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달충(李達衷)은 경주(慶州) 사람이다
아버지 이천(李蒨)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의참리(僉議叅理)에 이르렀고 월성군(月城君)으로 봉해졌다.
이달충은 충숙왕(忠肅王)때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성균좨주(成均祭酒)가 되었다. 공민왕(恭愍王) 원년(1352)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임명되었고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전임되었다가〈공민왕〉8년(1359)에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옮겼다.
팔관회(八關會) 때 유사(有司)가 손 씻는 장막을 복야청(僕射廳) 남쪽에 설치하고 울타리를 세워 안팎의 경계로 삼았는데, 이달충이 형부상서(刑部尙書) 이정(李挺)과 함께 대청 위에 앉아서 그 울타리를 철거하게 하였다.
왕이 의봉루(儀鳳樓)에 있다가 이를 보고 대노하여 묶어서 옥에 가두라고 명령하자 측근들이 간청하여 가노(家奴)를 가두는데서 그쳤다.
어사대(御史臺) 또한 이를 탄핵하였으나 이정이 일찍이 내불당(內佛堂)의 제조(提調)를 지냈으므로 특별히 용서하였다.
〈공민왕〉15년(1366)에 왕이 이달충을 이름난 선비라고 하여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발탁하였다. 당시 신돈(辛旽)이 바야흐로 권세를 부리고 있었는데 이달충이 일찍이 여러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신돈을 보고 말하기를,
“사람들은 상공(相公)이 술과 여색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라고 하자 신돈이 불쾌하게 여기더니 얼마 안 되어 파직되었다.
신돈이 처형되자 시(詩)를 짓기를,
“천지(天地)가 생겨나고 만물이 번성하거늘, 누가 큰 조화를 범하여 제 맘대로 차고 따뜻하게 했던가.
즐거운 감정은 봄을 간직한 마을에 흡족하고, 노기(怒氣)는 해를 가린 구름에 음침하도다.
꿩이 조개 되고 매가 비둘기 된 것도 너무나 괴이한데, 용이 고기 되고 쥐가 범이 된 것을 어찌 다 말하리오.
가련하도다.
고목이 바람에 맞아 쓰러지니, 감았던 겨우살이덩굴들 의탁할 곳을 잃었도다.
괴상하고 요망한 짓을 잘하는 늙은 들여우, 사람마다 활 쏘아 댈 줄 어찌 알았으랴.
범의 위엄을 빌리니 곰들이 벌벌 떨고, 아양 떨다가 혹 사내 행세하면 여자들 달려들었네.
누런 개와 푸른 매를 특히나 꺼렸지만, 검은 닭과 흰 말은 무슨 죄로 죽었던가.
듣자하니 네 죽을 때 머리를 언덕 쪽에 둔다더니, 이제 성 동쪽의 관도(官道) 가에서 보게 되는구나.”라고 하였다.
신돈은 성품이 사냥개를 겁내고 사냥을 싫어하였으며 또 방종하고 음탕하여 항상 검은 닭과 흰 말을 잡아먹어 양기(陽氣)를 돋구었다.
그때 사람들이 신돈을 늙은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고 말했으므로 이렇게 읊은 것이다.
후에 계림부윤(鷄林府尹)에 임명되자 글을 올려 사양하였으나〈왕이〉윤허하지 않았다.
신우(辛禑) 11년(1385)에 계림군(鷄林君)으로 있다가 죽으니 시호를 문정(文靖)이라고 하였다.
〈이달충은〉성품이 강직하고 곧아서 흔들리지 않았으며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일찍이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다가 돌아올 때 우리 환조(桓祖)께서 들에서 전송하였다.
태조(太祖)께서 환조 뒤에 서 있었는데, 환조가 술을 따르자 이달충이 서서 마셨으나 태조가 술을 따르자 꿇어앉아 마셨다.
환조가 괴이하여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 아드님은 정말 빼어난 분으로 공(公)께서 따라가지 못할 것이며, 공의 가업(家業)은 이 아드님이 반드시 크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고, 이로 인하여 자손들을 부탁하였다.
저술로『제정집(齊亭集)』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시문(詩文)은 이제현(李齊賢)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
아들은 이준(李竴)·이전(李竱)·이수(李䇕)·이횡(李竑)이다.
● 이달충(李達衷)선생의 한시(漢詩) 모음
霽亭 李達衷(1309∼1384) 文靖 慶州 霽亭集
제정 이달충 22.
有感 : 느낌 있어
-李達衷 1.
앞으로 가야할 곳 어떤 바단가 / 將行有何海(장행유하해)
나아가 건너갈 데 배 없이 가리 건널섭 / 將涉無舟航(장섭무주항)
봐야하니 나로서 생각할 것이 / 要見我所思(요견아소사)
가려하나 돌아서 어정거리네 거닐방 노닐황 / 欲往還彷徨(욕왕환방황)
재주는 아니 물려 노를 말하나 노즙 / 才非傳說楫(제비전설즙)
세상운수 역시나 아니 펼치네 창성할창 / 世運亦未昌(세운역미창)
빛은 잠겨 또다시 기다려야지 기다릴사 / 潛光且俟命(잠광차사명)
아무렇게 했다간 재앙만 만나 허망할망 만날조 재앙앙 / 妄動遭禍殃(망동조화앙)
三日浦(삼일포)
※강원도 고성 관동팔경의 하나
-李達衷 2.
모랫길 질펀 널려 먼 바다 함께 / 沙路漫漫遠竝瀛(사로만만원병영)
구름 산 한참 아득 병풍 펼친 듯 / 雲山漠漠近鋪屛(운산막막근포병)
사선정 가에 찾아 국선의 필적 / 四仙亭畔訪仙筆(사선정반방선필)
삼일포 앞 날아든 해오락 물가 / 三日浦頭投鷺汀(삼일포두투로정)
晩景樓(만경루)
-李達衷 3.
바다 보려 오르니 만경대에를 / 觀海來登晩景臺(관해래등만경대)
구름 물결 안개 결 하늘서 내려 / 雲濤煙浪接天來(운도연랑접천래)
하게해서 이 물을 봄 술로 바꿔 / 若將此水變春酒(약장차수변춘주)
어찌 그쳐 하루에 삼백 잔 마셔 / 何止日傾三百盃(하지일경삼백배)
閨情(규정: 규방의 정)
-李達衷 4.
그대께 주니 한 마음 맺음 / 贈君同心結(증군동심결)
내게 남기니 기쁨의 부채 / 貽我合歡扇(이아합환선)
그대 맘 끝내 같지가 않아 / 君心竟不同(군심경불동)
좋다 미웠다 천만 번 바꿔 / 好惡千萬變(호오천만변)
내 기쁨 또한 이루지 못해 / 我歡亦未成(아환역미성)
애태워 야윔 밤낮 그리워 / 憔悴日夜戀(초췌일야련)
내버려 놓아 님 원망 않아 / 棄捐不怨君(기연불원군)
새 사람 하도 예뻐서 고와 / 新人多婉孌(신인다완련)
곱고 어여쁨 얼마나 갈까 / 婉孌能幾時(완련능기시)
세월은 빨라 화살보다도 / 光陰疾於箭(광음질어전)
어찌 알 텐가 꽃 같은 사람 / 焉知如花人(언지여화인)
속일 수 있나 주름진 얼굴 / 亦有欺皺面(역유기추면)
雜興五章寄思菴 1(잡흥오장기사암 1) : 흥이 섞인 글을 사암 유숙에게 부쳐,
-李達衷 5.
구름 소나무 어찌 푸르러 / 雲松何蒼蒼(운송하창창)
집이 있으니 산에 언덕에 / 家在山之阿(가재산지아)
어느덧 지켜 그윽이 혼자 / 於焉守幽獨(어언수유독)
만물 보면서 슬픈 한창 때 / 覽物悲年華(람물비년화)
앵앵 들으니 봄날 새소리 새소리앵 / 嚶嚶聽春鳥(앵앵청춘조)
또다시 보는 가을철 벼를 / 又復見秋禾(우부견추화)
어찌 내 일이 높고 깨끗해 / 豈我事高潔(기아사고결)
사람 저절로 지나감 없어 / 人自無相過(인자무상과)
雜興五章寄思菴 2(잡흥오장기사암 2) : 흥이 섞인 글을 사암 유숙에게 부쳐
-李達衷 6.
생긋 웃으니 풀 가운데 꽃 싱긋웃을언 / 嫣然草中花(언연초중화)
활활 붉음이 푸름을 덮어 사를작 비출영 / 灼灼紅映綠(작작홍영록)
노란 벌 오니 어딘가에서 / 黃蜂來何方(황봉래하방)
노래해 달래 숨은 혼자를 / 歌詠慰幽獨(가영위유독)
푸드덕 날아 멋진 멧새가 / 翩翩有珍禽(편편유진금)
쪼아서 울려 마른 나무를 벗길박 쫄탁 / 剝啄韻枯木(박탁운고목)
일이야 없어 내 마음에는 / 事無關我心(사무관아심)
足以娛耳目(족이오이목) 넉넉히 즐겨 귀로 눈으로 즐거워할오. /
雜興五章寄思菴 3(잡흥오장기사암 3) : 흥이 섞인 글을 사암 유숙에게 부쳐
-李達衷 7.
내 스스로로 산 속에 왔네 / 自我來山中(자아래산중)
일마다 차츰 틔워 다스려 / 事事漸疏略(사사점소략)
아니 보이니 내 그리던 것 / 不見我所思(불견아소사)
꼴에 땔나무 서로 마주해 꼴추 풋나무요 예야 / 芻蕘相唯喏(추요상유야)
밭두둑 일을 마침 서둘러 밭두둑주 / 田疇事方急(전주사방급)
또한 못하지 함께 술 나눔 갚을수 잔돌릴작 / 亦未共酬酢(역미공수작)
떠나왔으니 때 어김 마라 어길위 / 去矣勿違時(거의물위시)
나는 마땅히 혼자 술잔을 따를작 / 吾當成獨酌(오당성독작)
雜興五章寄思菴 4(잡흥오장기사암 4) : 흥이 섞인 글을 사암 유숙에게 부쳐
-李達衷 8.
좁쌀을 심어 자갈밭에다 조속 메마른땅교 / 種粟磽磽田(종속교교전)
바래 기다려 그 익기만을 / 望望待其熟(망망대기숙)
노란 참새들 내 아니 빌려 빌릴대 / 黃雀不我貸(황작불아대)
끝내 날을 써 몰아 쫓아내 몰구 쫓을축 / 竟日費驅逐(경일비구축)
이미 아니지 네가 한 것이 / 旣非汝所爲(기비여소위)
버젓이 채워 너희들 배를 / 公然實汝腹(공연실여복)
아 너희 늘어 살을 찌우지 / 噫汝縱得肥(희여종득비)
걱정하느니 매 밥이 될까 새매전 / 恐爲鸇所肉(공위전소육)
雜興五章寄思菴 5(잡흥오장기사암 5) : 흥이 섞인 글을 사암 유숙에게 부쳐
-李達衷 9.
외로운 구름 본디 맘 없어 / 孤雲本無心(고운본무심)
두둥실 다녀 우주서 놀아 / 汎汎遊宇宙(범범유우주)
마음 없이도 흰 옷을 입고 / 無心而白衣(무심이백의)
마음에 없는 푸른 개 되네. / 無心而蒼狗(무심이창구)
마음 없는데 동쪽 서쪽을 / 無心而東西(무심이동서)
마음에 없이 가다 멎다가 / 無心而去住(무심이거주)
구름과 나는 모두 맘 없이 / 雲我俱無心(운아구무심)
서로 함께해 유익한 벗이 / 相與爲益友(상여위익우)
樂吾堂感興詩1(낙오당감흥시 1)
-李達衷 10.
뭔가 있으니 깊은 못 속에 못연 / 有物在重淵(유물재중연)
흔한 물고기 나란히 못해 비늘린 아우를병 / 凡鱗難竝比(범린난병비)
어찌 일찍이 그 이마 찍어 이마액 / 何嘗點其額(하상점기액)
또한 않으니 그 꼬리 붉힘 붉을정 그궐 / 亦不赬厥尾(역불정궐미)
어둠에 길러 편할 곳 편해 그믐회 / 晦養安所安(회양안소안)
마음이 없어 유루에 가기 죽일류 / 無心就劉累(무심취류루)
움직임마저 때를 잃어선 진실로구 / 動也苟失時(동야구실시)
고래도 딱해 개미에게도 철갑상어전 땅강아지루 / 鱣鯨困螻蟻(전경곤루의)
樂吾堂感興詩 2(낙오당감흥시 2)
-李達衷 11.
주공은 앉아 아침 기다려 / 周公坐待旦(주공좌대단)
문왕은 안 나 밥 먹을 겨를 겨를가 / 文王不暇食(문왕불가식)
어찌 일찍이 술 편히 즐겨 맛볼상 / 何嘗樂宴安(하상락연안)
의젓이 있어 살펴 조심해 찰름 신칙할칙 / 凜乎存戒飭(름호존계칙)
돌려 뒤집어 밟아 나아가 / 反復踐中行(반복천중행)
힘씀을 다해 마음에 힘에 힘쓸자 / 孜孜盡心力(자자진심력)
큰 일 마침내 허물이 없고 허물건 / 大業竟無愆(대업경무건)
아름다운 빛 보임 끝없이 / 休光垂罔極(휴광수망극)
신령함 올라 하늘 푸르름 푸를창 / 神物登窮蒼(신물등궁창)
바람에 우레 쓸어 흩어져 쓸어버릴탕 / 風雷相蕩薄(풍뢰상탕박)
어찌 편할까 진흙탕 서려 서릴반 / 豈能安泥蟠(기능안니반)
뛰어남 좁혀 쓸쓸한 둘레 좁을애 쓸쓸할료 / 頭角隘寥廓(두각애료곽)
달리 바뀌어 엿봄 어려워 엿볼규 엿볼처 / 變化難窺覷(변화난규처)
樂吾堂感興詩 3(낙오당감흥시 3)
-李達衷 12.
자벌레 붙어 외론 풀떨기 蠷집게벌레구 尺蠖 / 尺蠼緣孤叢(척구연고총)
이어 올라가 꼭대기 위로 / 乃上上盡頭(내상상진두)
내려오려 해 그쳐 안 되어 / 欲下却不得(욕하각부득)
많이도 보아 저 하기 안 돼 / 多見不自由(다견부자유)
처음에 어찌 이럴 줄 알아 / 始焉苟知此(시언구지차)
조금에 멎어 뉘우침 없어 / 小止無悔尤(소지무회우)
작은 것이라 느낄 바 있어 / 物微有所感(물미유소감)
나아가려다 도로 물러나 / 欲進還退休(욕진환퇴휴)
가질 마 옆에 독벌레 집엔 독고 보금자리과 / 行莫近蠱窠(행막근고과)
놀라 숨으니 독사 있어서 숨을칩 살무사복 / 驚蟄卽有蝮(경칩즉유복)
살지 마 곁에 새둥지에는 / 居莫近鳥巢(거막근조소)
쪼고 떠들어 올빼미 있어 쫄탁 맛볼쵀 새이름복 / 啄啐則有鵩(탁쵀즉유복)
참으로 아니 그 작음 삼가 / 苟不愼其微(구불신기미)
끝내 멋대로 그 독을 입어 방자할사 / 終然肆爾毒(종연사이독)
이 말을 그대 가벼이 마라 / 斯言君勿輕(사언군물경)
우리는 이에 황금에 옥에 / 我乃黃金玉(아내황금옥)
※鵩鳥: 올빼미 비슷하며 우는 소리를 들으면 不吉함.
樂吾堂感興詩 4(낙오당감흥시 4)
-李達衷 13.
낮게 살며 나가기 서두른다면 / 居卑急於進(거비급어진)
함께한 이 이 또한 나쁜 사람이 / 所與亦匪人(소여역비인)
맨발로 다니면서 땅을 안 보면 / 若跣不視地(약선불시지)
험한 데를 다니면 위태로운 몸 / 行險幾危身(행험기위신)
강이 흘러 마땅히 앞이 빠르고 / 河流當前急(하류당전급)
건너려면 반드시 나루 물어야 / 欲度須問津(욕도수문진) ※渡
조금은 느긋하게 서둘지 마라 / 小安且勿躁(소안차물조)
날래나가 두려워 빠져들까 봐 / 勇往恐淪湮(용왕공륜인)
樂吾堂感興詩 5(낙오당감흥시 5)
-李達衷 14.
앞으로 가려하나 강 바다 있어 / 將行有河海(장행유하해)
나아가 건너려니 탈 배가 없어 / 將涉無舟航(장섭무주항)
봐야하니 나에겐 생각해 온바 / 要見我所思(요견아소사)
가려하나 돌아서 어정거리네. / 欲往還彷徨(욕왕환방황)
재주는 아니어서 전설의 노가 / 才非傳說楫(재비전설즙) ※傅說(殷)
세상운수 역시나 아니 펼치네. / 世運亦未昌(세운역미창)
빛을 감춰 또다시 기다려야지 / 潛光且俟命(잠광차사명)
아무렇게 했다간 재앙만 만나 / 妄動遭禍殃(망동조화앙)
樂吾堂感興詩6(낙오당감흥시 6)
-李達衷 15.
吾知過不及(오지과불급) 나는 알아 지나침 미치지 못함. ※過猶不及
그 잘못은 하기야 같다 하지만 / 其失則爲同(기실즉위동)
못 미침은 오히려 힘쓸 수 있고 / 不及猶可勉(불급유가면)
지나침은 반드시 그 공 허물어 무너뜨릴휴 / 過必隳其功(과필휴기공)
마음가짐 모쪼록 착하게 생각 / 存心須慮善(존심수려선)
입을 열어 어쩌면 싸움이 일어 / 開口或興戎(개구혹흥융)
찾음에 마땅찮지 오랜 되풀이 / 要當不遠復(요당불원복)
어찌 닿나 곡하며 길을 다하니 / 何至哭途窮(하지곡도궁)
辛旽1(신돈 1)
-李達衷 16.
하늘땅 낳아 이뤄 뭇 물건 많아 / 天地生成品彙煩(천지생성품휘번)
누가 막아 큰 지음 멋대로 설쳐 擅 / 誰干洪造檀寒暄(수간홍조단한훤)
기쁜 정 퍼져 적셔 봄 담긴 언덕 / 歡情浹洽藏春塢(환정협흡장춘오)
성난 숨 그늘 어려 해 가린 구름 / 怒氣陰凝蔽日雲(노기음응폐일운)
꿩 조개 매 비둘기 오히려 야릇 / 雉蜃鷹鳩猶足怪(치신응구유족괴)
용은 고기 쥐가 범 어찌 말로 해 / 龍魚鼠虎豈容言(룡어서호기용언)
가여운 늙은 나무 바람에 뽑혀 / 可憐老木風吹倒(가련로목풍취도)
담쟁이 붙어살아 기댈 데 잃어 / 蘿蔦離披失所援(라조리피실소원)
辛旽2(신돈 2) 신돈
-李達衷 17.
온갖 요괴 내달아 늙은 들 여우 달릴빙 / 騁怪馳妖老野狐(빙괴치요로야호)
어찌 알아 손 있어 다퉈 당긴 활 활호 / 那知有手竸張弧(나지유수경장호)
둘러쳐 범을 빌려 곰들을 잡아 큰곰비 狐假虎威 / 威能假虎熊羆懾(위능가호웅비섭)
홀려 되니 남자로 아낙네 몰려 아첨할미 달릴추 / 媚惑爲男婦女趨(미혹위남부녀추)
누른 개 푸른 매는 참으로 꺼려 / 黃狗蒼鷹眞所忌(황구창응진소기)
검은 닭 하얀 말이 무슨 허물이 허물고 / 烏鷄白馬是何辜(오계백마시하고)
일찍 들어 넌 죽어 꼭 머리 두니 首丘初心 / 嘗聞汝死必丘首(상문여사필구수)
이미 보여 성 동쪽 한길 모퉁이 모퉁이우 / 已見城東官道隅(이견성동관도우)
思舊山(사구산) 옛 산을 생각하며
-李達衷 18.
옛 산은 안개 댕댕이 속에 / 舊山煙蘿中(구산연라중)
서까래 셋에 낡은 집 있어 / 三椽有老屋(삼연유로옥)
오랜 이 보내 반가운 편지 / 故人作奇信(고인작기신)
돌아가 마땅 채워 한 움큼 / 當歸盈一掬(당귀영일국)
낮은 벼슬을 못 놔 돌아감 / 微官不放歸(미관불방귀)
돌아갈 꾀함 괜히 익어가 / 歸計徒自熟(귀계도자숙)
시름이 들어 거문고 울려 / 愁來鳴玉琴(수래명옥금)
서리단풍잎 고목에 붙어 / 霜楓生古木(상풍생고목)
題興敎僧統餞行詩軸(제흥교승통전행시축) - 흥교 승통을 보내는 시축에
-李達衷 19.
다만 할 것은 마음 없을 뿐 / 但要無心耳(단요무심이)
어찌 아프랴 머리털 나고 / 何傷有髮乎(하상유발호)
말마라 선비 부처 물리쳐 물리칠척 / 莫言儒斥佛(막언유척불)
일찍이 일러 내게 날 잊어 / 嘗謂我忘吾(상위아망오)
바쁘게 개미 누린내 찾아 어지러울요 누린내전 / 擾擾慕羶蟻(요요모전의)
나뉜 물고기 미끼를 삼켜 삼킬탄 먹이이 / 區區吞餌魚(구구탄이어)
바뀌는 삶에 놀랄 일 많아 변할환 / 幻生多怪事(환생다괴사)
큰 울림 취해 이에 좋은 꾀 울릴굉 / 轟醉乃良圖(굉취내량도)
次益齋詩韻 1(차익재시운1) - 익제 이제현의 운을 빌어
-李達衷 20.
거닐어 노래 찬 물결의 물 / 行歌滄浪水(행가창랑수) ※滄浪歌
쉬어 부끄럼 나쁜 나무 밑 쉴게 / 恥憇惡木陰(치게악목음)
세상 통틀어 옛일을 몰라 / 擧世不知故(거세부지고)
어떤 사람이 이제 나무래 찌를자 / 何人能刺今(하인능자금)
때 맞게 할 일 늘 하지 못해 / 時命難可常(시명난가상)
이뤄 이름나 또 무슨 보탬 / 功名亦何益(공명역하익)
하는 것 같아 어찌 이 마음 / 若爲安此心(약위안차심)
고달파 자고 배고파 먹어 마실끽 / 困眠且飢喫(곤면차기끽)
次益齋詩韻 2(차익재시운2) - 익제 이제현의 운을 빌어
-李達衷 21.
마음도 없이 토끼 굴 지어 / 無心作兔窟(무심작토굴)
일 맞아 파리 울이 두려워 파리승 울번 / 觸事畏蠅樊(촉사외승번)
헛된 힘씀에 글씨 일삼아 납연 판참 / 徒勞事鉛槧(도로사연참)
아니 넉넉해 집안 일으켜 / 未足興家門(미족흥가문)
돌아와 한숨 물고기 없어 / 歸來嘆無魚(귀래탄무어)
화와 복 쫓음 말을 잃고서 / 禍福從失馬(화복종실마) ※塞翁之馬
가난에 느긋 하는 일 없어 / 安貧無所爲(안빈무소위)
물러나 먹어 맑게 앉아서 / 退食便淸坐(퇴식편청좌)
次益齋詩韻 3(차익재시운3) - 익제 이제현의 운을 빌어
-李達衷 22.
아깝다하리 내 어른 없어 / 可惜吾無翁(가석오무옹)
외로운 무덤 흰 버들 바람 / 孤墳白楊風(고분백양풍)
그래도 기뻐 아저씨 있어 / 亦喜吾有父(역희오유부) ※慶州李氏
머리 새하얀 익재공 계셔 머리센모양파 / 皤然益齋公(파연익재공)
문중 어울러 함께 나누고 화목할목 겨레족 / 睦族同欣戚(목족동흔척)
사람 더불어 안 맞춤 없어 / 與人無莫適(여인무막적)
어질어 베풂 넓고 깊어서 / 仁恩河海深(인은하해심)
갚으려 해도 부끄러움이 가릴연 물방울적 / 欲報愧㳙滴(욕보괴연적)
오언고시 한시(漢詩) - 이달충(李達衷) 선생
雜興五章寄思菴(잡흥오장기사암) - 잡흥오장을 지어 사암에게 주다.
쭉 뻗은 소나무 어찌 이리 푸른가 / 雲松何蒼蒼(운송하창창)
집은 산 언덕에 있다네. / 家在山之阿(가재산지아)
여기서 홀로 조용히 지내는데 / 於焉守幽獨(어언수유독)
경물 보니 세월 가는 것 슬퍼진다. / 覽物悲年華(람물비년화)
꾀꼴꾀꼴 봄 새소리 들었는데 / 嚶嚶聽春鳥(앵앵청춘조)
어느새 다시 가을 벼를 보는 구나 / 又復見秋禾(우복견추화)
내 어찌 고결함 일삼는 것이겠는가 / 豈我事高潔(기아사고결)
사람들이 절로 찾아오지 않는 것을 / 人自無相過(인자무상과)
풀 가운데 어여뿐 꽃 생긋 웃으니 / 嫣然草中花(언연초중화)
활짝 핀 붉은꽃이 푸름을 덮어 비친다. / 灼灼紅映綠(작작홍영록)
노란 벌 어디서 왔나 / 黃蜂來何方(황봉래하방)
윙윙 나의 고독을 달래주네. / 歌詠慰幽獨(가영위유독)
푸드덕 날아오는 멋진 참새가 / 翩翩有珍禽(편편유진금)
마른 나무를 쪼아서 울린다. / 剝啄韻枯木(박탁운고목)
내 마음에 큰 관심은 없지만 / 事無關我心(사무관아심)
넉넉히 귀와 눈으로 즐질 만 하오. / 足以娛耳目(족이오이목)
내 산중에 온 뒤로부터 / 自我來山中(자아래산중)
일마다 차츰 소략(疏略)하여 진다. / 事事漸疏略(사사점소략)
내 그리운 사람 아니 보이니 / 不見我所思(불견아소사)
꼴베는 사람과 서로 마주해 대화를 나눈다. / 芻蕘相唯喏(추요상유야)
농사철 밭 일이 바쁠 때엔 / 田疇事方急(전주사방급)
함께 술잔 나눠 갚을 수 없나니 / 亦未共酬酢(역미공수초)
이미 떠나 왔으니 때를 어기지 마라. / 去矣勿違時(거의물위시)
내 마땅히 혼자 술잔을 따른다. / 吾當成獨酌(오당성독작)
메마른 자갈밭에 좁쌀 심어 / 種粟磽磽田(종속교교전)
익기만을 조속히 익기를 기다린다. / 望望待其熟(망망대기숙)
노란 참새들 나를 괴롭혀 / 黃雀不我貸(황작불아대)
끝내 하루 종일 몰아 쫓아낸다. / 竟日費驅逐(경일비구축)
너희들이 지은 것이 이미 아니거를 / 旣非汝所爲(기비여소위)
公然實汝腹(공연실여복) 버젓이 너희들 배를 채우는가. / 公然實汝腹(공연실여복)
아! 너희들이 살이 찌더라도 / 噫汝縱得肥(희여종득비)
매 밥이 될까 걱정이구나. / 恐爲鸇所肉(공위전소육)
孤雲本無心(고운본무심) 외로운 구름은 본디 마음이 없어 / 孤雲本無心(고운본무심)
두둥실 떠 다녀 우주서 노닌다. / 汎汎遊宇宙(범범유우주)
무심히 흰 옷을 입기도 하고, / 無心而白衣(무심이백의)
무심히 푸른개(蒼狗)가 되기도 하고 / 無心而蒼狗(무심이창구)
무심히 동서쪽으로 가고 / 無心而東西(무심이동서)
무심히 가다가 멎다가 / 無心而去住(무심이거주)
무심한 구름이 내 마음인양 / 雲我俱無心(운아구무심)
서로 함께 유익한 벗이구나. / 相與爲益友(상여위익우)
이달충(李達衷, 1309~1385)
출전: 霽亭集卷之一(제정집 1권)
이 시는 오언고시의 한시로 이달충(李達衷) 선생의 한시이다
1365년 정승 류숙(柳淑,1316~1368) 선생이 은퇴 할 적에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있었는데 이달충(李達衷) 선생은 전횡을 일삼고 있던 신돈(辛旽,1323~1371)에게 주색만 좋아한다고 직언했다가 그의 미움을 사 다시 파직되었다.
이미 은퇴하여 고향에 내려간 류숙에게 보내는 한시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이다..
이 한시의 내용은 파직되어 산언덕위에 집을 짓고 혼자 살아가는 일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외로운 자신의 처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3장에서는 그리운 사람이 아니 보이네...하고 사암 류숙을 그리워하고 있다.
푸른개(蒼狗)는 백운창구(白雲蒼狗)를 의미한다.
세상의 온갖 일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 “백의창구(白衣蒼狗)”라고도 한다.
'흰 구름이 한순간에 푸른 개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의 일이 급하게 잘 변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杜甫,712∼770)가 친구인 시인 왕계우(王季友,714~794)를 위해 쓴 시 《가탄(可嘆)》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푸른개(蒼狗)를 신돈에 비유한 말로 보인다.
낙오당감흥시 제4수(樂吾堂感興詩 第4首)
이달충(李達衷, 1309∼1384)
尺蠖緣孤叢 乃上上盡頭(척확연고총 내상상진두)
欲下却不得 多見不自由(욕하각부득 다견부자유)
始焉苟知此 小止無悔尤(시언구지차 소지무회우)
物微有所感 欲進還退休(물미유소감 욕진환퇴휴)
자벌레가 외로운 나무에 붙어,
위로 올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도로 내려오려 하나 잘되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음을 많이 보게 되는구나.
처음부터 참으로 이럴 줄 알아서,
조금 가다 그쳤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을 .
미물에게서 느끼는 바 있어,
나아가려다가 도로 물러나 쉬노라.
樂吾堂 : 草堂(초당) 이름.
感興 : 마음에 감동되어 일어나는 흥취.
尺蠖(척확) : 자벌레.
孤叢 : 나무떨기 중의 하나.
苟 : 진실로. 다만. 구차하다.
悔尤 : 잘못을 뉘우침. 잘못과 뉘우침.
物微 : 사물이 하찮음. 微物.
전부탄 이수(田婦歎 二首) - 이달충(李達衷)
시골 아낙의 탄식
霖雨連旬久未炊 門前小麥正離離
待晴欲刈晴還雨 謀飽爲傭飽易飢
夫死紅軍子戍邊 一身生理正蕭然
插竿冠笠雀登頂 拾穗擔筐蛾撲肩『霽亭先生文集』 卷之一
今田家爲偶人立田中, 以懼鳥雀. 鳥雀知其非眞不去, 登其頂.
해석
霖雨連旬久未炊(림우연순구미취) / 장마가 열흘동안 이어져 오래도록 밥불 못 땠는데
門前小麥正離離(문전소맥정리리) / 문 앞의 작은 보리는 정히 쭉쭉 솟아 있네[離離]
待晴欲刈晴還雨(대청욕예청환우) / 개길 기다려 베려 했는데 개었다가 다시 비오니
謀飽爲傭飽易飢(모포위용포이기) / 배 부르길 도모하려 해도 게을러 배부름이 쉬이 배고파져
夫死紅軍子戍邊(부사홍군자수변) / 남편은 홍건적에 죽고 아들은 변방에 수자리 가
一身生理正蕭然(일신생리정소연) / 한 몸의 삶이 정히 쓸쓸하네
插竿冠笠雀登頂(삽간관립작등정) / 장대 꽃아 삿갓 씌운 허수아비에 참새가 머리에 오르고
拾穗擔筐蛾撲肩(습수담광아박견) / 이삭 모아 광주리를 메자 나방이 어깨를 치며 나네.
『霽亭先生文集』卷之一
今田家爲偶人立田中, 以懼鳥雀. 鳥雀知其非眞不去, 登其頂.
지금 시골은 허수아비[偶人]를 밭 가운데 세워두는데 참새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참새는 진짜 사람이 아닌 줄 알고 날라가지 않고 머리에 오른다.
해설
어려운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김종직(金宗直)은『청구풍아(靑丘風雅)』에 이 작품을 수록하면서 그 말미에 “이 두 편의 시는 농부 아낙네의 외로움과 배고프고 파리한 형상을 곡직하게 표현하였으니, 미나리와 햇빛을 바쳤던 일을 대신할 만하다.[此二詩, 曲盡田婦孤寡飢瘁之狀, 可代芹曝之獻].”라는 평을 붙였다.
여기서 근폭지헌(芹曝之獻)이란?『열자(列子)』.「양주(楊朱)」에서 나온 말로, 미나리나 햇빛 따위의 보잘것없는 물건이나마 아주 정성껏 임금에게 바친다는 뜻이니, 바로 이 시가 현실의 질곡(桎梏)속에서 괴로운 삶을 모질게 이어 나가고 있는 농민들의 처참한 일상을 성실하게 잘 반영하고 있다는 칭찬이다.
그런데 이달충(李達衷)의 문집에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색채를 지닌 작품은 두 수 정도로 미비한 편이다.
원주용,『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288~289쪽
閨情(규정) - 이달충(李達衷)
贈君同心結(증군동심결) / 저는 그대에게 동심매듭을 드렸고
貽我合歡扇(이아합환선) / 그대는 제게 합환선을 주셨지요
君心竟不同(군심경불동) / 그대 마음 끝내 같지 않아
好惡千萬變(호악천만변) / 좋아하고 미워함이 천만번 변하니
我歡亦未成(아환역미성) / 내 즐거움 또한 이루지 못하고
憔悴日夜戀(초췌일야련) / 밤낮으로 그대 그리워 야위어 갑니다
棄捐不怨君(기연불원군) / 날 버리셨어도 그대 원망 안 해요
新人多婉戀(신인다완련) / 새로 얻은 여인 많이 예쁘고 사랑스럽겠지요?
婉戀能幾時(완련능기시) / 그러나 그 예쁘고 사랑스럼이 얼마나 갈까요?
光陰疾於箭(광음질어전) / 세월은 화살보다 빠른 것을
焉知如花人(언지여화인) / 어찌 알리오, 꽃과 같은 저 여인도
亦有欺皺面(역유기추면) / 또한 얼굴에 주름질 날이 있다는 것을
시의 첫 두 귀에 동심결과 합환선이 나옵니다.
同心結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자는 약속을 나타내는 매듭이고, 합환선은 남녀가 부부가 되어 함께 사는 기쁨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부채입니다.
아마 혼인 가약을 맺으면서 우리 사랑 변치말자며 신부는 신랑에게 동심결을 건네고, 신랑은 오래오래 같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자며 신부에게 합환선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 - 그림자에게
予在山中竟日無相過拖笻曳履獨徜徉乎澗谷寥寥然無與語唯影也造次不我違爲可惜也作詩以贈
고려 후기 문인 이달충(李達衷, 1309 ~1385)
我迺影爲師(아내영위사) - 그림자에게라는 시
사람들이 말하길 그림자가 밉거든 / 人言若惡影(인언약오영)
그늘에 있으면 떼어낼 수 있다 하네. / 處陰庶可離(처음서가리)
하지만 그늘 또한 물건의 그림자 / 陰亦物之影(음역물지영)
사람들 하는 말 심히 어리석구나 / 人言洒更癡(인언내갱치) ※중략
다만 나는 말이 많은데 / 唯我頗多言(유아파다언)
그림자는 이건 따라하지 않네 / 影也不取斷(영야불취사) ※중략
그림자가 나를 본받을 게 아니라 / 顧非影效我(고비영효아)
내가 그림자를 스승 삼아야 하리 / 我洒影爲師(아쇄영위사)
我迺影爲師(아내영위사) - 내가 그림자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리라
그림자를 본 받으리라 - 이달충(고려 말)
나는 내 그림자가 미워 달아나는데
그림자도 따라 달리네
내가 없으면 그림자도 곧 없어지고
내가 있으면 그림자도 있어 서로 따르네
내가 있으면서도 그림자를 없게 하려면
그런 방법이 있을텐데도 나는 알 수 없어라
사람들은 말하네 그림자가 밉거든
그늘에 들어가 있으면 뗄 수 있을 거라고
그늘도 또한 사물의 그림자거니
사람의 그 말이 더 없이 어리석어라
물건이라든가 내가 있기만 하면
그늘과 그림자도 따라서 여기에 있네
나도 없고 사물도 또한 없으면
그늘과 그림자는 어디에 생길까
소리를 내어서 내가 그림자에게 물었지만
그림자야 한 마디 말도 없어라
마치 안회(顔回)가 어리석은 것처럼
말없이 알고서 깊이 생각하는게지
무엇이건 내가 움직일 때마다
하나 하나 따라서 흉내를 낸다네
나는 무척이나 말이 많은데
그림자가 그것만은 따라하지 않는다네
그림자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나보다
말은 곧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그림자가 나를 본받는게 아니라
내가 그림자를 스승으로 삼아야 겠네
이달충(李達衷)의 한시(漢詩) 한 수
촌사의산산요촌(村舍依山山繞村) / 마을 집은 산을 기대었고 산은 마을을 둘러
산전소경접형문(山前小徑接衡門) / 산 앞 작은 길이 싸리문에 이어졌네
파명석치강류백(波鳴石齒江流白) / 물결이 돌에 부딪쳐 강물이 희고
풍과상전우기혼(風過桑顚雨氣昏) / 바람이 뽕나무 위를 지나니 비오려나 어둡네
이 시는《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강원도 삼척도호부 편에 소개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가 강원도관찰사를 지낼 당시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
生重要是不停止而動(생중요시불정지이동) - 이달충(李達衷)
有物在重淵-깊은 못 속에 어떤 것이 있는데
凡鱗難竝比-보통 고기는 비교하기도 어렵다
何嘗點其額-이마에 점 흔적도 없고
亦不赬厥尾-꼬리를 붉히지도 않았도다.
晦養安所安-숨어 수양하여 편안하게 있으니
没有事欲望-무슨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 없다
動也苟失時-움직임에 시기를 잃으면
鱣鯨困螻蟻-고래도 개미에게 곤욕을 당하게 된다네.
이달충(李達衷/霽亭公)의 선견지명(先見之明)
이달충(李達衷: 국당공의 셋째 아드님)
1326년(충숙왕 13) 충숙왕(忠肅王)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恭愍王) 때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歷任)하였다. 1359년(공민왕 8)에는 호부상서(戶部尙書)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罷免)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신돈(辛旽)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酒色)을 일삼는다고 공석(公席)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辛旽)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1385년(우왕 11)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공(제정공)께서 먼 길을 가신다하니 섭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자춘(李子春: 이성계의 아버지)은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로 와 있던 이달충(李達衷)이 다시 개성(開城)으로 떠나게 되자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이별주나라도 한잔 나누고자 아들을 데리고 이달충을 찾아온 곳이다.
이달충(李達衷)과 이자춘(李子春)은 각각 문신(文臣)과 무신(武臣)으로 맡은바 직분은 서로 달랐지만 마음이 잘 통하여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늘 각별(恪別)하였다. 그런 까닭에 재회(再會)를 짐작할 수 없는 이별을 애석해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앞날을 기약(期約)할 수 없는 세상인지라 이제 가시면 언제 볼 수 있을는지.... 제가 술 한 병을 가져왔으니 이별주나 한잔 하십시다.”
李子春이 쓸슬한 얼굴로 아들이 들고 온 술병을 내밀었다.
“허허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인간사의 흔한 일임을 모를 나이도 아닌데, 공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허전 합니다. 그려”
李達衷 역시 李子春과의 이별이 애틋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李達衷은 본래 학식(學識)이 뛰어나고 성품(性品)이 강직(剛直)하여 벼슬길에 오른 이후 여러 임금을 모시는 동안 나라의 중직(重職)을 두루 역임(歷任)하였다. 또한 그는 앞날을 내다보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자 한 잔 받으시오. 먼 길 조심해서 가시기 바랍니다.”
李子春이 李達衷에게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이장군도 내잔을 받으시오. 부디 이곳에서 편안히 지내시길 바라오.”
이달충은 이자춘의 잔을 마시고는 다시 그 잔에 술을 채워 이자춘에게 권했다.
이자춘도 그 잔을 받아 기꺼이 들이켰다.
이자춘은 술잔을 비운 뒤 옆에 앉은 아들에게 말했다.
“뭐하는 게냐? 너도 어서 어르신께 술을 올려라”
“예! 아버지”
이자춘의 아들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이달충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르신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비옵니다.”
그런데 술잔을 따르는 이자춘의 아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이달충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자춘의 아들에게 큰절을 하였다.
아지춘은 물론이거니와 그 아들 또한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여 어찌 할 줄 몰라 얼른 맞절을 하였다.
“아니, 이공! 이 무슨 해괴한 짓입니까? 벗의 자식에게 절을 하다니요!”
이자춘이 놀라며 재빨리 이달충의 몸을 일으켰다.
“허허 저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 어는 천지에 이런 얼토당토아니한 법도가 또 있단 말이오, 허허, 이런 황망한 일이 있나,”
이자춘이 연신 당황하며 말했다.
“허허, 이보시게나, 이 장군! 이 장군의 아드님은 귀한 상을 지니셨네.
앞으로 큰일을 하실 것이야. 그것은 지금 장군이나 내가 이루어 놓은 업적과는 비교도 안 될 일이지. 이처럼 귀하신 분이 술을 따라 주시는데 내 어찌 감히 앉아서 받을 수 있겠는가!”
이달충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자 평소 그의 선견지명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자춘은 말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서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자춘의 아들은 그 기상이 더욱 늠름하고 패기 있어 보였다.
이달충은 이번에는 이자춘의 아들의 손을 꼭 잡더니 부탁을 하듯 간곡히 말했다.
“이보시게, 나는 늙었으니 아마도 자네의 좋은 날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네, 하지만 부디 지금 내가 한 말을 잊지 말고 후일 그날이오면 내 후손들이나마 잘 보살펴 주시게나. 그리하면 내 비록 지하에 있어도 그 은혜는 잊지 않으리다.”
이렇게 말하는 이달충(李達衷)의 눈빛은 온화(溫和)하고 맑았다.
이별주(離別酒)를 나눈 이달충(李達衷)과 이자춘(李子春)은 서로의 안녕(安寧)을 당부(當付)하며 석별(惜別)의 정을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 온는 길에 이자춘은 아들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하듯 말했다.
“부디 저 어른의 말씀을 깊이 새겨 명심하거라!”
“예! 아버지!”
그렇게 대답하는 이자춘의 아들은 그로부터 20여년 후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을 감행(敢行)하고 조선(朝鮮)을 개국(開國)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였다.
주(註)
이자춘(李子春,1315~1360)
1394년(태조 3) 태조의 4대조를 추존할 때 환왕(桓王)으로, 태종 때 다시 환조로 추존되었다. 조카 교주(咬住)가 장성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형의 천호(千戶) 관직을 이어받았으나, 후에 독자적인 체제를 굳혔다. 그는 원나라의 후원에 힘입어 부원(附元)세력인 조씨(趙氏 : 이복동생의 外家)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그 직책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그 뒤 원나라의 정책으로 타격을 입게 되자 차츰 원나라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당시 원나라는 이른바 삼성조마호계(三省照磨戶計)라 하여 중서성(中書省)·요양성(遼陽省)·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 등 3성의 원주민과 이주민을 구분해 호적을 작성하였다. 그 의도는 원주민을 우대하고 국외의 이주자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이는 이주민을 세력 기반으로 구축하고 있던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한편, 공민왕은 원명 교체기에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반원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는 동북면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와 연결된 친원 기씨(奇氏)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유이민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한 이자춘을 끌어들일 필요성을 느꼈다.
이자춘도 대대로 구축해 온 세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1355년(공민왕 4) 공민왕을 찾아 복종할 뜻을 비치자, 공민왕은 그에게 소부윤(少府尹)을 제수하였다. 이듬해 그는 유인우(柳仁雨)와 함께 동북면을 협공해 쉽사리 이 지역을 점령하고 99년 만에 회수하였다.
이후 그는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가세해 뿌리 깊게 대립했던 조씨 세력을 제거한다. 또한, 이 때의 전공으로 대중대부사복경(大中大夫司僕卿)이 되어 저택을 하사받고 오랫동안 그의 기반이었던 동북면을 떠나 개경에 머물게 되었다.
개경에 머문 지 1년 만에 그가 동북면에 돌아가려 하자, 그 곳의 토착 기반을 이용해 공민왕을 배반할 우려가 있다며 조정의 신하들이 반대하였다. 그러나 공민왕은 그가 아니면 동북면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로 임명해 다시 영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가 동북면에 돌아온 지 4년 만에 병사함으로써 조정 신하들의 염려는 기우로 끝났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이성계는 통의대부 금오위상장군 동북면상만호(通議大夫金吾衛上將軍東北面上萬戶)가 되어 약관으로 정3품의 중앙무관직과 선조의 기반인 상만호의 두 가지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이는 이성계가 동북면의 토착기반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조선왕조 건국의 세력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능은 정릉(定陵)으로, 함흥 동쪽 귀주동(歸州洞)에 있다.
<友山 李相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