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2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0914 水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524(313)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32:1-11), 설교(15분),
◈ 시편 32편은 다윗이 죄 용서의 기쁨을 찬양한 일종의 ‘참회 시’입니다.
표제에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마스길’은 난하주에 있듯이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죄 용서 받는 사람이 누릴 기쁨에 대한 ‘다윗의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 사람이 죄를 짓고 나서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숨기며 지내다 보면
그로 인한 마음과 영혼의 고통이 일평생 뒤를 따라다니는 법입니다.
사무엘하 11장에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의 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죽게 만듭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 말씀대로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문제는, 계속해서 그 죄를 감추는 것입니다.
죄는 감춘다고 해서 숨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타이타닉’이라는 배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호화로움과 튼튼함을 자랑하던 이 대형 유람선이
첫 여행에서 대서양을 횡단하다가 그만 빙산에 부딪혀 위기에 빠집니다.
그 배를 설계한 사람이 선장에게 불려왔습니다.
이 배는 길어야 2시간, 짧으면 1시간 안에 침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배의 구조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린 진단이었습니다.
사람도 자신이 설계한 배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을 수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오장육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시편 139편 2-4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 그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당하지 않는 사람,
곧 죄와 허물을 다 용서받은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개역 성경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이 문장의 끝에 붙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1절 맨 처음이 “복이 있도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복이 있도다. 잘못을 용서받고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죄의 성향이 강합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짓더라도 더 이상 정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다”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2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정죄’라는 말은 그 죄 자체와 죄에 따른 형벌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기억해야 할 사실은,
다윗이 본문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자가 복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된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못을 묻지 않으시는 사람이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 6절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주가 찾으실 때에 그분께 기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이 홍수처럼 밀려올지라도 그들을 덮치지 못할 것입니다.”
죄의 문제, 고난이 닥칠 때에 우리가 나아갈 곳은 ‘하나님 앞’ 뿐입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면 주님은 8-9절의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억지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 이제 우리가 할 일은 10-11절로, 구원과 용서의 기쁨의 노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다함이 없는 사랑”, “실패를 모르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오늘 하루를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