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연말을 보내는 건 어떨까. 먹고 마시는
송년회는 싫다, 음악회나 콘서트가 있는 송년회는 식상하다며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고민하던 한 모임에서는 ‘책이 있는 송년회’를 열었다. 올 한 해 자신이 읽은 책 중 가장 가슴에 남는 책 한 권을 골라 발표하는 자리로 마련된 이 송년회에 참석한 회사원 최모씨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나를 되돌아보는 진정한 의미의 송년회였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의 독서광 명사 10명이 추천하는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을 소개한다. 독서광이 추천하는 검증된 책의 다이제스트를 훔쳐보는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어령 | 중앙일보 고문
1934년생. 서울대 문리과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1956년 월간 문학예술에 ‘카타르시스문학론’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데뷔, 이후 소설·시·극작·평론·문화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
이화여대 교수, 월간 ‘문학사상’ 주간, 초대 문화부 장관 등 역임. 평론집 ‘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문화비평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 ‘
디지로그’ 등.
빙산이 녹고 있다고?
존 코터 지음, 유영만 옮김, 김영사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 교수 출신인 저자가 쓴 경영 우화. 빙산이 녹는 위기에 대처하는 펭귄원정대의 모험을 통해 21세기 변화의 시대에 요구되는 기업의 위기 대처법을 보여준다. 저자의 전작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기술’에서 분석적으로 제시했던 ‘변화관리 8단계 모델’을 펭귄 조직에 적용해 재미있고 현실감 있게 읽힌다. 2006년 8월 발간. 9900원. 원제 ‘Our Iceberg is Melting’.
새 빙산 찾아가는 펭귄 통한 위기 대처법21세기는 변화의 시대다. 사회 변화의 속도는 가속으로 달리고 있어서 급변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고 적응하는 게 기업경영의 핵심이다. 이런 변화의 시대, 위기의 시대에 기업의 CEO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빙산이 녹고 있는 위기를 다섯 마리의 펭귄이 극복해 가는 과정을 우화 형식으로 쓴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 프레드, 조직의 리더 루이스 회장, 열정적인 실천가 엘리스, 성격 좋은 버디, 펭귄들의 선생 조던 등 어느 조직에나 있을 법한 다섯 유형의 조직원이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며 새로운 빙산을 찾아가는 펭귄들의 드라마는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결국 지속 발전 가능한 조직을 이끌어 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첫째 조직원 모두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의 목표를 공유하고, 둘째 각자의 개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셋째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고삐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적인 내용을 누구나 알기 쉽게 썼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을 영어 원문으로 읽었다. 쉬운 영어로 되어있는 데다가 귀여운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술술 읽힌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의식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기업의 CEO는 물론, 학교에 다니면서 조직 생활에 필요한 덕목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고건 | 기후변화센터 이사장1938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전라남도 도지사, 교통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
서울시장(1988~1990년,1998~2002년) 과
국무총리(1997~1998년, 2003~2004년) 각 두 차례씩. 명지대 총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역임. 현재 국제투명성기구 자문위원, 에코포럼 공동대표,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플랜B 3.0 지구를 구하는 방법
레스터 브라운 지음, 황의방·이종욱 옮김, 환경재단 도요새
유엔환경상(1987), 푸른지구상(1994) 등을 수상한 세계적 환경운동가 레스턴 브라운의 저서. 지구 생태계 회복과 빈곤 퇴치, 기후 안정에 관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책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개발하며 지구 산림을 확대하는 등 세계 에너지 경제를 재편하는 기술을 ‘플랜 B’로 명명하고 그 실천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08년 6월 발간. 2만5000원.
지구 생태계 회복,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라최근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4차 당사국 총회에 다녀왔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맞은 최대 위기로 손꼽힌다. 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세계 각국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해야 할 때이지만 아직 한마음이 되지 못해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내년에 출범하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표방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0%까지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미국 환경운동의 대부 레스터 브라운 박사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는 인류가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만 하며 ‘플랜 B’ 경제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설득해 왔다. 현재의 석유 의존적인 경제체제를 ‘플랜 A’라고 부른다면 그것의 대안인 ‘플랜 B’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약속하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말한다. ‘플랜 B’가 설정한 네 가지 최우선 목표는 기후의 안정화, 인구의 안정, 빈곤 퇴치, 지구 생태계 회복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구축하는 관건은 정직한 시장, 즉 생태적 진실을 말하는 경제의 창조라고 강조한다. 전 세계가 군사비를 줄이고 플랜 B 경제로 나아간다면 인류와 지구 생태계는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레스터 브라운은 강조한다.
오세훈 | 서울시장
1961년생. 고려대 법대 졸업. 1988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91년 변호사로 개업. 1994년 MBC ‘오 변호사 배 변호사’, 1996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2000년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당선돼 당 부대변인, 원내부총무, 상임운영위원 등 역임. 2006년 7월 민선 서울시장 취임.
딜리셔스 샌드위치
유병률 지음, 웅진윙스
한국을 세계 강국 사이에 짓눌린 샌드위치 국가, 한국의 젊은이들을 선후배 사이에 짓눌린 샌드위치 세대로 보고 샌드위치 세대, 샌드위치 한국이 ‘딜리셔스’해지는 비즈니스 전략을 제시한 책. 그 키워드를 ‘컬처 비즈니스’에서 찾았다. 한국일보 기자로 뉴욕에서 연수 중인 저자는 세계의 중심인 뉴욕 곳곳을 누비며 문화와 경제의 메커니즘을 현장감 있는 필치로 풀어냈다. 저자는 ‘서른 살 경제학’ ‘여자 경제학’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2008년 6월 발간, 1만2000원.
“문화는 밥이고 돈이다” 미래의 경쟁력지난 여름 중앙아시아 순방길,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었던 책이 있다. ‘딜리셔스 샌드위치’다. ‘딜리셔스 샌드위치’는 뉴욕이 문화를 팔아 도시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누리며 세계 최고의 도시로 성장한 과정을 재미있게 풀어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은 사실 취임 이후 서울시가 줄기차게 강조해 온 바이다. 한마디로 ‘문화는 밥이고 돈이며 경제’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컬처 노믹스’는 문화로 서울을 먹여살려보겠다는 야심찬 비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에 대해 아직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문화가 왜 도시의 경쟁력이 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 공감대가 적다. ‘딜리셔스 샌드위치’는 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특히 개인에게도 문화가 중요한 경쟁력임을 강조한다. 21세기 인재와 조직, 도시와 국가의 발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기분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존재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것은 미래 세계의 흐름을 읽고 그 중심에 내가, 우리가, 서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문화는, 문화도시 서울은, 우리에게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장한나 | 첼리스트1982년생. 미국 줄리아드예비학교 졸업 후 하버드대 철학과 휴학 중.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 최우수상(1994)을 받으며 첼로 신동으로 떠올랐고, 칸 클래식 음반상 협주곡 부문상(2004) 등 수상. 세계적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했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로 선정.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버락 오바마 지음,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11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의 첫 자서전.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혼혈로 태어나 세상의 차별과 편견을 딛고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기까지 과정을 솔직하고 진솔한 문체로 담았다. 초판은 1995년에, 개정판은 2004년에 출간됐다. 오바마의 두 번째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는 그의 정치철학과 인생관을, 이 책에서는 정치인 이전의 인간 오바마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2007년 7월 발간. 1만8900원. 원제 ‘Dreams from my Father’.
“나는 잡종”이라 외치는 오바마의 당당함을 배우다백악관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두 어린 딸들에게 애완견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오바마. 그는 역사적 당선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어떤 강아지를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동물 보호소에서 자신과 같은 잡종을 데려올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는 오바마. 과연 그는 누구인가? 이런 궁금증에 휩싸여 그가 쓴 책들을 읽었다. 그중 첫 저서인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추천한다. 이 책은 한 청년이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부름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흑인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부딪히게 된 인종 문제, 아버지 없이 자라며 겪게 된 핏줄 문제는 늘 그를 괴롭혔다.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유년기에도, 하와이에서 보낸 사춘기에도, 성인이 된 후 방문한 아버지의 고향 케냐에서도 그는 늘 온전히 그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잡종’과 같은 정체성을 느꼈다.
이 책은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개성이 없어진 ‘잡종 문화’와 세계가 하나의 ‘멜팅 포트(melting pot·용광로)’로 변해가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겪는 정체성 딜레마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는 이런 의문들을 풀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종자’가 아니라 인격체로 보는 리더, 다인종 세계를 이해하고 반대의 입장에 귀기울일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었다.
공병호 | 공병호경영연구소장1960년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라이스대학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자유기업센터와 자유기업원 초대 소장과 원장 역임. 치밀한 분석과 명쾌한 논리로 경제 흐름을 진단하고, 삶의 성공 전략을 전파해 온 경영전문가. 저서 ‘10년 후 한국’ ‘한국, 번영의 길, 공병호의 희망 리더십’ ‘3년 후 세계 그리고 한국은’ 등 다수.
모던타임스(전2권)
폴 존슨 지음, 조윤정 옮김, 살림
영국이 낳은 세계적 역사학자가 풀어쓴 현대사. 연대기적 서술을 배제하고, 20세기를 뒤흔든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현대사의 시작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1919년으로 보는가 하면, 간디를 ‘해방운동가가 아니라 정치적 기인’으로 보는 등 통념을 뒤흔드는 새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전세계 수십개국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로, ‘내셔널 리뷰’가 뽑은 ‘20세기 100권의 책’에 선정된 바 있다. 2008년 1월 발간. 5만원(1·2권 세트).
역사적 진실 낱낱이 공개… 내 아이도 꼭 읽었으면대단한 책을 만날 때 나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꼭 읽히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영국의 걸출한 역사학자인 폴 존슨이 뚜렷한 역사관에 입각해서 풀어쓴 현대사다. 역사 속에서 지나치게 미화된 사람들의 어두운 일면과 역사적인 진실을 이 책은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제3세계’에서 명성을 얻었던 인도의 네루 수상에 대해서는 “그는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기 때문에 인도의 교도소에 대해서는 박식했지만 4억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데 필요한 부의 창출 과정과 행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꼬집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집단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사회공학을 맹렬히 실시했던 대부분의 신생국가들이 가난과 폭정의 질곡으로 어떻게 빠져 들어갔는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특히 영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식민지들은 독립과 동시에 대규모 사회공학의 실험을 거쳤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그런 시대의 대세에 편승하지 않았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1960~1970년대 유럽의 좌파지식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반아메리카니즘의 선봉에 섰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마르크시즘 결정론은 세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개인의 의지나 자유의지 혹은 도덕적 양심의 중요성을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부정했던 요인들이 오늘의 현대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정끝별 | 시인·명지대 교수1964년생.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현 명지대 국문과 교수. 1988년 ‘문학사상’시 부문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등.
추의 역사
움베르트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열린책들
추(醜)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하고 기록한 모든 것의 역사. 이 시대 최고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움베르트 에코가 전작 ‘미(美)의 역사’ 에 대립되는 방대한 책을 출간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의 대중문화와 아방가르드 문화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작품, 문학 텍스트 등에서 다룬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고찰한다. 그동안 흔히 접할 수 없었던 희귀한 이미지와 텍스트가 가득하다. 2008년 12월 발간. 5만5000원.
공포·불안·욕망… 인간의 추함, 그 이면의 진실불쾌한, 끔찍한, 역겨운, 혐오스러운, 징그러운, 꼴불견의, 추잡한, 더러운, 음란한, 무서운, 비열한, 오싹한, 상스러운, 욕지기나는, 가공할, 야비한, 일그러진, 기형의…. 추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아낀다. 그는 단지 회화, 조각, 문학작품 등을 통해 재현된 다채로운 ‘추의 미학’을 펼쳐 보인다. 서구고전을 망라한 다채로운 인용문과 화려한 도판은 그 자체로 소장하고 싶게 만든다.
내게 이 책은 우리의 추함을 간증하는 보고서 같다. 인간의 공포와 불안,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운명, 그것들의 기록물 같다. 가장 반종교적인 이 책이 일견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추는 미보다 새롭다. 추는 미보다 자율적이다. 추는 미보다 복잡하다. 그리하여 추는 미보다 다양하다, 아니 무한하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추는 미보다 솔직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하다. 그러니 규범화된 미로부터 벗어났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아름답지 않을까. 미가 우리 삶의 팔 할을 차지하는 추에 대한 반성과 각성으로부터 출발할 때, 그러한 추로부터도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미에 한 발 가까워진 것이리라. 미함과 추함은 우리 삶을 이루는 한 몸이다. 그것들은 늘 공존한다. 저자의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미·추의 대립이 ‘더 이상 어떤 미학적 가치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박경철 | 안동 신세계병원 원장1965년생. 영남대 의대 졸업.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의 칼럼니스트로 더 유명. 투자이론에 관한 정상급 전문가. 1995년 이후 각종 매체에 통찰력 있는 칼럼을 기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등.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아프가니스탄 출신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연을 쫓는 아이’(2003) 이후 두 번째로 내놓은 작품. 구소련의 침공과 왕정 붕괴, 군벌 간 내전과 탈레반 정권의 갈등, 미국과의 전쟁 등으로 폐허로 변해버린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두 여성의 이야기를 감동적인 필체로 그려냈다. 2007년 11월 20일 발간 직후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2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만3500원. 원제 ‘(A) Thousand Splendid Suns’.
아프간 소녀의 가혹한 운명… 저절로 눈물이일단 이 책은 재미있다. 하지만 도저히 한 번에 내처 읽을 수는 없다. 책에 눈길을 주고 한 시간쯤 지나면 가슴이 뻐근하고 목젖이 뜨뜻해진다. 여기서 더 나가면 호흡이 힘들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이 흥건하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그곳에 대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상식이 상징이라면, 삶은 현실이다.
굳이 나누자면 이 책 역시 미리암이라는 한 ‘여자아이’의 성장소설이다. 여자에 대한 편견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곳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미리암은 첩의 딸이다. 그녀의 가혹한 운명을 이끌어가는 서술이 너무 필연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작가의 이야기로부터 상투적인 ‘설득’이 아닌 ‘동화와 이입’을 느끼면서 독자의 가슴에는 전류가 흐른다. 그리고 미리암을 둘러싼 인간들의 법과 제도, 종교, 신념 따위에 분노하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택한 구원의 방식에 낙루를 경험한다. 우리 저작으로 치자면 ‘아리랑’이나 ‘태백산맥’, 혹은 ‘토지’ 정도를 떠올리겠으나 이 책은 이데올로기도, 종교도, 관습도 타파의 대상으로 규정하거나 길항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처연하게 그것을 기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망을 숨기지 않는다. 이 책은 조만간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생각된다. 펄벅 이후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쓴 작가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장만기 | 한국인간개발연구원 회장1937년생.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경영대학원 국제경영자과정 수료.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갤럽통계연구소 소장, 리더십매니지먼트 회장 등 역임. 1975년 시작된 국내 최고(最古)의 조찬모임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창시. 현재 한국인간개발연구원 회장(2001년~), 녹색교통운동 이사장, 중국 옌볜과학기술대학 명예교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존 러벅 지음, 이순영 옮김, 문예출판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인 화두에 대한 고찰. 정치가·곤충학자로서 19세기 영국의 지성을 대표했던 저자가 성경 구절과 고대 철학가의 이론, 당대 사상가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좋은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저자의 풍부한 인생 경험과 해박한 지식, 삶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2008년 9월 발간. 1만2000원. 원제 ‘The use of life’.
백 년 세월 건너뛴 주옥 같은 명언들… 인생을 돌아본다34년간 인간개발연구원을 운영해 오면서 내가 지향하는 것은 ‘종합인간과학’이다. 다학문적 접근과 지식 융합의 차원에서 기업, 정부(지방정부), 군대, 교육기관 등의 리더들이 풀어야할 과제를 인간과학과 지구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내 사무실과 집에는 수많은 신간이 서점처럼 쌓여 있다.
직업의 특성상 자기계발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데 이 책은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큰 감명을 줬다. 며칠 전(12월 16일)에 조순 박사님과의 오찬 자리에서도 이 책을 추천했다. 저자가 100년 전에 저술한 내용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혜, 절약, 교육, 놀이, 건강, 자기계발, 독서, 인간관계, 근면, 평화와 행복 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화두로 삼아 가치 있는 인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은 각자의 인생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에는 고대 성인들이 남긴 주옥 같은 명언들이 가득하다. 특히 ‘왕의 작위를 줄 수도 있지만 신사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고귀해질 수 있다’라고 자기계발의 가능성에 대해서 역설한 저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윤수영 | KBS 아나운서1981년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05년 KBS 공채 아나운서. ‘스타골든벨’ ‘6시 내고향’ ‘TV는 사랑을 싣고’등 예능·교양 프로그램 진행. 현재 KBS World의 경제시사프로그램 ‘Korea Biz Insight’ 진행.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 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등 역사상 가장 창조적 사고가 빛나는 위인들의 발상법을 보여주는 책. 위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창조적인 생각을 해냈는지를 관찰, 형상화, 추상, 패턴인식,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등 13단계로 나누어 생각이 탄생하는 과정을 논리정연하게 제시했다. 저자는 창조성이 소수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학습가능하다고 말한다. 2007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에서 뽑은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됐다. 2007년 5월 발간, 2만5000원.
내 안에 숨은 창조 본능 일깨워준 선물 같은 책카메라 앞에서 방송을 할 때 또는 사석에서 지인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한계에 부딪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야기의 주제·소재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상대방에게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적절히 풀어 프로그램 속에 잘 녹아들게 하는 능력이 내게 있는지. 말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이런 부분들은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다. 지난 여름에 한 선배 PD에게 생일선물로 건네받은 이 책은, 내 안에 숨어있는 창조의 본능을 일깨워준 선물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파블로 피카소,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기존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결국 새 패러다임을 창조한 수많은 혁신가를 사례로 들며 그들이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고 대상에 대해 생각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혁신을 낳은 원동력은 다름 아닌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감정과 느낌을 기반으로 한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지만 창조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음악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상상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 그림을 보는 것의 원천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고 너머의 사고를 하는 것이다.
호란 | 가수1979년생.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본명 최수진. 2004년 프로젝트 그룹 ‘클래지콰이’ 보컬로 가수 활동 시작. KBS 1 ‘파워 인터뷰’ 고정 패널. EBS ‘책 읽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 MBC FM ‘뮤직 스트리트’ 진행. 남성지 ‘맨즈헬스’ 북칼럼 연재. 현재 어쿠스틱 밴드 ‘이바디’ 멤버로 활동. 산문집 ‘호란의 디카포’ 출간.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도시 전체에 ‘실명’이라는 전염병이 퍼지는 극한적 상황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과 가치, 현대 문명의 허구, 정치권력의 폭력성 등에 대해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소설이다. 줄리언 무어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에서 상영 중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4년 후를 다룬 ‘눈뜬 자들의 도시’가 2007년 출간됐다. 2002년 11월 발간. 9500원.
눈먼 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본 우리 현실옛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미친 자들의 나라에 간 멀쩡한 사람이 있었는데 미친 사람들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나머지 서서히 미쳐갔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미쳤을 때 그는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비로소 행복해졌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로 그 ‘정상인’들의 공포를 철학적이고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난 이 책과 사랑에 빠져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들고 눈먼 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눈먼 자를 연기해야 하는 고통과 절박함에 대해 그리고 모든 희망이 소거되고 더 이상 미래에 기대할 것을 잃었을 때 대면하게 되는 절망에 대해. 다들 쉽게도 얘기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마련이라고. 목소리가 작은 이들은 말을 갖고 있어도 침묵해야 하고 다수로부터 외면 받은 이들은 눈이 있어도 소경인 척해야 한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내면의 눈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약자들은 그저 눈먼 체한다. 소설 속 가공의 세계는 얼마나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는가. 이 소설은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매료시켰던 작품일수록, 텍스트만으로 선명한 숨소리를 살려냈던 작품일수록, 다른 누군가의 눈을 통해 재해석된 화면과의 괴리는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