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하기 ③
‘어안이 벙벙하다’를 생각해 본다
우리말 공부를 하다보면 아직도 뜻이라든가 어원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말도 그렇다. 아직도 시원한 답을 못 찾아 답답하다. 대체로 <어안이 벙벙하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사람이) 뜻밖에 놀랍거나 기막힌 일을 당하여 어리둥절하다.”
그리고 어안은
1. 어이없어 말을 못 하고 있는 혀 안.
2. 어안(魚眼) 물고기의 눈
3. 어안(魚雁) 물고기와 기러기라는 뜻으로, 편지나 통신을 이르는 말.
여기서 3뜻 어안은 주제와 관계 없는 것이므로 1뜻과 2뜻만 생각해보자. 먼저 어안을 ‘혀 안’이라고 했는데, 사실 ‘혀 안’이 벙벙하면 말하기 어렵다. 어안이 벙벙하다고 하면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어안’을 ‘혀 안’으로 보는 것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차라리 ‘혀 안이 벙벙하다’보다는 ‘입안이 벙벙하다’라면 어색하더라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데 그런 말은 없다. 고어사전에도 ‘혀’를 ‘어’라고 하는 데도 없고, ‘입’을 ‘어’라고 하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까 ‘혀 안이 벙벙거리는 것’이나 ‘입안이 벙벙거리는 것’은 알 맞는 표현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혀 안’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서완식은 ‘혀 안’을 말이 나오는 ‘목구멍과 혀 어름’이라고 한다. 어름은 두 사물의 끝이 맞닿은 자리, 물건과 물건 사이의 한가운데, 구역과 구역의 경계점, 사건과 장소 따위의 일정 테두리 안을 말한다. 그래서 ‘어안’ 이란 곳, ‘혀 안’은 구체적으로 ‘혀 안쪽’, ‘혀뿌리’를 말한다며 구체적으로 설명을 잘하였다. 그런데 꼭 혀와 말에 반응이 와서 말문이 막히는 것이 ‘어리벙벙하다’는 것, ‘어안 벙벙하다’에 대한 총체적이 현상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어서 ‘벙벙하다’는 어쩔 줄 몰라 아무 말 없이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리둥절하여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거나,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리둥절하거나, 뜻밖에 놀랍거나 기막힌 일을 당하여 어리둥절하고, 놀라거나 어리둥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멍한 모습을 말한다. ‘벙벙한 어안’은 순간적인 정신의 쇼크, 정신이 나간 상태이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어안’은 ‘얼빠지다’, ‘얼이 나가다’의 ‘얼’과 연관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안이 벙벙하다’나 '어리벙벙하다'는 모두 황당한 상황이거나 당황할 때,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어 나타나는 심리적이고 외양적인 모습이다. 뜻밖에 일을 당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거나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히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2번째 뜻인 “물고기의 눈(어안, 魚眼)과 연관시킨 것으로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떨떨할 때 물고기 눈처럼 크게 된다는 표현이다. AI 최신 답변을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은, 또는 흔들리는 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어안'이란 눈의 수정체인 수정체 안에 해당합니다. 수정체 안은 눈알 내부에 위치하며, 빛을 집중시켜 망막에 정확하게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해 수정체 안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불명확하거나 흔들린 이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은 시야가 불분명하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지식로그에서 인용).” 이러한 설명은 AI가 어안(魚眼) 풀이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AI의 설명이 현학적이고 억지춘양이라고 느껴진다. 왜냐면 이 말이 나타날 당시의 의학 수준을 벗어나는 고답적인 설명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어안’을 ‘혀 안’으로 보는 것은 어색하고, 물고기 눈(魚眼)처럼 되는 눈을 ‘어안’으로 보는 것은 더 무리인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어안을 달리 생각해 보고 싶다. 우리말에서 ‘어안’을 열심히 뒤지다보니 ‘언짢다’라는 단어에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 ‘언짢다’의 변화과정을 역순으로 생각하면 아래와 같다.
언짢다 << 언챦다 << 언치 않다 << 언하지(언이지) 아니하다 << 어언하지 아니하다 << 어안하지 아니하다
‘언짢다’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좋지 않다. 못 마땅하다. 내키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바로 속마음이나 느낌이 겉으로 나타난 것이다. ‘속마음’은 ‘속내’이다. 마음은 ‘속’, ‘얼(정신)’과 같은 것이다. ‘마음’을 ‘얼’로 바꾸면 ‘마음 속’은 ‘얼 속’, ‘속마음’은 ‘속얼(속알, 속알머리, 소갈머리)’이 된다. 마음속 깊은 곳은 ‘속 안(內)’이 되고, ‘속안’에서 ‘속’을 ‘얼’로 바꾸면 ‘얼안(內)’ 된다. 따라서 ‘얼안이 벙벙해지다’의 ‘얼’에서 ‘ㄹ’이 탈락하는 음변으로 ‘어안이 벙벙해지다’로 변한 것 같다. ‘어안’은 말, 표정, 하는 짓으로 나타나는 속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얼의 안(얼안)’이 ‘어안’으로 변하여 ‘얼안이 벙벙하다’ >> ‘어안이 벙벙하다’로 변하지 않았을까? 말로, 표정으로, 하는 짓으로 나타나는 ‘얼안이 벙벙하다’가 ‘어안이 벙벙하다’로 변하지 않았을까 살짝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이 부분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좋은 생각을 댓글로 보태주면 감사하겠습니다. (2023. 9.5)
(2023.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