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남자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잠을 잘 못 잤는지 눈 주위가 푹 꺼져 있었다. "제가 유영철이 살해한 할머니가 살던 건물을 샀는데요, 아무래도 너무 꺼림칙해서요." 그는 살해당한 할머니 영가를 위해 천도재를 올리고 싶다며 구명시식을 청했다. 나는 이 구명시식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초혼할 영가도 할머니 영가뿐이었고, 아직 유영철의 형이 집행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살인자 영가와 피해자 영가가 한꺼번에 구명시식에 나타날 일도 없었다. 애초 집주인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피해자인 할머니 영가를 달래주는 정도로 구명시식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구명시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문제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빙의된 악령들이었다. 살해된 할머니 영가를 초혼하자 유영철이 살해한 다른 영가들까지 모두 구명시식에 나타났다. 과거 화성 연쇄 살인사건 등 각종 살인사건에 얽힌 구명시식을 올린 적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 영가들과의 대면은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피해자의 수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아 당혹스러웠다. 분명 모두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영가였다. 본의 아니게 구명시식은 피해자 영가 모두를 위한 자리로 변했다. 그들에게 들은 살해 과정은 끔찍했다. 도대체 유영철은 어쩌다가 이런 끔찍한 살인마가 되었는가. 나는 이번 구명시식으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비슷한 무리의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이 말은 영적으로 해석할 때 더욱 맞다. 자신이 화를 많이 내면, 불같이 화를 내는 악령이 빙의되고, 항상 살인을 생각하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령이 붙게 된다. 뜻하지 않은 사태란 유영철에게 빙의됐던 살인마령이 구명시식 현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살인마령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독하게 여자를 증오하는 영가들로 과거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뒤 사형당한 살인자 영가들이었다. 모두 여자에게 배신당하거나 크게 상처받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영가들은 유영철과 같이 여자를 증오하는 범죄자에게 빙의되어 아무 이유 없이 여자만 보면 죽이도록 무의식적으로 지시했던 것. 주로 여자를 대상으로 한 유영철의 살해행각이 치밀했던 것 역시 고도의 살인마령들의 테크닉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과연 살인자인 유영철과 피해자들은 어떤 관계였나. 금생을 놓고 보면 둘은 생면부지의 그 어떤 관계도 아니다. 더욱이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도 유영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피해자도 많았다. 하지만 유영철에게 빙의된 수많은 살인마령들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나는 도저히 구명시식을 진행할 수 없었다. 목구멍으로 구토가 밀려왔다.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피해자 영가님들에게 오로지 영가님들만을 위한 천도재를 정성껏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구명시식을 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