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는
많은 여성들이 미용 기술을
배웠습니다.
6·25전쟁 후 남성의 부재를 메우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1950년대 초
한 미용학원 풍경입니다.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유엔군이 주둔하면서
패션의 풍속도가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1952년에는
짧은 머리에 웨이브를 넣는
‘푸들스타일’이 유행했고,
1954년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주연을 맡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헵번스타일’ 열풍이 불었습니다.
1950년대 서울
거리를 누비던
‘시발택시’를 아십니까?
최초의 국산 자동차 인 시발은
드럼통을 펴서 외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양은 군용 지프를 닮았고요.
이 자동차의 로고
‘시-바ㄹ’은 첫 출발을 의미하는
‘시발(始發)’이라는
한자어를 풀어쓰기 방식으로 표현한겁니다
1950년대 말 서울역 앞에서
어린 호객꾼이 “종로! 응암동!”을
외치고 있습니
1950년대 중반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 거리 모습입니다.
노면전차가 다니던 당시
차량 통행량은 매우 적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전차와 차량이 얽혀 다녀서
복잡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사진에서처럼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이 사진은
교통정리대회 행사 도중
경찰이 어린이들에게
교통정리 요령을 가르치고 있는 장면입니다
자석식 전화기를 사용하던
1950년대에는 통화를 연결해주는
교환원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번호를 교환원에게 알려주면
교환원이 교환대에 설치된 다이얼을 돌려
연결해주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그게
바로바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통화를 하려는 사람은 많고
설비는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골 집 부모님과 통화하려면
한 시간씩 기다리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사진 속의
치마 저고리 차림 여성 교환원은
지금 70~80대쯤 되셨을까요?
당시엔 대단한 직장이었답니다.
한국 여경(女警)은
지난 1946년에 처음 생겼습니다.
그해 7월 1일 경찰청의 전신인
미군정청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됐습니다.
처음에는 여경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100명을 뽑는 1차 모집에 60명 만
지원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에도
한강은 서울 시민들의
피서(避暑)지로 각광받았습니다.
당시 신문에는
“한강 백사장에서 뒹굴면서
동녘바다 명사십리를 그려보는 것도
바쁜 생활에 어울리는 피서법이다.
일요일을 맞아 더위를 피해
집을 나선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한강을 찾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사진은 시민들이
제1한강교(현 한강대교) 아래 백사장에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입니다.
서로 물을 튀기며 노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한 아주머니는
한복에 양산을 쓴 채 발만 물에 담그고 있네요.
1950년대
한국은행 정사과 직원들이
돈을 세고 있는 사진입니다.
‘정사원’들은 지폐를 권종별로 분류하고,
유통에 적당하지 않은 손상된 지폐를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는 일을 했었죠.
1958년 7월 3일
우리나라 첫 기내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한뉴스 171호는
‘공중결혼식’이라는 제목으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전하며
신랑과 신부를
‘우렁차게 들리는 프로펠러의 폭음을
웨딩마치로 삼아 끝없이 푸른 창공을 동경하며
백년가약을 맺은
한 쌍의 원앙’이라고 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