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인상 후 정기권 도입, 조삼모사에 가깝다
장거리 이용자 불이익, 버스사업자와 교통공사 비대칭성 개선해야
서울시가 무제한 정기권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24%에 달하는 요금인상을 단행한 서울시는 시민소통 부재와 더불어 서민들에게 물가부담을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우고 있는 서울시가, 노인무임수송을 이유로 요금을 인상하는 것에 대해 약자와의 동행 부담을 대중교통 이용자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이냐는 논란이 있었다. 더해 서울시를 제외하고 다른 지하철 운영 지자체는 자체적인 재정지원을 해왔으나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에 대한 지원이 없는 상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책임분담의 측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기권의 도입은 요금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달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이번 발표가 가진 한계 역시 명확하다.
첫째, 역시 이번에도 깜짝 발표식으로 정책을 도입한다. 교통요금을 인상할 때도 시민들의 부담 수준과 요금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던 서울시는, 이번 정책도 개방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서울시가 말하는 연간 1만 3천 대 가량의 승용차 이용자가 감소하고 50만 명이 1인당 연간 34만 원 이상의 할인 혜택을 볼 것이라는 근거가 없다. 이를 통해 대중교통수송분담률 목표를 높인다는 선언적인 선언 외에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된 정책지표는 확인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서울시가 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기권 도입을 단기적 대책으로 하는 종합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말하는 독일도 단지 49유로 티켓만 발행한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에 대한 전략이 병행한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시민참여의 방식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맞다.
둘째, 민영제 형태의 버스체계와 공영제 형태의 지하철 간에 불균형 문제다. 노인무임수송의 부담은 버스가 아니라 지하철의 부담이었다. 서울시는 민간사업자의 버스에 대해서는 환승에 따른 보조금도 지급했지만 지하철에 대해서는 노인무임수송비용뿐만 아니라 환승비용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기권을 도입한 이유의 요금수입 결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만약 버스사업자에게 정기권 도입에 따른 차액을 지원한다면, 요금인상에 따른 요금 수입 외에 정기권 도입에 따른 요금 보조를 추가로 받게 된다. 이미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버스에 대한 보조금만 늘어나는 꼴이다.
셋째, 이용대상이 서울 시내 승차자로 한정된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경기도와 인천시 간에 협의를 진행하고 했지만 결국은 불발되었다. 그래서 기본요금이 다른 타 지자체 면허 버스나 서울시 외에서 승차한 지하철 이용자는 정기권 대상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교통비의 부담은 대부분 시계 외 출·퇴근자에게 발생한다. 더구나 서울시의 요금인상은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정작 정기권 혜택은 행정구역을 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결국 오세훈 시장이 요금인상 시기에도 그러더니 이번 정기권 발표에도 일방적으로 서두른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당연히 대선 욕심 등 개인의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가능하다.
넷째, 시민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의 정기권 도입을 이야기해왔다. 그 점에서 이번 발표는 서울시의 독창성보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끝내 관철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기권 도입과 동시에 버스 운영체계로서 준공영제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역시 요구해왔다. 외국과 다르게 한국의 대중교통 체계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버스사업은 민간사업자의 수익모델로 전락했다. 서울시가 주장하는 버스사업의 적자는 코로나19 시기에도 배당을 하고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모펀드가 횡행하는 버스사업의 현실에 비춰보면 ‘과연 타당한 적자인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운영체계의 개편을 전제로 하지 않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버스사업자들에게 최대의 편익을 제공하는, 기득권의 야합에 불과해진다. 선의로 감춰진 특수 집단의 사익 추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기권 도입과 함께 서울시가 밝혀야 하는 것은 현행 준공영제 체제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개별 업체와 노선별 보조금 지급 현황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과연 ‘어떤 서울시민들인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와 버스업체 간의 비대칭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과 더불어, 현행 준공영제 외에 교통공사를 통한 정책버스노선의 운영이라는 대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함께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교통 운동본부’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함께 정기권 이후 서울 대중교통 정책의 변화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다. 또한 이런 내용들이 오세훈 시장의 언론플레이를 통해서 깜짝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함께 발표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나갈 것이다. 이런 점들이 이번 정기권 도입이 ‘조삼모사’로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앞서는 불안감의 이유다.
2023년 9월 11일
공공교통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