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으시시 옷깃을 여미게 하던 70년 11월의 어느날.
다 떨어진 전투복에 구린네 지독스럽게 나는 통일화의 단풍하사 120명.
전술학 2주차 훈련 중 일과를 마치고,석양이 붉게 물들어 늬엇늬엇 넘어가는
서쪽 하늘 태양을 바라보며 고향생각 하고 있을때 " 상놈의 새끼 어디가서
아직 안 오는거야" 훈련병 한명이 아직 오지 않아 자대로 복귀도 못하고
나머지 인원은 주린배를 움켜지고 앞으로 다가올 조교의 만행에 공포스러운
얼굴로 동기 한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육대에 가면 자치활동의 일환으로 구대장 후보생 중대장 후보생 그런
감투들이 있습니다.본인은 그때 3구대 구대장 후보생이었는데
같은 동기끼리라도 그들이 본인을 어려워 하고 지시를 따라주는것이 재미가
있어 여러차례 후보생 간부를 역임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예정시간보다 30분이 지연되자 조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이 거기 총 한자루 가져오너라"
아마도 총으로 빳다를 칠려는 모양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넘은 갑자기 배가 아파 산에서 대인지뢰 매설하고
오느라고 늦었답니다.참고로 군미필자를 위하여 부연 설명하면 대인지뢰
매설이란 야전에서 대변을 본다는 소리입니다.
뿔따구가 난 조교는 그녀석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M1 소총으로 엎드려
뻗혀 시켜 놓고 사정없이 후려 쳤습니다.
방한복을 입은 녀석은 별로 아프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잠시후 뚝 소리와 함께 총목이 부러졌습니다.그 소총은 본인것이었는데....
그 조교 왈 "너가 산에서 훈련하다 미끄러져 총목이 부러졌다고 보고해라"
그러는 것이 었습니다. 다음 화기학 교육 편하게 받을려면 알아서 해라 야!
이일을 어쩌나 이 순진한 신하사 후보생은 본대에 귀대하여 구대장에게
조교가 시키는데로 보고 했더니 " 이 늠의 새끼 총은 군인의 생명과
같은것이냐"라면서 팬티 바람으로 막사뒤로 오라고 하더니 그 추운데 멘발로
구보를 시켰습니다. 동기생들 보기에 챙피하기도 하고 바른대로 말해 버릴까
아니지 우리 동기 120명이 편하게 교육 받을려면 이 한몸 고생하자.
그 이후 발에 동상이 걸리고 다시 100리 행군을 마치고 봉가직염이라는
발병이 생겨 엄청 고생했습니다.훈련중에 부상병이 나오면 중대장이나
구대장이 대대장에게 찐빠를 먹기 때문에 죽을병 아니면 쉬 쉬 하고 넘어갑니다.
1971년 1월 6개월 간의 고통스러운 교육을 마치고 원주에서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오던중 구대장이었던 박 중위에게 그때 일을 소상히 이야기 하였습니다 .
"이 바보같은 놈아 그러면 그렇다고 이야기 할것이지".... 그러는것입니다.
그때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면 그 조교 영창가고 아니 군사재판에 회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교육생 구타만 해도 중죄인데 총기파손죄까지 저질렀으니
그녀석 숨어서 마음 조리고 있었겠지요.
덕분에 박대통령이 10.26때 모셔졌던 수도육군병원도 구경하고 군대 생활이란
것이 어디에서 하나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니 한 3주 사제밥 먹어가며,
아릿따운 간호장교 수발 받으며, 잠시나마 군생활을 잊고 민간인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구대장 박 중위,총목 부러뜨린 전술학 조교 손하사, 대인지뢰 매설하고 와서
본인을 수도육군병원까지 가게했던 동기 이하사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 살고 있겠지요.모두들 본인에게 미안한 감정이 조금은 있었겠지요.
없었다면 인간이 아니지요.아! 지나간날은 고통스러운 기억도 아름다워라.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지?
첫댓글 군대를 안가는 사람이라 이런 맛을 잘모르겠습니다..정말이지~!!!
그렇지만 의리도 있고 군대생활다운 그런 맛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