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에 대하여
장성호(시인)
가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여성은 겉으로는 남성답고 강하지만 속은 물길처럼 부드러운 남성을 좋아한다. 여성은 외강내유형 남성을 선호한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종전 "나는 괜찮아, 아무 문제없다"고 하던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운다. "내가 괜찮지 않다"고 한다. 남성이 외유내강형인 여성성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남성의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인 여성성이 겉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닐까. 음양사상을 들지 않더라도 음은 감성, 느림, 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도는 이방인 등을 상징한다. 반면에 양은 이성, 빠름, 낮, 붙박이 정주인을 상징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사회에서 남보다 빨리하라고 배웠다. 전 세계적으로 문명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배웠다. 성공하는 백 가지 습관처럼 빨리 할수록 성공한다고 들어왔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수확의 대상이나 상품으로만 간주하는 것이다. 낮만 존재한다면 미치도록 외로울 것이다. 밤과 같은 문화적인 경험과 인연의 확장으로 영혼의 결핍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한편 밤만 지속된다면 우울증, 조울증 등이 초래될 것이다. 우울증을 겪은 작가 앤드류 솔로몬은 삶이 제거된 듯한 무력감, 극심한 폭력성, 극도의 우울감 등 숨겨진 비밀에 대하여 자기 고백을 발표한 적이 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실존주의 부조리극의 시초인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우울을 잘 표현하고 있다.(내가 태어났거나 말거나 살아 왔거나 말거나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죽어가고 있거나 무슨 상관이랴. 늘 그래 왔듯이 자기는 누구이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은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계속 살아갈 텐데.) 이렇게 밤만 끝없이 지속되면 중증 우울증으로 생물학적인 사망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갓난아이는 밤낮으로 먹고 자고 싸기만 한다. 그에게는 아직 이성적인 사고는 멀고 전적으로 감성적인 본능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방인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 그냥 바깥세상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젊은이가 된다. 그에게는 점점 이성적 사고 활동이 활발해지고 감성적인 본능은 줄어든다. 이성과 감성의 비율이 6대 4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갓난아이처럼 이성적인 사고 활동보다는 전적으로 감성적인 삶을 살게 된다. 다만, 어린아이가 피카소 그림처럼 그렸다고 어린아이가 피카소와 같은 위대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은 이방인으로 태어나서 이방인으로 죽는다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성적 활동과 감성적 활동의 총량은 같다는 총량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총량적으로 5대 5의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한편, 어제는 오늘의 이방인이다. 어제는 오늘의 어머니다. 어제는 오늘의 밤이다. 이것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우리의 자화상이다. 살아온 지난 삶은 바로 이방인의 노래이다. 이방인은 밤의 노래이고 어머니의 노래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낮의 광기에 치우쳐 있다. 낮에 대한 밤의 향기에 무게의 중심추가 놓여져야 한다. 그래야 낮과 밤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진화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나이 들수록 더 감성적이 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인 자손을 낳고도 더 살고 사랑과 자유 같은 감성 욕구가 더 민감해진다. 사랑을 갈망한다. 삶에 대한 욕구, 내 존재를 느끼기 위한 사랑에 대한 욕구이다. ‘나’라는 정체성은 이방인과의 관계를 맺은 타인을 통해 정의된다. 나이가 들어도 관계의 욕망은 줄어들지 않는다. 삶의 후반부는 신체적 매력은 감소하나 문화를 통한 상징적 사랑을 하기에는 최적화된 조건이 된다. 당신의 역사 안에는 한 사람의 문화가 담겨 있다. 남은 삶이 줄어들수록 삶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더 크다.
소설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대하여 말했다. 사진은 메멘토 모리를 함축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거는 타자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즉 사진은 해석보다는 어떤 방식의 실천을 요구한다. 이미지 창조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찍힌 대상을 전유하고 사회문화적 관계를 맺어 특정한 힘을 얻는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대체하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방인의 시를 짓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낮은 남성성, 이성, 빠름, 삶을 상징한다. 반면에 밤은 여성성, 감성, 느림, 죽음을 상징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의 길은 어디인가. 위대한 삶이란. 지구상의 수많은 사상가, 예술가, 철학가들이 끝없이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그 답을 찾지 못 하고 있다.
낮과 밤 즉 삶과 죽음을 극한으로 확장시켜 보면,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처럼 죽어서 사는 거, 즉 죽는삶(The dead
living) 또는 지금 죽어서 영원히 살 것인가. 이는 가능성의 불가능성이다. 역설적으로 밤의 향기처럼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다. 도처에서 쓰러져가는 이방인들을 목도하면서 우리의 굳은 이성적 자아가 폐허처럼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려 그 재 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자아와 같다. 나이가 들면서 밤의 향기에서 행복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와 반대로 매혹 때문에 불길에 뛰어드는 화려한 불나방처럼 살아서 죽는 거, 즉 사는죽음(The living
dead) 또는 지금 살고 영원히 죽을 것인가. 이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다. 역설적으로 낮의 광기처럼 굵고 짧게 사는 것이다. 나는 아직 죽어보지 않았기에 죽음을 모른다. 그러므로 죽기 전까지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젊을수록 낮의 광기에서 행복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또다시 선택 불가능성에 빠져든다. 밤처럼 가늘게 길게 살며 죽는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낮처럼 굵고 짧게 살며 사는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그러나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은 낮과 밤의 오묘한 조화에 있지 않을까. 수많은 색다른 물방울들이 만들어내는 단 하나의 바다처럼, 이성과 감성의 융합에서 즉 낮과 밤의 균형과 조화에서 각자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살아온 것이 낮에 치우쳐 있었다면 지금부터 밤의 문을 더욱 두드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낮과 밤의 오묘한 균형으로 가늘고 길게 살며 죽는 삶을 택할 것인지 굵고 짧게 살며 사는 죽음을 택할 것인지 어떤 것이 더 행복한지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밤의 속성에 대하여 요약 정리한다.
밤은 죽음, 느림, 땅, 가벼움, 계곡, 방패, 문학, 가능성의 불가능성, 무의식, 꿈, 과거, 실패, 비정확, 감성, 금성, 아날로그, 손님, 우뇌, 우회, 공간, 길고 가늘게, 패자의 논리, 전체균형, 헐벗은, 육체, 기, 유물론, 필변, 가슴, 이질적, 차이, 낯섦, 이방인, 걷기, 약자, 부드러움, 중장거리, 불투명, 왼손, 모래알, 자율적, 여성, 음, 할 수 없음, 젖힘, 침묵, 진보, 종합, 펜, 그림, 거시적, 직관, 오차방정식, 망각, 非문법적, 카오스, 모르는 것을 모르게, 텅 빈 충만, 소수 , 익명성, 색다른, 뺄셈의 법칙, 장방형, 시간 내면화, 동양, 정적, 이별, 소거, 뒤, 후굴자세, 물질, 하부구조, 어둠, 달, 우연, 돈 안 되는 일, Non비즈니스, 무정형, 추상화, 왼발, 좌익, 집단, 공동체, 늙음, 질, 수동성, 말해지는 존재, 종이책, 블루칼라, 물, 타인, 객체입장, 상대성, 귀납, 경청, 집단감성, 비동일성, 바깥, 길 없는 길, 無목적적, 재미 , 무의미, 불규칙, 非인칭, 보통명사, 무명씨, 이름 모를 여인, 역지사지, 상상력, 질문, 긴축, 분배, 가치, 소극적, 풀기, 멀어짐, 장기 기억, 공공성, 불연속성, 측정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말할 수 없는, 간접적인, 가을, 겨울, 너트, 항구, 토하기, 가기, 흑인, 은유, 빙하, 강, 비유기체적인, 눈물, 바다, 별, 어린이, 노숙자, 바람, 비존재, 트랜스젠더, 미분화, 곡선, 차가움, 예술, 음악, 미술, 혈액형 B형, 구름, 비, 고요, 자연, 잡초, 풀잎, 낙화, 낙엽, 눈감기, 농담, 익살, 해학, 어머니, 자궁, 존재자, 밝힐 수 없는, 드러낼 수 없는, 환상, 그리움, 외로움, 슬픔, 아픔, 쓰라림, 뒷모습, 불가능, 다친 새끼발가락, 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