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 기행 (2)
나고야성 박물관과 다자이후 텐만구(신사) 편
2007년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광복절이다.
구한말에 한때 일본의 강제 침략으로 나라 말과 글까지
뺏기고 온갖 고생을 하던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아 자유를
되찾고 즐거워했으니,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을
가슴 깊이 알게 된 의미 있는 날, 일본 땅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니 마음이 이상하다. 오늘은 역사탐방의 날이다.
임진왜란의 총 지휘 사령부인 나고야 성을 찾아가는데
한국의 꼬불꼬불 시골의 지방도 같은 들녁을 지나는데
한적한 길 주변이 깔끔하고 청청하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일본엔 두 개의 나고야가 있다.
하나는 名古屋城이고 오늘은 이런 나고야 성(名護屋城)이다.
나고야성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와 명나라 (중국)를 침략하기
위하여(임진, 정유왜란) 그 군사기점으로써 城을 쌓은 곳이다.
지금은 당시의 건축물은 없고 허물어진 성벽만 남아있는데
대규모 발굴 작업을 거쳐 성벽의 일부를 복원하기도 했다.
우선 박물관부터 찾아갔는데 그 입구에는 우리의 나라
태극기가 일장기와 나란히 바람에 펄럭이고, 현관 우측에는
제주도에서 기증했다는 돌하루방과 전남 해남에서 제작해왔다는
천하대장군의 장승과 경주에서 기증한 에밀레종을 보니
우리나라 관광지를 온 것 같다.
1993년 한 일 관계의 우호증진을 위해 나고야 성 입구에
건립했다는 이 박물관은 임진왜란 등의 역사 속에서 빚어진
갈등들을 풀기위한 취지로 건립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일본에 관광을 하면 거의 이곳을 다녀가게 되며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직원까지도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고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예민한 사안까지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다양한 전시품이 소장되어 한일 간의 암울한 역사를
조명 할 수 있었으며 한반도에서 건너간 토기와 문화유산들이
우리나라의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관람이 끝나고 城으로 올랐다. 성곽의 정교하게 쌓은 성벽의
석축을 보니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광경이 연상 된다.
이곳의 정상에서는 날이 맑으면 대마도가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도 청명한 날씨지만 바다와 하늘만 보일 뿐...
박물관 입구에는 우리의 나라 태극기가 일장기와 나란히 바람에 펄럭인다,.
현관 우측 전남 해남에서 제작해왔다는 천하대장군의 장승
경주에서 기증한 에밀레종을 보니 우리나라 관광지를 온 것 같다.
제주도에서 기증했다는 돌하루방
풍신수길의 목각상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변혁을 가져오게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다.
임진왜란은 이 사람의 허황된 야망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는 1584년에 동부 일본의 큰 세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고,
1585년에는 간파쿠(일본 천황을 보좌하는 직책)에 임명되어
'도요토미'라는 성을 받았으며, 1590년에는 마지막 남은
여러 영주와 호족을 정복하여 100년간에 걸친
전국 시대를 수습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이후 그는 대륙 진출에 대한 야망을 꿈꾸며 1592년과 1597년에 조선을 침략,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킴으로써 한·일 관계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일본에게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영웅일 수도 있겠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조선사회의 국권을 유린하고
치욕적인 비극의 역사를 남긴 주범이다.
나고야성에 지휘소를 차린 히데요시는 모든 전쟁을
이곳에서 준비하며 지휘했으며, 1592년 4월 출정군을 9개로 나누어
15만 8천여 명을 선두로 조선을 침략했다.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 본래 전국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다. 그는 기지와 용병에 뛰어나 각 지방을
정벌하여 세력 확장에 공을 세워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았다.
히데요시는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알려졌으며,
한쪽 손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육손이었다고 한다.
본래 그의 어릴 때 이름은 고자루(小猿)였다고 하는데
고자루라는 이름은 그의 모습이 원숭이를 닮았다고 해서
아버지가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사가현현립박물관'에 히데요시의 목각이 전시되어 있는데
원숭이를 닮았다는 말처럼 희화적이다.
1592년과 1597년에 시작된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우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역사에서는
'문록(文祿), 경장(慶長)의 역(役)'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는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할 일이 없어진 다이묘, 호족, 일반무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결국 복잡한 국내사정과 그의 과대망상이 조선침략이라는
전란을 일으키게 한 게 아닐까.
나고야성은 사가현에서도 아주 외진 시골에 있어
찾아 가기가 쉽지 않다. 철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일본이지만
나고야성을 가려면 사가현의 사가시를 거쳐 가라츠(唐津)항까지
열차를 이용한 뒤 거기에서 또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가라츠시에서 약 20여분을 가면 바닷가 언덕에 나고야성이 나온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에는 학문의 신·
"스가와라미치자네(菅原道眞)"가 모셔져 있고, 매년 수험철이 되면
전국에서 합격기원이나 학업성취를 위한 참배자들이 모여든다.
참배도 연변에는 병마를 물리친다 하여 명물이 된 "우메가에 모찌(떡)"
를 파는 찻집이 늘어 서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는 매화의 명소로 알려져 있어,
"스가와라미치자네(菅原道眞)" 를 추모하여 "교토(京都)"에서
날아왔다고 전해지는 "도비우메(飛梅)"는 해마다 다른 매화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국보급 문화재를 수장하는 보물전도 있다.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으로 한반도나 중국,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후쿠오카(福岡)는 대륙문화가 유입되어 꽃 피었고
일본문화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아름다운 하카타만(博多灣)을 배경으로 문화, 레져 시설이
확충되어, 국제도시이자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는 905년에 창건된 것으로,
도비우메(飛梅:날아온 매화나무라는 뜻)의 전설과 학문의
신(神)으로 유명한 스기와라미치자네(菅原道眞)를 기리는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의 총 본산이다.
901년 우대신(右大臣/우의정(右議政)을 달리 이르던 말)이라는
관직에서 갑자기 다자이후(太宰府)의 관리로 좌천된 스기와라
노미치자네(菅原道眞)는 2년 후 다자이후에서 죽었고,
그 묘위에 세워진 것이 텐만구(天滿宮) 신사이다.
현재의 본전(本殿) 은 1591년에 재건된 것이고 넓은 경내에는
매화, 녹나무, 꽃창포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또한 과거의 역사를 재현하는 각양각색의 축제가 행해지고 이다.
봄이면 약 6,000그루의 벚나무가 꽃을 피워 올린 모습이 장관이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에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는 데 그가 죽던 날 매화가지 하나가 교토에서 이곳으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6천그루나 되는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도비우메(飛梅)이다.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 앞의 소에 관한 얘기는
약 1000 여년 전에 시인이며 학자였던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眞)
라는 사람이 당시 중심이었던 교토에서 이곳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세력의 중심이었던 교토에서 이곳으로 거의 귀양이나 다름없는
문책성 인사로 부임된 이 후 그 생을 마감하게 되던 날,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眞)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가던 중 수레를
끌던 소가 이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멈추어 서게 된다.
마치 자신이 묻힐 곳을 암시라도 하려는 듯이.그래서 그 학문과 명석함을
기려 이곳에 신사를 만들게 되고 이후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하고 싶거나 하면
이곳에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또한 그 소에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眞)의
영혼이 거쳐 갔다고 생각하는지 소의 머리를 문지르면 시험에 합격한다거나
머리가 좋아진다거나 하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세계의 유명 관광지에는
대부분 있는 그런 흔한 믿음들 중 하나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
동상의 왼쪽가슴이 반질반질하게 닳은 것처럼 이 소의 머리도 그렇게 닳아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 입구 주변에는 우메가에 모찌(떡) 가게가 많다
아름다운 숲과 연못
거북이와 비단잉어가 많다
천연기념물인 녹나무 (나무 나이는 1000년~1500년으로 추정 쓰여 있다'
樟(녹나무 장) 楠(녹나무 남)
우리나라는 농림수산부에서 관장 하지만
일본에서는 文部省에 소관인가 본다
이곳엔 오래된 녹나무가 자주 보인다
나무가 부패되어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외과 수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마을 보호수나 오래된 천연기념물 나무에도
이렇게 외과수술을 많이 하고 있다
도로변 우체국 앞의 우체통이 한국의 우체통과 비슷하다
도심속에서 울어대는 매미는 한국 매미와 약간 다르다
![]( http://pds40.cafe.daum.net/image/3/cafe/2007/08/25/21/55/46d026542f34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