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5.9m 전북 임실
고려와 조선 건국설화가 서린 천자봉조지상(天子奉朝之像)
임금에게나 붙일 법한 성수산(聖壽山)의 지명과 높은 하늘에서 신이 ‘성수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이태조의 귀에 들렸다는 뜻을 지닌 상이암(上耳庵)의 이름이 무척 신령스럽다.
임실군지와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풍수지리에 통달한 도선국사가 성수산을 살펴보고 천자봉조지상(天子奉朝地像), 즉 임금을 맞이할 성지로서 손색이 없음을 알고 송도로 올라가 초야에 묻혀 있던 왕건에게 백일기도할 것을 권했다. 왕건은 이 산에서 기도 후 목욕을 하다가 고려 건국의 대망을 이룰 것이라는 영험을 받고 기쁜 나머지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으로 명명하여 바위에 새겼고, 도선국사는 도선암을 세워 고려 건국을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무학대사의 권고로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개선 길에 성수산에서 들러 기도했다. 꿈에 용이 나타나 세 번이나 몸을 씻어 준 발룡대몽(發龍大夢)을 꾸고, 기도하던 곳이 산, 물, 하늘의 세 가지가 맑다는 뜻으로 삼청동(三淸洞)이라 일필휘지하게 이르렀다.
왕으로 등극한 후에는 높은 하늘에서 신선이 성수만세를 세 번 외치는 소리가 이태조의 귀에 들렸다는 뜻으로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치고, 어필각을 세워 삼천동이라 쓴 입석비를 안치하게 됐다.
진안의 금남호남정맥에 있는 성수산과 혼선을 피하기 위해 임실 성수산으로 부르기로 하자. 임실이 충효의 고장으로 불리는 것도, 성수면에서 그동안 충신과 효자 효부가 많이 배출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군민의 날에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소충제가 열리고 있다.
한말에는 이석용 의병장이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운 전적지로 역사적 의의가 큰 명산이며, 한국전쟁 때는 지리산과 회문산 다음으로 격전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성수산에 휴양림을 조성한 김한태옹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 나무할아버지로 유명하다.
산줄기는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는다. 이 지맥이 서북쪽으로 뻗어가며 마령치에서 만행산 줄기를 남쪽으로 갈라놓고, 구름재 부근에서 또 다시 서쪽으로 영태산 줄기를 나누고 서쪽으로 뻗어가다 성수산을 솟구쳐 놓았다.
물줄기는 남쪽은 성남제를 통하여 오수천, 북쪽은 백운천을 이루다가 섬진강에 살을 섞고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임실군 성수면과 진안군 백운면에 위치해 있고, 성수산 북동쪽 천상데미 아래 상초막이골엔 섬진강의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다.
산행은 대부분 성수산 자연휴양림과 상이암을 경유하게 되나, 이번에는 선덕산악회 박영근 회장과 김종석 총무가 개척한 제1코스를 호남산우회와 전북산사랑회가 합동으로 답사했다. 들머리인 두원 마을은 백제 때 진안, 장수, 임실의 경계로 삼원(三元)으로 불렸으나, 1917년 일제의 행정개편으로 개명됐다.
반송리를 거쳐 두원 마을 입구에 닿으면 주민들의 화합과 마을의 태평성대를 바라는 태화정(泰和亭)이 빈객을 맞는다. 마을의 수호신이자 당산목인 400년 된 느티나무가 태화정과 마을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느티나무 뒤 실개천의 시멘트다리를 건너 남쪽의 전답이 있는 고즈넉한 농로를 걸으면 외딴집에 팔도명산 백운암이란 간판이 걸려있다. 묘소와 휴경지를 지나면 작은 소나무 숲으로 든다. 472m봉까지 나무들이 진을 치고 있다.
울창한 숲을 50분쯤 오르자 비로소 시야가 트이며 동쪽으로 대전 마을과 선각산, 그 너머로 덕태산 줄기가 춤춘다. 반면 서쪽 주암동 방향의 벌목한 민둥산이 흉물스럽다. 오나가나 수목갱신이란 미명으로 이뤄지는 벌목과 무분별한 임도개설이 산림과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등장한다.
20분쯤 숲길을 오르자 울창하던 육산이 갑자기 칼날바위로 변하여 스릴을 느끼게 한다. 칼날바위를 지나자 이번엔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장군봉(725m)이 발길을 가로막는다(두원에서 1시간50분 소요). 암봉을 오르니 조망이 훌륭해 선각산, 덕태산, 팔공산 줄기와 주변 마을들이 한눈에 훑어진다. 그런데 사방이 바위절벽이라 되돌아내려오는 수밖에 없다.
암릉지대 덕택에 산행속도가 나지 않는다. 전망 좋은 능선에 서면 북쪽 선각산의 신선이 춤추는 선인무수(仙人舞袖) 장관과 대전 마을, 동쪽 성주막, 서쪽 주암동이 한눈에 잡힌다. 장군봉에서 30분쯤이면 남쪽으로 성수산이 고개를 내민다. 삼림욕과 오찬을 느긋하게 즐기고, 오름길을 가면 병풍바위가 마중 나온다.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와 씨름선수처럼 서로 몸 밀치며 하늘 높이 치솟는 모습을 보니 위풍당당함과 함께 힘겨운 삶을 사는 인생의 두 모습으로 다가온다.
북쪽 유등, 서쪽 주암동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면 키를 넘는 조릿대가 성가시게 따라오며 발길을 잡아챈다. 신령스런 이름을 가진 성수산에 닿으면 삼각점(임실 807)과 전북산사랑회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반갑게 맞다(두원에서 2시간30분 소요). 김환기씨가 사진을 찍다가 서쪽 바위절벽으로 추락해서 큰일 날 뻔했는데, 이를 조송훈씨가 리바이벌했으나 다행히 무탈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발걸음을 재촉하면 서쪽은 상이암 하산길, 동쪽은 통시골 갈림길이고, 오름길에 버티고 선 떡바위가 마중나온다. 김환기씨는 선바위, 조송훈씨는 칼날바위라고 옥신각신 설전이다. 성화봉처럼 멋진 나무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몸통에 구멍이 펑 뚫린 고목나무를 배경으로 앵글을 잡는 손길이 바쁘다.
▲ 성수산은 휴양림 기점의 간편한 산행에서 신암리 기점의 긴 산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철쭉 능선을 걸으면 어느새 남산이다(성수산에서 35분 소요). 동쪽은 신암제길, 서쪽은 상이암 하산길이다. 산죽을 헤치고 숲길을 오르면 성수산 줄기에서 가장 높으면서도 특징이 없는 밋밋한 905m봉에 닿는다(성수산에서 50분 소요). 서쪽 하산길은 상이암과 사근 마을로 가는 임도를 만난다. 에너지를 보충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능선길을 가면 두번째 봉우리부터 옥수수 수염 같은 파란 풀들이 온 산을 뒤덮었다.
구름재에서 서쪽 임도 아래로 눈길을 돌리면 대판이 마을 가는 임도가 보이고, 동쪽은 백운산장과 을림 마을 하산로가 희미하다. 팔공산과 섬진강 발원샘이 있는 천상데미와 오계치, 그리고 마당재가 한눈에 잡힌다. 싸리나무 군락을 지나면 오름길이고, 시멘트 구조물이 있는 861m봉에 닿는다(성수산에서 1시간35분 소요). 작명의 천재 김환기씨가 깃대봉으로 명명했다. 동쪽 팔공산, 북쪽 선각산. 덕태산, 남쪽 영태산, 오봉산이 지척이다.
▲ 861m봉에서 본 선각산과 그 아래 신암 마을.
예전에 덕소목장이었던 드넓은 초지를 내려오면 우측은 전답을 개간하거나 관상수를 재배하고 있다. 임도를 따라 송신탑을 정수리에 인 팔공산의 웅장한 모습과 야생화를 감상하노라면 어느덧 마령치(馬靈峙)다(성수산에서 2시간 소요). 백제 때 장군의 말이 죽자 이곳에 묻은 뒤 3년 동안 밤마다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고개다. 동쪽은 금남호남정맥 팔공산(2.3km) 코스고, 남쪽 대성목장, 북쪽은 백운산장과 신암리를 잇는 임도다.
오늘은 신암리로 하산키로 했다. 현충일의 호국영령을 추모하듯 하얀 찔레꽃이 만발해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임도 주변의 갯버들 나뭇가지가 삶이 버거운 듯 하얀 포말을 품어내는 모습을 산골소녀님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계곡물소리 시원한 임도를 35분쯤 내려오면 을림 마을 백운산장 앞 포장도로다. 이 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지름길로 옛적에 40여 호가 부강하게 살았으며, 팔공산의 광물과 목탄, 목재를 보관하던 창고도 있었다고 하나 옛 영화를 찾을 길 없다.
머리 감고 탁족을 즐긴 뒤, 유등 마을 양인수씨 댁에서 박영근 회장이 마련한 토종닭과 장뇌삼을 넣은 닭죽으로 잔치를 벌였다. 김환기씨의 장성 특주, 장혜경씨의 과일도 금상첨화였다.
전북산사랑회가 답사한 제2코스는 이렇다. 성수산 휴양림에 주차하고 임도를 따라 1.5km쯤 걸으면 상이암 입구에 있는 부도 앞에 이른다. 성수산을 가는 등산로는 나무에다 가시철사를 박아서 수목장생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어 안타깝다. 사찰 아래 오른쪽 임도를 따라 오르면 구름재를 지나 산 전체를 한 바퀴 종주할 수 있다.
부도 앞을 출발하여 왼쪽의 등산로를 10분쯤 오르면 너덜길을 지나 능선에 닿는다. 서쪽은 상이암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철조망으로 막았다. 철조망을 우회하여 정상으로 가는 코스도 있으나, 동쪽으로 곧바로 오르는 것이 빠르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875.9m)은 상이암 좌측 1.5km 지점인데, 누군가 상이암이 있는 뒤편의 905m봉이 더 높다 하여 정상으로 잘못 표기했다.
급경사 길을 지나면 멋진 암봉에 이른다.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다. 상이암과 성수산의 산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남쪽 능선을 7분쯤 가면 삼각점이 있는 정상이다. 서쪽 만행산 천황봉, 동쪽 선각산과 덕태산, 북쪽 내동산과 고덕산, 남쪽 팔공산이 한눈에 잡히고, 그 아래로 섬진강 발원샘이 있는 원신암 마을이 지척이다.
하산은 성수산 자연휴양림까지 오던 길을 되돌아 임도를 따라 상이암 입구로 가거나, 남산이나 905m봉을 커쳐 구름재에서 오는 임도를 타고 상이암으로 갈 수 도 있다.
제3코스는 금남호남정맥 서구리치에 주차하고, 팔공산(2.5km)을 거쳐 마령치(2.3km)에서 제1코스를 역순으로 산행하면 된다. 하산 후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다.
산행안내
제1코스(개척)
반송리 두원 마을~농로~(3,2km)~장군봉~(1.1km)~성수산~남산~(1,6km)~905m봉~(1.4km)~861m봉~(1.3km)~마령치~임도(2.8km) 《11.4km, 5시간 소요》
제2코스
전주→임실 직행버스가 수시 운행. 30분 소요.
임실→성수리 군내버스가 1일 5회 운행. 약 10km, 30분 소요.
전주→백운직행버스가 1일 2회(07:20, 15:20) 운행.
백운→전주 직행버스가 1일 2회(10:10, 15:20) 운행.
전주~진안 직행버스 수시 운행.
전주~관촌 시내버스 수시 운행(관촌 버스정류소 642-0177).
관촌~백운 군내버스가 1일 13회 운행(백운 버스정류소 4320-4513).
백운~진안 군내버스가 1일 13회 운행(진안 시외버스터미널 433-2508).
백운→유등·은안 백운 개인택시(432-5209), 또는 덕태상회(432-4735)로 문의.
드라이브 코스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동부 우회도로~관촌(49번 지방도)-진안 성수면(742번 지방도)-백운면 반송리 두원(을림·서구리치) /
전주~
임실(17번 국도)~성수 삼거리~(30번 국도)~성수면 소재지~
성수산 휴양림 입구 삼거리~우측 시멘트도로~성남저수지~
성수산 휴양림 주차장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무주 나들목~(30번 국도)~안천~진안~백운~반송리 유등(두원·을림) /
88고속도로 남원 나들목~(17번 국도)~오수~
임실 삼거리~(30번 국도)~성수면 성수리~백운면-반송리(유등·두원·신암리 을림)
첫댓글 산을 보면 거기에 머물고 싶고 강을 보면 또 그곳에서 시간을 낚고 싶고..하고픈거는 많고 맘도 그런데 몸도 시간도 허락치 않으니..기구한 이눔의 팔자..ㅋㅋㅋ
그래서 황성 옛터에..... 이렇게 온라인으로 눈호강이라도 하셔요. ㅎㅎ 5,1(토)에 전북 임실에 갈까해 여기저기 인터넷 디비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