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의정부교구 한마음수련원 관리장 한상욱 요아킴
한결같은 성실함과 봉사의 자세로
최태용 레오 의정부 Re. 명예기자
의정부교구 한마음수련원 관리장 한상욱 요아킴 형제를 만났다. 그는 “한마음수련원 관리장으로 재직하면서 얼굴을 드러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내세울 게 없다고 수줍어했다.
양주 어둔리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매우 성실하고 업무에 철두철미했던 한상욱 청년을 아끼던 김덕보 회장은 한마음수련원 매입(1983년 12월27일)을 주도하던 당시 이사응 안토니오 신부님(2007년 10월27일 선종)께 그를 추천하여 1984년부터 관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관리인으로 수련원 주임신부와 직원들에게 성실하고 청렴한 생활을 인정받아 일대 약 39만 평을 관리하는 관리장이 됐다. 35년간 한마음수련원 안팎을 관리해온 한상욱 관리장은 2012년 정년퇴임했지만 곧바로 계약직으로 임용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동료 직원들과 수련원에 입소하는 교우들을 위해 눈을 치우는 관리장은 봉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눈 치우는 일은 직원들과 같이 해야 하지만 자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피정, 연수받으러 입소하는 신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살피고, 수련원 내 예초 작업 등 환경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며 동료 직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둡기에 빛을 찾고자하는 마음 강렬해져
안나 자매가 끓여온 떡국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인터뷰하던 도중, 그는 “정말 맛있네요. 꿀이나 설탕을 넣었는지 달면서도 쓴 게 꼭 우리 인생을 닮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한마디였다. 그가 말하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의 의미를 물었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느끼는 마음의 맛은 단맛이겠지요. 반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때는 쓴맛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쓴맛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쓴맛은 인생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인생이 늘 장밋빛일 수는 없잖아요? 쓴맛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치열하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게 보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가난을 어려서부터 겪어온 터라 일찌감치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중매로 결혼하면서 월세집도 구할 수 없어 형 집에 살았지만 오래 같이 지낼 수 없는 처지이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한마음수련원 초입 숲속 오두막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 내가 사는 어둔리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니 ‘산자락에 있어 일찍 해가 지는 동네’라 그야말로 어두운 곳이었기에 붙은 이름이랍니다. 그 뜻을 알고 난 후부터 어둡기에 빛을 찾고자하는 마음이 강렬해졌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밤에도 낮처럼 열심히 일하고, 하루 5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는 지독한 일벌레로 살다보니 주위에게 착하고 부지런하다는 칭찬은 많이 듣지만 몸은 항상 피곤했다. 그런 그를 아내 성 안나 자매는 묵묵히 내조했고, 두 딸을 낳아 키웠고, 어렵고 힘든 시기에 가족의 중심이 되었다. 가족을 뒷바라지하며, 성가정이 되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그 사랑으로 딸들을 가르치고, 딸들로 하여금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성가정 어머니라고 아내를 칭찬한다. 그는 지나온 청춘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를 세상과 통하게 다른 문을 열어준 일우회라는 친목회가 있다. 수련원에서 산속 생활만 하다 보니 일반 사회생활을 전혀 모르던 그는 천주교 말띠 동갑내기 신자들의 모임을 소개받았다. 주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누구보다 마음이 열려있고 풍요로운 사람들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의 친구들을 보며 그들을 좋아했고 그들의 행위를 배웠고, 좀 더 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산속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주님의 기쁨에 온전히 함께 하도록 이끌어준 일우회 친구들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삶 안에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염원해 봅니다.”
내가 필요하다면 무조건 실천
고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신앙생활을 꾸준히 해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저 생활신앙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 매주 토요일 직장 동료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면 모든 이들이 다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용현동성당에서 레지오 활동, 성가대 총무, 노인대학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연천 시골에 이사 온 후부터는 큰딸 한주희 마리아, 둘째딸 한민희 엘리사벳 두 딸들도 출가하여 어깨의 짐이 가벼워졌다며 나보다 못한 이웃과 조금씩 나누며 사는 중이라고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연천군 군남면 황지리 낯선 시골 마을에 들어와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지만 이제는 한적한 시골생활에 여유 있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손발이 되어 주고 행복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아내가 고맙단다.
“누가 제게 “시골에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헌집을 리모델링할 때 틈틈이 국수와 부침개를 가져온 사람, 따뜻한 밥 먹으며 막걸리 한잔 나누며 정다운 대화를 나눈 사람, 일손이 모자랄 때마다 자기 일처럼 거들어준 사람, 아내 혼자 놔두고 출근하는 주말 부부지만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게 해 준 이웃사람, 자연 속에서 자연을 닮아 살아갈 수 있도록 못난 저를 이끌어준 모두가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한상욱 형제는 “한마음수련원에 피정, 연수 때 입소한 분들에게 내가 필요하다 싶으면 무조건 실천에 옮기고 최선을 다했기에 35년이라는 참 오랜 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 후 바로 계약직으로 복귀한 것은 큰 기쁨이고 영광”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