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올린후 한 동안 올리지 않겠습니다. 좀 쉬려구요.
동갑내기
이성상
몇 달이 지난, 올 년초 인 것 같다. 가수활동을 하던 ‘이남이’씨가 죽었다는 뉴스를 봤다. 가끔 TV에서나 그의 모습을 봤을 뿐 이었고 최근엔 자주 보이지 않던, 항상 중절모를 쓰는 연예인으로만 알고 지냈고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 사람이다. 그냥 투박한 그의 인상과 풍기는 외모에서 상업적으로만 치닫는 가수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친근감이 가는 정도였다. 사인이 폐암이었고 나이가 나 보다 젊은 사람으로 봤는데 49년생 나랑 동갑이란다.
한 달 전에도 내가 30년 째 나가는 교회에서도 성도 한 사람이 새벽에 갑자기 심근경색이 와 구급차로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으나 손을 못 쓰고 운명한 이도 나랑 동갑이었다. 올해는 범띠라는데 소띠들이 맥을 못 추고 저 세상으로 많이 가는 해인가. 2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을 때도 안 돼 병원을 찾아 다시 해 보기도 했다. 한편으론 동갑내기들이 이제 죽기 시작 하는 때가 됐나보다 생각도 드니 왠지 긴장이 되기도 한다.
동갑내기, 이 말은 듣거나 불러만 봐도 왠지 친근감이 생기는 정겨운 우리말 인 것 같다. 같은 시기에 태어나서 동 시대를 살다가 비슷한 무렵에 다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 운명적인 또래가 되어 우리는 덜 외롭고 위안도 받으며 주어진 인생길을 간다. 우리는 6.25한국전쟁 바로 전 해에 태어나 눈 뜨자마자 전쟁 통이라 어느 동네 산천 길가에 내 팽개쳐 질 뻔 하기도 했었다. 각박했을 ‘엄니’ 등에 업혀 모진 피난살이하며 그래도 목숨 부지해 살아남은 게 우리 동갑네들이다. 전쟁후도 그 당시 빈농출신 우리 집 주변은 집집마다 살기가 어려워 논밭 정리하고 너도 나도 생경한 서울로 들 모여 들었었지. 아! 그때 초등학교, 중학생시절 사친회비 못 갖다 내 쫒겨 오기도 수차례,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고 즐겁던 추억만 남았다. 이젠 또래의 옛정을 찾아 초등동창 모임도 만들어 만나고 껴안고 부비기도 바쁜데 벌써들 노년의 모습이 되어서 ‘어디가 고장이고 수술해야 한다더라’ 소리를 듣는다. 그리곤 이젠 누가 죽었다 소리도 들으며 지내게 되었다.
나에겐 동갑내기 중 그래도 자주 만나고 형편도 비슷해서 자기 끼들을 발휘하며 살게 되는 악동 친구들이 서너 명 된다. 한 녀석은 같이 클 때는 몰랐는데 장가 갈 때부터 병원신세를 자주 지는 허약체질이다. 허리 디스크를 시작으로 관절로 또 안면 틱 장애라나 뭘 로 병원 입원 할 때마다 우리에게 알리고 불러 모은다. 또 한 번은 장이 안 좋은지 변이 일주일이 되어도 나오질 않더란다. 완화제를 써보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효과가 없어 병원에서도 실험대상이 되었다. 또 몰려가 이 녀석이 그 동안 병원 들락거린 회수로 봐서 이젠 죽는가보다 다 들 그렇게 생각까지도 했었다. 불쌍한 놈, 하필이면 거기가 막혀서 죽을 지경이라니... 그 집에서도 이젠 일 벌어지나 보다고 하늘에 맡기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13일 만에 조상의 은총인지 어떻게 잘 뚤려 아직도 멀쩡히 우리 곁에 끼여 있다. 이 집에선 지금도 ‘사람 좀 그만 놀래 키라’며 구박을 받고 지낸다는데 여전히 술도 잘 먹는다. 그의 별칭이 ‘종합병원’이 됐다. 이런 사람이 요새는 더 오래 산다고 자타가 떠들어 댄다. 온 몸을 다 손을 봐 놔서 더 이상 고장 날 데가 없다면서 이죽거린다.
또 한 녀석은 마누라한테 기를 못 펴고 사는 친구 있다. 무슨 결정을 할 때면 꼭 마누라 결재를 받아야 하는 참으로 화성인 같은 녀석이다. 어쩌면 집사람 말은 절대 잘 안 듣는 내가 별종인 줄 모르지만. 우리랑 모임을 가지다가도 와이프 전화 오면 일어나야 한다. 한번은 한밤중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밤11시가 넘었는데 와서 무슨 해명 좀 해 달라고. 차를 새로 샀는데 옆자리에 여자 머리카락이 마누라한테 발견이 되어 추궁을 저녁내 받았던 모양이다. 의리를 앞세워 은평구에서 일산까지 그 밤에 우리 집 ‘옆지기’ 까지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인사도 없고 나 까지 똑 같이 모는 바람에 홧 낌에 “당신 남편이기 전에 이 사람은 내 XX친구여 잘 데리고 지내지 않으면 가만 안 둘거야!” 고 외치고 나왔다.
그 뒤에 그 집 와이프 만나선 할 수 없이 “내가 잘못 했씀다. 이 놈 소유권이 사모님 앞으로 이미 넘어간 줄 몰라서 그만...” 했다. 그 뒤론 좀 조용했다지만 말인즉슨 ‘시끄러우니까 참는다’며 여전하다. 착한 건지 사모님이 심한 건지...
나는 그래도 오래전부터 집에 있는 ‘야구방망이’덕에 기를 펴고 대접(?)도 받고 산다는 걸 누차 얘기하고 교육을 시켜도 이 친구 별 무반응이다.
이렇게 이 동갑내기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놀래기도 하며 웃음도 주며 살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끼리 히히덕거리고 허세도 부리며 살지 모른다.
동갑내기들을 멀리서 찾아보면 또 많다. 성우 송도순씨도 동갑이요 탤런트 김창숙, 한진희, 임채무도 동갑내기다. 같은 시기에 태어나 다들 힘든 시기 어려움을 잘 헤치고 딛고 일어서 나 보단 휠씬 이름도 나고 각 분야에 중진으로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다. 동갑이기에 같은 소띠로써 박수를 보낸다면 그들도 좋아 할 것 같다.
정치에 뛰어든 문국현, 류근찬도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 잘 해줄 것을 빌어주고 싶다. 소띠라 말없이 일만 하고 주인에게 모든 것을 다 주는 우직한 황소처럼 국민을 바로 섬기는 일꾼들이길 바라기도 한다.
미국배우 ‘리차드 기어’도 동갑이다. 언젠가 학창시절 마냥 우쭐대고 다닐 때 후배 한 녀석이(여학생) ‘형은 리차드 기어 닮았어!’하는 아부 소리를 듣고 마냥 좋아 할 때도 있었다. 그 중 한 동기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네가 기어면 난 악셀레이터다’ 고 빈정거림에 김이 새서 많이 웃었고, 나를 자동차부품 취급하며 밥값은 노상 나 보고 내라던 그 뺀지리 동갑내기 녀석도 어디서 잘 사는지 보고 싶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지금까지 우리랑 동갑으로 알았는데 한 살이 위라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 서운했다. 마치 내가 황족에서 떠밀려 난 듯. 그 외 거론 못한 잘 사는 동갑내기 인사들 많을 것이다.
아무리 험하고 먼 길이라도 좋은 동반자가 있으면 그 길은 휠 씬 힘이 덜 들것 같다. 같이 머리를 맛 대면 바르게 갈 수 있고 아름다운 복된 길로 만들어 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 좋은 인생의 반려자가 되도록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도 주고 사랑도 나누는 먼 우리인생의 동갑내기이기를 바라고 싶다.
우리 동갑내기들 이제 나이 먹고 빛바래고 처져 보이는 너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 아닌가. 집이나 바깥에서 구박받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다. 아직은 가장으로서의 당당함과 사회적으론 작은 경험이라도 간직한 초보원로로써 대접도 받으면서 지낼 수 있기를...
2010년 4월 10일
첫댓글 이선생님은 저랑도 동갑내기입니다. 이선생님에게 동갑내기로 거론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 같습니다. 참 편안한 글 즐겼습니다.^^*
아 그러세요 .반갑네요. 지난번 뵐때 모습이 동안이시라 그런줄 몰랐습니다. 분당에 계시죠? 저는 원당에 있습니다.쓸데없이 애들처럼 동류의식만 찾는것 같네요. 항상 건필하세요.
'동갑내기' 듣거나 불러만 봐도 친근감이 생기는... . 참 재미있고 정겨운 글입니다. 동갑나기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올 것 같네요. 유명한 동갑나기들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네요. 글은 멋보다 맛있게 쓰야한다는 말 그대로 선생님의 맛있는 글 잘 봤습니다.
잘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유명한분들도 다른 년령대에 많이 계시겠죠. 그러나 같은 또래라면 왠지 좋아지는것 같아요.엄선배님은 저랑 다른 맑은분 같으세요.글도 그렇고요.
ㅎㅎ 이성상님의 글을 보면 순수하고 맑기가 어항처럼 투명한데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저는 스스로 진흙을 먹고 사는 붕어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