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이삼영선생님을 모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소한선생님은 화가로써만이 아닌 교단에 서서 후진양성에 평생을 전념해 오신 교육자로서도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이제 70대 후반의 원로작가로서의 그의 화단적 경륜은 “인천인”으로서의 위상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이시며, 그 분의 작품 전개과정은 인천이 핵심적 테마이며 이정표가 되는 기록화적 성격까지 거론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아트페어까지도 인천에 3회째 개최한 기획의 주역이십니다. 인천광역시 문화상, 대통령 국민훈장 및 또한 다른 여러 표창들이 모두 다 대변하고 있습니다.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화법으로 그 영역의 한계를 무너뜨림으로서 발상전환의 폭을 더 넓힌 분으로써도 모범을 보이신 이 시대의 용기있는 진정된 화가이십니다.
소한 이삼영의 작품세계는 서양과 동양을 함께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양식 화법과 동양식 화법의 어울림이다. 이처럼 뿌리를 달리하는 두 동서 문화권의 문화토양을 동시에 섭렵하고 소화함에 있어 소한 특유의 뚝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서양화니 동양화니 하는 회화적 분별개념을 특별히 염두에 두거나 천착하지 않고 그는 자연스럽게 두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허물어뜨렸다. 대학에서는 오일 페인팅을 전공했으되 본격 화가로 입신하면서 그는 화선지와 묵을 선택했다. 이러한 변신은 한때 동료화가이자 선배였던 고(故)우문국 화백이 걸어온 길과 궤(軌)를 같이 한다. 서양식 회화의 기초 단계를 거치고 수묵으로 눈을 돌린 소한의 작품제작 과정에 있어 수묵화 필법의 전통 화보(畵譜)를 통한 기법 연마에 치중했다는 흔적은 찾기 힘들다.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단숨에 지ㆍ필ㆍ묵의 세계에 뛰어든 경력 상 동양 전래의 격조 높은 고전적 규범이나 화론(畵論)에 근거한 원칙주의가 지배하는 화면과는 다르다. 요컨대 종래 전승되어진 이념산수같은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자유분방한 실험이 가능한 자신만의 조형어법을 구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만치 소한의 작품양식은 서양화적 요소가 강한 수묵화다. 서양화적인 현장성, 사물에 대한 관찰력, 음영이나 볼륨효과, 원근법적 표현 등이 불식되었을지라도 요소적 특성으로 바탕에 깔려있다. 작화방법 역시 현장스케치를 통한 풍경의 다채로운 모습을 화첩에 담았다가 풀어놓는 방식으로 실경에 밀착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묵화의 기본적인 골간이 되는 즉시성(卽時性)의 역동적인 운필을 근간으로 기운생동의 선적인 일필휘지로서 운용되는 화면이라 할 수 있다.
소한 이삼영선생님을 모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소한선생님은 화가로써만이 아닌 교단에 서서 후진양성에 평생을 전념해 오신 교육자로서도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이제 70대 후반의 원로작가로서의 그의 화단적 경륜은 “인천인”으로서의 위상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이시며, 그 분의 작품 전개과정은 인천이 핵심적 테마이며 이정표가 되는 기록화적 성격까지 거론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아트페어까지도 인천에 3회째 개최한 기획의 주역이십니다. 인천광역시 문화상, 대통령 국민훈장 및 또한 다른 여러 표창들이 모두 다 대변하고 있습니다.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화법으로 그 영역의 한계를 무너뜨림으로서 발상전환의 폭을 더 넓힌 분으로써도 모범을 보이신 이 시대의 용기있는 진정된 화가이십니다.
소한 이삼영의 작품세계는 서양과 동양을 함께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양식 화법과 동양식 화법의 어울림이다. 이처럼 뿌리를 달리하는 두 동서 문화권의 문화토양을 동시에 섭렵하고 소화함에 있어 소한 특유의 뚝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서양화니 동양화니 하는 회화적 분별개념을 특별히 염두에 두거나 천착하지 않고 그는 자연스럽게 두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허물어뜨렸다. 대학에서는 오일 페인팅을 전공했으되 본격 화가로 입신하면서 그는 화선지와 묵을 선택했다. 이러한 변신은 한때 동료화가이자 선배였던 고(故)우문국 화백이 걸어온 길과 궤(軌)를 같이 한다. 서양식 회화의 기초 단계를 거치고 수묵으로 눈을 돌린 소한의 작품제작 과정에 있어 수묵화 필법의 전통 화보(畵譜)를 통한 기법 연마에 치중했다는 흔적은 찾기 힘들다.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단숨에 지ㆍ필ㆍ묵의 세계에 뛰어든 경력 상 동양 전래의 격조 높은 고전적 규범이나 화론(畵論)에 근거한 원칙주의가 지배하는 화면과는 다르다. 요컨대 종래 전승되어진 이념산수같은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자유분방한 실험이 가능한 자신만의 조형어법을 구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만치 소한의 작품양식은 서양화적 요소가 강한 수묵화다. 서양화적인 현장성, 사물에 대한 관찰력, 음영이나 볼륨효과, 원근법적 표현 등이 불식되었을지라도 요소적 특성으로 바탕에 깔려있다. 작화방법 역시 현장스케치를 통한 풍경의 다채로운 모습을 화첩에 담았다가 풀어놓는 방식으로 실경에 밀착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묵화의 기본적인 골간이 되는 즉시성(卽時性)의 역동적인 운필을 근간으로 기운생동의 선적인 일필휘지로서 운용되는 화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