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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옥정호와 붕어섬. 금붕어 한 마리가 화려한 지느러미를 펼치고 헤엄치는 듯 보인다.
1997년 3월,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전면 개명되던 해에 나는 중학생이 됐다. 역사의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식을 치렀다. 친구들의 웃음이 오후의 빛 속으로 멀어지고, 허한 마음으로 둘러본 빈 교실을 빠져나오며 나는 보았다. 겨우내 얼어붙은 수족관에서 고스란히 얼음이 돼 버린 붉은 색 금붕어 한 마리를. 귀퉁이를 맴돌며 통유리 너머 바깥세상을 내다보던 녀석은 반쯤 눈 뜬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응시하는 금붕어의 눈동자를 한참 바라봤다. 꼬리, 지느러미, 아가미, 머리…. 녀석의 몸뚱이는 그렇게 서서히 얼어 버렸을까. 너는 이대로 죽은 건가. 봄이 돌아와 물이 녹으면 살아나 다시 유영할 것만 같았다. 한동안 금붕어가 입을 뻥긋대는 환영에 시달렸다.
2 겨울 호수 위로 산영(山影)이 일렁인다.
옥정호 붕어섬. 마치 한 마리 금붕어가 화려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유유자적 헤엄치는 듯 보인다고 해 이름 붙은 전북 임실의 비경이다. 구슬 옥(玉) 자에 우물 정(井) 자를 쓴다. 호수의 포말이 모람모람 피어내는 물안개에 반한 객지의 사진동호인들이 사철 가리지 않고 기웃댄다. 특히 일교차가 심한 봄가을의 붕어섬은 운해 속 섬과 같은 선경을 연출한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붕어섬은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이 섬을 일러 옛 주민들은 외따로 떨어진 산이라며 ‘외얏날(외안날)’이라고 불렀다. 운암강 강줄기가 바깥(外) 날과 안(安) 날을 빙돌아 S자를 그리며 흘러가기에 그리 불렀다는 오랜 증언이 있다. ‘날’은 산등성이를 말한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사람들은 외안날을 ‘섬까끔’이라고 불렀다. ‘까끔’은 전라도 방언으로 ‘벼랑’이다. 외안날의 북동쪽 날이 깎아지른 벼랑처럼 생긴 데서 연유했다. 한데 왜 마을뒷산은 육지 속 섬이 되었나.
1965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 해 운암면과 강진면에 섬진강댐이 축조되면서 운암강은 옥정호로 바뀌고, 마을에는 물이 차올라 수면 위에 ‘붕어’ 모양의 지대를 남겼다. 섬진강댐이 만들어진 후로 외안날은 불리던 대로 정말 섬까끔이 됐다. 지명의 예지력은 놀라웠다.
당시 2,786세대에 19,851명의 이주민이 발생했다고 임실군은 전한다. 임실군 운암면, 심평면, 강진면과 정읍시 산내면 일부가 물속에 갇혔다. 섬진강댐은 곡창지대인 정읍, 김제, 부안의 관개용수 공급과 더불어 생활식수 공급, 홍수조절 등을 위해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이다.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상류물이 지류와 합수해 옥정호에 잠시 갇혔다가 정읍 칠보를 넘어 순창, 남원, 곡성 등 호남평야를 굽이치며 남해로 흘러든다.
일제강점기 때 운암저수지로 출발해 댐 준공을 최초 계획했으나 2차세계대전으로 무산, 해방 후 다시 건설하려고 했으나 6•25전쟁으로 또 무산. 그러다가 1961년 박정희 군사쿠데타정부가 대대적으로 재추진해 완공했다. 댐이 준공된 지 48년이 지났다. 옥정호에 침잠한 저간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뭇 사람들은 예술입네 하며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어깨에 걸메고 뚜벅뚜벅 전망대로 향한다. 그대들은 무엇을 보는가.
1 옥정호 수변을 따라 난 산허리를 가로지른다.
옥정호 주변을 따라 임실군은 지난해 4월, 운암면 마암리와 용운리를 잇는 13km 둘레길을 닦았다. 총 3개 구간으로 이어지는 ‘옥정호 물안개길’은 운암강변에 터 잡은 강촌마을들을 굽이굽이 돌아 마침내 외얏날의 고요한 수변에 이른다.
답사 당일 아침에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 옥정호와 그 속에 갇힌 겨울의 붕어섬을 조망한 취재팀은 오전 10시, 마암리 자연산장 앞에서 문화관광해설사 강명자씨를 만났다. 두 달 전에 폭설 속에서 우리와 서산 아라메길을 동행했던 트레일코리아 김진학씨도 함께 걸었다.
반쯤 언 저수지 얼음 밑으로 물들이 웅성댔다. 인기척 하나 없는 나루터에 빈 배 몇 척만이 간간히 바람에 흔들렸다. 마암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왼쪽 산세로 접어들었다. 5분쯤 짧게 이어진 흙길은 산의 안부를 닮은 아늑한 둔덕으로 우리를 끌었다. 철계단의 초입에 임실이 고향인 김용택 시인의 시 ‘그 강에 가고 싶다’ 전문이 비석처럼 서 있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라는 시구가 이 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를 전시한 것은 강명자씨다. “강에 관한 시들을 몇 편 가려 뽑았어요. 걷는 도중 물안개길 도처에서 읊으며 쉴 수 있게요. 안도현 시인의 시선에도 강을 노래한 것들이 많아 두 편 옮겼고요. 부끄럽지만 제 시도 두 편 있습니다.”
아침만 해도 하늘이 눅눅했는데 가느다란 햇살이 저 멀리 호수 속에서 은결처럼 튀어 올랐다. 어느새 다시 만난 옥정호를 바라보며 비좁은 산허리를 타고 걸었다. 물도 산 벽을 치며 우직하게 제 갈 길을 갔다. 호수 속으로 깊은 웅덩이가 생기며 수온차가 난다. 옥정호의 물안개는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다.
마암리 자연산장을 출발한 지 30분, 제1구간 종점인 육모정에 닿았다. 정자 옆에 ‘길카페’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가 있었다. 노부부가 거처하며 9년째 장사하는데 달걀, 커피, 두유, 라면, 과자 등 요깃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 물안개길을 걷는 동안 변변한 식당이 없기에 미리 먹을거리를 사두지 않으면 곤란하다.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얻어 제2구간으로 들어섰다.
2 오래 전에는 마을이었을 땅에 물이 들어찼다. 호수 건너편이 박실마을이다.
“산 첩첩, 물 첩첩. 돌아도, 돌아도 산이고 물이네요.” 김진학씨의 감탄대로 섬진강 상류인 임실은 지형이 높고 물이 많다. 태생적으로 물을 가둘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 땅의 비옥함을 증명하듯 2011년 겨울에 임실에서 대규모 석기제작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땅의 운명이 그러한들, 실향한 이들의 사무침도 저들의 운명인가. 호남을 지키고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식솔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 대체 저들의 천분인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임실은 사실 길고 긴 아픈 역사가 많아요. 산이 깊고 물이 깊어 임진왜란 때는 양대박 장군이 왜구들과 전투하면서 군사들과 대치했고, 일제강점기에는 근동 청년들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각지에서 숨어든 땅이에요. 지리산을 넘어온 빨치산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여기서 서속밥 얻어먹으러 다녔답니다. 단면만 보면 저렇게 고운 호수인데….” 강씨는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눈가가 붉어진 것도 같았다. 누구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세상 잊고 숨어 지내고 싶은 걸까.
일제는 조선의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댐 건설을 꾀하면서 섬진강 유역에 벚꽃을 환히 심었다. 고향을 잃을 민초들을 향한 미천한 위로였나. 봄이 오면 어김없이 연분홍빛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릴 것이고 그 아름다움에 섬진강은, 옥정호는 미화되거나 잊힐 것이다. 붕어의 목소리는 그렇게 영원히 수심 깊이 묻히는 것이다. 문득 4월의 화려함이 아닌 2월의 황량함 속에 이곳을 찾아온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진창을 걸으며 우리는 조금씩 진실에 닿았다.
지금도 저수지 밑에 어쩐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대숲을 지나면서는 오래 전 이곳에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대나무는 울창한 뒤란을 만들어 눈비와 바람을 막아 주었을 것이다. 집터였을 땅에는 물이 들어와 웅덩이를 이뤘는데 수면 위로 감나무 가지가 비죽 솟아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저수지를 끼고 걷는 동안 깊어진 수심 위로 산 그림자가 일렁였다. 제2구간 종점인 못지골에서 아까 사 뒀던 간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용운리 내마마을을 지나 용동마을까지 9km에 달하는 제3구간은 비로소 뭍과 멀어지며 호수까지 멀리 나가보는 길이다. 상쇠와 부쇠가 구성지게 가락을 나누는 것처럼 물이 땅을 굽어 돌고, 땅이 물을 굽어 돈다. 국사봉을 등지고 수변을 넓게 한 바퀴 돈 후 다시 국사봉을 바라보며 붕어섬의 뒷모습과 만난다.
현재 섬진강댐은 수위를 5m 더 높이기 위한 증축공사에 있다. 올해부터 가두기 시작한 물이 서서히 마을을 잠식해 62가구가 추가로 수몰될 예정이다. 길은 끊어질 것이고 물은 갇힐 것이며 사람들은 다시 어디론가 떠나거나 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살 만한 땅이 다 물로 들어가네요.” 1997년 3월, 겨울의 빈 교실에서 홀로 외롭게 얼어간 금붕어가 생각난 것은 그때였다.
옥정호 물안개길
소재 전북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용운리
거리 제1구간 1.60km, 제2구간 2.45km, 제3구간 8.95km, 총 13km
시간 4시간 30분
실향민들의 아픔 상기하며 걷는 길
물 맑은 섬진강 상류에 자리 잡은 옥정호 수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1965년에 섬진강댐이 생긴 이후 일교차가 커지며 발생하는 물안개가 이 일대를 전국적 명소로 만들었다.
옥정호 순환도로는 한국관광공사 선정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유명하다. 물안개와 함께 호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붕어섬이 한 폭의 수묵화에 진배없다.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면 이 섬의 전체적 풍광을 잘 조망할 수 있다. 붕어섬의 옛 이름은 외따로 떨어진 산이라는 뜻의 외얏날(외안날)로, 수몰되기 전 이 땅이 마을이었음을 알게 한다.
옥정호를 지척에 두고 강촌의 작은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이 길은 총 3개 구간으로 마암리 승강장에서 육모정까지 제1구간(1.60km), 육모정에서 못지골까지 제2구간(2.45km), 못지골에서 용운리 승강장까지 제3구간(8.95km)이다.
실향민들을 위해 임실군은 2007년, 운암면 입석리에 망향탑과 망향비를 건립했다. 진안 용담댐에 총 7개의 망향탑이 세워진 것과 달리 옥정호 주변에 수몰민들을 기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주장하며 섬진강댐관리단과 수자원공사로부터 국비 2억 원을 확보해 조성했다.
물안개길을 걸으며 임실의 주요 문화와 역사, 옥정호와 붕어섬 일대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하자. 임실군청 문화관광산림과 063-640-2345.
1 치즈테마파크 홍보관. | 2 필봉문화촌. 한옥촌을 운영한다. |
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임실행이 시간대 별로 다닌다(6:30~19:10). 3시간쯤 걸리며 요금은 13,500원.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에서 임실행이 하루 2회 다닌다(10:00, 15:20). 3시간 20분쯤 걸리며 요금은 14,000원. 전주에서 임실까지 직행버스와 군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6:05~22:00). 30분쯤 걸린다. 임실 버스터미널 063-642-2114. 열차의 경우 용산역에서 임실역까지 무궁화호가 다닌다(9:05, 12:45, 15:20, 16:28). 3시간 30분쯤 걸리며 요금은 18,500원.
자가용 차량의 경우 경부고속국도에서 회덕 분기점~호남고속도로~전주 나들목~17번 국도(전주~남원)를 이용, 임실로 향한다. 옥정호 물안개길 주변 대중교통의 경우 마암리 승강장에서 운암•관촌행 버스가 8:10, 13:50, 17:40에 다니며, 강진행 버스가 8:40, 13:50, 18:20에 다닌다. 용운리 승강장에서 운암•관촌행 버스가 8:20, 14:00, 17:50에 다니며, 강진행 버스가 8:30, 13:40, 18:10에 다닌다. 임순여객 643-3100. 임실읍 소재 개인택시(642-6655•644-6655)와 합동택시(642-2474), 강진면 소재 개인택시(643-1577)를 이용한다.
잘 데와 먹을 데
제1구간 들목인 마암리에 붕어찜과 토종닭을 파는 운암자연산장(221-6186)이, 제1구간 종점인 육모정에 간이슈퍼 길카페(010-8584-6653)가 있다. 생수, 라면, 과자, 음료, 계란 등 산행간식을 구입할 수 있다. 제3구간 날목인 용운리 국사봉 전망대 부근에 잘 데로 국사봉산장(643-4912)과 국사봉무인텔(643-0440), 먹을 데로 설리(642-6700), 감나무집(016-502-0655)이 있다.
그 외 호남 좌도가락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강진면 필봉리 필봉문화촌(643-1902)에서 한옥촌을 운영한다. 화장실 유무에 따라 1실 6만~8만 원이다. 천연염색, 풍물, 난타, 민요 배우기 등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성수산 자연휴양림(642-9456)도 아늑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임실역 근처에 황토찜질방(644-6636)이 있다. 임실이 자랑하는 치즈와 피자를 맛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다. 오수면에 임실낙농축산업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임실치즈피자(644-0092)가, 성수면에 치즈테마파크(643-3400)가 있다. 임실시장에 선지순대의 명가 임실의 입지를 지켜 주는 도봉집(643-2980)과 개미집(642-3370)이 있다.
볼거리
쪾치즈테마파크 성수면 도인리에 자리한 치즈테마파크에서 임실치즈의 역사와 세계치즈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서 치즈와 관련된 각종 체험은 물론, 여름이면 드넓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젖소들을 만날 수 있다. 643-2300. www.cheesepark.kr.
임실치즈마을 한국치즈의 원조‘임실치즈’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966년 지정환 신부가 이곳에서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 만들기를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진행하는 치즈낙농체험과 흥겨운 농촌체험을 통해 도농 교류경험을 할 수 있다. www.임실치즈마을.한국.
쪾국사봉 전망대 해발 475m의 국사봉 아래 자리한 전망대에서 옥정호와 붕어섬을 그림처럼 조망할 수 있다. 일교차가 심한 날 새벽에 산에 오르면 옥정호를 감싸고 있는 운해의 선경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