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던 간호사가 “마지막 호흡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보았을 땐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더 이상 숨결은 없었지만, 얼굴은 편안했다.
아내는 잠에 빠져들 때의 그것처럼 편안하게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고,
그 상태에서 다음 세상으로 건너갔으리라 믿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와 이별할 수 있도록 잠깐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아이들과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고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얼굴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안았지만, 아내는 아는 척하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에 만나 46년 동안 매일이다시피 보고 만진 얼굴이었다.
이제 다시는 보지도 만지지도 못한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안녕, 나의 반쪽이여 안녕…
혼자 된 내게 하루 중 언제가 힘드냐고 물으면 해질녘이라고 말한다.
큰 산 아래 농촌서 큰 내게 산 그늘이 동네를 뒤덮는 그 시간은 언제나 소통하고 재회하는 무대였다.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일정을 알려주던 해거름.
이제 내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할 데가 없는 것이고
이는 내 안부를 크게 궁금해 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식당에서의 혼밥은 아무래도 자존감이 떨어진다.
있어 보이려고 어깨를 펴고 폼을 잡아 보려 해도 누군가가 “집에서도 혼자잖아.”하는 것 같다.
“어디를 가든 귀하게 대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르침도 혼밥 식당에서는 지키기 어렵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 나는 아내가 미워졌다.
선천적으로 건강 체질이었던 사람이 왜 암에 걸렸는지가 우선 이해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여러 증상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막바지에 이르도록
병원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다.
미련해 보였고 미웠다.
그럼에도 나의 잘못은 단 1%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보호자였다.
내 경험상 고독과 분노는 적게 쳐서 동급이다.
외부에 여유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 아내가 죽음에 대해 느꼈을 공포와 거의 같은 크기로
혼자 남을 나에게 올 고독 때문에 공포스러웠다.
그러니 내가 아내에게 한 “간병하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소리는
사실 겁에 질린 나에 대한 위로였다.
“그래, 간병하는 동안은 행복했었다.”
아내와 있던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힘들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인지조차 요량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된 첫날부터 아들네 집에서 기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세월을 가늠도 할 수 없는 터에 첫날부터 주체를 잃고 한심해질 수는 없었다.
쪽팔리는 일이었고, 그러면 진짜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아내의 신발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아내는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을 것이었다.
면역항암제까지 효능을 다해가던 2020년 겨울은
결과적으로 가족들의 마지막 추억 쌓기가 됐다.
다음 겨울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을 가족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여느 해보다 눈이 많았다.
막 8살로 초등학교 입학 학령이 된 큰손자는 눈만 내리면 옆 동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다
(그 때는 아들 가족이 아파트 옆 동에 살았다).
아내는 전기담요 위에 누웠다가도 손자가 손짓하면 달려 나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내의 암을 확인한 뒤에 내가 한 일은
암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교보문고에 가서 암에 관해 다룬 책을 10여권 넘게 사서 세세히 밑줄 쳐 가면서 읽었다.
모두 다 내 불안과 그 노정의 얼개를 알아내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고 눈 앞의 안개는 조금도 걷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도 그 반대되는 가능성 때문에 글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 책이 환우들과 그 가족들의 황당함과 난감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하나 밖에 없는 인생의 반쪽들을 더 사랑하고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내 편은 하나 뿐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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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고45서울동기회 단톡방 글들
나의 반쪽 그대여 안녕....
친구 김영만이 아내를 보낸 뒤 잔잔히 써내려간 글이 감동을 줍니다.
단순히 소화불량인 줄 알았던 아내의 병이 난소암, 그것도 4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현란하던 여름의 모든 색이 한 순간에 없어져 버렸다”고 썼습니다.
화가였던 아내의 작품을 책 속에 함께 배치해 글은 혼자 썼지만 사실상 공저가 된 셈입니다.
온갖 치료방법에 매달렸지만 결국 반쪽을 떠나보내야 했던 8년,
그 중간 마디마디는 많은 여운을 줍니다.
동기 여러분, 시간 되면 한 번 읽어보시고 반쪽과 더욱 친하게 지내세요.
/정원교 20240408
우리 나이대에서는 愛別離苦, 生老病死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들의 몫으로 다가옵니다.
우정은 기쁨을 두배로 늘려주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여 준다......는 격언처럼
벗님들의 진심어린 위로가 세상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이에 서울동기 소식을 전하여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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