>이었던 것입니다. 아~~ 씨바~~~ 어쩐지~~ 순서가 <계--정--혜> 삼학의 순서더니~~~ 미치는 것입니다. 어디가서 <입장권>을 구하나요?

  • 15.01.24 11:25

    @아위자 스스로 생겨남이라는 法에 묶여 있으면서 생겨남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늙음이라는 法에 묶여 있으면서 늙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병듦이라는 法 묶여 있으면서 병듦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죽음이라는 法에 묶여 있으면서 죽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슬픔이라는 法에 묶여 있으면서 슬픔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고,

    스스로 오염이라는 法에 묶여 있으면서 오염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한다.

    ---------------------------------
    이 얼마나 '엄청난 <있는 그대로>의 말씀'이십니까?
    그런데도 들리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 15.01.24 11:28

    @아위자 <입장권>이 없이 공짜로[=무단으로] 들어와 보았자
    <들리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無見無對인 <法들>을 볼 수 있는 <입장권>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입니다. 끝.

  • 15.02.02 12:09

    공부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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