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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IT 신화- 벨 연구소 출신 김종훈 장관 후보자는 누구인가?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약칭: 미래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된 김종훈. 그는 누구인가? 미국과 세계, 지구인을 경악시킨, 세계 최고의 입지전적인 인물 중의 하나. 벨 연구소는 한마디로 미국의 자존심이며 또한 미국인의 자존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2005년부터 김종훈 사장이 이끌어 왔다.그가 미국으로 이민 당시 조국이 김종훈에게 준 것은 가난과 헐벗음 뿐 아무 것도 없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되어 다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면 힘찬 박수와 뜨거운 갈채를 보내주어야 마땅하고 설사 헐뜯을 꺼리가 있더라도 감싸주어야 마땅하다 그게 인간적인 인간,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이민가서 수십년째 사는 사람이 미국시민권자가 되어 조국을 사랑하며 열심히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보는데(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 사람들) 그걸 문제삼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뒷다리를 잡는 일부 사람들은 애국심, 민족, 글로벌....이런 단어의 뜻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시대에 뒤떨어진 자들이라고 본다.
정치성이 지나치면 인간성이 괴물성이 되는 것이다. 또 일부 좌파들은 김종훈을 두고 CIA 어쩌고 저쩌고 그런다. 거기에다 세계 최고의 벨연구소 대장이었으니까 김종훈은 미국과 관련된 수많은 고급 정보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좌파들의 논법대로 하면 그 수 많은 고급 정보들을 한국에 제공할까 봐 미국은 당장 비상이 걸렸을거라고 호들갑을 떤다. 툭하면 남 헐뜯기나 하면서 그 맛에 인생을 사는 인간들이야 콩밥 달라고 해서 콩밥 주면 콩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고,그래서 콩을 조금 빼내고 주면 콩이 너무 적다고 투덜거린다. 이래도 불평, 저래도 불평...
김종훈은 세계적인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며 글로벌 IT계의 신화적 전설적 인물이다. 김종훈은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했다. 김종훈은 한국 국적도 있다. 미국 국적 포기...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재산이 약1조원 추정시 미국에 2500억 정도의 세금(국적포기세)을 내야... 그야말로 무엇하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2500억원을 그냥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
김종훈은 스탠포드 대학에 200만 달러를 기부하여 한국학 강좌를 개설하게 하고 메릴랜드대 공대에도 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세계 최고 통신장비 회사를 1998년 당시 한화 1조3000억원에 매각, 직원들에게 주식의 40%를 나눠주며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훌륭한 팀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라고 말한 김종훈. 이 외에도 그는 남몰래 수 많은 나눔을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부왕이다.
우연히 "글로벌 성공시대" 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김종훈 사장의 입지전적인 성공스토리를 시청한 적이 있는데 김종훈 사장은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인간적인 승리를 거둔 사람으로써 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이민생활을 통해 하루 하루의 시간을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며 오늘 하루 좀 더 노력하면 내일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들였던 노력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었고 성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성공을 주위에서 도와준 동료들과 함께 나누었다.
다음은 그의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
86년 전통의 세계 최고의 IT 연구기관 벨(Bell) 연구소. 이곳에서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동양인이 있다. 벤처 정신으로 좌초 위기에 빠진 벨 연구소를 구한 사람, 그의 리더십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15살의 그는 역경 속에서도 최고를 꿈꾼다. 이십 년 후인 서른 여덟의 젊은 나이에 10억 달러의 미국의 400대 부자 반열에 오른 그. 그러나 그는 십여년 간 하루 2시간만 자는 지독하고 치열한 노력을 했다.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불가능에 도전한 살아 있는 IT의 신화, 그는 바로 벨 연구소의 김종훈 사장이다.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뉴욕,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벨 연구소는 인근 뉴저지에 자리잡고 있다.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이 남자는 종 킴으로 불리는 그는 전세계 8개국에 26,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세계 각국에서 온 이메일을 확인하기 바쁘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출장으로 보내는 그다. 김종훈 사장은 사장실에 앉아 있을 때가 많지 않다.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보다 직접 찾아가 토론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연구원들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말이 잘 통하는 사장이다. 특히 벤처사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연구원들이 부족한 실용화 방안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1925년에 세워진 벨 연구소 로비에는 그 모태가 된 과학자 벨의 조각상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전화기, 통신 위성 등 수 많은 기술이 개발되었다.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낸 벨 연구소는 지구촌의 발명 센터로 통한다. 김종훈 사장이 벨 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신이 세운 벤처기업 루슨트를 벨 연구소에 매각하며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곧바로 루슨트에 부문별 사장으로 역량을 발휘했고, 그에게 벨 연구소의 사장직의 제의가 들어온 것은 두 번이었다. 첫 제의를 고사했던 그에게 루슨트는 벨 연구소가 위기에 처한 2005년 김종훈에게 SOS를 처했다. 좌초위기에서 오히려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사장직을 수락한 김종훈. 사장직이 되고 나서 7년째 프랑스 파리의 알카텔 루슨트에 출장을 가고 있다.
알카트 루슨트는 전세계 100여개 나라에 통신장비를 구축하는 세계적인 통신장비 회사다. 파리에 와서도 김종훈 사장은 여전히 동분서주다. 6시간의 시차 때문에 힘들 법도 하지만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점심도 간단한 빵과 음료로 떼워가며 일을 놓지 않는다. 이런 지독한 열정으로 벨 연구소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출장에서 그는 새로운 임무를 더 맡게 되었다. 벨 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전략부문 사장직까지 맡게 되었다. 이틀 뒤 그는 이 주간의 파리 출장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글로벌 기업이다보니 그는 세계 각국을 발로 뛴다. 일년의 반을 해외에서 보낸 흔적이 고스란히 여권에 남아 있다. 승진 이후 더욱 바빠진 그의 발걸음. 그가 벨 연구소의 사장으로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연구소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벨 연구소에 벤처팀을 창출해 수 많은 연구 실적을 상품화할 수 있게 했다. 그의 시도에 반신반의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결국 그의 모험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식사시간을 아끼려다 보니 피자는 그가 회사에서 가장 자주 먹는 단골 메뉴. 사장이 되서도 연구원들과 함께 피자를 먹는 그는, 여전히 못말리는 일 중독자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결코 안주하는 법이 없는 김종훈 사장, 지독한 노력과 뚝심으로 그는 오늘도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워싱턴으로 출장을 가는 길, 기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이메일 확인에 바쁜 김종훈 사장. 그는 이렇게 업무가 많을 때는 자가용 대신 기차로 출장을 떠난다. 그런데 그가 기차에 오르게 무섭게 옆자리에 앉는 이들이 인사를 청한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의 유년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서울 정릉의 산동네에 살았던 그는 자주 굶어야 했고, 그의 가족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이민을 결정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가 열 다섯 살에 미국에 첫 정착했던 곳은 메릴랜드의 한 빈민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늘 놀림받고 외톨이였던 시간들. 학교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수업과 그보다 더 싫은 공짜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점심값 50센트가 없어 정부에서 주는 식권으로 끼니를 떼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을 공짜밥과 바꿀 수는 없었다. 김종훈의 10대시절 하루는 참 길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했던 그는 편의점, 신문배달, 주방보조까지 아르바이트 하느라 매일같이 밤을 새야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학교로 달려 가야 했다. 날마다 밤을 세다 보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교통 사고가 나서 구사 일생으로 살아난 일도 여러 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고교를 마칠 수 있었던 건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고교시절 교사 덕분이었다. 김종훈은 힘든 환경에서도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바꿔 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었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 1: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무언가를 하라.
# 김종훈의 성공노트 2: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는 기술 개발에도 온 힘을 쏟았다. 걸프전 당시 데이터 송수신이 안 된다는 사실을 착안해서 ATM통신 장비를 개발해냈다. 그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유리 시스템즈에 대박을 안겨 주었다. 실제로 벤처보다 비싼 10만달러에 팔려나간 ATM은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팔리고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김종훈 사장은 유리 시스템즈가 혼자의 성공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직원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팀워크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믿는 사장이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 3: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좋은 팀을 이뤄라.
1997년 나스닥에 상장한 유리 시스템즈의 주가는 첫 주 만에 2배로 뛰었다. 이듬해 유리 시스템즈의 주가를 10억달러(한화 1조 3,000억)에 매각하며 미국 400대 부자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무려 40% 넘게 나눠 주었다. 직원들 중에는 스무 명 가량의 백만 장자가 등장했다. 게다가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그를 사장으로 영입하기 까지 했다. 루슨트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1998년은 김종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끼니를 거리기 일쑤였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20년 만에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이룬 성공자 반열에 우뚝 섰다.
루슨트는 벨 연구소 사장직과 관련해 김종훈에게 두 번이나 사장직 제의를 했다. 첫 제의는 2001년이었는데 그때 사장직을 고사했다. 벨 연구소에 위기를 맞은 2005년 그는 특유의 도전 정신으로 사장직을 수락한다. 좌초 위기에 타이타닉호라는 벨연구소의 위기를 일으켰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오랫동안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야 했고, 가난과 싸워야했던 그에게 성실은 큰 무기였다. 그는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우쳤던 것이다.
# 김종훈의 성공노트 4: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장 김종훈, 그가 직원들을 축하하기 위해 한 팀을 찾았다. 이 팀에서는 세계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기술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실패를 거듭한 연구원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것이 원동력이기도 했다. 행동하는 리더이자 상용화 전략이자 수입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김종훈 사장. 전임 사장인 아론은 그의 리더십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2009년부터 김종훈 사장은 모국인 한국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서울에 벨 연구소를 열어 윈윈 전략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발로 뛰며 두 시간을 자고도 버티는 그의 강철 체력의 비결은 그는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
김종훈 사장과 함께 유리 시스템즈에서 일했던 직원들 중에 무려 20여명의 백만 장자가 나왔다. 성공은 혼자 이뤄낸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으로 성공의 댓가를 함께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본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 라고 김종훈 사장은 말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실패나 성공에 연연하지 말고 하루 하루 새롭게 도전하라는 것이다.
워싱턴을 찾은 김종훈 사장, 그는 종종 미국 프로 농구팀에서 사업자 친구들을 만나곤 한다. 그는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이곳에서 자선활동을 해서 또 감탄을 준다. 그는 전사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농구 선수였던 이 팀을 인수했다. 사업 뿐만 아니라 운동에서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김종훈 사장, 그는 철인 삼종 경기에 도전한 적도 있다. 50대 나이에 기록은 저조하지만 마라톤 완주까지 해냈다. 고학으로 어렵게 성공했던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한국학 강좌에 기부하고 있다. 김종훈 사장은 부를 나누는 것이 성공한 리더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루 2시간 자고 쓴 피나는 노력으로 쓴 벤처 신화. 하루하루 흘린 숱한 땀방울들이 모여 오늘의 그를 만들었고, 내일을 향해 오늘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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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긴 고속도로 놓때 전부 반재한 야당과
원남 파병 때 반대한 야당이 있어
앞을 맢을 못 보면 의견과 정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지 않는가
김종훈 기대되는 인물이니 우리 미래창조가 어찌되나 기개해보지?
나도 국적문제를 시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 다른 점이 부족한게 있으면 따져도 되겠지만
불도저로 국익에 반대하는 자 밀어라 뒤에 정의롭고 올 곧은 국민이 더 많다 남노당 공동 XX 판문점 통해 보내고 잘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게
에궁~방금 전 김종훈 후보자가 전격 사퇴...오죽했으면...대한민국의 참담한 3류급 정치풍토와 수준에 실망과 좌절을 느낀 듯...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에휴~ 우리나라 정치현실에 진저리 치고 사퇴하였단 보도에 내도 답답하더이다.
그 뉴스보고 실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