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자리한 F1963은 가동이 멈춘 제강공장을 복합공간으로 되살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시장·도서관·음악홀·갤러리·수변정원을 차례차례 선보이며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F1963이 처음 우리를 매혹했던 건 광대한 공간미였지만, 지금은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낡은 시설들을 매만지며 일관된 정서를 부여하는 그 인내와 끈기에 공감하게 된다.
F1963의 풍경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건, 바로 시간이다. 글과 사진 최예선(예술칼럼니스트·작가)
폐공장에 불어넣은 문화예술의 생기
낡은 공장이나 창고처럼 한 시대의 산업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들을 ‘산업유산’이라 한다. 산업유산은 사람들의 생계와 함께한공간이자 도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장소다. 오랫동안 주민들의 기억을 형성해온 건물이기도 하므로, 기능을 잃고 텅 빈공장이라 해도 도시의 역사와 산업의 정신을 연구하고 공유하도록 철거하지 않고 남겨야 하는 문화유산이다.그런데 이런 생각과 별개로, 공장과 창고가 근사한 공간이라는걸 세상이 알아버린 것 같다.
이런 독특한 장소들은 카페와 예술공간, 상점과 쇼룸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가치가 높다. 사람들은 낯선 매력을 지닌 색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일에 지갑을 연다. 낡은 건물의 생채기 흔적은 스토리텔링에 필요한 요소다. 이렇듯 산업유산은 공간적인 매력도 충분하다. 굳이 ‘도시 재생’이란 어려운 말을 쓰지 않더라도, 도시의 기억이 담긴 공간에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담도록 개발하는 일이 당연해진 것이다.
[부산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1945년 부산에 설립된 고려제강은 와이어로프를 주 품목으로생산해온 기업이다. 1963년 수영구 지역에 공장을 신설하면서탄탄하게 입지를 키웠다. 2008년이 되자 도심에 자리한 공장의 문을 닫고 외곽 지역으로 공장을 옮겼다. 텅 빈 공장이 자리한 부지는 모두 6740평(2만 2280㎡)이며, 건물 연면적만 해도3000여 평(약 9917㎡)에 달한다.
이 거대한 장소는 헐리거나 매각되지 않고 건물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부산시가 20년간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하면서 시비를 일정 부분 지원한다는 협약을 고려제강과 맺고 변화를 함께 이끌었다. ‘F1963’은 공장이 문을 연 연도와 공장(Factory)의 첫 글자를 조합한 명칭이다.F1963은 2014년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깜짝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부터 주요 전시 공간으로 본격 활용됐다. 새롭고 낯선 장소에 대한 기대감과 입소문으로 부산비엔날레는 흥행에 성공했고 메인 전시장인 부산시립미술관보다더 많은 관객이 F1963에 몰렸다.
이렇듯 F1963의 탄생은 처음부터 화려했다. 그 이듬해부터 대형카페·서점·갤러리·유리온실과 가드닝숍·산책로·예술도서관 등이 차례대로 공개?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현대모터스튜디오를 끝으로 드넓은 부지가 어느 정도 채워진 듯하다. 현대모터스튜디오는 현대자동차에서 선보이는 디자인 콘셉트 공간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콜라보 형태로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브랜드의 지향점을 알려 나가고 있다. 묵직한 철재 트러스와 강인하고 두꺼운 벽체로 강한 인상을 주는 F1963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유리와 알루미늄·철골을 주재료로 삼아 투명하면서도 견고한 이미지를 지녔다. 현대모터스튜디오의 특징은 기둥 대신 고려제강재 와이어로프가 건물을 강하게 지지한다는 점이다. 장력과 탄력을 가진 와이어로프는 이곳 외에도 카페와 서점 등의 실내를 장식하거나 지지하며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로 곳곳에 사용되고 있다.
[공간의 여백에 담긴 느린 시간]
F1963에는 헌책을 사고 막걸리를 마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앞선 그래픽 기술이 펼쳐지고 미래의 공간과 생활을 상상하는 곳도 있다. 생산 현장이라는 기능이 사라지고 대담한 형태미만 남은 이 공간에선 지나간 것과 앞선 것을 동시에 체험하는 일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잘 조합된 퍼즐 같은 건물 곳곳엔 여백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화물차가 다녔겠으나 지금은 보행자 도로가 된 넓은 통로, 건물의 중심부에 놓인 광장, 이웃 주민들 생활공간과 맞닿은 뒷마당, 산책로와 이어진 앞마당 같은 곳이다. 계절을 살필 수 있는 다양한 꽃나무를 조성한 뒷마당인 달빛정원은 네모난 연못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콘크리트 계단을 올라 공중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숨겨진 연못과 아래에선 잘 보이지 않는 공장 건물의 지붕들을 감상할 수 있다. ‘F1963스퀘어’라고 명명된 중앙 광장은 공장들을 이어주는 다리와 연결된다. 테이블과 의자만 놓여 있슴 빈 광장은 고요히 휴식하는 열린 공간이다.
앞마당과 이어진 푸른 대나무 숲속엔 ‘소리길’이라 불리는 산책로가 있다. 대나무 잎사귀가 부딪히며 서정적인 소리를 낸다 해서 소리길이다. 공장 바닥에 사용된 콘크리트를 떼어 와 산책로의 바닥 돌로 삼았다. 바닥 돌에 남은 푸르고 붉은 물감들은 공장의 시간을 상징한다. 이런 공간적 여백들은 건물에 담긴 역사적 시간을 사람의 시간, 자연의 시간으로 바뀌게 한다.
F1963의 장점이 색다르고 독창적인 공간미란 건 틀림없지만, 여러 해 지켜보면서 조금 다른 장점도 보게 됐다. 이곳은 자기만의 속도로 건축물이 가진 시간과, 사람과 땅의 시간을 조율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은 더욱 풍부해졌다. 공장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면서 도시가 필요로 하는 쉼표를 제공한다.
[부산의 산업유산이 가진 매력]
왜 우리는 숨겨야 마땅한 낡은 철골이나 구조재들을 드러낸 거친 공간에 반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낯선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거대하며 비일상적인 공간에선 새로운 행성에 발을 디딘 것처럼 다른 파동이 느껴진다. 까마득히 높고 광활한 공간이라면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공간적 압박감에 온몸이 긴장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공간에서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커피를 마시고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때론 낡은 흔적 속에서 지나간 옛일을 꺼내며 ‘그땐 그랬지’ 같은 감상에 젖기도 한다. 우리는 꼭 ‘좋은’ 공간만 원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흥미롭게도 부산에선 산업유산들의 변신이 대대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부산에는 제조업·직물업·철강업·해운업 등 다양한 산업유산의 흔적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항만 시설도 외곽으로 움직이고 있다. 선박용 철물 공장, 컨테이너 부두, 해안 근처에 자리한 창고들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조짐을 보인다. 어쩌면 대부분 중심업무지역이나 아파트 단지로 변화할 수도 있겠으나, 그중 일부는 분명 낡은 건물 속에 새로운 변화를 담고 다음 시대를 향해 갈 것이다. 그 낡은 건물들은 그렇게 시대를 건너 앞으로 나아가는 도구가 된다.
<전원생활>
첫댓글 덕분에 좋은 곳 알게되었습니다
부산 가면 가봐야겠습니다
저도 부산여행 가면 느긋하게 구경하고 오려고 해요. 맨날 볼일만 보고 급히 올라왔거든요.
이런 곳이 지역마다 있죠? 인천에도 서울 구로인가 거기서도 본 거 같아요.
요즘은 어딜 가도 보기 좋게 잘 꾸며 놓았더라고요. 상당히 깨끗해지기도 했고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러기까지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요.
돈을 당장 내 입에 넣지 않고 주변을 꾸미려 하기까지 말이에요.
인천은 아트플랫폼이 멋있죠. 개화기 공장들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요.
수영구에 있습니다.. 제강 공장 자리에 책방이 들어섰는데, 커피 공방에 가면 그 흔적을 볼수 있습니다
올해는 부산 가서 며칠 머무르다 오려구요. 차분히 구경도 하고^^
@바람숲 예~~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