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작_김태웅
조선시대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 이(爾). 천민인 광대의 신분으로
연산이 이의 호칭으로 불렀던 인물,
공길에 초점을 맞추어
웃음과 놀이의 판을 그려낸 수작.
수상경력만으로도 작품의 무게를 알 수 있는
연극 <爾(이)>는 2000년 초연 이후, '한국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5 작품상', '한국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희곡상', '신인연기상',
'2001 한국평론가협회 선정 Best3',
'2001 동아 연극상 작품상',
'2001 동아 연극상 연기상' 등 굵직한
연극계의 상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 차례 무대에 올려졌다.
연극 <爾(이)>는 초연 5주년을 맞아 2005년 12월,
국립중앙 박물관 내의 극장 ‘용’에서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HOT ISSUE
<왕의 남자>에 주목하는 이유
1. 정통 사극의 힘!
: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정통사극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욕망에서 야기되는 화려한 비극을
보여주는 <왕의 남자>는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한 드라마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했던 실존인물은
‘연산’과 ‘녹수’.
<왕의 남자>는 이들을 그동안 정형화됐던 폭군,
요부로 그리지 않고
숨겨진 내면의 고독함과 아픔을 간직한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조선의 10대 왕 연산(재위기간 1494~1506년)은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난 후
1506년 병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 희대의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은 자기
손으로 성종의 후궁을 죽이고, 조모 인수대비를
구타하는 등 패악적인 행동으로 역사의 지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실록으로전해지는 위에서 열거한
연산의 행동을 자신의 생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의 후궁들에 대한 분노의 결과로 그리고 있다.
연산은 왕으로 즉위한 후 폐위된 생모의 신원을
모색하고자 하지만 중신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자신의 분노를 광대들을 이용해 표출한다.
그리고 왕을 내세워 권력을 휘둘렀던 요부로 알려진
연산의 애첩, 녹수는
<왕의 남자>에서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조정에서 갖은 멸시를 받았지만
왕에게 사랑 받기를 원했던 비운의 ‘여자’로 그려진다.
한편 이준기가 연기한 광대 ‘공길’은 연산군 일기
“공길 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 들
먹을 수가 있으랴”(60권 22장)’는 말을 하였다가
참형을 당했다”는 한 줄 기록에 의해 되살려진 캐릭터다.
가장 미천한 신분인 광대가 왕을 꾸짖는
발언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최고와 최하 신분의 두 인물이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고 짐작하게 하는 이 문헌은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에 작품의 원동력을 불어넣어줄 인물로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캐릭터가
바로 ‘장생’. 타고난 광대, 장생은 오로지
오랜 동료이자 가족 같은 ‘공길’과 함께
신명 나게 놀이판을 벌이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자유’의 상징으로
강렬한 드라마를 이끄는 축이 된다.
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운명에 순응하고
부딪히며 삶을 영위한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왕이 아닌 천한 광대로
태어나겠노라 고백하는 광대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왕,
왕을 바라 보 는한 여자. 이들을 주축으로
역사와 허구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아름다운 욕망과 화려한 비극을
그리는 <왕의 남자>는 관객들의
가슴에 강렬한 자국을 남길 것이다. .
2. 조선시대, 오로지 왕을 위한 공연!
: 영화 속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궁중광대’
<왕의 남자>는 최고권력자나 시대의 영웅에 초점을
맞추었던 여타의 시대극과는 달리 미천한 신분이지만
정해진 운명을 신명으로
바꿀 줄 알았던 광대가 주인공이다.
놀이판에서 신명 나게 노는 것만을
위해 살고,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이 없다는
호탕한 삶을 사는, 죽어서도 왕이 아닌 광대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광대들.
줄타기, 접시 돌리기 등의 재주뿐만 아니라 시류를
풍자하는 해학,
촌철살인의 유머로 조선최초의 궁중광대가 된
그들이 펼치는 공연은
현대의 ‘개그콘서트’를 보는 양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목숨을 담보로
왕을 웃겨야 했던 광대들의 놀이판은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2005년 대중들이 공주 같은 외모의 여주인공이 아닌
평범하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김삼순을 응원했고,
장애인이라는 난관을 딛고 행복을
찾아가는 자폐아 초원이와 진호를
사랑했듯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광대’들도 마찬가지다.
시대적 공간은 다르지만 하늘 아래 거칠 것 없이
당당했고, 자신들의
운명에 드리워진 그림자마저도 화려한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왕의 남자>의 ‘광대’ 캐릭터는
현대 대중들이
바라 마지 않는 삶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리고 2005년 12월, 이들이 펼치는
놀이판은 대한민국의 가슴을 신명과
감동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3. 드라마의 힘!
: 희락원(喜樂園)의 비밀, 그 강렬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국사가 결정되는 권력의 최정점인 동시에 정치적 음모와
암투의 중심지였던 조선시대 궁궐.
<왕의 남자>는 궁에 기거하면서
왕이 爾(이: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라
부르며 아꼈던 조선최초 궁중광대를 주인공으로
중신들의 비리, 조정과 왕의 힘겨루기 등 화려한 궁궐
이면에 감춰진 권력의 양면성을 담아낸다.
<왕의 남자>가 보여주는 궁궐은
일반 백성보다 미천한 신분인 광대들이 넘볼 수 없는
성역이자 광대들보다 자유롭지 못한 인간군상의 집합소다.
화려한 연회에서도
왕과 중신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중신들 사이에서도 권력의 암투가 끊이지 않는다.
궁중에서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오로지 광대들뿐이었고, 그들은 현대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인간상이기도 하다.
허공 위의 외줄에서 천하를 얻은 것보다 자유로웠던
광대 장생과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하늘 같은 절대 권력자 왕, 연산. 신분은 물론 모든 것이
전혀 다르지만 자유를 열망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광대와
왕의 만남이라는 설정은 흥미로운 긴장감을 더하고,
권력의 음모와 암투 속에 펼쳐지는 탄탄한 드라마는
강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자유를 향한 열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는 상반된 인간
내면의 본성과 욕망이 충돌하는 갈등구조를 시대극의
옷을 빌어 이야기하는 <왕의 남자>는 사극이면서도
현대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인물들의 팽팽한
갈등구속 속에서 전해지는 영화적 긴장감 끝에
<왕의 남자>가 선택한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비극적인 결말은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4. 배우, 그들의 완벽한 변신!
: 지금까지의 모습은 잊어라!
조선시대의 '신인배우’가 된 배우들!
이지적이지만 유약하지 않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흡입력 있는 연기를 선보여 온
감우성은 생애 첫 시대극인
<왕의 남자>를 통해 ‘광대’로 다시 태어났다.
자유로운 광대 장생을 표현하기 위해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검게 그을린
피부에 얼굴에
상처까지.감우성은 과거 속에 실존했지만
전혀 알려진 바 없는 미지의 캐릭터,
광대를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이미지 변신은
물론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광대로서의 기본기를 마스터하며 작품에
몰입했다.
촬영 전부터 ‘장생’ 그 자체가 된 감우성이 스크린에서
선보이는 연기는 신명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어쩌면 감우성은 대중들을 웃기고
울리는 놀이판에서만 자유를 누렸던
광대 ‘장생’과 가장 닮아 있는
배우일 것이다.
또한 선굵은 연기로 작품마다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배우 정진영은 <왕의 남자>에서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숨겨진 강렬함을 뿜어낸다.
궁중 여인들의 시기로 인해 생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 선종에 대한 애증으로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위치에 있지만 마음의 자유를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연산.
궁중으로 들어온 광대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움을
동경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연산이 폭력적이면서도
슬픔을 담고 있고, 호탕한 웃음에서도 고독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생동감 있는 인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배우 정진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이 부럽지 않은 광대, 장생과 광대의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왕으로 각각 분하는 감우성과
정진영의 연기 대결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그리고 강성연은 영화 입문이 늦었던 만큼
열정적으로 <왕의 남자>에 매진했고
역사 속 녹수가 아닌
<왕의 남자>의 녹수가 되었다.
강성연은 이제 때로는 모성으로
연산을 보듬는 지혜로움과
한 남자에게 온전히 사랑 받기를 원하는,
그래서 위험한 본성을 드러내는
‘여자’ 녹수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호텔비너스> 등을 통해 일본에서 먼저 인정받은
신예 이준기는 중성적인 매력으로 아름다운 광대,
공길 캐릭터가 실제 그의 모습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선배들과의 작업에서도 뚜렷하게
자신의 빛을 발하는
연기를 선보인 이준기 그리고 조연 장항선,
유해진까지 이들의 탄탄한
연기력은 <왕의 남자>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다.
PRODUCTION STORY
<왕의 남자> 그 시각적 볼거리의 향연!
땀으로 빚은 신명 나는 놀이판!!!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부터 공중제비를 넘는
화려한 재주까지
선보이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온 광대들.
광대들의 재주에 시선을 빼앗기던
우리는 어느덧 그들이 풀어놓는 풍자와 해학에
빠져들게 된다.
조선최초의 궁중광대를 주인공으로 신명이 살아있는
유쾌한 광대놀이를 완벽하게
재연해낸 <왕의 남자>의 통쾌한 놀이판은
오랫동안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의 사랑을 받아온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전통의 힘을 보여준다.
재치 있는 말장난과 음담패설, 성대모사로 언어유희의
절정을 보여주는 광대놀이는 그들이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이자 삶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특히, 광대들이 궁중을 뒤흔들며 선보이는
궁중연회의 역동적인 놀이판은 세상을 희롱하는
동시에 광대들 자신을
아슬아슬한 운명으로 몰아넣는 희열과 파란의
명장면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 같은 완벽한 광대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가장 많은
열정을 쏟아야 했던 이들은
바로 감우성과 이준기를 비롯한
광대 역할을 맡은 배우들.
이들은 2개월여 동안 ‘안성남사당 바우덕이’에게 직접
광대 놀이판에 필요한 기예와 신명을 익혔다.
또한 연기력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배우들이지만,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광대들을 연기하는 데 있어 광대 놀이판에서
신명을 흉내만 내서는
작품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배우들 스스로가
광대 훈련에 매진했다.
특히 세계줄타기대회 최고기록 보유자인
명인 권원태 선생에게 직접 사사
받은 감우성은 실제 촬영에서 5미터 상공에
매달린 외줄 위에서 능숙하게
걷는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이며 ‘장생’으로 거듭났다.
이는 감우성이 자택 마당 한 켠에
직접 외줄을 설치하고
개인시간에도 꾸준한 연습을 통해 노력한 결과였다.
<왕의 남자>가 광대들의 놀이판만을 담은 작품이
아님에도 ‘광대’라는 캐릭터 설정을
더욱 리얼하게 전하기
위해 노력한 배우들의 열정은 보다
작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조선시대 궁의 완벽재현! 세트
민가는 물론 궁 내부, 왕이 정사를 논하던
수조지조(受朝之所)와
왕의 처소 내부까지 다양한 장소를 담아내야 했던
<왕의 남자>는
부안영상테마파크와의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제작방식을 구현할 수 있었다.
궁중 세트와 내부를 제작했을 때
소요되는 80억원 규모의 순제작비를 45억원 규모로
절감하게 해 준 것.
190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부안영상테마파크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리얼리티를 살린 시대극의 촬영지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현재까지 궁을 제대로 재현한
세트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시대물은 궁의 외경만 제작해 외부만 촬영하고,
실제 궁 안은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해야 했다.
그러나 부안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한
<왕의 남자>는 유려한 카메라 워킹으로
궁궐 외부의 전경과
화려한 내부가 하나의 화면에 담기는 스펙터클하고
밀도 있는 영상을 담아낸다.
하지만 <왕의 남자> 제작진은 기존의 세트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보다 풍성한 화면을 만들고자
오픈세트를 제작했다.
광대들이 궁중에서 왕과 중신들 앞에서
신명난 놀이판을 벌이는 무대이자,
정치적인 음모와 암투가 벌어지는
궁중연회장면을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공간으로
만들기에는 영화적인 상상력에
기반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던 것.
또한 연회가 거듭될 수록
더해가는 광대들의 신명과 이들이
휩싸이는 정치적 음모를 표현하고자
광대놀이의 컨셉에 맞춰 매 공연마다
연회장 전체를 새롭게 세팅했다.
한편, 부안영상테마파크는 <왕의 남자>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서울에서 4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부안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던 배우와
스탭들은 아침이면 감우성이 발굴한
산책코스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등
<왕의 남자> 제작진이 여느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돈독한 친목을 다지게 해준 것.
또한 정진영은 숙소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순례해
왕이 사복을 입고 백성들을
순찰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처럼 부안영상테마파크와의 전략적인 제휴는
<왕의 남자>가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한 단계 발돋움하게 하는 초석이 되었고,
의상과 미술, 소품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절감한
제작비를 재투자한 <왕의 남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영화로 완성되었다.
멋지게 입는다! 의상
<왕의 남자>의 광대들은 민가에서는 소박한 전통미를
살린 자연주의 의상을, 궁중에서는 단아한 화려함이
살아있는 궁중의상을 선보이며
그 신명을 더해간다. 특히 궁중연회를 배경으로 하는
광대놀이에서 사용될 ‘종이의상’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새로운 시도로 주목 받았다.
‘종이의상’은 중국 경극 공연 때 실제 사용되던 옷으로
영화속에서 광대들이 경극 공연을 할 때 한국적으로
변형시켜 입은 옷이다.
천을 안감으로 삼고, 한지로 겉감을 대는 것을 기본으로
한 종이의상은 <혈의 누>에서 한차례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왕의 남자>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겉감이 되는종이 마다 전체에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독특한 한지의 질감은 물론,
그림이 걷고 있는
듯한 독특한 미를 발산한다.
배우들은 단 한 벌뿐인 귀한 종이의상을
입은 덕분에 옷이 상할까 극도로 신경을 쓰며
연기에 임해야 했으며
스탭들은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종이의상이
땀에 젖을까 배우 곁에서
부채질을 해대며 의상 보호작전에 나서는 등
종이의상은 배우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종이의상은 제작에만 한 벌당 3명이
꼬박 한 달 밤낮을 들여 완성해낸 땀과 열정의 산물로
가격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다.
한편 궁중의 주인인 연산과 녹수는 비단 원단 전체에
화려한 자수를 입혀 화려하면서도 권위감을 드러내는
의상으로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연산의 의상은 그간의 왕을 대표하는 색감인 적색보다
청색을 기본으로 한 의상으로 연산이 간직한 슬픔과
분노를 표현했고, 희대의 요부 녹수는
팔색조를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각각의 색감이 어우러지도록 저채도 저명도로 색감을
조정하는 등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의 조화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또한 제작진은 각각의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주연배우들은 물론
궁인에서 저잣거리의 군중 의상까지 손수 제작하는데
장장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6백여벌의 의상을
완성해냈다.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움으로 작품을 풍성하게 만든 <왕의 남자>
의상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영상미를 선보일 것이다.
숨결이 살아있다! 소품
광대들이 놀이판에서 사용하는 ‘버나’에서 궁중에서
왕이 타고 다니는 가마 ‘홍연’까지 <왕의 남자>는
광대들의 일상과 궁중의 화려한 모습을
개개의 소품으로 화려하게 형상화했다.
광대들의 얼굴이 되어주는 탈,
자신을 대변하는 손인형은 또 하나의 신명을 실어주고
손자수로 수놓은 방석과 침구, 부채 하나하나가
궁중의 화려함을 더한다.
특히 녹수의 처소에는
소 뼈에 각양각색의 문양을 넣어
만든 가구 ‘화각장’을 배치해 강렬함을 발산하는
요부 캐릭터를 강조했다.
한 점에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이들 소품을
보호하기 위해 제작진은 별도의 자물쇠를 세트에
채워둬야 했고, 별도 소품 보험으로
특별관리하기도 했다.
또한, <왕의 남자> 제작진은 주 촬영지인
부안영상테마파크
내에 200여평의 별도 소품 창고를
제작해 궁중에 필요한
모든 소품을 재현해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과거의 물건들이지만
여느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는
<왕의 남자>의 소품들. <왕의 남자>는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
‘10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소품이
돋보이는 영화’라는평을 듣고 있다.
이는 2004년 5월,
전체 미술 컨셉회의를 시작으로
2005년 6월 <왕의 남자> 크랭크인까지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한 결과다.
관객들은 <왕의 남자>를 만나면서
배우들의 명연기와
신명 나는 놀이판은
물론 디테일이 살아있는
소품을 찾아보는 재미까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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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개봉 45일만 1000만 돌파" 2006년 2월11일 토요일 |
영화 ‘왕의 남자’(이준익 감독)가 11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다.
이 영화의 투자 및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는
“9일까지 전국 977만8000명의 관객이 관람했다”면서
“관객 추세를 감안하면 11일 밤 1000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된다”고 10일 밝혔다.
이로써 ‘꿈의 숫자’라는 10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세운
이어 세 편으로 늘게 됐다.
왕의 남자가 개봉 45일 만인 11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 흥행 속도로는 개봉 39일 만에
1000만 명을 넘어선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못 미치지만 58일
만에 넘어선 실미도의 기록보다는 앞선다.
▽흥행 법칙을 깨다=왕의 남자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로 이어지면서
확립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필수조건을 깨뜨렸다.
스타 캐스팅, 막대한 제작비 등 화려하고
큰 몸집을 자랑했던 이들 영화와는 달리
배우와 제작비 면에서 소박한 면모를 가진
이 영화의 성공은 ‘영화 자체의 힘’이
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연배우 감우성 정진영은 뛰어난 연기력을 지녔지만
톱스타급은 아니었으며, ‘공길’ 역을 맡은 이준기는
신인이었다. 이준익 감독 역시 일반 관객에겐
‘무명’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왕의 남자의 총제작비는 60억 원(순제작비 41억 원)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170억 원, 실미도의 110억 원과는
비교도 안 된다.
게다가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아 개봉 첫 주에
관객을 ‘왕창’ 쓸어 모으는 ‘와이드 릴리스’ 방식과
달리, 250개의 스크린으로 출발한 왕의 남자는
열띤 반응에 힘입어 스크린이 400개까지 늘어났다.
이 영화는 충무로에서 불문율처럼 전해져 온
‘동성애 소재나 사극은 흥행이 힘들다’는
‘필패(必敗) 징크스’도 깨 버렸다.
남자들의 삼각관계를 다루면서도
성적(性的) 욕망이나 소수자의 성적 권리
측면이 아닌 ‘인간적 연민과 위로’의 측면에서
그려 내 한국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했다.
또 우리 역사를 실마리로 해 광대놀이라는
전통문화로 정면 승부를 건
사극영화로 성공한 점도 새롭다.
▽흥행 성공의 원인=여러 연령대에 두루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결’을 가졌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젊은층은 이 영화를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받아들이는
반면, 중장년층은 정치풍자극으로 받아들였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을 제멋대로 갖고 노는 광대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 준 영화의 현실을 뒤집는 상상력이
상대적 박탈감이 많은 한국 관객들에게
통쾌하게 다가갔다.
‘여장 남자’에 대한 영화란 점이 알려지면서
배우 이준기에 대한 관심이 일찌감치 높아진 것도
영화의 사전 인지도를 높였던 요인.
영화를 여러 차례 본 중복 관객도 많았다.
중복 관람은 마니아들이 온라인상에 결성한
팬 카페(cafe.daum.net/Kingsman)를 통해 불이 붙었다.
‘왕남폐인’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열성 팬들은 영화
내용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며 논쟁을 벌이는 등 영화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적극적인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준익 감독이 쓰고 다니는 중절모는 이 영화를
서른 번 보았다는 왕남폐인이 준 선물.
또 영화를 스무 번이나 본 뒤 관람권들을
찍어 게시판에 올리는 회원도 있다.
▽돈, 돈, 돈=충무로에서는 관객 1명이 관람하면 극장에
떼어 주는 비용을 빼고 약 2700원가량이
투자 배급 제작사에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이렇게 계산하면 1000만 명이 관람할 경우
약 270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이 중 60%인 162억 원가량이 왕의 남자를
투자 배급한 시네마서비스로 가고,
나머지 40%인 108억 원은 제작사 몫이다.
이 영화를 공동 제작한 ‘이글픽쳐스’와
나누기로 한 사전 계약에 따라 각각 54억 원씩을
가져가게 된다.
씨네월드는 이준익 감독이 대표로 있다.
여기에 비디오나 DVD 등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얻어지는 부가 판권까지
감안하면 투자 배급 제작사에 돌아가는
돈은 100억 원가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제작사는 제작진과 출연진에 특별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다.
▽해외 진출 가능성=왕의 남자는 5월 열리는
칸 국제영화제 출품을 추진 중이다.
이 영화의 해외 마케팅과 판매를 담당한
2회에 걸쳐 왕의 남자를
상영할 예정”이라면서 “조만간 유럽 배급사와
계약을 맺고 공동으로
칸영화제 진출을 밀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왕의 남자는 한국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계층 갈등과 권력 풍자,
인간의 애증 관계라는 핵심 요소는 동서양에서
모두 통용되는
‘글로벌’한 코드라는 점에서 해외 진출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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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의 감동을 이어
연극 ‘이(爾)’ 공연
■ 이것이 진정 웃음의 미학이다!
화제의 연극 ‘이(爾)’ 공연 결정!!
12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공연되고 있는 화제의 연극 ‘이(爾)’가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고양 공연에 돌입한다.
연산군에게 낙점되어 웃음과 몸(동성애)까지 바쳐가며
가장 낮은 신분인 천민에서부터 희락원 종4품이라는
지위까지 오른 궁중 코미디언 '공길'의 이야기
연극 ‘이(爾)’. 온갖 천대와 멸시에도 누구보다 떳떳했던
궁중 광대들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음모,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왕과의 애틋하고 미묘한 관계를 재밌게
다룬 연극 ‘이(爾)’ 가 2006년 새해,
한판 놀음으로 무대를 뜨겁게 달군다.
■ 연극 ‘이(爾)’와 영화 ‘왕의 남자’,
2006년 새해를 달군다.
최근 영화 ‘왕의 남자’로 제작되어
더욱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연극 ‘이.’ 이번 공연을 통하여 연극과 영화 속
‘조선 궁중광대’들이 동시에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살인의 추억’, ‘웰컴투 동막골’, ‘박수칠때 떠나라’ 등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차례로 선보이며 관객과
평론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영화 ‘올드보이’를 연극으로 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최근 공연,
영화계의 새로운 트렌드인
‘연극과 영화의 만남’이 2006년,
연극 ‘이(爾)’와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동시에
실현될 예정.
지난 2003년 영화 ‘황산벌’로 300만 관객을 동원한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배우 감우성,
정진영이 주연하는 영화 ‘왕의 남자.’
최근 시사회를 통해 큰 호응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는
연극과는 달리 공길의 절친한 동료이자
또 다른 남색 파트너인 광대 ‘장생(감우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운명을 그렸다.
내성적이고 아름다운 광대로 권력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권력화 되어가는 ‘공길’의 모습을
다룬 연극 ‘이(爾)’
놀이판에서 신명나게 노는것만을 위해 사는 남자로
극을 이끌어가는 네 명의 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허구인 인물 ‘장생’에 초점을 맞추어 드라마에 중점을
준 영화 ‘왕의 남자’
정진영-이남희(연산), 이준기-박정환(공길),
강성연-진경(녹수), 감우성-이승훈(장생)등
영화와 연극의 주연배우들이 보여주는 같은 역할,
다른 캐릭터를 비교-감상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12월 18일 영화와 연극을 한 자리에서
동시에 관람토록
꾸며진 이색 시사회는 일찍부터 티켓이 매진되는 등
같은 작품, 다른 모습으로 찾아가는 연극 ‘이(爾)’와
영화 ‘왕의 남자’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기대도
매우 크다.
연극과 영화를 모두 보고자 하는 관객을 위해
영화 ‘왕의 남자’를 관람하고 티켓을 소지한
관람객은 연극을 30% 할인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도록 티켓을 할인 판매하여 연극팬과
영화 팬 모두를 사로잡을 예정.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다시한번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인정받은 화제의 연극 ‘이(爾)’
연극 ‘이(爾)’는 역사의 숨결이 가득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연극에 시대성을
담아 욕망으로 빚어진 갈등과 비극을
유쾌한 '놀이정신'과 함께 풀어내어
관객들에게 강렬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 이(爾)란?
‘이(爾)’란 조선조때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극중에서 연산군이 자신이 아끼는
궁중광대 공길을 부르는 호칭이다.
천민 광대의 신분으로 임금에게 이(爾)라는 호칭을
받은 '공길'이라는 인물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연산군일기 60권 22장 <배우 공길이 논어를 외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 제 10대왕 연산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날 때 까지 12년간 재위하였다. 재위기간동안
무오, 갑자사화를 통해 엄청난 인명을 죽이는가 하면,
자신을 비판하는 무리는 단 한 사람도 곁에 두지 않는
전형적인 독재 군주로 군림했다. 또한 성균관,
원각사 등을 주색장으로 만들고,
민간의 국문 투서 사건이 발생하자
훈민정음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하는 등
광적인 폭정을 일삼았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채울수 없는
모성결핍으로 뒤틀리고 비뚤어진 인간 연산.
연산의 결핍을 채워주고 위로하는 궁중 코미디언 공길.
연산의 연인이자 어머니였으며,
공길의 연적이었던 질투의 화신 녹수.
연산, 녹수, 그리고 공길.
이 세 명의 역사적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연극 "이(爾)"는 이 세 명의 실존인물을
역사에서 끌고 나옴으로써,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역사극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 속에 빠지도록 유인한다.
■ 기막힌 극적 설정 - 연산이 동성애자였다?
연극 ‘이(爾)’는 두 가지 기발한 극적 설정에서
출발하는데 “연산군이 궁중 광대극을 좋아했다” 는
것과 “연산이 광대 중에 하나인 공길과
남색(동성애) 관계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성애’라는 설정은 말초적인
자극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 아니다.
동성애는 연산과 공길의 관계를 단단히 묶어놓고,
녹수와 공길의 갈등을 심화시켜 힘의 대결로 끌고
나가는 극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한편, 연산군이 좋아했다는 ‘광대극’은 ‘동성애’로
고조된 갈등과 긴장상태를 ‘웃음’으로 이완시키는
장치이다. 긴장과 이완을 넘나드는 극적효과는
바로 이 두 가지의 기발한 극적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 조선시대 개그콘서트 ‘소학지희(笑謔之戱)’
초연 이후 지속적으로 연극 ‘이(爾)’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매번 공연때마다
후배 개그맨들의 관람을 릴레이로
진행시킬 정도로 열성팬이 되어 온 전유성을 비롯,
지난 2003년 정동극장 공연 당시
송은이, 김미화, 최양락,
이영자, 남희석, 이수만 등 수많은 개그맨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극찬을 보낸 바 있는
연극 ‘이(爾)’는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꼭 봐야 할 연극’으로 정평이 나있다.
연극 ‘이(爾)’는 말장난, 성대모사, 흉내내기, 재담,
음담패설 등 언어유희를 이용해 시정을 풍자하고
정치적 비리를 고발했던 조선시대의 언어유희
‘소학지희(笑謔之戱)’를 통해 극의 갈등과
인물관계를 전개하고 있는데 소학지희란
몸과 기예가 필요한 규식지희(칼 삼키기, 줄타기 등)와
달리 주로 말로 웃기는 놀이로써,
오늘날의 개그 콘서트라 할 수 있다.
소학지희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문서는 문종실록이기는
하나 기록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놀이형태인 것 같다.
우희(優戱), 골계희(滑稽戱), 배우희(俳優戱), 라고도
불린 소학지희는 소규모로 이우어졌을 가능성이 크며,
놀이는 우인(배우)의 기량에 많이 좌우되는
놀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놀이는 왕이나, 혹은 양반들이 여흥을 위해
우인들을 불러 내전이나 뜨락에서 부대설비 없이
손쉽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이 놀이를 노는 우인들은 주로 서울 장안에
거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경중우인이라는 말이 생긴다.
왕실이나 양반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우인들의 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배우는 천민으로 장안에 거주할 수 없는
신분이었는데 이와 같은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겠다.
‘이(爾)’에서 공길이 소학지희를 통해 윤지상의 비리를
고발한 것과 같이, 소학지희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정치행태나 풍속의 부정적인 면을 왕에게
우회적으로 보고하는 수단이었으며,
왕은 이를 토대로 시정을 명령했던 사례도 발견된다.
왕을 매료시킬만큼 탁월했던 광대들의
신명 나는 공연과 그 이면의 섬뜩한 비애.
조선시대,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광대들의
자유와 신명. 그들의 공연은 유쾌하고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왕을 웃기지 못하면 죽어야 했던,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공연했던 조선시대
궁중광대들의 모습을 통하여 개그맨으로서의 삶,
‘우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만드는 연극 ‘이(爾)’는 수많은
개그맨들로 하여금 현 시대의 ‘우인’으로서
그 의미에 대한 깊은 감동을 준 바 있다.
첫댓글 딸내미가 이 영화 보구와서 이야기 하더만 영화를 본 것처럼 흥미있게 내용 잘봤다 재밋는 글 계속 이어지길^^;..
요새 장안이 온통 공길이.공길이 하더니 이유가있네... 잘 일것다.영화봐야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