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둔덕면 산방산(507.2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동지(12/22)를 지나 내일 모래면 크리스마스(X-mas)라! 어느 덧 무술년(戊戌年)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어둑한 새벽길을 걸어서 차에 오르니 앉을 자리가 모자란다.(47명) 차는 미끄러지 듯 내달아 ‘현풍휴게소’에서 회원님들이 조반(朝飯)을 드실동안 주위를 잠시 둘러봅니다.
동으로는 고래등같은 “비슬지맥”의 연봉들이 꿈~틀 꿈~틀 이어져 달리고 서북쪽으로는 대하(낙동강)의 물굽이가 현풍을 휘감아 흐름니다. 강 언덕 기슭에는 비보림(裨補林)이 조성되어 지기(地氣)의 소실(消失)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려!

일찍이 500여 년 전에 선조님들의 지혜로 조성됀 방풍림(防風林)이 오늘 날에는 “보호수(느티나무)”로 지정되어 오고가는 모든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으니... 이 것이야 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라 하겠습니다.
차는 신나게 달려 남해고속도상의 옥수를 거쳐 ‘거제대교(견내량)’를 지나니 좁다란 해협에 장구(長久)히 흐르는 바닷물은 언제나 무심(無心)히 흐름니다. 1592년 임진란(壬辰亂)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절규와 희생이 있었던 곳인가!
성웅 이순신(1545~1598)장군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조선(朝鮮)을 구하셨으니... 그 위업과 전공은 만대에 찬란할 것입니다. 소리없이 유장(悠長)하게 흐르는 해류(海流)를 바라보면서, ‘청마 유치환 생가’ 방향으로 1018번 도로를 따라 방하리 산행깃점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단체로 우람한 산방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일렬로 진행하니, 선두와 후미가 어찌나 긴지 끝간데를 모르겠습니다. 보현사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르니 갑자기 경사가 가파르고 험준하여 숨이 턱 턱 막힌다. 그래도 통나무 계단을 잘 시설해 놓아서 등산하기에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출발 때부터 오락가락 하던 겨울비가 상큼하게 걷히고 맑고 밝은 햇살이 온 산천을 어루만져 주심니다. 이 것도 남산의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시산제를 모신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송년산행이라니...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드니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려!
등산로는 낙엽에 덮여서 촉촉이 젖어 있어 산내음이 물씬풍겨 코끝을 간지러는데, 꼭 봄비가 온 것 같으다. 산행길 옆에는 간혹 한 두 군데 하얀 쌀을 한 줌씩 놓아 두었는데, 산새들의 먹이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여담을 나누면서 쉬엄 쉬엄 20여 분을 오르니 ‘제1전망대바위’ 군락에 이른다. 도착하는 대로 단체촬영과 개인 촬영을 해 드리고는 서북방향의 방하리 와 산방리 일대를 바라보니 전망도 좋거니와 들판도 꽤 너른편이다.
주로 마을은 들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내륙인지 섬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곳 산방산 부근은 대륙으로 날아오르는 거대한 대붕(大鵬.거제도 전체모양)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성, 통영, 한산도와 인접해 있으며, 또 크고 작은 섬 60여 개로 이루어져 있다.

연하여 통영과 거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상관광지이면서 임진왜란 관련 유적지가 특히 많은 곳으로, 임란(壬亂) 전 후로 성터만 해도 아양동의 당산성, 옥포동의 옥포성, 일운면의 지세포성, 구조라성, 동부면의 가배량성, 노자산성, 탑포성, 다대포성, 거제면의 수정봉성, 둔덕면의 폐왕성터, 사등면의 사등성, 오량성, 영등포성, 장목면의 장목리성터, 농소리성터, 구영등성, 구율포성, 대금산성, 신현읍의 고현성 등이다.(거제도 안내문 참조)
출발 때만 해도 축 처지던 몸이 그 새 산기운(山氣運)을 받아서인지 온 몸이 상쾌하고 성성 합니다 그려! 늘 등산하는 날 만큼 즐겁고 신나게 살아야 하는디... 어째 사는 것이 그리 힘이드는지! “인자(仁者)는 요산(樂山)이요, 지자(智者)는 요수(樂水)라” 하지 않았는가! 산수(山水)에서 어짐과 지혜로움을 배워야 할 것이로다!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면서 30여 분을 올랐을까, 왼편 벼랑 끝에 거대한 바위아래는 “부처굴”이 있어 굴 내부에는 조그마한 ‘석불(石佛) 3기’가 모셔져 있고 그 앞에 과일 한접시와 복전으로 지페 몇장이 보인다.
안내문에 이곳은 ‘부처굴 또는 삼신굴’이라 부르고 있으며, 신라시대 때부터 굴 아래에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원래 “삼존석조좌불(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있었으나 해방후 도난 및 훼손되어 오늘날은 간간히 찾는 신도와 박쥐만이 서식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오를 때 길 섶에 두 세군데 놓여진 쌀이 ‘삼신굴’의 공양물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알 듯 모를 듯... 다시 10여 분을 더 오르니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작은 봉우리가 8개로 나란히 구분되어 있어 거제 “팔봉산”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그럭저럭 정상에 도착하여 모두들 차례차례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모처럼만에 최연식님에게 부탁하여 필자도 한 컷 찍습니다. 오늘도 김해진님, 황까페지기님 두 분은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으시고 오늘따라 “남산산악회”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또 정상 바로 10여 미터 아래에 “오색토(五色土)”라는 안내문에 三峯 정상부의 분지에는 봄철 中國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수억년 쌓여서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희고, 검은 색깔의 흙층이 형성되었다 하며, 이곳은 천하 대명지로 알려져 보름달 밤에 암매장을 하면 그 후손은 발복하나 대한가뭄이 든다하여 매장을 금했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공적으로 쌓은 돌축대가 약간 보이고 삼면(三面)이 바위로 막혀서 山中에 특별히 따뜻한 곳이라 여겨지며, 비교적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이 잘 갖춰져 있어 길지(吉地)라 하겠습니다.
시계도 12시를 조금 지나고 있어 시장끼도 느껴져서 바로 이웃하여 전망대(展望臺)에 모두들 모여 앉아 점심을 드심니다. 동지(冬至) 전 후의 날씨가 어찌나 고요하고 따뜻한지 꼭 4월의 봄날씨 같으다.
오늘은 무술년(단기 4351년, 서기 2018년) 송년산행인데다 옛 남산창설요원들도 다수 참석하여서, 23년(1996년 창설)의 역사에 얽힌 옛 얘기들을 나누면서 드시니 반찬이 더욱 푸짐하게 느껴짐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속에서 고인(故人)되신 분들도 여러분 계시고, 또 오고 간 인사(人士)들은 얼마나 많으신지... 힘들고 괴로운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 세상 잘 살아왔는기라!
모든회원님들이 이렇게 한자리에서 식사하기도 퍽이나 드문일이라, 더구나 날씨까지 아주 포근하여서 점심중간에 두 세 컷 찍습니다. 점심 후 잠시 동남방향을 바라보니 저만큼 은빛바다와 섬들이 올망졸망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는데... 아름다운 거제에는 오고 간 문사(文士)들도 많아서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1908~1967)선생이 바로 산아래 방하리 고향에 잠들어 계시니, 이고장 명성이 천하에 자자합니다.
통영에서 한의사였던 유준수 8남매중 차남으로 출생하여 첫 청마시초(靑馬詩抄)가 나온 것이 1939년이며, 1940년 북만주로 떠났다가 1945년 6월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해 가을부터 1년간 ‘통영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면서 유치환(38세의 유부남)은 29세의 미망인(어린딸과 함께사는) 이영도(가정과선생)를 사모(思慕)하여 5천여 통의 편지를 통영우체국에서 매일 부쳤다.
그 중 한 시가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후 1954년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경주 중. 고등학교, 경주여중. 고, 대구여고, 경남여고 등의 교장을 차례로 지냈으며 1967년 2월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시에 귀갓길에 교통사고로 타계하였다. 청마(靑馬)는 생명파 시인으로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남성적 어조의 시풍을 지닌 시인으로 깃발, 생명의 서, 행복 등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겼다.
유치환 사후(死後)에 이영도는 5천여 통의 편지중에서 골라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수익금 전부를 사회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청마시집 참조)
연하여 박경리(1926~2008)는 통영시 충렬 1길 76-38에서 출생하여 1946년 김행도씨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나 곧 남편과 사별하고 대하소설 “토지”의 작품을 비롯하여 “약국의 딸들”, “버리고 갈 것들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 다수를 발표하여 이 고장을 빛낸 인물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장목면 외포리에는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생가가 있어 대한민국 역사에 찬란히 빛나고 있으니... 어찌 필설(筆舌)로 다 말하리요!

하산길은 100여 미터 정도의 나무계단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하고 평탄해서 진행이 한결 수월하여 30여 분만에 ‘임도사거리’ 갈림 길까지 내려왔다. 이정표에 죽전마을(2,2Km), 하죽전(0,75Km)라 돼 있어 판단 잘못으로 짧은거리 하죽전으로 간다는 것이 되려 도는길이 되었다.

하죽전마을에 도착하여 산고개(20분정도)를 넘으면 방하리 “청마문학기념관”을 답사할 수 있는데, 모두들 고단하다 하여 더는 진행을 못하고 버스로 귀가하여서 아쉬움이 하늘만큼 큼니다 그려!
무술년 한 해가 저물어서 노을에 찬란한데
방하리에 靑馬는 허무(虛無)를 사랑했구려!
오고 가는 인생사가 한바탕 꿈인 것을
꿈속의 남산님들이시여 여여(如如)하소서!
단기 4351년(서기 2018년) 12월 23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 산방산(507,2m)을 가다.
첫댓글 산방산 정상에서 점심은 커다란 추억이 될 것이며
역사가 많은 곳을 알게 되여서 감사 합니다.
남산이 여기까지 발전 할수 있는 근원이 산행 후기라 생각이 듬니다.
또한 임원진님들이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번창한 산악회라고 자랑하고 싶어요.
2018년도 지나고 2019(己亥年)에도 福 많이 받으세요.
황까페지기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항상 격려와 보잘것 없는 후기를 감상해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40여 년이 넘는 긴 세월속에서 변함없는 우정을 베풀어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제 무술년도 저물어 갑니다.
다가오는 기해신년에도 더욱 강녕하시고 가내 만복을 기원합니다.
두분고문님께서 숨은노력에 늘 고맙게생각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벽송회장님 지난 2년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해 오셨슴에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다가오는 기해신년에도 다욱 강녕하시고 가내 만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