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30: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심 (유다의 배반)
13:31–35: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심 (새 명령)
예수님께서 유다의 발을 씻기시고, 식사 자리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인 자기 옆자리에 앉히시고, 직접 빵을 적셔서 주신 것은 가장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유다에게 이 사랑은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얼음을 녹이는 태양이 진흙은 단단하게 만든다 ----> 태양(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변함이 없으나, 그 빛을 받는 대상(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얼음(통회하는 마음): 태양빛을 받으면 녹아내려 물이 된다. 즉, 주님의 사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부서지는마음이다.
진흙(완고한 마음): 태양빛을. 받으면 수분이 다 빠져나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주님의 호의를 이용하거나 거부하며 자기 고집을 피우는 마음이다.
거부된 은혜는 정죄의 증거가 됨
성경적 원리에 따르면, 더 큰 빛(Light)을 받은 자가 그것을 거부할 때 ---->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
유다는 3년 동안 세상의 빛이신 주님과 동행하며 가장 가까이서 그분의 신성을 보았다. 특히 마지막 만찬에서의 '발 씻기심'은 유다에게 주신 마지막 회개의 기회였다.
"주님은 유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를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구원하려 하셨다. 그러나 유다가 그 사랑을 끝내 거부했을 때, 그 젖은 발은 심판대 앞에서 그가 핑계치 못할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유다는 주님의 경고(요 6:70, 13:21)를 계속 들었다. 하지만 사랑의 행위가 반복될수록 유다의 마음은 '얼음'처럼 녹는 대신, '진흙'처럼 더욱 단단해졌다. 이것이 무서운 점이다.
은혜의 수단이 거듭될수록 마음이 더 강퍅해지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임한 심판의 시작이다.
시편 41:9의 성취와 아히도벨
유다의 배신은 우연이 아니라 성경이 성취되는 것이다,
시편41:9 – 참으로 내가 신뢰한 나의 친한 친구 곧 내 빵을 먹은 자가 나를 대적하여 자기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아히도벨(Ahithophel, 어리섞음의 형제)은 누구인가? (다윗의 배신자)
아히도벨은 단순한 신하가 아니라 다윗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조언자이다. 성경은 그의 지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았다"(사무엘하 16:23)고 기록한다
배신의 배경: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아히도벨은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 편에 선다. (이때 다윗이 느꼈을 배신감은 시편 41:9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윗의 정책과 약점, 군사 기밀을 모두 알고 있는 참모가 적군(압살롬)에게 붙었다는 것은 다윗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
다윗은 아히도벨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정도다. (시편 55:14 참고)
유다와의 연결:가룟 유다 역시 제자들의 재정을 담당하며 모든 살림살이와 동선을 꿰뚫고 있었던 '내부 참모'였다는 점에서 아히도벨과 완벽히 일치한다
세상적으로는 가장 지혜로운 '정책 참모'였으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배반함으로써 결국 이름처럼 가장 어리석은 결말(자살)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가룟 유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이 후새를 사용함 ---> 삼하17:14b – 이는 주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주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꺽기로하셨기 때문이라.
비극적 결말:자신의 지략이 압살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사무엘하 17:23).
13:31–35: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심 (새 명령)
인간의 관점에서 유다가 나간 것은 배반의 시작'이며, 곧 닥칠 십자가는 수치와 실패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유다가 나간 것은 구속 사역의 본격적인 시작이며, 십자가는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영광'이다.
It is Finished 다 이루었다 ‘ 선포가 다가온다’ ---> 요한복음 17:4을 인용하며, 영광이란 곧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주님께는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영광의 과정'이다.
왜 "새(New)" 명령인가?
이미 구약(레 19:18)에도 "네 이웃을 너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다
하지만 명령이 'New'인 이유는 사랑의 '기준'과 '동기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표준(Standard)'이 바뀌었다.
구약(Old): "너 자신과 같이" (As thyself) -> 기준이 '. 나'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는 수준이다.
신약(New):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As I have loved you) ->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② 사랑의 '범위(Extent)'가 바뀌었습니다.
구약(Old): 율법 안에서 규정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약(New):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은 가룟 유다(배반자)의 발까지 씻기셨다. 즉, 원수까지 포함하며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Sacrificial Love)으로 범위가 무한히 확장되었다.(인간은 여기까지 못한다, 판단의 공의가 있어야 된다)
③ 사랑의 '권능(Power)'이 바뀌었다.
구약(Old): 육신(Flesh)의 노력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적 계명이었다.
신약(New): 주님께서 이 명령을 주신 직후 성령님(위로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내 의지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열매로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사랑이다.
문맥안에 뜻을 살펴보자
요13:18 - 내가 너희 모두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노니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노라, 그러나 이것은 나와 함께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대적하여 자기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하는 성경기록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니라
배은망덕의 극치:주인의 상 아래에서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던 가축(말이나 나귀)이 갑자기 뒤를 돌아 주인을 뒷발로 걷어차는 형상이다. 즉, 가장 큰 은혜를 베푼 대상을 향한 배신을 의미한다
19 -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것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께서 배반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신 이유가 단순히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이 일어난 뒤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기 전에 선포하심으로써 이 모든 사건이 주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주신다
20 -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누구를 보내든지 그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며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느니라, 하시니라,
유다의 배반은 남은 제자들에게 "우리의 사역이 정말 가치가 있는가?", "우리도 결국 버림받거나 실패하는 것 아닐까?"라는 회의감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대사가 무시당하면 그를 보낸 국가와 왕이 무시당하는 것과 같다.
21 -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고 영으로 괴로워하며 증언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하시매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당하는 아픔을 우리와 똑같이, 아니 우리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셨다 주님의 마음을 찢으며 터져 나온 증언이다,
22- 그때에 제자들이 서로 바라보며 그분께서 누구에 대하여 말씀하셨는지 의아해 하더라,
23 -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하나 곧 그분께서 사랑하신 자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으므로 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 짓을 하여 그분께서 말슴하신 자가 누구인지 그가 여쭙게 하니 25 이에 그가 예수님의 가슴에 누워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게 누구니이까? 하매
당시 유대인들의 정식 만찬은 오늘날처럼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라, 낮은 상 주위에 비스듬히 누워 식사하는 방식이었다.요한이 물리적으로 주님과 얼마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26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그는 곧 내가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니라, 하시고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에게 주시니라, 27 - 빵 조각을 받은 뒤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가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것을 속히 하라, 하시니라,
28 - 그런데 상에 앉아 있던 자들 가운데 아무도 그분께서 무슨 뜻으로 그에게 이것을 말씀하셨는지 알지 못하였으니 29 이는 그들 중의 어떤 자들은 유다가 가방을 가졌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명절을 대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그것들을 사라, 하셨거나 또는 그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고 하신 줄로 생각 하였기 때문이라,
30 그때에 그가 빵 조각을 받은 뒤 즉시 나갔는데 때는 밤이더라,
주님이 주신 조각은 마지막 '우정의 손길'이었으나, 유다가 그것을 거부하는 순간 사탄이 그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 명령은 빛과 어둠이 더 이상 공존할 수 없음을 선언하는 분기점이다. 유다를 내보내심으로써 주님은 남겨진 제자들과의 가장 깊고 거룩한 '다락방 강화'를 시작할 준비를 하신다
31 - 그러므로 그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안에서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 만일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면 하나님께서도 자신안에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요, 즉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라,
주님께서 31~32절의 짧은 구절 속에서 영광(Glorify)이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신 것에 주목합니다.유다가 나간 뒤 주님의 침묵을 깨뜨린 첫 마디는 배반자에 대한 원망도, 다가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주님은 마치 승리의 함성을 지르듯 "지금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얻었고"라고 선언하셨다.
33 - 아린아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내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올수 없느니라, 한 것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그렇게 말하노라,
34 -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그렇게 말하노라,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원급 비교 (~만큼, ~와 똑같이)“
기준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질과 양으로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 깊이 깨닫고 인지해야 된다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하시니라,
'새 명령'을 받았지만, 실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표준(As I have loved you)에 이르는 사랑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랑은 내 감정의 온도나 무드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실제로 순종하는 영적 태도이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John 13:1-15)이 바로 이 새 명령의 시청각 교육'이었다 주님은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서 발을 씻기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본(Example)'을 보여주기 위해 의지적으로 허리를 굽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