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반을 구가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중 스타 빙 크로스비(Bing Crosby)는 전세계적으로 5억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명백한 베스트 셀링 뮤지션으로, 당대 최고의 라디오 스타로, 40년대에는 박스 오피스 기록을 깨는 흥행 보증수표 배우로 활동하며 록음악의 시대가 열리는 50년대 중반까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지배했다.
본명이 해리 릴리스 크로스비(Harry Lillis Crosby)인 그는 지방 신문에 연재된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별명을 빙고로 불렀고, 이후 그 이름으로 연예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재즈밴드에서 노래를 부른 빙 크로스비는 대학 동창인 알 링커(Al Rinker)와 듀오로 활동하며 쇼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둔 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재즈 밴드인 폴 화이트맨(Paul Whiteman) 악단에 들어가게 된다.
해리 배리스(Harry Barris)를 영입하여 리듬 보이스(Rhythm Boys)라는 트리오를 결성한 이들은 곧 악단의 메인으로 떠오르게 되고, 'Mississippi Mud', 'I'm Coming Virginia'로 명성을 얻게 된다.
1930년 [The King of Jazz]라는 영화에 출연한 이후 솔로 독립을 선언한 그는 20년대 후반 음향장비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레코딩 스튜디오의 마이크 성능이 향상되었다) 이전 다른 가수들처럼 목소리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의 편안한 바리톤 음색을 유지하며 중저음 가수로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30년대 초반 'Out of Nowhere', 'Just One More chance', 'I Found a Million-Dollar Baby', 'At Your Command', 'Please', 'Brother, Can You Spare a Dime?', 'You're Getting to Be a Habit with Me', 'Little Dutch Mill', 'Love in Bloom', 'June in January' 등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구가한 빙 크로스비는 연기자로서의 생활도 병행하게 된다.
32년 [The Big Broadcast]를 포함해 50년대까지 [Pennis From Heaven], [Waikiki Wedding], [Holiday Inn], [Gong My Way] 등 일련의 영화와 당시 인기 있었던 CBS 라디오물에 출연, 밥 호프(Bob Hope), 도로시 라무어(Dorothy Lamour) 같은 배우들과 가벼운 코미디물에서도 열연하여 톱 텐 대열에 들어선 배우로 인정받게 된다.
1940년대에는 이전의 재즈적인 색채와는 달리 'New San Antonio Rose', 'Chattanoogie Shoe Shine Boy', 'You Are My Sunshine', 'Deep in the Heart of Texas', 'Pistol-Packin' Mama', 'San Fernando Valley' 등 컨트리 웨스턴 곡들로 음악적인 영역을 넓혔으며, 1942년 영화 [Holiday Inn]에 삽입되었던 'White Christmas'를 그 해 10월 발표한다.
이후 20년 동안 매년 재 발매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얻은 이 싱글은 전세계적으로 3천만 장 이상이 판매됨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1948년 'Now Is the Hour' 이후 50년대 중반 로큰롤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의 명성도 빛이 바래졌다.
이후 그는 무대나 라디오 쇼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레코딩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30년대 그의 스타일이었던 핫 재즈(hot jazz)풍의 [Bing Sings Whilst Bregman Swings](56), [Bing with a Beat](57) 등을 발표했다.
< 60년대 이후 점점 활동의 폭을 줄여 간간이 영화에 출연하고 녹음작업을 하던 그는 골프로 여가를 보내다가 77년 스페인에서 골프코스를 돌던 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때로 음악과 가사를 전달하는 곡 해석능력에서는 동시대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에 못 미친다는 비평을 듣곤 하지만, 탁월한 대중감각을 발휘하며 영화음악, 컨트리/웨스턴 곡, 종교적 찬양가, 시즌 애창곡, 아이리쉬/하와이 민요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그의 편안하고 느긋한 표현 속에 융화시켜 독특한 그만의 빙 크로스비 스타일을 구사한 그는 사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팝 음악사에 있어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