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이유를 알게 해준 <암수살인>, 당신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원래는 책으로 글을 썼어야 했는데, 마땅한 책이 없어 최근에 본 영화 감상문을 올립니다.
남사친이 영화 보러 가자고 했다. 요새 개봉한 것들 중에서 나는 별로 땡기는 게 없어서 걔한테 선택하라고 했더니 암수살인을 고르더라. 어두운 장르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 만나서 영화 보기로 약속했고, 보고 싶은 게 딱히 없어서 그냥 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걔도 이런 범죄 수사물을 좋아해서 고른 게 아니라 베놈은 봤으니 다음에 볼 것으로 고른 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 없이 보는 게 만족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별다른 기대 없이 봤더니 정말 재밌었다. 우선 출연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대단했다. 주지훈이라는 배우가 악역으로 나오는데 연기가 아니라 실제 같았다. 어찌나 싸이코패스 연기를 잘 하던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았다. 그 배우한테서 악마를 보았다. (ㅎㄷㄷ....) 사람을 죽이려는 장면이 나올 때는 제압해서 마구 패주고 싶었다. 그러다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맞으며 자라는 모습을 볼 땐 너무 안타까워서 한숨만 푹푹 나왔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기 쉽다는 건 사실이다. 나만 해도 내가 당한 폭력을 되돌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드니까. 어릴 때부터 폭력이 익숙한 아이들은 화가 났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힘을 쓰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다치게 하지 않고 화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이 있다는 걸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참 중요하구나 싶었다.
이 영화 제목을 봤을 때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인데 그 앞에 붙은 암수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암컷과 수컷을 나타내는 암수는 아닐 거 같아서 찾아봤더니 ‘몰래(어두울) 암暗’에 ‘셈(꾀) 수數’였다. 뜻풀이하자면 속임수 정도.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 완전히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아무도 모르는 살인 사건으로 볼 수 있겠다. 시체는 못 찾을 수 있어도 어떻게 신고도 없을까 의아했지만, 세상에는 신고조차 없는 사건들도 많나보다.(ㅜ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기에 유가족들이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상처를 헤집지 말라고 소송을 걸었다가 내렸다고 한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들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끔찍할까. 그건 안됐지만, 이 기회에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건을 알게 되어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수살인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범죄자에 대해 극심한 분노와 혐오를 느끼고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함과 벌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불행하게 살아온 모습들을 보면서 ‘얼마나 불행했으면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할까’하는 연민도 들었다. 한편, 범죄자와 줄다리기를 하는 형사를 보고서도 많은 걸 느꼈다. 보기 전, 형사는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직업이지만, 극한 직업이라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예민한 내가 하다가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일찍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이렇다보니 형사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스트레스에 강할까, 그거 하다가 일찍 죽어도 미련이 없을까?’하는 생각에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왜 형사를 하는지 알겠다. 아니, 왜 하는지 보다는 왜 ‘그만두지 못하는지’ 알겠더라. 범인을 못 잡거나 범인이 확실한데 증거 불충분으로 벌을 받지 못하고 풀려나는 경우, 끝까지 가지 않고서는 억울함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걸 해결해야만 내가 숨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영화에서 살인범은 증거 불충분으로 계속 형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 그런 걸 보고 있자면 ‘반드시 잡아야겠다, 널 못 잡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심리가 되더라. 형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어 마치 내가 그 형사가 된 기분이었다. 암수살인은 내게 영화를 왜 보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바로 이 사람 마음에도 들어가 보았다 저 사람 마음도 들어가 보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그걸 통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첫댓글 누군가의 고민만 들어도 마음이 복잡해지는데... 살인이라니 정말 힘들겠네요...
그쵸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형사, 경찰, 소방관 같은 분들한테 든든한 경제적 심리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뜨아, 소름이 돋네요. 저도 한 번 봐야겠어요 ㅋ
이거이거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욥ㅎㅎ 단, 몸이 너무 긴장되서 잠이 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밤에 보진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