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보내는 아픔을 잊고

[바람과라이온(이호근)]

                                       떠나 보내는 아픔을 잊고

                                                                                                                    이호근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서웠던 한파도 입춘이 지나면서 봄기운의 향에 저 뒤쪽으로 머물고, 남부지방에는 순박한 어느 농부가 봄동을 캐고 진한 향의 냉이와 달래를 삽으로 떠 보이며 행복한 미소를 활짝 피운다. 우리에게는 사계절이 있기에 그 추운겨울도, 그 무더운 한여름 날씨도 봄과 가을을 생각하며 그렇게 인내하고 기다리는가 보다.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유머의 긍정력”이라는 책에서 뽀빠이 이상용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107세 된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내용이 기억났다. “할아버지! 이렇게 오래 살게 된 비결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니 그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할아버지가 뭐야 형님이라고 해!” 이상용 씨는 당장 반색을 하고 “형님!” 하면서 질문을 반복하니 “죽지 않으니 오래 사는 거야!” 정말 유머스런 답변이었다. 그냥 물러서지 않는 이상용 씨가 다시 묻는다. “혹시 살아가시면서 미워했던 분이 안 계셨나요?”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할아버지는 대답을 했다. “없긴 왜 없어! 그냥 참고 기다리니 그 친구들이 80~90세가 되어 다 죽어버리니까 미워할 수도 미워하는 사람도 없는 거야!”라는 것으로 소개가 끝났다. 속으로 웃으면서 읽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에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사태, 정치인들의 이분법 논리에 서로 의견이 다를 뿐 틀린 이야기가 아님에도 적으로 삼고 반목과 질시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많다. 우리 서로가 조금만 참고 이해 해주고 배려해주면 미워할 이유도 싫어할 이유도 없을 텐데…. 우리나라 문화의 멋과 맛은 인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하건만,

   작년 이맘때부터 가슴 아픈 친구와 서울숲을 거닐며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 늘 함께 했던 안타까운 친구는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겉으로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모습과 달리 누구나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 같았다. 병세가 호전되면서 간 절단 수술을 제안한 병원 측의 이야기를 친구들의 만류에도 받아들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던 것 같았다. “정 하고 싶으면 2개월만 참고 어느 정도 몸 상태가 좋아질 때 해도 늦지 않을 거야”라는 주변의 진언에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은 절단된 부위를 중심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왕지사 떠나갈 바에는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으면, 원하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무리는 하고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텐데, 이 허탈한 마음을 혼자서 외로이 삼키고 만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사실상 어느 사람도 자신 있게 좋다고 하는 약, 좋다는 처방에 대해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만약에 잘못되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원망만 남기에 환자의 최종적인 판단과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한 줌의 재를 남긴 채 모든 이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친구. 13년 전 떠나버린 아내와 합장이 되어 떠나갔다. 살아생전 주변의 유혹도 마다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끝까지 혼자였던 불쌍한 녀석. 1년간의 투병생활에서 지친 가족과 친지들, 슬픔의 여진이 생각보다 작았다. 피붙이조차도 그러한 행동에 의아해했지만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함에도 나의 부모보다는 슬픔이 못하겠지만 거의 한 달을 의기소침하며 허탈한 상태로 보냈다. 친구 중에 제일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본다.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친구와의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니 남아있는 친구의 자식들이 걱정이다. 도와주려고 해도 마땅히 별다른 게 없다. 있다면 친구 마지막 가는 모습 보기 전에 막내딸을 좋은 곳에 취직시키겠다는 작은 약속. 마지막으로 친구를 도와 준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것에 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보통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얼마전에 만난 대학동창. 친구는 철학과를 나왔다. 30년 만의 만남에서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남이 이야기하면 도를 닦은 사람처럼 가볍게 웃음을 짓곤 했지만, 보면 볼수록 대화를 나눌수록 그 친구 내면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일단 죽음에 대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초월한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사람처럼,

   현재는 중부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데 산학연으로 만들어진 사업체를 병행 운영한다. 홍삼을 만들어서 국내외 판매를 한 지 6개월이 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8년이나 남은 교수직을 얼마 후 내놓는다고 한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고 자신이 나와야 또 다른 후배가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이야기, 5년 전부터 자기가 쌓아온 인맥과 경험을 토대로 준비하고 있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을 구분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진실 되고 소박한 것 같으면서, 일반인이 생각 할 수 없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교수로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철학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이익창출의 기업가마인드보다는 봉사, 농사, 힐링, 교육, 요양원 등 5~6개 테마 단지를 조성하여 지역과 국가를 위하고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과 남은 삶을 보내겠다는 강한의지에 숙연해진다. 분명 나하고는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이다.

   떠나간 사람은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 마냥 경제적인 측면만 생각하고 달려가는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남은 삶에 대해 가슴을 활짝 펼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재설계해 본다

                                                                                                                   2013.3.6

[만보]

삶의 깊이를 다룬 좋은 글 고맙습니다. 참! 어른들이 부끄러워하는 글을 젊은(?)분이 쓰셨으니 '어른들은 저리가라!' 할 것입니다. 정진하셔서 더 좋은 작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웅비]

서울숲을 거닐면서 정담을 나누더 친구와의 만남의 사연들이 아기자기 하게 전개되어 정감이 가는 수필 이네요. 아차피 가야하는 인생이지만 좀더 연장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속에 살아가는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요..^^ 좋은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