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단종문화제 전국 학생백일장 고등부 산문 금상작품
장터
엄보람 석정여고 2년
어린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고 채 몇 발자국 지나지 않은 그곳에는 5일마다 장이 열렸습니다. 이 동네, 저 동네 어디들 숨어있다 모여들었는지 좁은 시장길은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수도없이 옷깃을 스치며 지나는 그 길 양 옆으로는 매번 순서도 바뀌지 않고 낯익은 얼굴들이 한바탕 물건들을 벌여 놓았습니다.
장이 시작되는 골목, 찻길 쪽에는 솜구름마냥 복슬복슬한 강아지들이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샛노란 병아리는 시끄럽게 재잘댔습니다. 그 앞을 지나 좀더 안쪽에는 살짝 이지러진 사기그릇들이 고운 꽃무늬로 멋들어지게 흠을 감추고 있었고 바로 옆 한무더기의 밀짚 모자는 쏟아지는 봄볕에 뜨뜻한 낮잠을 청하기 바빴습니다. 통통한 고등어의 생기넘치는 푸른 빛에 눈이 시렸고 닭꼬치는 맵쌀한 냄새를 풍기며 잘도 익어갔으며 여린 두릅순은 만지면 소리도 없이 손가락을 간질였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눈만 감아도 하나하나 짚어갈 수 있을만큼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장터는 그네와 뱅뱅이와 미끄럼틀만 있는 아파트 앞 그곳보다 훨씬 매력적인 놀이터가 되어주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집은 다리 하나 건너 이사를 했습니다. 교복 단추를 채우며 스스로 기특해했던 것도 잠시 온종일을 시간에 머리채를 휘둘리다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뜨기 일쑤였습니다. 학교 끝나면 학원, 학원 끝나면 숙제, 숙제하다 잠들고, 깨어나면 또 아침. 초등학생은 노는 것이 공부라는 엄마의 신조 덕분에 놀기에만 익숙해져 있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짜증만 늘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면서도 불평과 투정은 입가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놀기 좋아하고 웃기 좋아하던 어린 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중학교 3년 내내 세상 걱정은 혼자 다 짊어진 사람마냥 지내며 수련회, 수학여행, 소풍사진 속에서조차 저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지 않았습니다.
3학년이 끝나갈 무렵 적성검사를 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검사를 마친 후 몇 달을 더 기다린 끝에야 결과를 손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검사 결과를 바탕삼아 그럴듯한 장래계획을 세웠습니다. 엄마에게 자랑할 생각에 썩 좋았던 마음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듯 찜찜했습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퍼붓고 기분은 매순간 하늘로 치솟았다 땅으로 고꾸러지기를 반복했고 마음은 괜히 불안하고 울렁거렸습니다. 환히 웃던 내 얼굴을 잃은 것은 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며 끝도 없이 자신을 속이고 바보같은 위안을 삼았습니다. 3년을 세상에서 제일 바쁜듯이 살면서 단 한번 마음을 다스린 적도, 인간성을 챙긴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장터로 돌아갈 때가 되었나봅니다. 너무 오래 그 곳을 떠나 미소도 버리고 진심도 버리고 순수함도 버리고···. 미친듯이 달리면서 진짜 소중히 지켰어야 하는 것들만 구멍난 주머니 사이로 줄줄이 빠트리면서 3년이란 시간도 함께 흘려 보내버렸습니다. 이제는 장터로 돌아가 그리웠던 그 마음도 닮고 싶고 많은 이들이 제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하게 길러 낸 것들을 함께 주거니 받거니 나눌 수 있는 그런 장터를 꼭 닮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저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마음이 터질 듯 가득찬 비닐봉지 마냥 그득히 부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졌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에 새로이 치이다보면 또 다시 만신창이가 된 마음은 또 다시 이런 다짐을 잊게될 것입니다. 그럴때면 장이 열리는 그곳으로 돌아가 어린시절 사방으로 찍어 놓았던 작은 신발자국 옆에 나란히 제 구둣발을 포개어 보겠습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잃었던 환한 미소를 되찾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