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위챗장사 시작
19세에 경제적으로 자립
21세에 인생의 첫번째 자가용 마련
22세의 그녀는 연봉 300만원의 사업가
그녀의 꿈은 선생님
▲ 심은미씨 (22세)
(흑룡강신문=하얼빈)“평범한 사람이었어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평범하게 자랐어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심은미씨는 평범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고중에 진학할 시점에 그녀는 남들이 다 가는 고중입학시험을 치르지 않고 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사범학교를 선택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게 그의 첫번째 꿈이었다.
처음으로 고향인 길림성 훈춘과 부모님의 품을 떠나 외지에서 기숙사생활을 했다. 자유로운 젊은 청춘들의 만남은 혈기가 넘쳤고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또한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에 비해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생활비는 한없이 부족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위챗”을 통해 물건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용돈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녀는 곧바로 위챗장사에 착수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18살이었다.
용돈벌이로 시작한 위챗 장사
처음부터 원대한 목표나 꿈은 없었다. 용돈을 벌어서 생활비에 보탬을 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위챗 장사는 예상보다 잘됐다. 그때는 토우보우 장사가 대세였고 위챗을 사용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적었다. 주변에서는 사진 몇장 올린다고 그게 장사가 되냐는 냉랭한 태도였다. 그녀는 그런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때 시작을 하는 것이 경쟁력이 적어서 더 잘 될 수 있을거란 판단을 했다. 과연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사진 몇 장 올렸을 뿐인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투자의 위험부담이 전혀 없이 그렇게 위챗장사를 시작했다. 화장품, 의류, 렌즈 닥치는대로 팔았다. 옷 한 벌에 50원, 100원의 마진이 발생했다. 할만한 장사였다. 어느덧 그녀의 한 주일 수입은 1000원이 되었고 그녀는 더이상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달라고 손내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생활비는 물론, 졸업하는 해까지 학비도 직접 벌어서 해결했다.
신용도를 높이고 인맥을 넓히다
1년여 사이에 그녀의 신용도는 서서히 올라가 위챗 친구는 5000명으로 늘어났다. 그녀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쌓아올린 인맥이었다. 그녀는 위챗 장사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고 위챗을 통하여 뭔가 더욱 큰 장사를 할 수 있겠다는 신념이 자리잡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성과물로 1년 안에 자신에게 자가용을 선물하겠다는 꿈도 키웠다.
그녀는 자신의 이 꿈을 5000명이 보고 있는 모멘트에 보란듯이 올렸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녀는 원래 계획했던 1년에서 7개월이나 앞당겨 5개월안에 이 꿈을 실현했다. 스물한살 되던 해, 그녀는 22만원짜리 폭스바겐 자가용을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목표는 무조건 매일 적는 것이었다. 마치도 학창시절 매일 숙제를 하듯이 말이다.그녀의 꿈 또한 나무가 자라듯이 하늘을 향해 계속 자라났다.
▲ 심은미씨(왼쪽)와 필자
새로운 아이템을 만나다
22만원은 그녀가 그때까지 위챗장사를 하면서 모은 전부의 저축이었다. 게다가 그 즈음에 위챗장사는 누구나 다 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위챗장사는 이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었고 그녀의 주머니사정은 다시 어려워졌다. 이제는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장사하기보다는 오래 갈 수 있는 제품력 뛰어난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9월, 심은미씨는 친한 친구로부터 화장품 판매를 제안 받았다. 처음에 그녀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화장품은 이미 너무 많이 노출된 아이템이었고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라면 인지도가 떨어져서 소비자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제안을 한 친구는 그녀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기에 차마 친구의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화장품 무료 체험을 받으러 갔다. 그 화장품이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 화장품의 이름이 뭔지조차 그녀는 관심이 없었다. 허나 그번의 인연이 연봉 300만원의 그녀를 만들게 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그녀로 말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간 셈이었다. 아무 기대없이 무료체험을 받았고 이미화씨(현재 심은미씨의 스폰서)로부터 제품 샘플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공짜로 받은거니까 한 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샘플을 며칠동안 써보면서 그녀는 연일 감탄사를 연발했다. 기존의 여느 제품과도 확실히 달랐다.
“피부가 촉촉해지고 모공이 작아지고 얼굴에 광택이 났어요. 주변 사람들이 다 물어봤죠. 너 대체 얼굴에 뭘 했냐고요.”
그녀는 인터넷으로 그 제품에 대해 폭풍검색을 했다. 그러고나서 곧바로 자신의 체험을 빠짐없이 적어서 모멘트에 올렸다. 지금껏 써본 화장품 중 최고라는 찬사와 함께. 그녀의 진솔한 체험담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친듯이 문의가 들어와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미처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녀는 무료체험 받으러 갔을 때 받아온 이미화씨의 명함을 찾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 그녀의 영원한 멘토 이미화씨(오른쪽)와 함께
그녀는 그 화장품에 대해 상세한 요해를 시작했다. 매일 이미화씨와 2-3시간씩 통화를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하는 장사는 위챗 모멘트에 제품사진과 설명을 올리고 주문을 받아서 택배로 보내주면 그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라인에서만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이 화장품을 접하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명 브랜드도 아니고 인지도도 별로 없는 이 화장품을 알리려면 무료체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제품력이 좋아서 한 번 무료체험을 받아본 고객들은 90% 이상이 구매가 이루어지는 제품이었다. 이미화씨와 함께 무료체험을 해주면서 한 주일동안에 30명이 넘는 체험손님을 받았고 11종이 한 세트인 화장품을 20세트나 팔았다. 자신감이 200%로 업됐다. 그녀는 기존에 해왔던 방식만을 고집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실행력이 뛰어난 그녀는 당장 50평 남짓한 집을 세맡아 체험실을 꾸렸다. 이 제품을 접한 지 3개월 만이다.
장사꾼에서 사업가로
심은미씨가 접한 새 아이템의 이 화장품은 본사가 한국에 있고 모든 생산이 한국에서 진행되었다. 제품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그녀는 학교 방학을 맞아 한국에 놀러도 갈 겸 르네셀 화장품 본사도 구경할 겸 하는 생각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마침 본사에서 진행하는 1박2일 비파티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번 행사에 참석하여 그녀는 이 제품의 성분과 효능, 제조원리는 물론, 바르는 순서, 영업, 수익구조 등에 대해서 많은 걸 배웠다. 홀로 위챗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업에 대한 강의를 들은 셈이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건 장사가 아니라 사업이라는 엄청난 임팩트를 깨달았어요.”
연길에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을 새롭게 정의했다. 장사꾼이 아닌 사업가로. 사업에는 독불장군은 없다. 그녀는 본사에서 배운 지식을 적용하여 팀을 구성했다. 그녀는 팀원들에게 본인이 한국에서 배워온 지식을 공유했고 그와 동시에 광고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북경 고속도로에 광고판을 커다랗게 내걸었다.
북경에서, 심수에서 전국 각지에서 연길로 그녀를 찾아와 사업 상담을 했다. 그녀의 체험실은 손님으로 미여터질 지경이었다. 한국인, 조선족, 한족 모두가 그녀의 고객이었고 잠재 사업자였다.
3개월 후인 2016년 2월 중순에 그녀는 “대리점”으로 승급을 했다. 대리점이 되는 조건은 본인을 포함한 세 명 이상의 사업자가 3개월 안에 540만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3개월 뒤인 5월 16일 그녀의 21살 생일날, 그녀는 운영위원(매출 1600만원 달성)으로 승급했다. 심은미씨는 이 회사의 최연소 운영위원이었다. 눈부시게 빠른 성장은 그녀를 또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녀는 앞에 나가서 팀원들에게 제품에 대해 설명했고 자신의 노하우에 대해 설명했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된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돈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돈에 관련한 배움에 대해 나는 항상 적극적이었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죠. 만화책보다는 성공학에 관한 책을 즐겨찾았고요.”
그녀는 이렇게 회억했다. 운영위가 되고 나서 그녀는 더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원래의 50평 남짓한 체험실을 물리고 위치 좋은 곳에 100평짜리 상가를 세맡아 로드샵을 냈다. 제품 진열장, 체험실, 사업자 상담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넓고 산뜻한 공간이다.
▲ 운영위원 시상식 무대에 올라
평생 상생
새 아이템을 만난 지 1년 6개월, 그녀는 월 수입 3만원에서 이제는 월수입 24만원이 넘는다. 22살의 그녀는 벌써 130평짜리 집도 장만했다. 한 가지 제품을 3개월 정도만 팔면 싫증이 나서 다른 제품으로 바꾸던 그녀에게 새 아이템의 이 화장품은 평생 하고 싶은 사업이 되었다. 특히 회사의 좋은 수익구조와 수많은 혜택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에 대해 더할나위 없이 만족하게 하였다. 3개월에 한 번씩 6만원의 매출 달성한 사업자에게 주는 순금팔찌, 목걸이, 1년에 두 차례의 해외여행. 그녀는 작년 연말 회사의 “폴라리스클럽” 30명 회원중의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실적이 가장 좋은 30명의 회원을 보라카이로 3박5일 여행을 보내주는 행사였다.
“회사와 함께 더불어 평생, 상생하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더 큰 꿈도 그릴 수 있고 지금부터 노후대비도 해야죠.”
그녀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매달 출시되는 신 제품, 월 유지비 없는 수익구조, 뛰어난 제품력, 팀웍 이 몇가지를 그녀는 이 아이템의 우수성으로 손꼽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5~6개월만에 월 수입 3만, 1년 반 사이에 월 수입 24만원을 이룩할 순 없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거절을 두려워 하지 말라”, “ 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말로 자신의 성공비법을 전수했다.
그녀가 이룩한 눈부신 성과는 결코 평탄한 길만 달려온 건 아니다. 흐려진 시장 가격때문에 판매가 어려웠을 때도 있었고 하루에도 수차례의 거절을 당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고객은 6개월 동안 끈질긴 공을 들여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 고객이 잊을만하면 찾아갔고 거절을 해도 또 다시 찾아갔다. 좋은 제품을 쓰면서 같이 돈을 벌자는 애정어린 마음에서 출발한 진심은 결국에는 먹혔다.
“참신한 아이디어도 필요해요. 똑같은 제품, 똑같은 가격이지만 성의있는 증정품을 드리는 것으로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똑같은 강의라도 장소나 분위기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가 있죠.”
북극성이 되어 길을 가리키다
늘 제자리에서 밝은 빛을 뿌려주며 사람들에게 방향을 가리키는 북극성, 이제 그녀는 르네셀 회사의 북극성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은 복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사업 자체가 복제사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속도에 박차를 가하면 월소득 50만원도 거뜬히 이룰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수입보다는 팀원을 키우는데 더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함께 가야 오래 갈 수 있으니깐요.”
평범한 일을 매일 평범한 마음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 비범한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녀는 늘 초심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진정한 성공은 성장임을 깨달은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더욱 높이, 더욱 크게 성장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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