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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그림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중 <헨젤과 그레텔>
대본 아델하이트 베테(훔퍼딩크의 여동생)
초연 1893년 바이마르 궁정극장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지휘
배경 동화의 시대, 독일의 어느 숲 속
<2008년 7월 글라인드본 오페라하우스 / 108분 / 한글자막>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글라인드본 합창단 연주 / 오노 카츠시 지휘 / 로랑 펠리 연출
헨젤...............................제니퍼 할로웨이(메조소프라노, 바지역할)
그레텔............................마드리아나 쿠체로바(소프라노)
계모 게르트루트...............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메조소프라노 혹은 소프라노)
아버지 페터.....................클라우스 쿠틀러(바리톤)
슈페라케 마녀..................볼프강 아블링커(메조소프라노, 알토 또는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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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원작의 불온한 내용은 순화시켜 새로 각색한 훔퍼딩크의 오페라는 세계적인 인기와 친숙함으로 기념비적인 오페라 시리즈가 되었다. 2008년 글라인드본 석세스 페스티발에서 첫 무대를 가진 로랑 펠리의 오페라는 현대적인 해석과 풍부한 유머를 발휘한다. 현대적인 배경의 슈퍼마켓은 원작의 숲에서 벗어나, 첨가제 가득 든 비스켓과 캔디를 생생하게 연출하는데, 현대인의 삶을 반영하고자 하는 로랑 펠리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교육에서 벗어나, 흥미진진한 오페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어린이만을 위한 오페라가 아닌 최고 수준의 걸작으로 거듭난 <헨젤과 그레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더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다.
===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 루페르트 크리스티안센 / 박제성 번역>
남매와 관련된 오페라가 오누이의 협력으로 제작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서는 훌륭한 일이다. 1890년 수줍음을 많이 타고 사교성이 적지만 바그너(그는 바그너가 <파르지팔>을 작곡할 당시 조수로 일을 한 적이 있다)를 향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강한 젊은 작곡가인 엥겔베르트 훔퍼딩크는 그의 누이인 아델하이트 베테로부터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독일에서는 Ma:rchen이라고 부르는)를 바탕으로 한 집안에서 공연할 수 있는 작은 인형극에 사용할 노래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델하이트는 그림 형제가 1812년에 처음으로 출판한 전통적인 판본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불온하고 폭력적인 잔혹동화로서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가 직접 나서서 걸리적거리는 자신의 자녀를 직접 제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아델하이트는 루드비히 베흐스타인이 내용을 순화시켜 새로 각색한 판본을 선택했다. 이 판본에서는 경건한 저녁 기도 장면과 천사로 변장한 모래요정(역주 : 아이들이 잠이 올 때 눈이 까끌거리도록 모래를 뿌린다는 전설에서 기이한 요정)과 이슬요정이 위로를 해주는 장면이 삽입되었고, 마녀는 "비참하게 소리를 지르며 처참하게 벌을 받아" 잿더미로 불타버리는 대신 케이크로 변해버린다.
이러한 요소들이 가족들 사이에서 이 인형극이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였던 만큼 엥겔베르트와 그의 누이는 이미 작곡된 징슈필을 위한 16개의 노래들("수제야, 사랑하는 수제야"와 "작은 남자가 숲속에 서 있네"와 같은 노래들은 민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을 묶어서 보다 규모가 큰 음악으로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우선 그들은 대화 형식의 오페레타를 구상했지만 아비지와 훔퍼딩크 남매의 배우자들로부터 받은 리브레토를 사용하여 완전한 모습의 오페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온전한 오페라의 형식으로 연주된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듯이 1893년 바이마르에서였다. 이 작품의 성공은 즉각적이었다. 초연을 이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최고 수준의 걸작"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민족주의적인 독일 청중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베리스모 오페라의 맹공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국 문화의 기원에 대한 낭만적인 환기로서 이 작품을 즉시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전세계적으로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 작품은 뉴욕과 런던을 포함한 무려 72개 도시에서 상연되었고 그 인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위한 가족 여흥으로서 소위 오페라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1923년에는 유럽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된 최초의 오페라가 되었고 1931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토요일 생방송 마티네 시리즈로 상연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영상물로도 다수 제작되었는데, 이 가운데에는 1954년 테크니컬러 기법으로 제작된, 여류 코미디언인 안나 루셀이 마녀를 노래 부른 기념비적인 오페라 패러디 애니메이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헨젤과 그레텔>의 엄청난 인기와 친숙함은 오히려 이 작품이 과소평가받는 데에 일조했다. 제작에 제작을 거듭할수록 점점 화려한 색채의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아늑한 분위기로 디즈니화(化)한 볼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줄거리의 음산한 요소들과 음악에 있어서 바그네리안적인 우아함 모두를 무시한 것이다.
1987년에 드디어 그 전환점이 찾아왔다. 데이비드 푸트니가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에서 연출한 <헨젤과 그레텔>이 그것으로서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주제로 한 오페라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최근 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모의 어린이 학대와 같은 기사거리를 인용한 푸트니는 오페라로부터 동화책과 같은 클리셰를 벗겨내고 1950년대의 '준엄한 대영제국'의 교외에 위치한 주택단지를 배경으로 도입했다. 아이들은 짐승 취급을 당한 만큼 사납기 그지없고 그들이 보내진 숲은 시립공원(모래요정과 이슬요정은 그곳에서 사는 술주정뱅이)이며 마녀는 엄마 역을 맡은 가수가 등장할 뿐만 아니라 마늘빵집(조금 꾸며져 있긴 하다)은 가족이 살고 있는 집 그대로였다.
푸트니의 현실적인 접근은 유럽 전역에서 많은 모방을 낳게 했고 리차드 존스라는 다른 영국 연출가가 등장할 때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0년 뒤에 등장한 그는 푸트니의 연출적인 측면에 있어서 급진적인 시각을 동일하게 갖고 있는 한편 그림 형제의 원작에 담겨 있는 어두운 측면을 복원하는데 주력했다. 1998년 웨일스 내셔널 오페라에서 처음으로 선보였고 이후 시카고와 뉴욕에서도 상연된 존스의 프로덕션은 정신분석가 부르노 베텔하임의 저서인 '매혹의 사용(The Uses of Enchantment)'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은 두려움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극복한다는 통찰력 높은 주장에 의거한 것이다. 천사의 등장은 기괴하지만 장엄하고 물고기 머리를 한 웨이터와 집사가 향연을 시중들며, 마늘빵집은 크롬빛 마감으로 장식된 산업용 부엌으로서 여기서 마녀는 미친 TV 주방장처럼 정신없이 날뛴다. 이러한 묘사는 대단히 재미있지만 동시에 대단히 냉랭하기도 하다.
이 2008년 글라인드본 프로덕션(석세스 페스티벌에서의 첫 <헨젤과 그레텔> 무대)의 연출을 맡은 프랑스 감독인 로랑 펠리는 푸트니나 존스의 무대를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이 두 사람의 요소들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골판지로 만들어진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지루해 하지만 대단히 활동적이다. 나쁜 가정교육의 피해자인 이들은 정부기관들의 법률로도 구제가 안되고 있다. 숲은 플라스틱 가방들이 굴러다니는 황량한 땅으로서 자연에 대한 존경이라고는 없는 소비자 사회에 의해 버려진 곳인 반면, 마늘빵집은 아이들이 꿈에서도 간절히 바라던 슈퍼마켓으로서 첨가제가 잔뜩 들어간 달콤한 비스켓들과 과자들(무대 디자이너인 바르바라 드 림부르그 스티룸은 사진작가인 안드레아스 그루스키의 사진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놀라운 이미지들을 응용했다)이 가득 차 있다. 이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신랄한 장면은 마녀가 죽은 다음 바보처럼 먹기만 해 괴물처럼 살이 찐 아이들이 해방되는 장면이다. 이 시나리오는 민감한 사회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문제작임에도 불구하고 펠리는 풍부한 유머와 극장적인 창조력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공연의 음악적 측면 가운데에서는 카즈시 오노의 지휘가 가장 감동적이다. 특히 오케스트라 간주곡에서 배어나오는 바그네리안적인 로맨티니즘과 슈베르티안적인 가벼움, 어린이들 음악으로서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훌륭한 균형감을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제니퍼 할러웨이와 아드리아나 쿠체로바는 헨젤과 그레텔의 설득력 있는 모습들을 즉각적으로 표현해 냈는데 2막에서의 저 유명한 저녁 기도 장면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리고 여기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청일점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테너 볼프강 아블링거 - 슈페르학커로서 충격적인 핑크색 옷을 입은 무시무시한 마녀로 등장한다 - 이다. 현대에는 종종 이 역을 남자가 맡아 캐릭터에 위험인물로서의 긴장감을 더한다. 종합해 보면 음악적으로나 드라마적으로 이례적일 정도로 수준 높은 완성도를 만들어낸 훌륭한 무대로서 글라인드본의 청중들 또한 대단히 즐거워했다.
그러나 엥겔베르크 훔퍼딩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60년대 대중적인 크룬 창법의 가수들에게까지 이름을 도용당할 정도로 사후 그의 명성이 추락한 것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그의 초기 성공작인 <헨젤과 그레텔>에 걸맞은 대접이나 존경조차 받지 못했다. 그는 대부분 동화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몇 편 더 작곡했지만 그 어떤 작품도 성공하지 못했고, 오늘 날에야 비로소 매혹적인 거위 아가씨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왕의 아이들 Ko:nigskinder>만이 리바이벌되었을 뿐이다.
훔퍼딩크는 <헨젤과 그레텔>을 통해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그의 만년은 불행하게도 중풍과 난청으로 점철되었다. 그의 유산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단 하나의 걸작뿐이지만, 글라인드본의 시사적이고도 흥미로운 프로덕션이 보여준 것과 같은 지속적인 반항이야말로 진정한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작품해설 === <2013년 10월 4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
반나절은 걸어야 끝이 보이는 독일의 깊은 숲. 키 큰 전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 대낮에도 어둑한 이 숲들은 온갖 동화와 기담(奇談)의 산실이었습니다. 숲길을 지나다 늑대를 만나는 '빨간 모자' 이야기 등 갖가지 유명한 동화들은 숲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한 동화 중 또 하나의 대표작은 [헨젤과 그레텔]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여름이지만,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어른과 아이들 모두를 위해 공연되는 '가족 오페라'입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이 이루어진 시기도 1893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이었죠. 독일 작곡가 엥엘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1854-1921)는 열네 살 때 벌써 작곡에 소질을 보였지만 부모의 소망대로 건축학을 전공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결국 쾰른 음악원에 입학해 작곡, 피아노, 첼로, 오르간을 배웠는데요, 스무 살이 되자 이전에 자신이 작곡한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모두 없애버렸다네요. 뮌헨에서 '모차르트 장학생'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훔퍼딩크는 바그너를 알게 되었고 바이로이트의 [파르지팔] 초연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을 작곡했던 시기의 훔퍼딩크는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무척 고전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교회 악장직을 얻어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직장을 얻지 못했고, 바그너 음악에 지나치게 압도당해 작곡가로서 자신의 개성과 창조적 재능을 펼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재주가 뛰어난 여동생 아델하이트가 "아이들과 함께 연극과 노래를 엮은 '깜짝 쇼'로 남편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몇 장면을 각색했으니 작곡을 해 달라"고 훔퍼딩크에게 부탁을 해왔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작곡한 곡들이었지만, 여동생 남편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온 친척과 친지들은 이 음악에 대단한 호응을 보였고, 길이를 늘여 오페라로 만들어보라고 성화였죠. 그래서 남매가 함께 대본을 쓰고 작곡해 만든 오페라가 바로 [헨젤과 그레텔]이었습니다.
천사들과 마녀, 그리고 과자로 만든 집
게르투르트와 페터는 가난한 부부입니다. 이들에겐 아들 헨젤과 딸 그레텔이 있죠. 엄마와 아빠가 일하러 나간 사이 두 아이들도 집에서 일을 합니다. 그레텔은 뜨개질로 털 양말을 짜고 헨젤은 아버지가 장에 내다 파는 빗자루를 엮고 있답니다. 일을 하다 지치고 싫증 난 아이들은 배고프다는 타령을 하다가 곧 장난치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립니다. 엄마가 집에 돌아와 이 모습을 보고는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며 아이들을 야단칩니다. 도망가는 둘을 붙잡으려다 저녁으로 먹을 우유가 든 단지를 깨트린 엄마는 화가 나고 막막해져서, 저녁으로 먹을 게 아무것도 없으니 산딸기라도 따 오라고 아이들을 숲으로 쫓아 보냅니다.
아빠 페터는 오늘 따라 빗자루 장사가 잘 되어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옵니다. 아이들을 숲으로 보냈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아이들이 숲 속 마녀에게 잡힐까 봐 걱정합니다.
2막은 숲 속입니다. 헨젤은 딸기를 따고 그레텔은 꽃으로 예쁜 화관을 만들죠. 딸기 바구니가 가득 차자 둘은 다시 신나게 노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어느 새 딸기를 다 먹어치웁니다. 빈 바구니로 돌아가면 엄마한테 또 야단맞을 것 같아 다시 딸기를 따기로 하지만,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져버렸습니다. 귀신 나올 듯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기 시작합니다. 그때 잠의 요정이 나타나 아이들 눈에 금빛 모래를 뿌려줍니다. 그러자 둘은 졸음이 쏟아져, 천사들에게 '저희를 보호해 주세요' 하는 기도를 하며 잠이 들어버리죠. 천사 열네 명이 하늘에서 내려와 잠든 헨젤과 그레텔을 에워싸고 춤을 춥니다.
3막에는 드디어 그 유명한 '과자로 만든 집'이 등장합니다. 아침이 찾아온 숲 속에서 이슬의 요정이 헨젤과 그레텔을 깨워줍니다. 둘은 서로에게 천사가 나온 꿈 이야기를 들려주죠. 주위를 둘러보다가 헨젤은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합니다. 헨젤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레텔이 말립니다. 하지만 배가 고픈 남매는 밖에서 그 집을 뜯어먹기 시작하죠. 그때 이 집 주인인 마녀 로지나가 나타나, 집안으로 들어오라며 남매를 유혹합니다. 겁먹은 헨젤과 그레텔이 도망치려 하자 마녀는 마법을 걸어 둘을 잡아들이죠. 헨젤을 맛있게 살찌워 잡아먹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마녀는 그레텔에게 집안일을 시켜놓은 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다가, 돌아와 헨젤의 손가락을 만져봅니다. 헨젤이 손가락 대신 먹고 남은 뼈다귀를 내밀자 눈이 나쁜 마녀는 헨젤이 너무 말랐다고 생각하고는 그레텔을 먼저 잡아먹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레텔은 기지를 발휘해 마녀를 화덕에 밀어 넣고는 헨젤을 구해줍니다.
마녀의 화덕이 폭발하면서 마녀에게 잡혀 과자로 구워진 많은 아이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마법이 풀리지 않아 눈을 못 뜨고 있던 아이들은 그레텔이 손을 대자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죠.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 그리고 자녀를 잃은 여러 부모들이 숲으로 찾아왔다가 달려와 아이들을 품에 안아줍니다. 그때 화덕에서 구워진 마녀가 과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모두들 행복하게 노래하는 중에 막이 내립니다.
계모 대신 친어머니: 잔인한 동화의 이본(異本)
[헨젤과 그레텔]은 바이마르 초연 뒤 런던, 빈 등 유럽 각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순회 공연단까지 꾸려졌습니다. 이 오페라를 오페라극장 프로그램으로 택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구스타프 말러도 훔퍼딩크의 음악을 극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그너의 아류'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이 오페라의 간주곡 '마녀의 빗자루 타기'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발퀴레]에서 '발퀴레의 말타기' 장면을 모방한 것이며, 아버지 페터가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라인의 황금] 중 '거인의 모티프'가 나타나고, 이 오페라에서 숲을 묘사하는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는 [지크프리트]의 숲 장면 음악과 유사성이 큽니다.
그런가 하면 [헨젤과 그레텔]은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현실의 비참함과 척박함을 예술적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오페라 무대에서 보여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이탈리아 연극 및 오페라 사조)의 독일판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의 비참한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죠. 당시 영국의 한 평론가는 이 오페라가 '가난'을 지나치게 강조해 어린이 관객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차 대전 직후에는 그레텔이 마녀를 화덕 속에 가두고 태워 죽이는 장면이 나치가 유태인들을 가스실에서 죽여 불태운 '크레마토리움(소각기)'을 연상시킨다며 관객들이 거칠게 항의해 오페라 상연이 어려워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누이동생 아델하이트가 쓴 대본은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과 한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 동화에서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숲에 갖다 버리자'고 계모가 남편을 설득하는 내용이었지만, 아델하이트는 계모 대신 친어머니를 등장시켰습니다. 그림 동화보다는 당시 궁정도서관 사서였던 루트비히 베히슈타인이 쓴 1845년 [헨젤과 그레텔]을 참고한 작품이죠. 그래서 19세기 사회현실을 반영한 일종의 심리극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이 오페라의 마녀 역할을 흔히 테너가 부르거나 베이스 가수가 팔세토(가성)를 써서 부릅니다. 우람한 체구의 남자 가수가 마녀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 자체가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죠. 그러나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작곡 당시 훔퍼딩크는 남자 가수가 이 역할을 맡는 일을 거부했다고 하네요. 헨젤은 사내아이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남성 가수가 노래하는 것이 어색해,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노래합니다.
다양한 연출들 가운데는 젊은 여성 연기자와 나이 든 여성 연기자가 마녀의 양면을 연기하게 한 바그너의 둘째 부인 코지마 바그너의 연출, 어머니와 마녀를 여성 성악가 한 사람이 연기하게 해 집안의 삶과 마녀 집의 삶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 아르노 뷔스텐회퍼의 연출, 과자로 만든 집 대신 온갖 과자가 가득 쌓인 마트 진열대를 무대 위에 펼쳐 보인 로랑 펠리의 유머러스한 연출 등이 돋보입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헨젤-그레텔-마녀 순)
[음반] 브리기테 파스벤더, 루치아 포프, 애니 슐렘 등, 게오르그 숄티 경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빈 소년합창단, 1978년 녹음. Decca
[DVD] 릴리아나 니키테아누, 말린 하르텔리우스, 폴커 포겔 등,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취리히 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프랑크 코르사로 연출, 1999년 실황. TDK
[DVD] 안티고네 파풀카스, 안나 가블러, 한스 요아힘 케텔젠 등, 미하엘 호프슈테터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및 슈타츠오퍼 여성/어린이 합창단, 카타리나 탈바흐 연출, 2006년 실황. EuroArts
[DVD] 제니퍼 홀로웨이, 아드리아나 쿠체로바, 볼프강 아블링어 슈페어하케 등, 오노 가츠시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글라인드본 합창단, 로랑 펠리 연출, 2008년 글라인드본 극장 실황. Decca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3 / 박종호> 공연평 ★★★
<헨젤과 그레텔> 영상물 가운데에서 입문자를 위해 하나만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이것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로랑 펠리의 연출이 탁월하고 교훈적이다. 요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 바로 과자로 만든 집이 아니겠는가? 과자를 많이 먹고 비만이 된 어린이들의 모습이나 쓰레기로 황폐해진 숲은 충격적이다. 쿠체르코바(그레텔)와 홀러웨이(헨젤)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연기와 가창을 보인다. 그리고 아블링거슈페르하케를 능가하는 마녀가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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