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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가 특기인 만큼, 처음에는 옷이며, 이불, 복주머니, 베겟모 등 다양한 자수를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범위가 너무 넓어 한 가지에 전념하겠다고 생각하고 보자기에 매달리기 시작한 그녀는 올해 26년을 맞았습니다. 일찍이 열아홉살 그녀의 여문 손끝을 알아본 이는 조선시대 궁중 수방 나인에게 정통을 계승한 윤정식 선생님입니다. 선생에게 수를 배우러 다니던 어머니가 두 사람 인연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입니다. 어느 날, 심심풀이로 그녀가 놓은 수를 우연히 본 선생이 데리고 앉아 가르치겠다고 욕심을 낸 것입니다. 그렇게 자수를 시작했지만, 그다지 녹록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한번 바늘을 잡으면 앉은 자세 그대로 몇 날, 며칠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고 그러다 보니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고 한쪽 팔이며 목이 뻣뻣해져 운신 못할 정도로 고통도 당했습니다.
마흔이 되던 86년부터 보자기에 집중한 선생은 92년에는 보자기로 한국전승공예대전에서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보자기는 수보도 있고 조각보도 있어서 자수를 잘해야 합니다. 그가 94년에 한국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작품은 바로 이 수보와 조각보를 결합한 '화문수(花紋繡)조각보'였습니다. 가로 세로 4.5센티짜리 청 백 비단 조각 128장을 이은 뒤 그 위에 화병을 수놓은 작품으로 조각천을 이은 솜씨가 하도 정교해서 마치 그렇게 짠 천 같습니다. 이런 솜씨는 김현희 선생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역시 조각보로. 크기가 다른 조각을 적게는 수 십장, 많게는 수 백장을 연결하는 조각보는 구성력이 탁월해야 가능 합니다. 작가는 이제 즉석에서 천 조각을 잘라 이어도 좋은 구성이 될 정도로 능숙합니다.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서 염색부터 직접 하는데, 천연염색으로도 모든 색깔이 다 나옵니다. 천을 염색하고는 잘라서 이을 때는 이때 지키는 원칙은 같은 종류의 천끼리, 그리고 세가지 색깔과 그 계열색 안에서 정리하는 것이 선생의 노하우입니다
1997년이 되어서야 우여곡절 끝에 자수명장으로 지정된 김현희 선생의 보자기는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느껴지는 창작 보자기 작품이 또한 눈에 띕니다. 김현희 선생의 창작 작품에서는 선과 면의 분활, 직선의 멋, 컬러의 조합 등이 특히 돋보입니다. 그녀의 다양한 보자기 작품을 보다 보면 클래식한 전통 보자기뿐 아니라 모던하고 세련된 것도 꽤 많이 눈에 띄는데 이 작품이 모두 그녀의 창작 작품입니다. 컬러의 조합, 면 분할과 섬세한 선의 표현 등 선생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각적입니다. 초기 작품은 조각도 많이 내고 화려하게 장식도 많이 했는데 서서히 절제미를 깨닫게 되면서 더욱 멋스러운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현희 선생은 국내도 국내지만, 그녀의 이름은 사실 일본을 비롯한 미국이나 독일, 캐나다, 스위스 같은 외국 퀼트계에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한 미 대사부인으로 한국문화를 미국에 소개하는데 힘써 온리 슈나이더씨가 구매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하버드대 박물관, 시애틀박물관에도 소장돼 있습니다. ● 특히 일본에서는 지난 1995년 첫 전시회를 선보인 이래 여러 차례 그룹전과 개인전을 가지면서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 번진 한국의 조각보 붐에 불을 당기기도 했습니다. 1999년 일본에서 낸 그녀의 작품집은 무려 1만부가 팔려나가는 경이적인 사건을 기록했고, 현재 그곳 고등학교 가사 교과서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을 만큼 그녀의 조각보는 탄탄한 작품성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양과는 정서가 다른 서양에서도 그녀의 여문 손끝에서 생명을 얻는 조각보에 혀를 내두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수 차례 전시를 하고, 책을 출간하면서 선생의 작품이 많이 알려졌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라 한편으로 아쉬움도 컸습니다. 정작 알아야 할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본인들이 훨씬 보자기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일본 황실의 공식적인 초대를 받을 정도로 일본에서 더 큰 관심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보자기를 좀더 많이 알리고, 우리 것을 세계화시키겠다는 더 큰 꿈을 품는 계기가 됩니다.
단지 김현희 작가 스스로의 작품을 더 많이 알리겠다는 의미가 아닌, 보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널리 퍼트리겠다는 의미로 강단에 서기도 하고 보자기 만드는 법에 관한 자세한 책을 펴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1000명이 족히 넘습니다. 현재 배우고 있는 사람도 100명이 넘고,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부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등에서 강의를 일주일에 시간도 넘게 진행합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김현희 제자'라고만 해도 알아준다고 합니다. 김씨는 얼마 전부터 보자기 강의만으로 생활이 가능하자 아예 작품을 팔지도 않고 조각보 위에 추상적인 수를 놓아 조각천이 아니면서 조각천 효과를 내는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 김현희 선생의 일생의 꿈과 희망이 담긴 '복을 수놓다'-자수명장 김현희전. 귀주머니, 복주머니,수저집을 비롯 병풍과 흉배 등 선생의 초기 자수작품부터 보자기에 천착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이 재현된 수보와 현대 추상화처럼 보이는 추상수보, 조각보 등 약 50여 점이 등장하여 선생의 보자기 인생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귀중한 전시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같은 기간 에비뉴엘 전 층에서는 작가의 정신과 기법을 이어받은 제자 15명이 함께 전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 롯데갤러리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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