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 잎들이 불쑥불쑥 대를 키워 가면 머위 대 꺾어 껍질을 벗겨서 된장국에 넣었다. 입에서 머위 냄새가 신물이 날 때쯤이면 애호박이 그럭저럭 열려서 마늘을 다지고 어슷어슷 양파와 고추를 썰어 새우젓으로 양념을 한 애호박찜은 혼자 두고 먹기에 이거 내가 나 혼자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하고 하늘 아래 죄스러웠다. (12)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참 단순하게 생각했다. 나무들을 뜯어먹으며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덜컥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13)
외롭고도 외로웠다. 눈 내리는 겨울 밤 적막하고 적막했다. 그때 내게 다가오던 것들, 나무들과 풀꽃들과 돌과 새들과 아무도 없는 집, 어느 날 문득 툇마루에 앉아 중얼거렸다.
“야 심심하다. 너도 심심하지.”
마당에 튀어나온 작은 돌멩이에게 말을 걸다니, 내 귀에 내가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 천둥처럼 들려왔다. 일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제의 나무가 아니었다. 어제의 꽃이 아니었다. 나무들에게, 꽃들에게, 새들에게, 돌멩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참을성이 없는가. 남의 말에 끝까지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15)
혼자 사나 홀로 살지 않는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거기 어찌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내 안의 생명과 평화, 분주한 도심에서나 외딴 산속에서 더불어 살려는 내 안으로부터의 첫 걸음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이며 완성이다. (19)
새까만 그을음이 덕지덕지 들러붙고 맞은편 바람벽이 동굴처럼 휑 뚫려나간 부엌은 한낮에도 깊은 어둠이 또아리를 틀고 호기심의 발길들을 들여놓지 않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가봐 .벽을 타고 들어온 말들이 귓가에 웅얼거리다 멀어지고는 했다. (22)
문득 석가께서 살아생전 그의 앞에 바쳐진 모든 화려하고 값비싼 등불 속에서도 저만큼 가장 구석진 곳에 피워 올린 어느 가난한 소녀의 남루한 등불을 가리키며 흡족해 하셨다는 불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44)
눈을 씻고 둘러봐도 젊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마을들, 구례군 용방면에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이 면 전체를 합해서 다섯 명뿐이란다. (47)
집 주위에 빙 둘러 차씨를 뿌려서 싹이 올라왔던 어린 차나무들의 싹들이며 앵두꽃이 하얗게 피어 앵두가 열렸던 앵두나무, 올봄에 심었던 감나무와 자두나무와 석류나무와 어렵게 보길도의 강제윤 시인에게 부탁해서 얻어 온 흰 동백나무며 붉은 동백나무들 모두 남김없이 다 죽임을 당했다. (56)
봄비 내리는 밤, 밤새 요란하도록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왱그렁거린다. (80)
아침, 구름이 끼고 날이 꾸무럭거리기는 했지만 비바람이 멎었다. 이틀 동안이나 잠자릴 통째로 내어 준 예레마을의 인심 좋은 펜션 ‘세상 구경’을 떠났다. (87)
서귀포의 ‘걸매 생태공원’을 따라 걸었다. 붓꽃이 활짝 핀 꽃길을 걸었다. 사람들이 관찰하며 다니는 길은 나무판을 깔았고 공원을 따라 흐르는 하천은 시멘트 블록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상태에 가깝게 살려서인지 개울가에 수생식물들도 제법 자라고 있었다. (87)
중국 동진과 송나라시대에 살았던 은일의 시인, 전원시인이라는 평을 받는 도연명의 시중에 음주라는 제목으로 쓴 20수의 시편이 있다. 위의 시는 20수의 시중에 5번째 시편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며 좋아하는 시 중의 한편이다. 선생님은 바로 이 시편에서 글귀를 따서 우리 집 당호를 지어오셨다. “심원재心遠齋”(97)
며칠 전 북새통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내가 사는 모악산을 피해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다른 산을 미리 답사하려 한다는 선배와 함께 근처의 작은 산, 국사봉을 찾았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동안 그 아래 구불구불 운암호의 물길이 맑고 투명한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105)
여기저기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 다 거절할 수는 없다. 쓰기 싫어도 한 달에 한 두어 꼭지 산문을 써야 전화비도 내고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적으나마 후원금도 내며 가끔은 고등어조림이나 갈치 한 토막 구워먹을 수 있는 것이다. (110)
쌀 항아리에 쌀 떨어지지 않았으며 나무 청에 땔나무들 겨울나기에 충분하고 뒤뜰에 묻어둔 김장 항아리에 김치와 동치미 가득하다. 내 무얼 더 바라랴. 있다면 내가 쓰고도 흡족하여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들려줄 시 몇 편 쓰는 일. 그리고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나누는 나눔의 봉투, 어떤 기쁨이 그에 우선하랴. (112)
중국의 3대 사막 중에 하나라는 모호소 사막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했다. 베이징에서 두 시간 넘게 비행기로 날아갔다. 내몽고 자치구 포두라는 도시에서 마중 나온 지프를 타고 다섯 시간을 넘게 털털거리며 동성으로 가서 차를 바꿔 타고 비포장 길을 세 시간정도 갔을까. 땅거미 내려앉는 저녁이 다 되어 도착한 그곳에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129)
문 밖으로 나가 몇 발자국 떼지도 않았다. 나는 그만 탄식을 하고 말았다. 사막의 밤하늘은 별이 머리 위의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내딛고 있는 왼쪽 모래바닥에서부터 오른쪽 모래바닥까지. 그러니까 지평선에서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모든 곳에서 별이 보였다. 마치 밤하늘에 별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별은 사막의 모래언덕에 눕고 앉아 있으며 마악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별도 있었다. (130)
루쉰은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133)
책의 말미에 스코트 니어링은 “진리의 탐구는 끝도 없고 때도 없다. 조화로운 삶이란 순례의 길이다.”라고 말한다. 그 진리란 바로 ‘조화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바로 나눔의 삶, 섬김의 삶, 나를 끊임없이 비우며 모든 생명을 모시고 사는 우주적 공동체의 삶이라는 것은 두말한 나위가 없을 것이다. (142)
<채근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눈앞에 닥치는 모든 일을 족한 줄 알고 보면 그 자리가 신선의 경지로되 족한 줄 모르면 법속의 경지요,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인연은 잘 쓰면 살리는 작용을 하지만 못 쓰면 죽이는 작용을 한다.” (145)
“이런 평화로운 시대에 전시는 뭔 전시회여. 나는 여기서 놀래미회, 삼치회, 우럭회를 평화롭게 허고 있는디.” (159)
총기가 있어 보았자 누굴 죽이거나 전쟁을 할 것인데 총기가 없으니 총 이름인 총명도 없다. 그러니 나는 평화롭다는 말, 오호라!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갈수록 교묘해지고 잔인해지는 것이다. (160)
귀뚤귀뚤 귀뚜라미 한 마리. 가을이라고, 넌 지난여름 얼마나, 너 자신은 물론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하여 어떤 땀을 흘리며 보냈느냐고, 내 어리석은 무명의 귀를 뚫으라고 귀뚫귀뚫 귀뚫어라 귀뚜라미는 저렇게 찾아와 우는 것인가. (169)
새벽처럼 일어나 주먹밥을 싸들고 나서면 저물녘에는 개성 어디쯤 국밥 집에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대동강소주로 한 잔 두 잔 거나해질 것인가. (172)
이 나라 아픈 질곡들에 대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직는 조성봉 감독이 집에 찾아와서 보길도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 물어 왔다. (178)
보길도에 살며 예쁜 찻집과 민박집을 하는 시인 강제윤의 배려로 캄캄한 밤 강 시인의 친구가 쾌속정을 몰고 왔다. (178)
돌아오는 길 당끝마을 전망대 오르느 s길 옆으로 들어간 화장실 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창문 밖에 내걸고 있는 화장실 안에서 나는 해가 바뀔 때마가 바래 보는 소망을 중얼거렸다.
거칠고 투박하여 아름다운 손들이 부끄럽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더운 땀을 흘리며 일하는 손들이 환하게 웃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 아름다운 손에 입맞춤하려 저만큼 손짓하며 달려오는 봄날의 꽃 사태 정말이지 꼭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180)
방 안에 들어와 저금통을 보았던 어떤 사람이 놓고 갔구나. 저금통의 문구를 눈여겨보았던 모양이구나. 품에 안아 보았다. 거기 저금통에 작고 따뜻한 불씨가 담겨 있었다. (183)
지리산을 남다르게 사랑하여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산청으로 터를 옮기고 산천재라는 서재를 지어 살던 남명 조식 선생처럼 깊이 뜻한 바가 있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아니었으나, 더불어 조금이나마 내 몸과 정신 또한 그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무리한 욕심이겠는가. (187)
그래 그래 여기가지 왔구나. 잘 견뎌 왔구나. 때로 얼굴을 들 수 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일들 왜 없지 않겠는가.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가슴 뿌듯한 희망과 사랑의 날들 왜 없지 않았겠는가. (191)
삼월이 가고 있다. 내 삶의 마음 밭에, 그대 또한 뿌려야 할 씨앗과 키우고 피우며 함께 나눠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세상을 따뜻하고 환하게 물들일 꽃들을 생각한다. (202)
괜찮다 괜찮다 처마 끝에 달려 있는 풍경이 뎅그렁거린다. (207)
산골짜기마다 번져 가며 흰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산벚나무 그 환한 꽃 그늘아래 앉아 있으니 보고 싶은 얼굴들 떠오르고 그 그늘 아래 엎드려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218)
밤 깊은 모악산방에서 막스 브루흐의 < Kol Nidrei>
와 어니스트 브르흐의 <Prayer>가 낮고 깊게 울려 퍼지는 스피커를 껴안고 울던 모습은 지금도 선합니다. (223)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멀리 떠난 사람’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혔습니다.
‘두만강 강둑에서 손 흔들어 주던 북한 소녀.’
맺힌 눈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졌습니다.
‘포춘호에서 바라본 인도양 노을’
눈물은 마구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눈물을 담았습니다. 오래지 않아 종재기는 눈물로 찼습니다. 박남준 시인은 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