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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가족사랑 주일 설교
제목 : 온 가족과 더불어!
본문 : 사도행전 10장 1~2절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새번역>
성경에는 하나님을 향한 멋진 믿음을 소유했기에 우리가 닮아가야 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믿음의 선배를 닮아가고 싶으십니까?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거의 늘 ‘갈렙’이나 ‘요나단’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주연을 할 자신은 없기에 여호수아를 도와주는 2인자로서의 갈렙, 다윗을 도와주는 2인자로서의 요나단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갈렙이나 요나단을 닮아가는 것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이 질문과 관련하여 한 가지 욕심이 생겼습니다. 만약 누군가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우리 아이들 입으로 듣고 싶은 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닮고 싶은 믿음의 선배가 아빠, 엄마, 부모님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듣기에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무던히도 노력하고,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은 너무도 영광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자녀로부터 인정받는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한 믿음의 선배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정통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국가의 사람이었습니다.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으로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다스리던 총독을 돕던 인물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닮을 점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 여러분에게 이 믿음의 선배를 소개합니다. 그는 바로, ‘고넬료’(코넬리우스)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식민지 국가였던 유대 백성에게 위협이 아닌 자선을 많이 베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라는 생각이 들만큼 너무도 쌩뚱 맞게 갑자기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분을 오늘 소개시켜 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에 대한 설명 가장 먼저 나오는 표현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사도행전 10장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10장 2절, 새번역>
이유를 발견하셨습니까? 바로 ‘온 가족과 더불어’입니다. 혼자서 믿음의 길을 걷던 사람이 아니라 온 가족과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이방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뿐만 아니라 그가 거느리고 있던 병사와도 더불어 함께 신앙생활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에게 말하던 천사가 떠났을 때에,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서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서,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다. <사도행전 10장 7~8절, 새번역>
그래서일까요? 하나님은 그에게 주목하셨고, 그 기도와 자선 행위를 받으시고, 그를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주의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게 됩니다.
사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지 당시 시대의 문화를 생각해 볼 때, 특히나 그의 출생과 직업 등을 생각할 때, 그는 정말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원지에서 태어나 ‘우상’에게 너무도 쉽게 노출 되어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대 백부장이라는 특성답게 그는 꽤나 거칠고 투박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전쟁을 나가느라 가정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존경을 받는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습니다. 특히 쿠테타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로마의 문화에서 자신의 종교마저도 강요하는 상관이 있다면 가만히 둘 수 있는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언제부터 믿었는지, 어떻게 믿었는지는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고넬료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혼자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믿는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도 마찬가지 행동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황제가 신이어야 했고, 황제가 하나님이고, 황제가 창조주이며, 황제에게만 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족 전체가 하나님을 황제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섬긴다는 것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위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가족과 함께 라는 것이 더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충분히 의로운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혹시라도 발각되고, 들통나더라도 자신만 죽으면 된다고 오히려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믿는 것을 선택합니다. 마치 당연히 그렇다는 듯 당시의 문화를 뛰어 넘은 것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그 믿음이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여호수아 25장 14절, 새번역>
마치 이 여호수아의 고백을 기억해 하나님께 올려 드린 사람처럼 그와 그의 집안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정말 멋진 선택이었고, 그 멋진 선택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도 좋은 일이지만, 사실 가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믿음이 생길 만한 일이 있어서 믿음을 가졌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들이 모태 신앙이라던가 아직 믿음의 경험이 없는 다른 가족들을 설득해서 같이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이해 가지 않은 행동을 할 때면 공격이 찾아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신앙인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비난이 나오게 되면 ‘함께’가 붕괴 될 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럴 때마다 ‘종교의 자유’가 등장하며 ‘그냥 각자 믿는 신을 믿자’라는 말이 나오면 더 이상 그 무엇도 못해 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 믿고, 혼자 다니고, 혼자가 마음 편하게 보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신경 쓸게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꿈이 바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응원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고넬료와의 만남을 허락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고넬료는 어떻게 가족을 넘어 병사들에게까지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사랑하는 부모님들,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믿음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축복하는 자녀 여러분,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부모님에게까지 흘러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3가지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첫 번째 답은 바로, ‘경건’입니다. 이것은 코람데오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10장 2절, 새번역>
‘온 가족과 더불어’ 라는 말보다 앞에 나온 유일한 말은 바로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경건’이라는 단어가 고넬료가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 큰 ‘힌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경건은 한국어기초사전을 통해 보면 ‘어떤 대상에 대해 공손하고 엄숙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경건을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엇인가 경건하다고 하면 무게감이 느껴지고, 목욕 재개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엄청나게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교회나 성당에 들어갔을 때의 그 숨 막히는 고요함에서 경건을 찾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경건해야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공손과 엄숙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건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은 결코 어떤 형태나 모양이나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2절에 등장하는 경건을 의미하는 헬라어 ‘유세베이아’는 ‘선하고 명예로운 시민 생활의 이상을 예증해 주는 덕목’을 뜻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좋은’ 이라는 뜻과 ‘존경하다’라는 뜻이 합쳐진 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넬료는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꾸준히 좋은 사람이 되고자 무던히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다른 이들을, 세상을, 자연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이 되어 갔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소유한 경건을 정리하자면, ‘신앙적 내면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외면을 모두 중시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신앙생활을 원하시는 분들, 모두 좋은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성경은 결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오히려 좋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새번역>
좋은 사람, 존경받는 사람을 저는 한 글자로 이렇게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은 따뜻한 사랑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들, 축복하는 자녀 여러분, 따뜻한 사랑을 소유함으로, 경건함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친절함이 필요합니다.
그에게 말하던 천사가 떠났을 때에,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서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서,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다. <사도행전 10장 7~8절, 새번역>
여기서 주목하는 고넬료의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입니다. 하인이었지만, 부하였지만, 고넬료는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이 아니라 오히려 부탁과 요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친절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천사가 한 말을 하인이나 부하가 믿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뜬금없이 욥바로 가서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라고 하는데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무두장이 시몬의 집은 또 어떻게 찾으란 말입니까? 그런데 이 모든 질문들을 뛰어 넘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고넬료가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정말 중요한 임무를 맡은 자처럼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도, 유교도 부모나 주인에게 자녀나 종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공동체였습니다.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며, 밀실담합이 이루어지기 일쑤였고, 속 터지는 일은 너무도 자주 일어났고, 비밀은 공공연한 뒷담화가 되어 돌아오곤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가족들과 공유해야 할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선에서 결정하고 독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중입니까?
저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부터 이 친절함을 몸에 품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해!’, ‘그냥 따라와!’, ‘시키는 대로 하지 뭐 그렇게 말이 많아?’ 가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은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는 시간을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너무도 부족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가끔 그 부족이 가족의 시간을 얼어붙게 만들었음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만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도 침묵의 시간을 깰 수 있어야 합니다. 깨 주셔야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굳어져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십자가 아래 던져 버리고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하기 위하여 태도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절한 대화, 친절한 설명, 비전의 공유, 가족 중대사의 공유 등 얼마든지 공유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한 대화가 봇물 터지듯 터지는 훗날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역시나 ‘경청’,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맙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3절, 새번역>
코람데오의 삶 중 가장 구체적으로 중요한 삶으로 나눈 ‘경청’이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야 하고, 동역자의 말도 들어야 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나누었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가족 모두에게, 타인에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바로 고넬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넬료의 경청이 ‘온 가족과 더불어’,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는 오늘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어떤 말을 할 지 고넬료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이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으로 듣고자 한 고넬료였기에 경청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간절하게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듯이, 부모님의 음성을, 자녀들의 음성을, 가족 서로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청하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리셨다. <사도행전 10장 44절, 새번역>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경청이 있을 때 ‘온 가족’에게 성령이 내리시는 경험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더불어’ 한 가지 놀라운 영적인 경험을 함께 하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주 안에서 하나 된 가족 여러분, 오늘 고넬료를 통하여 한 가지 소망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온 가족과 더불어’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 될 수 있도록 고넬료의 가정이 바로 우리의 가정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기도를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경건으로 시작하십시오. 가족에게로부터 먼저 좋은 사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따뜻한 사랑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친절함이 필요합니다. 타인에게 친절하기 이 전에 가장 먼저 당신의 친절이 빛나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에게 친절한 태도와 설명과 공유를 보여 주십시오. 자녀 여러분, 부모에게 친절하게 미소로 다가서 주십시오.
경청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먼저 들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듯이, 하나님 앞에 서 있듯이, 가족에게 먼저 귀를 기울여주는 경청의 귀를 소유하시는 부모와 자녀가 되어 주십시오.
초대교회에 많은 이들에게 힘과 본이 되었던 가정이 바로 이방인 군대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023년은 어떤 이의 가정일까요?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되길, ‘온 가족과 더불어’ 함께 신앙생활과 삶의 여정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결단찬양 - 믿음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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