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플론, 혹은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EF)이라고도 불리는 이 발명품은
전쟁이 아니었다면 영영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1938년,뒤퐁사에서 일하는 27세의 젊은 화학자 로이 플런켓은 독성 없는
냉매를 개발 중이였다. 화합물을 넣은 고압 탱크 밸브를 열어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 저울을 달아 보니 분명 기체가 가득 든 무게였다. 탱크를 쪼개자 안쪽
면에 매끈한 분말가루가 하얗게 덮여 있었다. 분석 결과 강한 산과 염기에도
녹지 않는 신기한 물질이었지만, 플런켓이 원한 냉매는 아니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미국은 원자폭탄에 필수적이지만 부식성이 강해 웬만한 금속들을
녹여 버리는 가스를 분리시키는데 고전하고 있을 때였다. 육군 장교 그로브
스가 친구로부터 산이나 염기, 고온도 잘 견디며 이물질이 들러붙지 않는 물
질을 뒤퐁사에서 개발했지만 생산비가 비싸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개발을 요
청, 원자폭탄 제조에 쓰면서 테플론의 존재가 알려졌다.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 을 실용화시킨 사람은 1950년대 초 프랑스의 화학자
마크 그레그와르였다. 사실 눈으로 보기에는 얇은 플라스틱 피
막 하나 덧쒸웠을 뿐 기존 프라이팬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엉킨 낚싯줄
을 풀기 쉽게 하려고 테플론 막을 입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프라이
팬 표면에는 미세한 틈이 있고 쓸수륵 흠집이 생긴다. 달걀이나 음식이 눌어
붙는 까닭도 틈새로 음식이 새어 들기 때문이다. 열에는 강하고 매끄러운 테플
론 코팅을 하면 기름을 부은 것처럼 재료가 파고들 틈이 없게 된다.
1957년 뒤퐁사 직원R, W. 고어는 테플론의 용도를 구상하다 전선피막으
로도 유용하다는 점을 알아냈지만, 회사에서 인정해 주지 않자 따로 절연전선
을 출시해 성공했다. 그의 이름을 딴 고어사는 1969년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전선 제조에 참여했고, 그의 아들 밥은 테플론 원 소재를 최대한 잡아당겨 얇
은 테플론 피막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빗물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 땀이
나 증기는 밖으로 내보내는 산악 활동의 필수품 '고어텍스'의 효시다.
테플론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전자산업 분야, 전화와 컴퓨터 선 같은 절
연피복제가 그것이다. 그밖에 몸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인조대동맥과
심장박동장치, 인공턱, 코뼈 같은 인공 장기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