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제시엑 (Robert Jasieck) 은 최근"아마추어들은 바둑을
과학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그가 염두에 둔 아마추어는 아마도 '서양의' 아마추어들일 것이다.
서양의 바둑 수준은 아직 걸음마수준이다.
그들이 어떻게 바둑을 이해할 수 있고, 바둑을 과학으로 이해함으로써 바둑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의구심은 동양의 기사들, 특히 전문기사들의 심중에 깊숙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장영호는 매우 용감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한 칼럼에서 그는 서양인들이 바둑을 학문의 중요한 테마로 연구한다는 데 대해 이렇게 두 가지 의문을 제시한다. 첫째, "바둑의 원리조차 잘 모르는 서양인들이 무순 학문적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둘째, "설령 연구를 한다 하더라도 도대체 바둑의 무엇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규명하겠다는 것인가?"
맥락을 무시하고 장영호의 의문들만을 뚝 떼어 제시엑이나 필자와 같이 바둑은 약하지만 바둑을 과학으로 이해해 보려는 소박한 소망을 품고 나름대로 노력해 온 사람들에게 들이댄다면,
그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는 의외로 클 것이다.
바둑에 대한 해묵은 애정과 관심이 농축된 웅후한 내공이 실린 그의 의문들은 그러나 바둑을 과학으로 보는 관점과 그에 따른 작업들을 무효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바둑에 관한 학문적 관심을 지녀왔고, 요즈음도 틈틈이 바둑과 연관지어 주역과 노장철학을 연구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서양인들보다 바둑에 대해 더 잘 아는 우리가 바둑에 대해 '지속적으로'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칼럼은 대학에 바둑학과가 신설될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훗날 세계 학계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큰 선물을 줄 위대한 바둑학자의 탄생을 기원하고 있다.
최근 서양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바둑에 관한 학문적 연구들을 조감하려는 마당에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앞세우는 까닭은 자명하다. 우리에게 낯선 것과 조우하여 교류할 때 자칫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좋은 것을 애써 내치려고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신기한 데 현혹되어 엄정한 평가를 내리지 않고 무작정 추종해서도 안 된다는 상식적인 경고를 상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바둑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전망은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밝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단지 국내에서 바둑학이 정립되고,
바둑 연구지가 나오고, 국제 바둑학 학술대회가 개최된다는 외적 현상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다.
바둑에 접근하는 자세, 안목의 성숙도라는 면에서 학문적으로 바둑에 접근하는 서양인들의 수준 역시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라자레프의 「고대 바둑이 현대과학과 경제학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이다. 이승우의 소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러시아의 바둑 고수 라자레프는 러시아 연방 페트로가 보드스크 (Petrozavodsk) 주립대학교 수학교수인데, 그의 논문은 아주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서양인들의 바둑에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바둑과 과학의 만남에서 제기되는 절실한 문제를 아주 뚜렷이 자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컴퓨터와 정보 기술시대에 바둑과 현대과학과의 관계가 시급한 과제" 가 되었는데, 그것을 그는 "바둑이 인류사회 진보에 공헌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단순한 놀이로 남아 있을 것인가?" 라는 대단히 수사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까다로운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
바둑과 현대과학이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보면서 "바둑 원리 (규칙) 들을 수학적 논리를 사용하여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는 점을 들고 있는 점 역시 날카롭다.
그는 과학이라는 영광된 칭호는 "지식의 어떤 분야가 자연 연구에 도움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던가 인간이 일상 생활을 하는데 그것을 이용할 경우" 에 주어지는 것이라 가정하면서 "바둑을 둘 때 최적의 연속수를 두었다고 할지라도 바둑판 이외에는 어디서든지 그 수가 쓰이지 않는다" 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바둑을 과학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고 고백한다.
라자레프는 이 지점에서 미묘한 사고의 혼란을 보여 주고 있는데, 왜냐하면 똑같은 이야기를 수학에 대해서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또 자연 연구에 수학이 응용되는 것 못지않게 삶을 살아가는 데서 다양한 방식으로 바둑이 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단서를 붙인다 해도 여전히 크게 보아 그와 필자의 입장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또한 "현대과학 역시 어떤 틀에 맞출 수 없는 (인간의 직관력 같은) 수많은 요소들을 취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점을 잘 알고 있고, 또 "바둑에 관한 문제들은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자연의 난문제에 비하면 대단히 간단하다" 고 볼 수 있으므로 바둑을 그 어려운 문제들을 다룰 "새로운 수학적 도구와 방법을 연구개발하기 위한 시험대" 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현대과학과 인류를 위한 바둑의 역사적 사명" 이라고 믿는 것으로 보이며, 필자는 이렇게 한 문단 안에서 심오한 주장을 명쾌하게 펼 수 있었던 것은 라자레프가 수학자이기 때문이라 여기면서 박수 갈채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작년에 출간된 박우석님의 바둑철학이라는 내용의 일부인데..
바둑에 관한 글중 이제까지 이렇게 심오(?)하게 학문적으로쓴건
첨봐서 그냥 한번 올려봤습니다..
첫댓글 저희 동아리 지도교수님이시군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