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구부(齊人求富)
제나라 제(齊)), 사람 인(人), ‘제인’이라함은 ‘제나라 사람’을 말하고, 구할 구(求), 넉넉할 부(富), ‘구부’ 라함은 ‘부유함을 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인구부” 라함은 “제나라 사람들이 부유함를 구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아첨하고 비굴하게 부귀를 구하는 방법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제인구부(齊人求富)는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2,500여년전,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땅에 처(妻)와 첩(妾)을 데리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외출했다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은 후에 집에 오곤했다. 그의 처가 누구와 같이 마시고 먹었느냐고 물으면, 남편은 모두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이름만 대었다.
그 처가 첩에게 말하기를 “남편이 외출했다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드신 후 돌아오시는데,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 보면, 모두가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이름만 대네. 그런데 그런 유명한 사람들이 우리집에 온 적이 없으니 내가 남편이 가는 곳을 몰래 알아보려고 하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처는 일찍 일어나 남편이 가는 곳을 몰래 뒤따라 갔다. 도성안의 어디를 돌아다녀도, 누구하나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결국 동쪽 성곽의 무덤들 사이에서 제사지내는 사람들에게로 가더니, 제사지내고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는, 그것으로 부족해 다시 두리번 거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실컷 배불리 먹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처가 집에 돌아와 첩에게 말하기를 “원래 남편이란 우러러 보면서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데, 지금 우리들 남편은 이 모양일세”라고 하고서 첩과 더불어 마당 한 가운데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런데도 남편되는 사내는 아무것도 모른채, 의기양양하게 밖에서 돌아와 처첩에게 거드름 피우며 으시대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맹자는 이러한 예(例)를 통하여, 당시 권력의 주위에 빌붙어서 부귀를 추구하던 이들을 비판했다. 그 당시 으리으리한 집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부귀를 자랑하던 이들을 향해 과연 그들이 그러한 부귀를 얻은 방법이 정당했는가를 묻고있다. 맹자가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굴한 웃음으로 구걸해서 배를 채우고서 배부르다고 으시대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맹자는 “ 어깨를 치켜올려 아첨하며 웃는 것은 여름날 땡볕에 밭일을 하는 것 보다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내가 어떻게 지조를 굽혀가며 제후를 따를 수 있겠느냐 ?”고 하면서, “올바른 벙법을 따르지 않고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은, 처녀와 총각이 담구멍을 뚫고 서로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이 비열하다”고 비판했다.
맹자보다 100년 앞서, 공자가 “옳지못한 부귀공명은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라고 한 말과 궤를 같이한다.
무릇 사람답게 살아야한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대장부답게 살아야한다. 맹자는 대장부 다우려면 ① 부귀에 흔들리지 말아야하고(富貴不能淫:부귀불능음), ② 빈천도 그의 지조를 바꾸지 못하며(貧賤不能移:빈천불능이), ③ 위세와 무력도 그의 뜻을 꺽지 못한다(威武不能屈:위무불능굴)고 갈파했다.
공동묘자에 가서 남의 제사지내고 남은 음식을 구걸해서 먹는 모습, 맹자가 보기에는 그 당시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출세하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짓거리가 공동묘지에 가서 걸식하는 자와 같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당(黨) 저 당(黨) 기웃거리면서, 출세하려고 권력자나 유력인사들에게 빌붙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비굴하기는 공동묘지에서 남의 제사음식을 걸식하는 제인구부(齊人求富)와 진배없다고 할 것이다. (2023.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