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선 웰빙이다, 슬로 푸드다 하면서 삶의 가치와 여유에 큰 비중을 두고 사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추켜세우며 각종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고, 또 한 편에선 성공하기 위해선 전략적으로 살아야 한다며 ‘아침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야행성 생활은 현대 사회가 유발한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라는 무시무시한 구호를 내걸고선 소중한 아침잠까지 빼앗아가며 ‘능력 개발’을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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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웰빙하게 산답시고 유기농 야채만 파는 고급 식료품점에 들러 샐러드거리를 사고, 손수 드레싱을 만드는 수고를 하는 것이 그저 고통일 뿐인 ‘나’는, 아침형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면 저녁형 인간이라도 되라며 무거운 발을 저녁 아홉 시의 영어 학원으로 내모는 회사의 만행이 그저 지긋지긋할 뿐인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흘러갈 수 없는 자신을 한심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여기 우리를 구제해줄 새로운 명제 ‘대충형 인간’이 있으니! 다소 즉흥적인 인간이라는 의미인 ‘대충형 인간’의 인기는 일본의 요리 전문가 오시조노 토시코가 쓴 ‘대충형 인간의 요리 기술’이라는 책에서 비롯됐다. |
2002년 ‘3분 요리 챔피언 선수권’에서 우승한 오시조노는, 토마토를 삶아 으깨는 대신 냄비에서 직접 토마토를 갈아버린다거나, 새우를 기름에 튀기는 대신 마요네즈와 밀가루에 버무려 오븐 토스터로 구워내는 등의 파격적인 조리법으로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는 이런 요리를 ‘스피드 요리’로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도 본질은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요리에는 일곱 개의 원칙이 있다.
1. 기분에 솔직하다. 2 과정을 생략해 맛있어진다. 3 도구는 하나만 사용한다. 4 그날 다 먹는다. 5 몸에 좋아야 한다. 6 요리의 기본 관념을 버린다. 7 왕성한 실험 정신을 발휘하고 즐거워한다.
하나하나 까다롭게 엄선해낸 ‘미식가의 요리’는 아니지만, 요리하는 사람도 즐겁고 맛보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측면에서 사랑받았던 ‘대충형 인간의 요리 기술’은 일본어로 ‘즈보라 닌겐(ずぼら人間)-대충형 인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그 세력(?)을 넓혀, 마침내 한국에 상륙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활 습관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발상은 어찌 보면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결국 잠을 덜 자고 일을 더 하며, 그 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계획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경제가 세계화된 요즘, 증권 투자로 돈을 벌려면 한국 증시뿐아니라 밤에는 뉴욕 시장의 동향까지 살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 각광받는 인간형은 시차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를 누비는 ‘24시간형 인간’일지도 모른다.(생각해보니 이미 24시간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멀티형 인간론’이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비보’를 접한 바 있다). 아침형 인간 세 번만 되려 했다간 초상 치르겠다는 농담이 그저 농담만은 아닌 듯싶다. 이대로라면 아침 일찍이 아니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설쳐도 죄절감만 커질 뿐이다. 차라리 피곤하고 지친 몸, 보란 듯이 개기며 실컷 자버리고 한참 뒤에 개운하게 일어나 새로운 자신만의 삶을 시작하는 ‘대충형 인간’이 되는 편이 낫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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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형 인간’으로 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늘상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고삐를 늦추고, 한 템포 천천히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고쳐지지 않는 습관에 짜증을 낼 것이 아니라, 엉성하고 황당해 보이지만 그 점을 이용해 뜻밖의 행복을 창출해내는 거다.
지갑에 있는 돈은 다 써버리는 게 습관인 연봉 2백80만 엔의 독신 남성은 가진 돈을 5백 엔짜리 동전으로 환전해 하나씩만 들고 다닌다.
동전을 많이 들고 다니면 무겁고 귀찮다는 것. 이렇게 해서 그는 1년에 1백50만 엔을 저금하는 데 성공했다. 계산에 꼼꼼하지 않은 한 독신 여성은 급여 통장과는 따로 공과금과 세금을 자동 납부하는 통장을 만들었다. 통장에 매달 2만 엔씩 넉넉하게 넣어두었다가 월 평균 9천 엔씩 빠져나가면 그대로 둔다. 그녀는 남은 잔돈이 고스란히 쌓이는 ‘잊어버린 저축’으로 해외여행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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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한테 돈을 빌려주곤 잊고 있다가 갑자기 돌려받을 때의 기분과 흡사하다. ‘횡재했다’는 기분이 들지만, 사실은 본래부터 내 몫이었던 것. 굳이 따지자면 ‘쌤쌤’인 셈이지만 그런 것까지 따져가며 골치 아프게 머리를 굴리기엔 제법 짭짤한 행복의 조미료이기에 ‘대충형 인간으로 살기’는 행복하다.
전략적으로, 바쁘게 살기에 지친 당신이라면, 오늘 하루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발길이 닿는 대로 길을 걷다가 주머니에 든 돈을 모두 털어 군것질도 하고, 영어 강좌를 들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나 다리를 쭉 뻗고 긴긴 잠을 청해보자. 큰 대, 거느릴 총. 大總. 대충의 본딧말인 ‘대총’의 뜻 그대로 ‘크게 거느리기’ 위해선 ‘대충 살기’가 대세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
ⓒMarie claire 글 |김명진 |
첫댓글 어떻게 사는가는 자기 선택의 몫이죠...^^
대충 살기에는 너무나도 조급한 세상 ㅜㅜ 이런세상을 떠나고 싶은것이 모든이들의 소망이 아닐까요?
생각하기 나름이져... 남들하고 똑같이 할려니 바쁘지... 조금 천천히 가겠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살수있지 않겠어여...물론 그게 쉽진 않지만....^^
귀차니스트....tv에서 봤는데 참 할말이 없더군요....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저래 살수 있다는게 부럽기도 하고 *^^* 과학이 더욱 발달할수록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더욱 많아 질것이며 이런 귀차니스트(대충살기 인간)는 더욱 활기를 띠겠죠?? 참 잼있는 세상에 태어난것 같아요~죽지 않은 카리스마가 되야지^^
나도 한 칼하는데...ㅋㅋㅋ
오릿만에 속이 후련한 말씀. 아침형, 저녁형, 나같은 야밤형, 이제 대충형. 역시, 삶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교수님 감사해요. 특히 오늘은 스승의 날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