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농촌마을에서는 콩을 심지 않는 집이 거의 없다.
시골소년의 집에서도 예외 없이 콩을 심었다. 봄에는 새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밭을 지키고 여름에는 북주기를 하면서 잡초를 뽑고 가을이 오면 소먹이로 쓰기 위해 누런 잎을 따서 말렸다.
거두어들인 콩은 마당에서 도리깨질로 타작을 하여 정성스럽게 말렸다. 콩은 두부, 된장, 간장, 콩나물이 되어 매일매일 시골소년의 반찬이 되었고 어머니의 부엌과 장독대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우리가 먹는 곡식 중에서 유일하게 원산지가 한반도인 것이 콩이다.
약 3000년 전부터 콩을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고기와 우유의 대용식품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고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작물 중 하나가 되었다.
콩은 8C 무렵 한반도에서 일본을 거쳐 18C에는 유럽으로 19C에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18C 일본에 도착한 네덜란드 선교사는 간장(일본명 쇼유)을 식물 이름으로 착각해 유럽으로 보내면서 ‘쇼유’ 혹은 ‘소야’라고 했는데 영문이름이 ‘soybean’ ‘soyabean’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쌀, 보리, 조, 기장, 콩을 오곡이라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쌀, 보리, 콩, 수수, 피를 인도에서는 쌀, 보리, 밀, 콩, 깨를 포함시킨 것을 보면 아시아전역에서 콩이 중요한 작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콩이 임금의 하사품과 흉년구제에 쓰인 기록이 2000여회 이상 등장하고 일본과의 무역품목에도 있으니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콩의 원산지답게 일상의 문화가 스며있는 세시풍속은 물론 수많은 속담과 ‘콩쥐팥쥐’와 같은 이야기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다시는 옥살이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두부를 먹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약간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을 뜻하는 ‘숙맥’은 ‘숙맥불변’에서 나온 말로 ‘콩인지 보리인지 가릴 줄 모른다.’는 뜻이다.
보잘 것 없는 반찬을 먹지만 욕심 없이 검소하고 마음 편히 사는 복을 일컬어 ‘여곽지복’이라고 하는데 명아주 잎과 콩잎을 먹는 복이라는 뜻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숙주를 선호하지만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콩나물을 좋아하고 있다. 콩의 싹을 자라게 한 것이 콩나물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어디든지 있어서 대표적인 서민 식재료이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겨울철의 귀중한 비타민 공급 채소로 애용되어 왔으며 특히 숙취해소에 도움을 주는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어 해장국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8,000여종 이상의 재래종과 야생종 콩의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선비잡이콩, 한아가리콩, 부채콩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콩들도 있다.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5,496종의 재래종 콩을 수집해 갔고 이중 3,200종의 콩이 일리노이대학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간 5,730점의 작물 중에서 대부분이 콩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콩을 생산하는 미국이 과거 ‘동양 식물탐험 원정대’를 조직하여 유전자원을 수집해 갔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콩은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3대 영양소중 가장 중요한 단백질 함량이 40%, 탄수화물이 30%, 지방을 20% 함유하고 있다.
어느 작물보다도 영양가가 많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리 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능성물질 중 이소플라본은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 갱년기 여성에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질병의 예방에 효능이 있다.
매년 30만톤 정도의 콩이 수입되어 두부와 기름, 장류, 콩나물로 만들어 진다. 콩의 가공품을 만들기 위한 국산 콩의 사용비율은 5% 정도로 미미하다. 식용 콩의 자급률 또한 30% 정도이다. 값싼 수입 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부터 농업과학자들은 식물의 유전자 암호를 분석하기 시작하여 식물의 유전적 구조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유전자조작 또는 GMO으로 불리는 기술로 식물의 유전자를 다른 식물의 체내로 옮길 수 있었다. 1980년대에 번식과 개량을 거쳐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콩의 80% 이상이 GMO 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재배되지 않고 있다. GMO 작물은 육종기술로서는 현재까지는 최상위 기술이다.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됐든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미래를 위해 첨단기술 확보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022년 우리나라 콩 생산량은 13만 톤 정도이다. 최근 10년간 생산량이 계속 감소추세에 있다. 불과 40년 전 생산량의 50% 수준이다. 반면에 식용 콩 수입량은 27만 톤이나 되었다. 콩 자급률은 6%이고 사료용을 제외 하더라도 23%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에서 식용으로 먹는 콩조차도 수입해서 먹는 시대가 되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콩은 씨앗은 물론 잎, 줄기까지 모두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뿌리까지 공기 중의 질소성분을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다른 작물의 성장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몸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콩은 오곡 중 하나인데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곡식이 사람을 살리는 것을 주로 한다면 콩의 힘이 가장 크다. 후세 사람들 가운데 잘사는 사람은 적고 가난한 사람은 많다. 가난한 백성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콩 뿐이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많이 주고 있는 콩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 ?
너무 쉽고 편하게 먹거리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