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만 만나면서 제법 싱싱하게 살았는데 다시 호주에 와서 하는 일의 성격상 노인들만 만나고 있어서 정신위생상 별로 도움이 안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노인복지 사업을 해서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과거에 하던 복지사업과 전혀 다른 개념이어서 매우 낮설다. 15년 전에 나는 목요일까지 택시 운전을 하고 금요일은 한인복지회에 출근했다.
Director 로서의 나의 임무는 추상적으로 말하면 '관리 감독'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고장 난 것을 고치는 일에서 부터 비품관리, 인사관리, 외부 회의 참석까지 닥치는 대로 구멍 난 것을 메우고 남들이 미처 살피지 못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었다.
시드니 각 지역에 흩어진 사무실에서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실무자들이 있고 나 같은 운영위원은 무급으로 일을 해야 했다. 호주에서는 대부분 자원봉사는 단순한 일을, 명예직은 보다 복잡하고 책임 있는 일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자원봉사와는 개념이 전혀 다르게 막중한 권한과 의무가 있다.
호주의 모든 비영리 단체는 법적으로 관리 부분은 명예직으로 실무부분은 유급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업무가 호주 정부기관의 수준에 맞추어야 하는 일이어서 대단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일을 하다가 15년 만에 돈이 되는 노인 복지업무를 하려니 혼란스럽다.
노인대학을 월남참전전우회를 활성화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판데믹 이후 초토화 되어서 거의 만남이 없었어도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나서서 다시 조직을 재건해야하게 되었다.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인연이 깊지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전혀 없어서 그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단체이다. 흔히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정보는 편향되고 귀는 얇고 목소리는 큰 현상이 대표적인 구룹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노력 끝에 어제 처음으로 별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신년에 총회를 소집해서 조직재건을 하기로 했다. 물론 중요한 실무책임은 내가 맡기로 했지만 과연 70대 중후반 부터 80대에 이르는 100명에 이르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를 시키고 구미를 당기게 해서 활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숙제이다.
.
냉정하게 생각해서 사람이 늙어서 좋은 것은 없다. 결국은 좋은 것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호주 정부가 제공하는 약간의 지원을 받아 좋은 것을 만들어 내야하는 난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열심히 해서 실적을 많이 쌓아야만 이미 대여 받아 놓은 땅에 개인 돈을 들이지 않고 호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 양노원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는 같이 ‘놀 수 있는’ 사이와 ‘놀 수 없는’사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계급의 차이라기보다는 성향과 수준의 차이이다. 평소에 警老사상이 투철한 나로서는 노년층의 온갖 雜Person을 대상으로 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인간이 년식이 나가다보면 발전 보다는 퇴보하는 것이 정상이다. 퇴보의 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지만 나의 전문분야인 Personality MRI에 의하면 독선, 아집, 편견, 집착의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증상들은 종합 셋트로 함께 붙어 다닌다. 즉 어떤 사람이 독선적이면 그는 아집과 편견과 집착을 골고루 균형 있게 갖춘 인간이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밖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적당한 지식과 교양, 신앙으로 포장되었을 때이다.
독선, 아집, 편견, 집착은 단순히 당사자의 문제가 남을 괴롭히는 정신적인 폭력이 된다. 독선, 아집, 편견, 집착은 인체에 퍼지는 암세포처럼 자라나고 있지만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 이런 증세는 자각증세가 전혀 없어서 남들이 먼저 알아 본다. 그래서 본인은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제가 잘난 줄 알고 살다가 가는 수가 대부분이다.
참전 전우회는 시드니라는 좁은 바닥에서 최소 20년 최대 40년 세월을 함께 살아온 특수한 성격이 있다. 대부분이 서로간의 창자색깔까지 훤히 아는 처지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좋은 기억 보다 나쁜 기억이 많고 회원 상호간에 고소 고발을 하다가 먼저 죽어서 끝난 경우도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도 있다. 이런 아사리판 같은 단체이기 때문에 단합이 더욱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도 같이 ‘놀 수 있는’ 사이와 ‘놀 수 없는’사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50년 세월을 갈등과 대립의 현장에서 중재와 협상을 하고 때로는 깽판도 친 경력의 사나이가 아닌가? 참전전우회는 전우애는 애초부터 없었지만 서로간의 반목과 질시로 훈련된 조직이다. 그래서 언제든 비윗장이 틀리면 한 순간에 그만 둘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감수성을 가진 조직이다. 나 자신도 전우들과 한인 사회를 위해서 유익한 목적이 있어서 지금 일을 하고 있지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마음이 상하면 언제든 그만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조직이다. 그래서 나는 여차하면 후퇴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의 성격이 치밀해야 하지만 거칠은 일이다.
다음은 내가 쓴 총회 통지문이다.
"전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사소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다시 뭉쳐야할 때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완전히 정지되어 있던 전우회가 정상 궤도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어 아래와 같이
전우회를 재건하는 임시총회를 소집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과격한 통지문이 어디 또 있겠는가?
전우회 업무상 어떤 인물을 만났는데 허세와 과장이 덕지덕지 낀 전형적인 허풍선형이었다. 건달들의 속어에 립서비스, 즉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는 뜻으로 ‘접시 돌린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런 분위기였다.
당연히 실행되어야 할 실무적인 과정을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한양 장황하게 거품을 무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람에 대한 비위가 강한 나지만 한계를 느꼈다.
개인적인 만남의 아니고 단체를 대표한 공식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결과를 얻어야 했다. 그래서 자꾸 본질을 벋어나서 곁길로 빠지는 대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평소의 예수님 16촌 같은 자세를 버리고 신경을 곤두세워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공세적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대화를 2시간 정도 보내니 피곤하고 지쳤다. 범인을 취조하는 형사라는 직업도 힘드는 직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