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얼굴
by Renzo Allegri
로마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서 약2시간 정도 달리면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이 새겨진 천이 보관되어 있는
마노펠로(Manoppello)에 갈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400여 년 전부터 보존되어 전해내려오는
매우 중요한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토리노의 성 수의'와 함께 예수님의 열굴이 새겨져 있다고 주장되는 천(베일)이 있으며
이를 '마노펠로의 거룩한 얼굴'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아케로피타(acheriopita)"라고 부르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아케로피타는 그리스어로 '사람이 그리지 않았다'라는 의미이며
이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손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신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모든 이미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얼굴 혹은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마노펠로의 거룩한 얼굴도 아케로피타라고 여기는
이미지 중에 하나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천이 보관된 곳은 현재 프란치스코 카푸친 수도회가 있는 성당으로
성당의 이름은 '마노펠로의 거룩한 얼굴 성지 성당
(Basilica del Volto Santo di Manoppe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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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에 의하면 1506년 경 한 순례자에 의하여 이 성면(Holy Face)이
마노펠로로 오게 되었는데, 이후 1638년도에 카푸친 수도회에 기부되어
현재까지 커푸친 수도회가 보관해 오고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성면에 새겨진 형상이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마노펠로 성면(거룩한 얼굴)의 특징
1) 우선 이 천은 바다 비단 또는 족사 [足絲] 라고 불리는 천으로
지중해 바다에서 자라는 조개의 일종인 거거(대왕조개, giant clam)의 아랫부분에
지면과 고착하기 위한 섬유 부분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라틴어로
'핀나 노빌리스(Pinna Nobilis)'라고 부릅니다.
2) 이 천이 특별한 이유는 방수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염분을 함유하고 있고 염식을 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섬유에 빛을 비추면 은은한 황금색을 띠어
고대 때부터 왕이나 사제들의 옷감으로 사용한 귀한 천이었으며
성서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던 천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아마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3) 그래서인지 실제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노펠로의 이 천에 새겨진 얼굴은 그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천에는 물감의 흔적이 전혀 없고,
또한 스케치나 그을림 방식으로 그려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 천은 너무나 투명하여 반대편에 책을 두면
글자를 완벽하게 읽어 볼 수 있을 만큼 투명합니다.
이는 마치 슬라이드 필름에 빛을 비추어 바라볼 때와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천에 새겨진 남성의 얼굴을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앞뒤 얼굴의 모습이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이 또한 이것이 사람에 의하여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바침하는 근거 중 하나입니다.
5) 크기는 가로 17cm, 세로 24cm의 크기입니다.
6) 이 천에 새겨진 얼굴의 특징은
- 전체적으로 황토색 통의 천이며 남성의 얼굴이 보입니다.
- 양쪽 볼은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둥글고 상당히 부어있는 모습입니다.
- 눈은 감은 눈이 아니라 뜨고 있으며
한쪽에서 위쪽으로 응시하는 모습이며 상당히 강렬한 시선입니다.
그래서 눈동자는 홍채 아래 흰자 부분이 더 많이 보입니다.
- 동공은 완전히 열려 있지만 불규칙한 모습입니다.
(한쪽의 동공이 더 큰 모습입니다)
- 이마의 가운데 부분에는 짧지만 물결 모양의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 입은 약간 벌린 채로 있어 치아가 보입니다.
- 이마와 얼굴에는 아문 상처와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 마노펠로의 성면에 있는 얼굴과 토리노 성 수의에 있는 예수님 얼굴,
그리고 스페인 오비에도(Oviedo)의 성면에 있는 얼굴 형상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참고로 '오비에도의 성수건'(Sudarium di Oviedo)은
스페인 북부 오비에도의 구세주 대성당에 보관된 성물로써
이 또한 예수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수건에는 많은 양의 예수님의 혈액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릴 때 허파에서 역류하는 피를 막기 위하여
예수님의 입을 막은 천으로 여겨진다.
이 수건에서 채취한 피와 토리노 성 수의에서 채취한 피는 같은 AB형이며,
세 개의 천을 겹치게 되면 사진에서처럼
얼굴과 상처의 흔적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9월 1일 당시 교황이셨던 베네딕도 16세는 마노펠로를 직접 방문하셨고
지역의 성직자들과 7천여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마노펠로의 성면에 개인적으로 경배를 드리셨지만
이 성면의 진위에 대한 언급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노펠로의 성면(거룩한 얼굴) 성당"을 대성당(Basilica)으로 격상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방문 이후
마노펠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의 관심과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노펠로의 성면에 대한 연구와 여러 가지 가능성
마노펠로의 성면에 대하여 최초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한 이는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의 교수(그리스도교 예술사)이며 예수회 신부인
하인리히 파이퍼(Heinrich Pfeiffer) 신부입니다.
그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마노펠로의 성면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여러 저술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마노펠로의 성면은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서 사라진
베로니카의 손수건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입니다.
마노펠로의 성면에 대한 유일한 기록문은 1642-1645년 사이에 기록된
"Relatione Historica"라는 문서로 당시
카푸친 수도회 도나토(Donato da Bomba) 신부가 기록한 문서입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한 순례자가 1505-1508년 경
미노펠로의 성면을 쟈코만토니오 레오넬리(Gia comantorio Leonelle)라는
이름의 의사에게 기증하였고, 100년 후 마르치아 레오넬리(Marzia Leonelli)가
감옥에 있는 남편의 보석금을 구하기 위하여 성면을 400스쿠디
(Scudi- 당시 화폐단위)를 받고 파브리티우스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638년 파브리티우스는 보존을 위하여
이 성면을 카푸친 수도회에 기부하였고 당시 카푸친 수도회는
성면의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유리와 나무로 만든 액자에
성면을 넣어 보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같은 액자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파이퍼 신부도 1506년 경 베드로 성당에 있는 베로니카의 손수건이 도난당하였고
현재 마노펠로의 성면이 베로니카의 손수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바티칸의 허가를 얻어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 보관된 베로니카의 성수건을 확인하였는데,
얼굴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티칸은 현재까지 베로니카 손수건을 일 년에 한 번
수난 주일날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파이퍼 신부는 교황 바오로 5세가 금지시키기 전까지 그려진
베로니카 손수건의 주요 카피 그림들을 수집하여 연구하였는데,
모두가 특정한 그림을 모델로 그려졌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예수님 얼굴의 이콘들을 보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계속해서 비슷한 도상으로 만들어져 왔는데,
이는 어떤 한 모델이 예수님의 얼굴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모델이 베로니카의 손수건이며 그의 주장대로라면
베로니카의 손수건이 오늘날 마노펠로의 성면이라는 것입니다.
(베로니카의 손수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97년 바리(Bari) 대학의 의학자인 도나토 빅토레 교수는
마노펠로의 성면을 첨단 디지털 광학장비들을 이용하여 촬영하여
성면에는 일체의 염료나 혹은 다른 색깔의 천을 만들어 넣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성면의 안과 뒷면이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또 다른 마노펠로 성면 연구의 권위자는
화가이며 이콘 전문가인 트라피스트 수녀회 블란디나 수녀입니다.
그녀는 토리노 성수의 와 마노펠로 성면의 얼굴에서
최소 10군데 이상의 부분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입과 눈인데, 토리노 성 수의와 달리
마노펠로의 성면에 있는 얼굴에는 눈과 입이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노펠로의 성면이 베로니카의 손수건이라는 주장과는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6-7절에는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개켜져 있었다."
즉 요한복음사가는 몸 전체를 감쌌던 큰 수의와
얼굴을 덮었던 작은 천을 명확하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이는 토리노의 성 수의가
예수님의 몸을 덮은 유일한 천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전통에 따르면 시신 전체를 아마포로 감싸기 전에
시신의 얼굴에 작은 천을 따로 덮었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마노펠로의 성면이
예수님의 몸을 감싸기 전에 얼굴을 덮었던 수건이며,
그리고 수건에 새겨진 얼굴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빛에 의하여 마치 광학적으로 찍힌 얼굴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토리노의 성 수의에 보이는 얼굴은 눈을 감고 계시지만
마노펠로의 성면에는 눈을 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