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조 인 숙
지우려고 해도 문득 밀고 올라오는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낡은 트럭을 몰고 졸업식에 오셨다. 비포장도로를 달려오느라 바퀴에는 잔뜩 흙이 묻어 있다. 그런 아버지의 트럭이 부끄러웠다. 그때는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던지…….
트럭은 우리 집 자가용이다. 고향 집을 들를 때면 마당에 아버지 트럭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거기엔 녹이 슬어 색이 바랜 트럭이 있다. 중고차로 시작해 새 차를 장만했다. 그 차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집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두 살 터울 자식들은 도시로 대학을 가면서 자취를 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불이며 자잘한 부엌살림이며 농사지은 쌀 포대까지 트럭에 싣고 와 자취방에 부려 놓는다. 농사일이 바쁘다며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트럭을 몰고 어두워지기 시작한 길을 재촉한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자취 집으로 들어설 때, 낯익은 트럭이 문 앞에 서 있다. 아버지가 오신 거다. 트럭을 보는 순간 객지에서의 외로움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핑 돌았다. 일을 보러 오면서 들르신 것이다. 주인집에 쌀 한 가마니를 내려놓고 다시 왔던 길을 휭하니 가신다. 잠시 앉아서 얘기할 겨를도 없이 가는 아버지가 못내 섭섭하다.
방학이 되어 고향 집을 오갈 때도 아버지는 트럭을 몰고 역으로 터미널로 자식들을 마중 오거나 배웅했다. 타던 중고 트럭을 처분하고 맏이가 새 차를 사 드리기로 할 때도 승용차를 바랐던 자식들 마음과는 달리 아버지는 트럭을 원하셨다. 새 트럭과 함께 아버지는 일꾼들을 태우며 사과 농사를 지으셨다.
운전 실력은 자식 중 내가 아버지에게 제일 많이 물려받았다. 나는 운전면허시험이 제도가 바뀌려는 해에 면허시험에 합격했다. 그해에 합격하지 않으면 다시 등록하고, 바뀐 제도에 맞춰 비용도 내야 했다. 전국에서 수험생들이 몰렸다. 제주도에서도 왔을 정도니 말이다. 빗길을 뚫고 아버지가 새벽 일찍 신청서 접수를 해주셨다. 그 덕에 면허증을 취득했다. 도로 연수도 해 주셨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미군 부대 운전병이셨단다. 못 가는 길이 없다. 좁은 길, 산길, 오르막길, 후진도 거침이 없다. 어떤 도로든 정해진 속도를 잘 지키며 운전하신다. 과속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답답할 만큼 교과서적인 분이시다. 남자가 멋있을 때를 대라 하면 운전하는 모습이라고 말하곤 했을 정도로 아버지는 내 운전의 정석이었다. 평생 무사고 운전까지…….
아버지가 대장암 진단에 수술을 받기 전까지 트럭은 아버지의 길이고 시간이 되어 주었다. 수술 후 퇴원을 하고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못하셨다. 5년 예후가 끝나고 완치 판정을 받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트럭은 집 마당 한가운데를 지켰다.
아버지가 다시 트럭을 운전하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과수원 옆 수목장한 어머니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과수원 가는 길에 운전이 서툰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산길을 오르곤 했다. 타는 날 보다 세워 두는 날이 더 많았지만…….
트럭은 아버지에게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데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어느 방송 다큐멘터리 울릉도 편에서 우데기를 본 적이 있다. 우데기는 가옥의 바깥에 둘러친, 일종의 외벽이다. 처마 끝에서부터 땅으로 이어져 담처럼 둘러쳐져 있어 눈보라가 몰아쳐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며 집의 몸체를 보호해주는 구실을 한다. 우데기는 감싸고 막아주는 힘이 있다. 트럭과 아버지는 서로 우데기처럼 세상 풍우와 한파를 꿋꿋이 견뎌 나갔다.
그런 아버지의 트럭을 운전할 수 없게 되었다.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으로 폐차를 하게 된 것이다. 조기 폐차는 노후 경유차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오염을 줄이고 도심 환경을 살리기 위한 친환경 정책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달리던 노후 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떠나보낼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운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조기 폐차 소식을 듣고 서둘러 운전면허증 반납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아버지도 어쩌면 쉬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멈추면 아버지의 일생이 멈추어버릴 것 같아 차마 운전대를 놓지 못하셨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트럭을 대신해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릴 것이다.
올해도 봄은 오고 따뜻한 바람이 찾아왔다. 고향 집에 들러 아버지와 함께 세월의 무게에 고달팠던 트럭을 대신해 나의 차에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가 계신 과수원길을 오른다.
그 길을 이제는 제가 함께 갈게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