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절반은 척추 질환으로 착각
말초동맥 질환은 노화와 함께 동맥경화로 혈관이 좁아지고 혈액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질병이다. 대부분 다리의 말초동맥부터 문제가 생긴다.
- ▲ 오른쪽 다리에 말초동맥질환이 있는 환자의 혈관조영술 사진. 혈관 위쪽 일부분이 막혀있으며(점선 원), 동맥이 두 갈래로 갈라진 왼쪽 다리와 달리 오른쪽 동맥은 한 가닥이 완전히 막혀 보이지 않는다(타원 내부). /건양대병원 제공
현재 국내 60세 이상의 약 18%가 정도 차는 있지만 말초동맥 질환을 가지고 있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저리고 아픈 것이 주요 증상인데, 척추관협착증과 증상이 비슷해 헷갈리는 환자가 많다. 건양대병원 흉부외과 윤치순 교수는 "말초동맥 질환 환자의 절반가량은 척추 질환으로 착각해서 정형외과를 들렀다 온다"고 말했다.
말초동맥 질환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때도 다리에 통증이 계속되고 상처가 생겨도 잘 낫지 않으며, 결국 발이 썩는다.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이택연 교수는 "증상이 가벼우면 아스피린이나 혈관확장제 등을 써서 약물치료를 하며, 약물로 효과가 없으면 스텐트 시술이나 인조혈관을 붙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혈관이 100% 막혀 조직의 괴사가 일어난 상태라면 현재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어 환부를 절단해야 하므로 일찍 발견하는 것이 관건이다. 조직이 죽기 시작했으면 괴사 부위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약물치료 등을 한다.
◆다리 혈압이 팔 혈압보다 낮으면 의심해야
걸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함께 발목·무릎 등 다리의 혈압이 팔 혈압의 90%에 미치지 못하면 말초동맥 질환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일반인은 스스로 발목 등의 혈압을 정확하게 재기 어려우므로 가까운 병·의원에 가서 재는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은 기본 검사로 말초동맥 질환이 의심되면 혈관 초음파 검사, 혈관 단층 촬영, 혈관조영술과 같은 정밀 검사를 시행한다. 윤치순 교수는 "3차원 혈관 단층 촬영은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도 말초동맥이 막힌 곳과 폐쇄된 정도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워지면 더욱 걱정된다! 겨울철 말초동맥질환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은 동맥을 딱딱하게 해 심근경색과 ‘다리 동맥경화’라고 부르는 말초동맥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 대학병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말초동맥질환 환자는 2.5배 증가했다. 심근경색도 증가 추세로 얼마 전 OECD가 발표한 ‘국가간보건의료질’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급성심근경색증 환자의 30일 이내 사망률은 8.1%다. 자료를 제출한 20개국 중 가장 높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 말초동맥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자.
말초동맥질환 바로 알기
신모(66) 씨는 얼마 전 길을 걷다 다리에 심한 통증이 와서 갑자기 주저앉을 뻔했다. 젊을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것은 알았지만 허리 디스크나 당뇨병을 앓은 적은 없다. 병원에 갔더니 다리 말초혈관 동맥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주로 심장 관상동맥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진 동맥경화증이 팔·다리 등 말초혈관에 생기는 이유는 뭘까?
Chapter 말초동맥질환이란?
혈관에 피떡(혈전) 등이 달라붙어 혈액의 흐름을 막는 것은 ‘죽상경화증’이고, 혈관이 딱딱해지는 것은 ‘동맥경화증’이며 이들을 합쳐 ‘동맥질환’이라 한다. 동맥질환이 팔·다리 등에 생기면 말초동맥질환이라 부른다. 심장 관상동맥질환은 40대부터 많이 발생하는 반면 말초동맥질환은 60대부터 나타난다.
따라서 말초동맥질환이 있으면 관상동맥질환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장 관상동맥질환의 대표적인 원인은 콜레스테롤이지만, 말초동맥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흡연과 고혈압이다. 50세 이상 연령, 당뇨병, 과체중, 운동부족, 고지혈증, 심혈관 가족력 등은 말초동맥질환과 관련이 있는 요인이다.
말초동맥질환이 가벼울 때는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병이 진행되면서 오르막이나 계단 등을 오르는 것처럼 혈액공급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혈관이 좁아져 있기 때문에 충분한 혈액이 지나갈 수 없고, 결과적으로 혈액공급이 부족해져 증상이 나타난다. 흔한 증상은 오르막이나 계단을 오를 때 엉덩이, 허벅지 혹은 종아리 근육이 단단하게 땅기거나 근육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운동을 지속하면 증상이 심해지고 다리가 아파서 걷는 것을 쉬면 잠시 후 증세가 가라앉는다. 병이 더 진행되면 가만히 있어도 다리가 저리고 아프며, 상처가 잘 낫지 않거나 궤양이 발생할 수 있다. 궤양은 대개 작고, 가장자리가 둥글고, 주로 발가락 혹은 바깥쪽 복사뼈 근처에 생기며, 주변 다리의 피부는 얇고 광이 나는 경우가 많다. 다리나 발가락의 털이 빠지고 발톱이 두꺼워지거나 잘 부스러진다.
말초동맥질환은 방치하면 3~4명에 1명꼴로 말초동맥이 완전히 막힐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완치가 힘들어 다리를 절단하는 경우도 있다.
말초동맥질환, 겨울에 많다?
말초동맥질환은 날씨가 추워지는 9월부터 겨울까지 환자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민필기 교수팀이 2006~2008년 3년간 병원을 찾은 말초동맥질환자 1247명을 조사한 결과, 2006년 213명에서 2008년 10월 560명으로 2.5배가량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70대가 37%로 가장 많았으며, 60대 26%, 50대 15%, 80대 11%, 40대 7%, 30대 이하 5% 순이다. 월별로는 9.11월 환자 발생률이 11.2.11.5%로 환자 수가 적은 1·3·6월의 5.1.5.8%에 비해 두 배 가량 많다.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의 혈관이 오므라들고 혈압이 올라간다. 다리에 동맥경화가 심한 말초동맥질환자는 혈압이 많이 올라가면서 증상을 더욱 호소하게 된다.
손발이 차다? 말초동맥질환 의심
말초동맥질환으로 혈액 속의 산소와 각종 영양분이 손발의 근육과 세포까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손발이 저리고 차가워진다. 손발이 차갑고 저린 증상이 몹시 심하거나 손발 끝이 하얗게 변하면 말초동맥질환을 의심한다.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는 “손발이 차가운 것을 단순히 체질 문제나 나이가 들어 당연히 생기는 증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수족냉증은 만성 동맥경화의 하나인 말초동맥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의도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옥선명 교수는 “우리나라 수족냉증의 유병률은 약 12%다. 이 중 60~70%는 말초동맥질환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50세 이상에서 손발이 찬 수족냉증이 있다면 말초동맥질환을 의심하고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관리를 철저히 한다.
다른 병으로 혼동하기 쉽다
말초동맥질환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지만 다른 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증상은 다리가 저리거나 아픈 것인데 이런 증상이 생기는 질환은 수없이 많다. 당뇨병성 신경합병증, 관절염, 디스크, 섬유근육통증후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말초동맥질환과 혼동하기 쉬운 것이 당뇨병성 신경염이다. 당뇨병성 신경합병증은 주로 가만히 있을 때 통증이 심하므로 밤에 아픈 경우가 많다. 통증 부위는 양말이 닿는 부위에 집중되고, 대개 양쪽 발이 동시에 아프다.
반면 말초동맥질환은 걸을 때 한쪽 다리만 아픈 경우가 많다. 아픈 다리 피부색이 퍼렇거나, 창백해 보인다. 디스크나 관절염 등과 증상이 비슷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말초동맥질환을 다른 질병으로 오해해 방치하면 다리 혈관의 궤양이나 다리가 썩어들어 가는 괴저현상이 나타나 절단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한다. 허리나 관절에 이상이 없는데 다리저림이나 통증이 나타난다면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아 본다.
초기진단이 가장 중요
말초동맥질환은 일단 시작되면 나빠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므로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병 초기엔 자각증상이 거의 없지만 병이 진행돼 혈관이 심하게 막히면 염증이 생기고 썩어 들어가 해당부위를 절단하는 경우도 있다. 손보다 발이 심해, 발의 경우 초기에 치료하지 않고 염증이 생길 때까지 방치하면 10명 중 3~4명이 절단수술을 한다. 무엇보다 초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초동맥질환의 발목과 팔에서 잰 수축기 혈압을 비교해 진단한다.
발목의 수축기 혈압이 팔 수축기 혈압의 90% 미만이면 말초동맥질환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압이 떨어지는데, 하체에 비해 동맥경화증이 잘 오지 않는 상체를 기준으로 발목의 혈압을 비교하는 것이다. 더 자세한 진단을 위해 도플러초음파검사, 혈관조영검사, 컴퓨터단층촬영 등을 실시해 말초동맥질환과 동시에 어느 부위가 얼마나 심하게 좁아졌는지 확인한다. 족저부통증선별검사를 통해 말초동맥질환을 검사할 수도 있다. 특수한 종이가 깔린 기구에 맨발로 올라서면 온도측정을 통해 혈액순환에 장애가 없는지, 말초동맥혈관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약물치료, 혈관개통 시술 등 시행
말초동맥질환은 혈전용해제와 고혈압약 중 말초동맥혈관 확장 효과가 있는 약품을 처방한다. 은행나무잎 성분의 혈액순환개선제가 도움이 된다. 혈액순환이 개선되지 않으면 혈관 속으로 카테터를 넣고 풍선으로 좁아진 부분을 확장시키거나 금속 스텐트 등으로 원래의 혈관을 재개통시키는 치료를 한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개복이 필요없지만 비교적 짧은 부위에 치료했을 때 결과가 좋다. 광범위하게 말초동맥이 막힌 경우는 막힌 부위를 우회하는 인공혈관을 이식하는 수술로 막힌 혈관의 파열을 방지한다. 미국 <내과학회지>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저용량 아스피린은 말초동맥질환의 진행을 막으며, 재발과 합병증 발생 위험을 낮춘다.
말초동맥질환 있어도 운동해야
말초동맥질환이 있을 때 다리가 아프고 저리다는 이유로 운동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을 하면 막힌 혈관 주위로 작은 곁가지들이 커져서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한 번에 최소 30~45분, 1주일에 3~4회, 12주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걸으며, 피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육이 조금씩 적응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말초동맥질환이 발병하면 진행을 억제할 수 있도록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말초동맥질환 발병 위험이 2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고혈압·고지혈증·혈당 등을 관리하는 것이 말초동맥질환을 예방하고 진행을 늦추는 핵심 솔루션이다. 적절한 체중유지, 섬유소 섭취, 포화지방산 섭취의 제한 등도 도움이 된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 중에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흡연, 비만 등 말초동맥질환의 위험인자가 있는 50세 이상은 운동 시 다리저림이 생기는지 살펴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