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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6:30-44
제목 :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우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물은 자주 쓰지 않으면 물이 상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우물에서 물을 써야 우물물이 더 달콤해진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 수도를 보면 물을 넣고 펌프질을 해야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계속해서 나누어 주어야 내 가 더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무엇인가를 주어야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뭘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나누려고 해도 가지고 있어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과연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확인하고 알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희망식구들 각자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제 녹색평론 독자모임이 있었습니다. 모임 중 한 분이 자신이 책을 읽은 느낌을 나누다 서로의 삶의 나침판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제 삶에 대한 긍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단순히 내 삶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긍정이자 믿음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신앙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뿌리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 다른 존재들, 특별히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긍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침판에서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떨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한 북쪽을 찾아내기 위한 나침판만의 몸부림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늘 일상생활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며 아주 이기적일 뿐 아니라 그렇게 게으르고 나태하며 나약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또한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믿고, 긍정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에 대한 긍정이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나의 능력, 나의 경제력, 나의 외모 등 우리를 둘러싼 외부적 환경 요소에 의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로 인해서 내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그 분, 늘 죄인일 수 밖에 없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모든 존재 안에 그 분의 속성이 들어 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긍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에 대한 긍정, 믿음 안에는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주님과 연결되어 있음, 내가 주님께 속한 바 된 그의 백성이요, 자녀일 뿐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자기 고백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왜 이게 중요한가하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가’ 하는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가 모든 것을 다 주님께로 받았고,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경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입니다. 이 기적 사건은 유일하게 4개 복음서에 다 들어있는 기적이야기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은 각자 공동체의 고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 사건만이 유일하게 네 개의 복음서에 다 기록된 것으로보아 초대교회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신학자들이 이 본문을 아주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성경을 읽으면서 교훈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자꾸 윤리적인 교훈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를 단순히 윤리적 종교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인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에다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메시지 즉 복음입니다. 오늘 성경말씀도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 삶에 울림을 주는 기쁜 소식 즉 어떤 복음을 전해주고 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오병이어 기적 사건을 대하면서 기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이 기적 사건을 만들어 낸 배경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오늘 오병이어 사건 이전에 일어난 일을 보면 제자들을 선교사로 파송하시고 난 후 사건입니다. 선교사업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선교보고를 받으시고 나서 외딴 곳으로 가서 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여기에서 기적을 위한 첫 상황이 발생합니다. 바로 모여든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귀찮아 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34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그들을 무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다들 시장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을 합니다. 35절에서 36절 말씀입니다.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헤쳐,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예수님께 상황을 전합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37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듣자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자신들 먹을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늘 얻어먹는 신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남자 어른만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이야기에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그러면 우리가 가서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예수님에게 항변을 합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예수님과 제자들 중 누가 옳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뒤이어 사람들을 떼를 지어 않게 한 후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오병이어 기적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들판에 모인 무리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자신들이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여든 무리들을 보시고 목자없는 양같은 모습에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오병이어 기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 체험하고 느꼈던 일상에서의 기적같은 일들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희망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그건 늘 일상의 기적같은 일들이었습니다. 와리마루를 만들기 전에 공동의회에 선교사업으로 작은도서관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책도 없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음 해에 공동의회에서 통과되었고, 그렇게 와리마루가 만들어졌습니다. 와리마루는 기적의 공간입니다. 직접적으로 들어간 예산만해도 3500만원입니다. 그 예산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게 은혜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3년 전 에스제이엠 노동조합이 용역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회사에서 쫓겨난 일이 있었고, 지역사회에서 대책위를 구성하여 희망교회에서도 함께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농성자들을 위해 따뜻한 식사 한번 대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사준비를 위해 농성하시는 분들의 수를 파악해보니 200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에서 재정적 어려움으로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 저녁에 누군가가 교회에 100만원을 기부해주었고, 서범기 집사님께서 40만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농성자들에게 삼계탕과 과일과 음료를 제공하고도 예산이 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형편이 넉넉한 교회였다면, 여러모로 안정된 교회였다면 경험할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나눌고 베풀만큼 여유롭거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냥 주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가진 것이 아주 빈약하기에, 더 가까운 식구끼리 나누기도 부족한 상황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눌 때에, 그들에게 베풀때에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장정만 오천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던 것처럼 우리가 나누고 줄 수 있는 것이 마중물이 되어서 더 크고, 더 많은 것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희망식구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든지, 어떤 능력이 있든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것은 다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나누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소유하고,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더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지금 나라는 존재, 더불어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믿고, 신뢰하고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발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마시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다 받고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베풀수도 있습니다.
성령강림 후 아홉째 주일입니다. 우리를 아주 귀하디 귀한 존재로 불러주시고, 세워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체험하는 한 주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희망교회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이어서 지역사회와 많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