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골에서 만난 김시습
너무나 소중해서 함부로 갈수 없는 곳이 있다. 보다 의미 있는 날, 좋은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 십 번 생각만하다 아예 기억 속에 지워져 버릴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곳이 있다. 나에게는 최초의 소설『금오신화』(金鰲新話)가 탄생된 ‘용장사지’(茸長寺址)가 그런 곳이다. 청년시절, 김시습(金時習)에 빠져 고전을 전공한 국문학도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가을이 절정에서 무르익고 있는 화사한날, 그곳을 다녀왔다. 함께한 사람은 김선학 교수, 이원도 시인, 벗 이성모교수다. 최근 김 교수께서『시에 잠긴 한국인의 생각』이란 평론집을 펴냈는데, 축하를 위해 자연스럽게 자리가 만들어졌다. 김시습은 그렇게 나를 불러 주신 것이다.
10월 13일 늦은 아침을 먹은 11시, 초입은 ‘포석정’이다. 넓은 산책로를 따라 서서히 발길을 옮긴다. 지난밤의 과유로 걸음은 무거우나 마음은 소풍을 떠나는 초등학생의 들뜬 기분 못지않다. 높아진 하늘위로 흐르는 흰 구름을 보고,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여리고 섬세한 감성 때문일까. 정겨운 사람과 함께한다는 설렘도 클 것이다. 이런저런 화제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가니 조금씩 시야가 트이고 노란 산야속의 경주시가지가 천년고도의 위풍을 드러낸다.
정오를 넘어, ‘금오봉’에 선다. 포석정에서 4.6Km나 걸어왔다. 동쪽으로는 바다 위 토함산이 유유히 너울거리며 지평선을 그린다. 그 안으로 황금빛 들판이 가을의 풍요를 발한다. 신라 천년을 지킨 임금과 신하들도 이 봉우리에 올라 저 산하를 살피면서 선정을 다짐했으리라. 겨레의 꿈이 서린 신화가 있고, 불국정토가 숨 쉬는 남산의 심장부에 선 감회는 눈부신 가을햇살 만큼이나 북받친다.
‘삼화령’으로 접어든다. 삼화령은『삼국유사』에 이런 기록이 전하는 고개다. 신라 경덕왕 24년 3월 3일, 왕은 귀정문 누각위에 올라가 말했다.
“누가 길거리에서 위엄과 풍모가 있는 승려 한명을 데려올 수 있겠는가?
마침 한 승려가 가사를 걸치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그를 보고 누각위로 맞아들였다. 통 안을 살펴보니 다구가 가득 들어있었다. 왕이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소승은 충담이라 합니다.”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소승은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끓여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께 올리는데, 지금도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차 한 잔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승려는 차를 끓여 바쳤는데, 찻잔 속에서 향내가 풍겼다. 왕이 말했다.
“짐은 일찍이 대사가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의 뜻이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짐을 위해 안민가를 지어보라.”
충담은 곧바로 왕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김 교수께서「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를 인용하며 청년 같은 열정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신다.
바로 그 삼국유사 속의 삼화령이다. 충담이 걸었던 길. 향가 ‘안민가’가 탄생된 성지. 김시습은 그 신화의 땅을 거치게 하고서야 우리를 끌어안고 있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삼천 배를 해야만 자신과의 만남을 허락했던 고승들의 경지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길섶에는 하얀 억새의 무리가 흐드러지게 흔들리고, 무르익은 들국화는 송이송이 숨바꼭질하듯 몸을 감추었다 내 놓는다. 회갑을 넘긴 이 시인께서도 가슴이 아려 눈물이 맺힌다고 그 여리고 고운 마음을 결국 고백하시고 만다.
삼화령이 끝나는 곳에서 우측으로 ‘용장골’이 시작된다. 온화한 산세지만 가파른 계곡이다. 남산전체를 기단으로 세워진 3층 석탑이 그 변연(便娟)함을 드러낸다. 도대체, 어떻게, 이 험한 곳에, 그것도 수 천 년 전, 이렇게도 미려하고 단아한 조각품을 만들어 내었을까. 불가사의는 남산에서도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삼륜대좌위에 올려 진 온화한 석불이 두 손을 모으게 한다. 목이 잘린 채로도 오직 신라의 안녕을 빌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린다. 산 전체가 도솔천으로 가는 거대한 불국정토다.
밧줄을 타고 조심조심 더듬어 내려가니 용장사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정답다. 갈림길에서 직진해 들어가니 안내판과 함께 무덤 두기가 쓸쓸히 반겨준다. 밀림사이로 확인되는 오래된 석축 등의 흔적으로도 절터임이 분명하다. 지나온 삼층석탑은 천상의 통로처럼 아련히 손짓하고, 그 아래 좌상과 석불이 절묘하게 안치된 형국은, 전체가 조화로운 작품이다. 이곳이 김시습이 머물렀던 요사채다. 갑자기 가슴이 울렁이기 시작한다.
김시습의 기개가 서릿발처럼 후려친다. 5세 신동 김시습. 고독한 자유인. 지독한 유랑자. 시대의 어둠과 외롭게 맞섰던 고달픈 행동가. 무서울 정도의 무소유자. 철저한 은둔자. 그 치열하고도 순수한 진리에 대한 열정은 일체의 허위도, 어떠한 권위도 부정하고, 참된 삶을 살고자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신 분. 그러면서 영원한 사랑을 꿈꾼 초월자.
그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세조11년, 31세 때로 알려져 있다. 실로 오랜 방랑 끝의 정착이다. 김시습은 스물 한 살 되던 해, 삼각산 중흥사에서 수학 독서하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불의에 항거하여 즉각 읽던 책을 불사르고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전국을 떠돌기 시작한다.
절망에 빠진 김시습은 폐사지를 찾게 된다. 모든 존재는 무너지는 순간에 진실해지며 그 허허로운 폐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계룡산 동학사, 관서지방, 임진강을 건너 개성에 닿아서는 옛 고려도읍의 쓸쓸함에 젖는다. 평양에서는 단군과 기자묘를 참배하고 깊은 회한에 잠긴다. 청천강을 넘어 묘향산에도 올랐으며, 안시성에서 나라의 흥망을 탄식 한다. 다시 남쪽으로 개성, 파주를 거쳐 금강산에 든다. 오대산 월정사, 삼일포를 지나, 금강을 건너 강경포구로 내려온다. 은진 관촉사의 대불을 알현하고 논산 개태사, 김제 금산사, 변산 내소사에도 잠시 몸을 맡기다 호남 땅 무등산에 오른다. 순천 송광사를 찾고 남원으로 들어선다. 그에게 머묾이란 없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경상도 함양으로 간다. 해인사를 경유, 이곳 용장골에서 고달픈 여장을 풀게 된다. 37세까지 약 7년 세월, 이시기를 금오기라고도 한다.
김시습은 이렇게 십 여 년 지독한 유랑 끝에 실의를 딛고, 다시 이상을 향한 기지개를 켠다. 이러한 배경에서 불후의 작품 금오신화는 탄생된 것이다. 그는 금오신화를 통해 영원히 죽지 않는 방법과 사랑을 꿈꾼다. 그것은 죽음마저 초월할 수 있는 자유로운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은 이순간도 용장사지를 맴돌며, 몇 백 년 뒤 찾아 온 후학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문학사의 현장에서 심장이 멎은 듯, 망연히 서있을 뿐이다. 김시습은 이렇게 묻고 있다.
너는 나의 저항을 막연히 흠모하면서 정작 불의에 항거한 적이 있었느냐. 너는 나의 고독과 자유를 동경하면서도 진정 고독한 삶을 살았느냐. 너는 나의 무소유를 말하면서 네가 가진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릴 수 있느냐. 너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면서 현실적 욕망의 사랑을 초월할 수 있느냐.
내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진정 이 물음에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모두가 위선이었단 말인가. 아옹다옹 살아온 지난 삶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만 같다.
조금 밑으로, 아담한 다리하나 놓여있다. 김시습의 호 중 하나인 ‘설잠교’란다. 다리위에 퍼질러 앉아 일어설 줄 모른다. 이곳을 떠나면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고독한 김시습의 영혼이 좀더 머물다 가라고 끌어당기는 것일까. 다시 김시습은 나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고독한 자유인이 되라. 가진 것에 만족하고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살라. 끝없이 견문하고 사유하라.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말라. 무한세월 속에 인생의 유한을 깨닫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라.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난 초월적 사랑을 꿈꾸라. 주어진 너의 삶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명심하라.
빨간 낙엽 한 장 무심히 떨어진다.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쓸쓸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경주 남산 용장골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첫댓글 올 가을 용장골에서 김시습을 만날 수 있겠지요.
가을 문학기행
파일 달라고 하지^^
몇 번째 읽어도 큰 글로 다가옵니다.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경주처럼, 또 읽어도 장중함이 가슴을 가득 채우네요. 잘 읽었습니다. 용장골도 궁금하구요 ~
한낮에 외출을 했습니다. 오래전에 어시장 끝 백화점 사잇길에 '합천식당'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찾지는 못했습니다. 철거 직전 분위기의 허름한 집이라 설마했더니 영업을 하더군요
사장님은 사십년째 이 식당을 운영하는 중이구요. 명절말고는 365일 영업한데요
정식 한 상에 사천원 ㅋㅋㅋ
대보름이라 보름나물과 오곡밥도 써비스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산책중에 봄바람 속에서 봄내음을 맡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성급하게도 가을이 그리워집니다.
조변석개 정신불안...... 갈팡질팡......
교수님의 이 글은 처음 읽습니다. 감동적입니다.
방학 동안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 봄을 맞는 기분이 참 묘하고 설레입니다.
모든 존재는 무너지는 순간에 진실해 진다ᆢ 감히 혀끝을 놀릴 수 없는 대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