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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순진리회 ♣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아래 내용들은 박우당 제세시 훈시 하셨던 내용들로
대순진리회 각 방면들에 보관되어 있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올렸으니 오해 없이 읽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1986년초
① 박성구 선감은 포항에 회관을 건립하기 위해 회관부지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평당 235,000원에 820평 계약.
1986 별관을 짓고,
1987 ▶회관이 완공되어 87년 11월 9일에 회관 개관치성.
▶회관 본관을 짓고 도전님께서 직접 납시었는데,
1988.3 박성구 선감 앞으로 부전 8방면과 부전 9방면이 나게 되었는데,
부전 8방면은 김태호 선감이 맡고,
부전 9방면은 김호봉 선감이 맡게 되어 박성구 선감은 어디도 보지 못하게 됨 .
다음달 1월 6일 "박성구 선감 앞의 선 • 교무이상 전 도인들은 중곡동 도장으로 모이도록 하라"는 도전님의 명이 하달되었다. 그래서 선 • 교무이상 모두 200여명이 중곡도장 종무원 사무실아래 식당에 모였다. 이때 도전님께서 먼저 강릉방면을 내시고, 전체 임원들을 정각원에 모이게 하셨다. 그리고 전체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성구 선감에게 방면을 내셨는데, 그때 조영배 선감이 방면 호를 영일로 건의드리자, 도전님께서 "그러면 영일방면으로 하라"고 하셨으나, 박성구 선감이 "영일보다는 회관이 상도동에 있으므로 상도로 하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상고드리자, 도전님께서 "그럼 상도방면으로 하도록 하라"고 전체임원들이 모인 가운데서 명하셨다. 대순진리회 창설이후 전체임원들이 모인 공식석상에서 발표된 방면은 상도밖에 없었다.
1989 1.6 (陰11.29) 박성구 선감은 3000호를 가지고 '상도방면'으로 나왔다.
도전님께서 "정대진 너는 이제 포항에 발도 들여놓지 마라!"고 말씀하시면서
"박성구 너, 방면 내어주면 너 배짱껏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자,
박성구 선감이 "예!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전체임원들 앞에서 다짐하였다. .
그리고 상도방면이 난 후 경석규 종무원장이 '도전님께서 하명하신 내용'을 받들고 내려와서, 박성구 선감 앞의 선 • 교무 이상 전 도인들이 종무소 2층 구 .예식장에 모인 자리에서 전달하였는데 "부전 정대진 선감이 잘못해서, 박성구 선감을 상도방면 수임선감으로 임명하니, 박성구 선감 앞의 전 도인들은 박성구 선감과 화합하여 도를 잘 닦아 나가도록 하라."는 도전님 명이 하달되었다.
1989.2 김태호는 성산방면으로, 김호봉은 용흥방면으로 나게 되어
주훈재 선감이 2개방면을 데리고 나가서 부전방면에 월성(月誠)을 모시게 됨으로써 상도 박성구 선감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1989.1.6(陰11월 29일)도전님께서 납향치성을 발표하셨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주님께서도 납향치성을 한번 받으시고 화천하셨다."하시고, "납향치성을 각 방면 회관·회실에서 올리도록 하라. 납향치성은 제후가 천자께 드리는 치성이다. 납평일은 동지로부터 셋째 未일이고, 이날 치성을 납향치성이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1988.12.16 (陽 89. 1. 23) 납향치성 후 상도 박성구 선감은 음복을 진상하고, 폐백으로 향을 도전님께 올렸는데, 그 향은 이후에 영대에 올려져 있었다.
1989.9.19
도전님께서 훈시를 내리실 때 절 할 때도 예법에 맞아야 한다. 과거에 석가모니도 세 번 절을 받았다. 도주님 재세시에 네 번 절을 받으셨다. 불교에서 절의 주지도 절을 여러 번 받는다."라고 하셨다. 그 후 도전님께서 분부하시길 "임원들이 지방회관에서 봉심전에 배례를 올릴 때는 원위에만 올리도록 하라"고 지시하셨다.
1990
도전님께서 여주도장 본전 신축공사를 시공하시고 서둘러 4개월(120日)만에 완공하신 후 1990년 12월 11일(陰 10월 25일)로 영대 봉안을 예정하셨으나 거행하시지 않으시고, 그 후로도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안 계셨다. 그리고 임원들에게 한달 보름이 되도록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명이 계시지 않으셨다,
④그 일이 있은 후 강릉 박춘균 선감을 만나서 '서가여래 자리에 도전님을 모시는 도수'가 왔으니 뜻을 같이 할 것을 의논하였으나, 박춘균 선감은 "도전님께서 나를 죽으라고 하면 어떡할거냐? 나는 빠지겠다."고 하고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논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은 상도 박성구 선감은 방면도인 왕재상(대구대학교 미술대학)을 12월 31일에 도장으로 불러 존영을 그리도록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1990.1.3.에 성날이 발표. "성날은 1월 13일(陰 庚午年 11월 28일)이고, 1월 9일(陰11월 24일)에 영대봉안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전 임원에게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명이 계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은 방면으로 돌아오자 존영을 완성시키고, 1월 5일(陰 庚午年 11월 20일) 서울 중곡동 상도방면 연락소에서 존영에 치성을 드렸다. 그때 참석한 사람은 상도 박성구 선감, 최해경 차선감, 오연자 선감, 왕재상 교무, 김봉주 선사였다. 그리고 도장에 올라갈 준비를 하던 중에 상도 박성구 선감이 최해경 차선감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먼저 말했으니, 당신이 도전님께 올려드리고 오라"고 하니 최해경 차선감이 말하기를 "나는 차선감이니 올라갈 수가 없고 이것은 대순에서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며, 박선감만이 할 수 있다."며 박성구 선감이 올려드려야 한다고 했다. 또 말하기를 "올라갈 수 있는 임원은 모두 데리고 올라가야 한다."며 상도방면 임원들 중에 올라 갈 수 있는 임원들은 다 모아라고 했다. 그리고, 최해경 차선감이 "도전님께서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라고 물으니 박성구 선감이 "뭐라고 해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최해경 차선감이 "존영을 모셔왔습니다."라고 하라 했으나, 잠시 후 다시 "아니야, 어진을 모셔왔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리라 하였다.
1991 1.7(陰11.22) 아침에 상도 박성구 선감이 다시 "당신이 존영을 모셔드리고 오라"고 하였지만 최해경 차선감은 "박성구 선감이 안가면 안됩니다."라며 상도선감이 올라갈 것을 권유하자, 상도 박성구 선감은 최해경 차선감과 함께 존영을 모시고 올라가게 되었다. 이날 오전에, 상도방면 박성구 선감 외 6명(최해경, 김진원, 이정지, 유기혁, 김재목, 이태경)은 도전님의 존영을 모시고 여주도장에 도착하여 곧바로 내정으로 차를 운전하여 올라갔다.
평상시 내정에는 근무자가 수호를 섰으므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으나, 그날 따라 전에 없던 큰 눈이 쏟아지는 바람에 종사원들이 제설작업을 하느라 내정 문을 전부 열어 둔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도전님 존영을 모시고 윗내정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차를 윗내정에 대어놓고 도전님을 뵈려고 하니, 시봉이 "아래내정에 계십니다."라고 하여 차에 존영을 놓아두고 아래 내정으로 도전님을 배알하러 내려갔다.
도전님을 배알하러 왔다고 시봉에게 말하니 도전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을 하신지 채 일분도 안되어 들어오라고 하셨다. 내정에 들어가서 4배를 올리니, 도전님께서 한복차림으로 좌정하시고 4배를 받으신 후 "그래,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박성구 선감이 "존영을 모시고 왔습니다.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상고드리니 "존영이 뭐냐? 그것이 뭔데?"라고 하시자, 박성구 선감이 다시 "어진을 모셔왔습니다."라고 말씀을 올리니 "또, 어진은 뭔데?"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박성구 선감이 "동사무소에도 대통령 사진을 모시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다."고 하시면서 시계만 보고 계시다가 옆에 있던 시봉(서선미)에게 "나가서 가져온 것을 확인해 봐라!"하시며 내보내시자, 내정 안에는 박성구 선감과 최해경 차선감만 남게 되었다. 그때 최해경 차선감이 "천자님의 존영을 모셔 왔습니다.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상고드리니 "그래, 받아주마. 내어보아라"하시며 손을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내미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윗내정에 두고 온 차안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때 시봉에게서 인터폰으로 연락이 왔다. 도전님께서 "가로가 몇 자, 세로가 몇 자이더냐?"고 물으시니 "귀신같이 그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노여운 표정을 띠시며 "그러면 나를 죽으라는 거냐!"하시며 도장에 있는 임원들을 다 부르라고 하셨다. 그때 김찬성 선감, 정인식 선감 등이 내정에 올라오니 "박성구가 이런 사진 갖다 놓고 나를 죽으라고 한다."하시니 임원들이 몰려들어와 최해경 차선감을 끌고 나갔다. 곧 이어 도전님께서 일어서시며 박성구 선감에게 "너, 이러면 죽어."라고 하시자, 박성구 선감이 "죽어도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내려가 도정실에 가 있어!"라고 말씀하신 후, 밖으로 나오셔서 "모두들 빨리 도정실에 모이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⑧도전님께서 도정실로 납시어 직접 인원수를 세어보시고는 "열 명이다. 맞지?"하시니, 김찬성 선감이 "예, 열 명입니다."라고 복명하였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박성구 • 최해경 • 김진원 • 이정지 • 유기혁 • 김재목 • 이태경 • 경석규 • 정인식 • 김찬성으로 총 열 명이었다.
⑨그 자리에서 경석규 원장이 "감사원에 회부할까요?"하고 말씀드리니, 도전님께서 "놔둬! 자유도수야! 두 사람 이름 써서 태워버려!"라고 말씀하셨다.
⑩그리고 최해경 차선감이 천안방면에서 이복자 선사를 데려가면서 연락소를 빼앗을 때, 천안방면과 법적문제를 야기시킨 것을 말씀하시고는 최해경 차선감을 향해 "네가 하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받아주지 않을 거야!"라고 하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⑪도정실에서 나온 상도 박성구 선감이 최해경 차선감에게 "내려가자!"고 하자, 최해경 차선감이 "잠시 기다려 봐라."하면서 뭔가 주저하자 박성구 선감이 "모셔드렸으면 됐지, 뭘 기다릴 것이 있는가?"하며 먼저 내려와 차안에 있으니, 그때 도전님 기사인 김진환 보정이 존영을 모셨던 사진틀을 들고 와서 건네주며 "왜, 저런 사람하고 같이 그런 일을 하느냐!"면서 말을 건네고 돌아갔다.
1991.1.9 (陰11.24)에 도전님께서 여주도장 본전에 영대봉안
1991.1.14(陰11월 29일)오전 11시 도전님께서 수임선감, 사정위원, 징계위원 전원과 상도방면 임원 23명을 회관 4층에 모이게 하셨다.
이때 임원들이 모두 모이고 상도 박성구 선감이 늦게 문으로 들어오자, 당시 종의회 의장인 박희규 선감이 나와서 "박성구 선감! 이번 일에 대해 잘못했다고 도전님께 엎드려 사죄드려!!"라며 다그쳤다. 그러자 상도 박성구 선감은 오히려 큰소리로 "무슨 소리 하고있어! 천자님께서 납시면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엎드려 사죄드려야 해!!"라고 말하자, 장내는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때 바로 도전님께서 납시고, 앉으시자마자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하시는 말씀이 "한번 찾아올 줄 알았는데…."하시고 공판을 시작하셨다. 도전님께서 최해경 차선감을 데려오도록 명하시자, 정인식 선감이 그를 찾아왔다. 당시 최해경은 차선감이라 그 장소에 참석할 수가 없어 차안에 있었다. 최해경 차선감이 막 들어오자, 도전님께서 "네가 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의자에 앉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무릎을 꿇어라!"고 말씀하시니, 최해경 차선감이 곧 바로 엎드리며 무릎을 꿇자 "됐어! 일어나 의자에 앉아!"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 도전님께서 "그림 그렸다는 것을 가져오너라!"고 하셨는데 잠시 후 존영을 가져오자, "그림을 펴보아라"고 하셨다. 이에 임원들이 다 보는 가운데 존영을 펴시고 "영 안 닮았어! 나하고 다니면서 사진 찍은 것도 많잖아! 누가 그렸어?"라고 물으시자 박성구 선감이 "예! 미대 학생이 그렸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렇지, 잘 그리는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야. 그런데 여기 두루마기 올은 살아있어! 내 얼굴 못 그려!"하시고는"박성구 이름 써서 태워버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정인식 선감에게 "전경책을 빨리 가져오너라!"고 하시자 급히 전경책을 가져왔다.
도전님께서 교운1장 37절《상제께서 차경석의 집에 유숙하시니 종도들이 모여와서 상제를 배알하였도다. 이 자리에서 상제께서 양지 온장에 사람을 그려서 벽에 붙이고 제사절차와 같이 설위하고 .......구절을 펴 보이시며, "너(박성구)! 산제사 이것 보고 했지?"라고 물으시니 "예, 그러하옵니다."하였다. 그러자 전경책을 바로 덮으시고는, 박성구 선감의 뺨을 순간적으로 빠르게 몇 차례 치시고 "너! 서가여래 자리에 나를 모셔야 된다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배웠어?" 박성구 선감이"예! 입도 시 주문에 서가여래 자리가 이상하여 한동안 도를 닦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정대진 선감이 후일에 도전님 자리라고 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도를 닦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정대진이 너!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라고 물으시자, 정대진 선감이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나 "저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봐라! 정대진이가 안 그랬다고 하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하시며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다그쳐 물으시자 "예, 제가 깨달아 했습니다. 전경에 보면 구천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때, 3대 종교의 종장을 바꾸었지 않습니까? 서가여래가 불교의 종장이었는데 진묵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하니, "너는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고 하시면서 박성구 선감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런 후 도전님께서 "너(박성구) 뭘, 보고 했어!" 박성구 선감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자 도전님께서 "너 헛거 봤어!"하시고는 "박성구 이름 써서 태워버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 도전님 기사였던 김진환 보정이 도전님의 존영을 태웠다.
이때 상도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께 상고드릴 것이 있어서 "천자님"이라 부르며 말문을 열자, 도전님께서 "남이 들으면 무엇이라 하겠느냐?"하시자, 옆에 있던 조영배 선감이 일어나서 "도전님을 감히 옛날 중국에 있는 천자에 비유하느냐?"하였다. 그러자, 박성구 선감이 "조 선감이 천자의 뜻을 몰라서 그렇지 않느냐? 천자의 뜻은 그것이 아니고…"라며 설명하려고 하자, 도전님께서 말문을 막으시며 "도전이 높으냐? 천자가 높으냐?"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박성구 선감이 "천자가 높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잠시 후,
도전님께서 다짐을 받듯이 "너! 도를 못닦게 해도 그렇게 하겠느냐?"하시니 박성구 선감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박성구 너, 기국이 그것밖에 안돼!!"라고 하시고,
▶곧바로 상도방면 임원들에게 "도전 따를 사람 이쪽 옆으로 나와 서고, 박성구 따를 사람 저쪽으로 서라 하시니", 전원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는 "봐라! 전부 박성구 선감 도인 만들어 놓았구나!"하시자, 상도방면 임원 전원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옆으로 나와 엎드렸다. 그러나 오연자 선감은 그 자리에 서서 "박성구 선감은 오직 도전님의 뜻을 받들려고 할 뿐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며 나오지 않았다.
이때 김원우 교감이 엎드려서 "도전님! 죽여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박원균 선감이 그 뒤에 서 있다가 "도전님이 사람 죽이는 사람이냐"라며, 김원우 교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장내를 소란스럽게 하였으며, 천안 박희규 선감은 오연자 선감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오 선감은 박성구 선감의 부인이지 않느냐! 똑 같은 사람이다."하면서, 뭐가 그리도 분한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왔다 같다' 하면서 장내를 소란스럽게 하였다.
▶이때 경석규 원장이 일어나 도전님께 "태극도에서도 이 보다 큰 사건은 없었고, 대순진리회에서도 이 보다 더 큰 일은 없었습니다. 감사원에 회부할까요?"라고 여쭈니 도전님께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르듯이 "놔둬! 자유도수야!"라고 말씀하셨다.
▶도전님께서 "박성구! 임원들을 데리고 빨리 지방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하시고, 수임원들에게 "전부 바깥에 나가 있어. 내가 박성구하고 할 이야기가 좀 있어."라고 말씀하셔도 임원들이 나가지 않자 다시 "전부 나가라! 빨리 가서 점심 먹어라."고 몇 번을 반복하여 하명하셨다. 그래도 수임원들이 나가지 않고 전부 버티고 있자,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 곁으로 다가가서 "진지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제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도전님께서 시봉을 데리고 문 밖으로 나가셨다.
1991.1.15 (陰11.30)
도전님 탄강일인 이날, 내정으로 수임원 전원을 부른 후 식사를 같이 하시는 자리에서 "박성구 선감이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자 수임원 전원이 너 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1991.2.11(陰12.27)
상도 박성구 선감이 12월성 을 모시고 올라가니 정문초소에서 못 들어가게 하였으나 그래도 사무실로 찾아가서 관리책임자인 정인식 선감에게 "왜 못들어가게 막느냐! 윗전의 뜻이냐?"고 묻자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누가 그랬느냐? 누구의 지시냐?"고 다시 물으니 "감사원의 수임원들이 시켰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상도 박성구 선감은 어이가 없었으나 더 이상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고 하니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성구 선감은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밤 10시에 도전님께서 상도방면의 임원 전원과 사정위원, 징계위원, 수임선감들을 대순성전에 모이게 한 후 납시어 의자에 앉으시자 마자 "박성구, 어디 갔어?"하고 찾으시니, 주위가 갑자기 정적에 잠기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때 노종덕 보정이 "예! 상도선감과 제가 도장에 들어오는데 정문초소에서 못들어오게 막아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도전님께서 무언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가 그리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자 수임원들이 당황해하며 "불러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정인식 선감은 밖으로 뛰어나가 박성구 선감을 다급하게 찾는 척만 하였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서로 위하고 화합하는 것이 도야. 그래, 박성구 선감 어디에 있어? 누가 만나 보았느냐?"하시니, 박해수 선감이 "예! 제가 만나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다시 "그래, 뭐라고 하더냐?"고 물으셨다. 이에 박해수 선감이 "예! 전번 1월 14일의 공판에서 도전님께서 상도선감 뺨을 때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것을 두고서 '상도선감이 잘못했기 때문에 도전님께서 때린 것이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상도선감이 '도전님은 때리지도 않았고 또, 나는 맞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그것은 '도전님이 어여삐 봐서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이 말을 도전님께서 들으시고 웃으시면서 다시 한번 더“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시자, 오연자 선감이 "예! 집에서 오직 도전님의 뜻을 받드는데 여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때 유경문 선감이 일어나 도전님께 "박성구 선감이 이번 납향치성 때 (1991.1.25, 서가여래 자리가 도전님의 자리라고 하며 사배를 올리고 치성을 드렸답니다."라고 하자
도전님께서 "그 때 집사를 누가 했지?"하고 물으셨다. 이에 유경문 선감이 "상도방면 노종덕 보정이 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일어서 보아라.”하시니 노종덕 보정이 일어서 있자, 한참 후에“미쳐버렸어!"하시며 다른 말로 바꾸어 버렸다.
▶유경문 선감이 다시 일어나서 도전님께 "최해경이가 후인산조개유보 권군범사막원천 에 있는 '새조(鳥)자'를 두고서 하는 말이, 옥편에 보면 '새 추자'가 있어서 같은「새」자이므로 새 추자 위에 뫼산(山)을 넣으면 최(崔)자가 된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도전님께서 "본인이 그렇게 말을 하더냐?"고 물으시니 유경문 선감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최해경이는 800호밖에 안돼! 그것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느냐! 그것도 대성(代誠)이 있어. 월성(月誠)도 호당 천원밖에 안돼지. 그것 가지고는 일을 해나 갈 수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상도방면 임원들에게 "박성구 선감과 화합하고 단합하여 잘 행해 나가야 해!"하시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물어보시니, 상도방면 임원들은 세 번 모두 "예"라고 대답을 했다. 이렇게 도전님께서 여러 번 확답을 받으시고 해산을 명하셨다.
1991.2.15.(陰1.1)
이날 중곡동에서 구정치성을 올리는데, 상도 박성구 선감이 참석하자 수임선감들이 모두 몹시 격앙되어 말하기를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들어 왔느냐?"면서 박성구 선감을 내몰려고 했다. 그러자,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 명으로 들어왔다. 가서 도전님께 여쭤보라!"고 말하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1991.2.19(陰1.5)
이날 감사원 수임선감들은 도전님의 명이 계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임의대로 박성구 선감에게 징계를 내렸는데 그 징계내용은 아래와 같다.
※《참고》[89년 2월 13일 訓示中]
모든 임원의 징계는 나(도전님)의 명에 의해서 할 수 있다.
수임선감에게 일임해서 징계하는 일은 없다.
임원은 내(도전님)가 필요해서 내놓은 것이다.
임원의 도인이 아니다.
나(도전님)의 도인이다.
임원은 나(도전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 임원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1991.2.21
이날 도장에서 퇴배시에 부전방면 주훈재 선감, 속초방면 오연자 선감, 서교방면 이정지 선감을 내정에 불러놓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박성구 선감한테 너무 심했지! 박성구 선감은 잘못한 게 없다고 그래! 나를 받들려고 하는 것이 좀 지나쳤을 뿐이야! 박선감한테 괜찮다 그래라!"고 하시고"제주도 보름치성에 참석하라고 그래라!"고 분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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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29(陰1.15)
이날 오연자 선감이 치성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 도장에 들어가니, 그때 마침 도전님께서 밖으로 납시어 임원들과 함께 계시었다. 오연자 선감이 인사를 올리자, 도전님께서 "저 사람 누구지?"하고 물으셨다. 임원들이"예! 상도 박성구 선감의 부인 오연자 선감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도전님께서 "응, 그렇지 박 선감!"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오연자 선감과 자리를 옮기셔서 "그래! 박성구 선감,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러자 오연자 선감이 "오직 도전님의 뜻을 받드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1991.3
도정업무를 마치고 유경문 선감과 수임선감들이 상도 박성구 선감을 불러놓고 취조를 하였다. 이때 유경문 선감이 박성구 선감에게 "도전님은 하느님이시지 않느냐? 그러니,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다시 "도전님께서 '박성구 선감이 영대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는데, 사진을 찍었어? 안 찍었어?"하고 물었다. 박성구 선감이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 찍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찍었다고 하겠느냐?"라고 말하자 유경문 선감이 "그러면 도전님께서 거짓말했단 말이냐! 도전님께서는 거짓말 안하신다. 사진 찍은 것 어떻게 했어?"하고 다그쳐 물었다. 그래도, 박성구 선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유경문 선감이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필름을 없애버리고 너하고 나하고만 아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해야 네가 살 수 있다.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고 회유하며 말했다.
이때 박성구 선감은 마음속으로 '도전님께서는 내가 찍지도 않은 사진을 왜 찍었다고 말씀하셨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사진 찍었다는 말씀은〈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도전님의 암시'임을 깨닫고, 유경문 선감에게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하고는 잠시 나왔는데, 화장실에서 민운기 선감을 만났다. 민운기 선감 말이 "유경문과 수임선감들이 너를 죽이려고 도전님께 상고하더라. 그러나 윗전의 뜻은 그것이 아니시더라. 그러니 그 사람들 말을 듣지 말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그래서 박성구 선감은 바로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으니, 그 후 유경문 선감과 수임원들이 백방으로 상도 박성구 선감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자 민운기 선감에게 "네가 박성구 선감 만나서 뭐라고 했어!!"하고 윽박지르며 다그쳤다. 이때부터 민운기 선감은 임원들에게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1991.4
도정업무 기간에 조영배 선감, 유경문 선감, 김찬성 선감이 박성구 선감을 불러서 말하기를 "도전님께서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셨다."고 전달했다. 그래서 박성구 선감이 "당신들이 계속 말을 꺼내어서 그렇지, 내가 먼저 말을 꺼낸 적이 있느냐?"고 하자, 유경문 선감이 "어찌 되었던 더 이상 말하지 말자!"고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영배 선감이"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하고 같이 하지, 왜 너 혼자 했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유경문 선감이 조영배 선감의 뺨을 때리면서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면서 말했다.
1991.5
▶도전님께서 당시 3개월 동안 성날을 발표하시지 않고 계셨다. 5월 하루는 도정실로 수임선감들과 상도방면 임원들을 모이게 하신 후 납시었다. 도전님께서 의자에 앉으시면서 "사람이 한 사람 모자라"하시자, 박성구 선감이 "예, 서일수 교감이 요즘 안 나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도전님께서 "그렇지, 이 바람에 믿음이 부족하면 떨어져. 그래 요즘 어떻게 들 하고 있느냐?"하시며 방면이 잘 화합하여 나가는지 여부를 물으시자, 김재목 선감이 "예, 고집이 너무 세서 아직까지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 말을 들으시고 도전님께서 "뭐? 후각이 선각을 고치려고 그래! 그런 법이 없어! 사람이 고집이 없으면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야!"라고 노여워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언제 만나 봤어? 언제 만나 봤길래 그런 말을 해!"하시자 김재목 선감이 "예! 한 달 전에 만나 보았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 도전님께서 "도(道)가 그것이 아니야! 오늘이 중요해! 오늘 만나 봤어?"하시자 김재목 선감은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유규용 선감이 일어나 "국가에도 국법이 있고 국법을 지켜야 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이고, 도에도 도법이 있지 않습니까? 노종덕 보정이 징계위원의 징계를 받았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치성에 참석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도전님께서 "그래? 그때 내가 다 이야기했지 않느냐? 내가 일일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야기 해줘야 되느냐! 박성구 선감이 너희들에게 운수 전해줬지 않느냐! 조상지간에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래!"라고 꾸중하시고는,
▶"도란 것은 화합해서 나아가는 것을 '도를 닦는다'고 그러는 거야. 가령, 예를 들어 우리도장에 단청 해놓은 것이 그래. 열두 색깔이 전부 어우러져 화합하니까, 보기가 좋고 살아 있어. 다른 사찰과는 달라!"하시며 화합하라고 장장 4시간에 걸쳐서 교화를 하셔도 상도방면 임원들이 대답을 않자 장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자 유경문 선감과 수임원들이 나서서"화합해라! 화합해서 도 잘 닦겠다고 어서 말씀드려라!"고 화합할 것을 여러 차례 종용하자, 상도방면 임원들이 "예! 화합하여 도(道)를 잘 닦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그래, 그것이 도야!! 그래 그럼, 내 오늘 성날(誠日) 발표하지! 모두들 잘 해 나가!"하시면서 곧 바로 성날을 발표하시고 임원들에게 내려가도록 하셨다.
1991.6
도정업무 기간에 박성구 선감과 노종덕 보정이 차안에 있을 때, 김찬성 선감이 내려와서 말하기를 "내가 방금 도전님을 배알하고 왔는데 도전님께서, 상도선감 너는 최해경이 믿지, 도전님 안 믿는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상도 박성구 선감은 당시 도전님의 말뜻을 깨닫지를 못하였다.
1991.6,22
하지부터 도전님께서 시학공부를 연다고 발표하셨다. 6월12일 훈시에서 "공부는 자리공부다. 시학, 시법은 자리공부다. 시학은 초강, 합강, 봉강이 있다. 이걸 마치면 시법이다. 지금 중곡동에서 하는 것은 시법이 아니고 기도공부다. 봉강을 마치고 시법공부를 못하면 얼른 생각할 때 도통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데, 공부를 안해도 상관은 없어"라고 하셨다.
1991.7.16
도전님께서 화합할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상도방면 임원들은 계속해서 화합을 하지 않고 박성구 선감과는 마음과 행동을 달리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몹시 불편하신 마음으로 또 다시 상도방면 임원들을 꾸중하시니 "상도방면 임원들 어떻게 잘 해 나가는 줄 알았더니, 나는 어제야 알았어. 제주연수 명단을 해오라고 했더니 따로 해왔더라. 왜 그래!! 먼저번 동기야 어떻게 되었던, 잘 해 나가라 했으면 잘 해 나가야지 어떻게 그래. 설사 박성구 선감이 실수로 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전부 선·교감들 아니냐. 선·교감들은 상급임원들 아니냐! 잘 해 나가라고 했으면, 잘 해 나가야 하지 않느냐. 상도방면, 그것이 아니야. 늘 이야기하지 않느냐. 박성구 선감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전에 너희들이 내 앞에서 잘하겠다고 대답했지 않느냐!! 그러면 안돼! 그건 절대 용서 안해!! 최 교감이 화합이 잘 안된다고 어제 저녁에 말해서 내가 알게 되었어. 옳든 그르든 화합하라고 하면 하지, 앞으로는 용서 안해!! 딴건 몰라도 공부도 보류해 놓을 거야. 그게 뭐야!!"하시면서 계속 훈시를 내리셨다.
1991.8.24(陰7.15)
상도 박성구 선감은 백종일에 즈음하여, 전경 교운 2장 15절《도주께서 칠월 보름에 이우형을 앞세우고 금산사에 다녀오시니라. 권태로·이상우·박붕래와 여러 무리들 앞에서「오늘이 백종일이니 인간 백종의 허물을 청산하는 날이니라. 인숙무죄요. 개과하면 족하니라」고 분부하시니 그들이 모두 자기의 허물을 개과하기에 힘쓰니라.》을 읽어주면서 방면임원들한테 설명하기를“천지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러니 사람이 죄를 사하는 날이 백종일인데 이번 치성에서 모두 죄를 사하자.”하고 백중치성을 올리게 되었다.
상도 박성구 선감은 1989년부터, 90년, 91년에 걸쳐 백중치성을 올렸는데, 91년 당시는 상도방면 임원들이 상도 박성구 선감이 존영 모셔 올라간 것을 인정하지 않고 화합을 하지 않는 상황인지라, 당시의 백중치성을 문제화하였던 것인데 백중치성은 도장에서는 없는 치성이고 지방에서도 오직 상도 박성구 선감만이 이 치성을 올렸으므로, 상도방면 임원들은 이것을 큰 사건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91년 백중치성 전에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전에도 메를 올리고 4배를 올린다. 도전님은 천자님(하느님)이시므로 도전님께도 죄를 사해달라고 심고 드려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교화하였는데 이것을 서남수 선감이 어느 교정를 시켜 몰래 녹음을 하게 하고, 또 치성 참석자 197명의 명단을 사무실에서 적어, 이것을 감사원에 회부하자 감사원 임원들이 주훈재 선감에게 이 사실을 도전님께 보고 드리라고 하였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7월 성(誠)을 모셔서 도장에 올라가니 분위기가 이상하고 찬바람이 도는 느낌이었다. 조금 있으니 주훈재 선감이 찾아와서 "박성구 선감! 이번 백종일에 백중치성이라고 하여 회관에서 치성을 모셨느냐?"고 물었다. 박성구 선감이 "모셨다."고 하자 주훈재 선감이 "왜 또 이런 짓을 해서 시끄럽게 하느냐"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출도다. 박선감 앞에 있는 임원들이, 이렇게 치성 때 상황을 상세히 적어 왔지 않느냐. 그리고 녹음도 해왔다."면서 기록한 종이쪽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번에는 네가 피할 수 없다. 내가 도전님께 보고하고 올 테니 기다려라."하고 주훈재 선감이 녹음테이프와 명단을 증거물로 들고 내정으로 올라갔다.
▶얼마 후 주훈재 선감이 내려와서 상도방면 임원들을 전원 대순회관 1층에 모이라고 하였다. 주훈재 선감이 도전님 말씀을 전달하였는데 "백중치성은 지방임원으로써 올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남수 너! 정말 나쁜 놈이야!" 도전님께서 "녹음을 하는 사람은 도인 자격이 없다. 도인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런 것을 가지고 올라왔다고 호되게 꾸중을 모셨다. "앞으로는 이런 것을 두 번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다."라고 전달하였다.
1991.10.16
▶도전님께서 도정업무 기간에 상도방면은 제주도 치성에 참석하라.
그러나 금릉방면 앞에 모든 방면과 월성방면, 덕수방면은 선감부터 정리까지 치성을 참석치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상도 박성구 선감과, 노종덕 보정이 제주도 중구치성(중양절, 陰 9월 9일)에 참석을 하였다. 치성을 마치고 오전 9시에, 제주도 수련도장의 현판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임원들은 모두 참석을 했는데, 박성구 선감은 모두가 그를 피하고 어느 누구하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처지인지라 누구에게도 현판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지 못해서 참석치 못하고 방안에 있었다. 그리고 노종덕 보정도 그 날 아침 현판식을 할 시간이 되어서야 현판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숙소가 달라 박성구 선감의 참석여부를 몰랐었다.
도전님께서 납시어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다 안 왔어! 사람이 다 안 보여!"하시면서 현판식을 거행치 않고 계시자, 노종덕 보정이 상도 박성구 선감이 참석치 못한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3층 숙소로 올라가 보니 박성구 선감 혼자 있었다. 그래서 "수련도장 현판식을 한답니다! 빨리 내려가시지요!"하면서 같이 밖으로 나오는데, 김찬성 선감이 올라와서 빨리 내려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상도 박성구 선감이 내려와 현판식장에 막 도착하니, 도전님께서 박성구 선감이 온 것을 확인하시고는, "빨리 달아라!!"하시며 현판식을 거행하셨다.
1991.10 말경에
금릉방면 김재목 선감이 콤바인을 한대 구입하여 도장에 올리자 도전님께서 "너가 왜 왔어! 거기 수임선감 없어?"하시며 받지 않으시므로 김재목 선감은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전화를 했다. 김재목 선감이 하는 말이 "제가 콤바인을 구입하여 도장에 올리려고 하는데 박 선감께서 오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 꼭 오셔서 콤바인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상도 박성구 선감이 여주 본부도장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중곡동 총무부 사무실 신승희와 김재목 선감을 대동하고 도전님을 배알하여 함께 절을 하였는데, 신승희와 김재목 선감은 절을 한번하고 앉았으나 상도 박성구 선감은 절을 두 번 하므로 두 사람은 앉은 채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고, 도전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절을 받으셨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께 "콤바인을 농사짓는데 써주십시오."하고 말씀을 올리자 도전님께서 "선교감들을 시켜서 추수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 콤바인이 있으니 올해는 콤바인으로 추수를 해야겠다."하시며 받아주셨다. 그리고 금릉방면 김재목 선감을 보시면서 "그래 너희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화합을 해야 돼!"라고 교화를 하신 후 내려가도록 분부하셨다.
1992.7월까지도, 상도방면 임원들이 화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도전님께서는 상도 방면 박성구 선감과 오연자 선감, 부전방면 주훈재 선감을 불러서 물으셨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하시자, 오연자 선감이 "금릉방면 김재목 선감을 교감으로 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주훈재 선감이 "그러면 안됩니다."라고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박성구 선감 의향은 어떠냐?"고 물으시자, 박성구 선감이 "각 방면을 내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도전님께서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나 그리하면 죽는데! 참 우리 도(道)는 죽는 게 없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박성구 선감이 "청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아뢰니 도전님께서 "그래, 뭐냐?"하시자 "광주에 회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요."라고 상고드렸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알았어!"라고 말씀하신 후 물러가 있으라고 하셨다.
그런 연후에 상급임원들 전원을 회관 5층에 모이게 하셨다. 그리고 도전님께서는 상도방면 임원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시고 "서교방면 선감과 속초방면 선감은 앞에 나와서 의자에 앉아라!"하셨다.
그 자리에서 각 임원들을 호명하셔서 바로 방면을 나누니 흥해, 덕수, 월성, 오천방면을 내고 금릉방면은 여수, 중흥, 선산, 석촌, 여천, 원평방면의 6개방면과 이문, 유성방면 2개방면으로 나누어, 모두 방면을 내어 주신 것이다. 그런 후 도전님께서 박성구 선감에게 "지방에 회실이 어디 어디에 있느냐?"하시니 "예! 광주에 회실 하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도전님께서 "그러면, 너를 따르는 도인이 있느냐?"하시니 "예! 선사 세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럼 됐어! 네 앞으로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도전님께서 "상도라는 이름을 어떻게 가졌지?"하고 물으시니 박성구 선감이 "예, 상도동)이므로 상도방면이라고 올렸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도전님께서 "도자(字)가 무슨 도자(字)지?"하고 물으시니 박성구 선감이 "예, 섬도(嶋)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렇게 되었느냐?"하시고는 "그러면 속초방면과 서교방면은 없애고 모두 상도방면으로 합쳐서 한 방면으로 해 나가라!"고 분부를 내리신 후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살아!!"라고 말씀하셨다.
방면이 모두 난 후, 도전님께서 일어서시며 말씀하시기를 "박선감이 잘못된 것이 뭐 있어!! 나를 받들려고 한 것이 좀 지나쳤을 뿐이지!!"하시고는 창 쪽으로 돌아서시면서 "나를 천사라 하던가? 나를 천사라 했지?"하시면서 웃으셨다.
1992.11.17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금릉방면 몇 방면으로 나누어져 있지? 9개 방면, 먼저 저 먼저 달이냐? 뭔 얘긴지 모르겠더라. 여기 나와 봐. 누가 금릉선감이야? 얘기해 봐. 합쳐 달라는 거야 뭐야. 왕래를 못하기 때문에 …. 그게 아니지. 서로 간섭하지 말라했지. 합친다고 하면 금릉선감의 지시를 받아야 되고, 그 다음은 또 그 밑에 선감 지시를 받아야 되고…. 9개 방면이면 선감이 9명인데, 아홉사람 성격이 다 달라. 한 사람이 그 성격 다 못 맞춰. 그러다 보면 또 문제가 생겨. 합해서 하게되면 좋긴 좋지. 그러나 그거 어려워. 싫다는 것은 아니야. 좋긴 좋은데 금릉선감한테 다 모이면 어떡할거야. 방면 전부 없애고 금릉방면으로 해요. 금릉방면 합치면 안 좋아. 합치려면 각서를 써놓고 해. 앞으로 일 생기면 그땐 … . 해봐, 각서는 필요없어. 대중들 앞에서 했으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유규용 선감을 가리키시면서 "저 사람, 학교 어디 나왔어?"하고 물으시니 옆에서 "예! 대학교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우리는 국민학교 나왔어도 안 그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너! 몇살이야?"하고 물으시니 유규용 선감이 "예! 서른 아홉 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도전님께서 "마흔 살이구만! 여기(금릉방면) 아니잖아! 어디야?"하고 물으시자, "예! 안희철 교감 직계였는데, 안 교감은 박성구 선감 직계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도전님께서 "그렇지, 딴 줄이지! 너는 세 번 배신하는 거야! 거기서 나올 때 배신했고, 박성구 배신했고, 이것도 배신이여! 알어!! 너는 박성구 배신한 것이 아니고 나를 배신한 거야!!"라며 진노하시고는 "금릉방면 너희들 아직 죄 안 풀렸어!! 그때 너희들이 한 것은 박 성구를 들어낼려고 했던 것이지! 박성구 말을 안들은 것이 아니고 내 말을 거역했어!! 아직 죄가 있는 거야!! 김경인(순감)을 그래서 내보내지 않는 거야! 뭘 몰라!!"라고 말씀하셨다.
1993
도전님께서 강원도 속초에 도장부지를 매입코자 임원들을 시켜서 알아보게 하셨다.
1994
1월초에 속초에 상도방면 정춘자 선사가 부동산 소개소에 포덕하러 갔다가 일전에 매입코자 하다가 성사되지 못한 토성면 인흥리 도장부지 매입에 관한 색다른 사실을 듣게 되었다.
1993년 5월경 ※〈상도 박성구 선감은척추를 다쳐서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일체 거동을 못하고 있었다.
도전님께서 "고성 땅은 상도방면 오연자 선감이 샀어."라고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다.
도전님께서 김찬성 선감, 박원균 선감에게 진노하시며 "천하에 몹쓸 놈들이다. 일반 사가(私家)에서도 집안어른이 땅을 살려고 했으면, 한번쯤은 지주를 만나보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다."고 하시고 다시 "너희들이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13만원을 주고라도 사보라고 했었다. 그런데 못 샀어. 너희들은 그 땅 못 사!"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못사는 땅을 상도에서 샀어!"라고 하셨다.
그 후 훈시말씀에서 "이번에 고성 땅, 상도에서 샀어!"라고 말씀하셨다.
1995.1.3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기공식을 하였다. 이때 상도방면 속초도인들이 기공식에 참석하였는데 성주 안영일 선감이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와서 "기공식에 도인들을 데려오지 않기로 했는데 왜 박선감은 수반들을 데리고 왔느냐?"고 따지자 상도 박성구 선감이 "토성도장 부지를 매입한 도인인데 도전님께 인사를 올릴려고 왔다."고 말하니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1995.2.6 부터 4.20일까지
도전님께서는 대명콘도와 삼성콘도에 머무르시면서 전체 상급임원들을 1차에 120명씩 5박 6일 동안의 연수를 13차에 걸쳐서 실시하셨다. 이때 2박 3일 동안은 강원도 강릉일대와 설악산 일대를 돌아 금강산 토성도장 일대를 순례하게 하셨다.
이때 1차와 2차는 도전님께서 친히 임원들을 대동하여 순행을 하셨다. 이것이 오늘날의 연수 코-스가 되었다. 첫날은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을 거쳐서 낙산사의 의상대를 순행하셨다. 이 경로는〈수기(水氣)를 돌리는 공사〉라고 전해지는데,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강원도할 때 江자는 '물'강 자이고, 原자는 '들'원 자인데 '근원' 원(源)자도 된다. 강릉, 경포대, 낙산사는 모두 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은 설악산 울산바위를 등정하고, 비선대(飛仙臺)를 거쳐 와선대(臥仙臺)를 순행하셨다.
〈이 경로는 유 • 불 • 선 삼합공사라고 전해지는데 오죽헌은 유(儒)이고, 의상대는 불(佛)이고, 비선대와 와선대는 선(仙)이라고 한다〉
▶연수기간 중 도전님께서는 1차 때는 대명콘도에 계셨다가, 2차 때부터는 삼성콘도로 옮기셔서 임원들 연수가 끝날 때까지 계셨다. 이때 도전님께서는 환우가 깊으셨는데 옆에서 수행하던 수임선감들이 계속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하고 몇 번을 건의 드려도 도전님께서는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너희들이 이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하시면서 병원을 가시지 않으셨다. 환우가 심해지자 "순감을 부르라"하시므로, 순감 36명이 급히 삼성콘도로 와서 시료를 보았는데, 24시간 쉬지 않고 교대로 1개월을 계속 시료를 보았다. 도전님의 환우 중에도 연수는 계속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연수는 5박 6일인데, 연수가 끝나고 임원들이 돌아가려고 하면 눈이 많이 내려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6박 7일 또는 7박 8일이 되어 1일 내지 2일간을 더 머물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2차 연수에서부터 여덟 번이나 연이어 계속되었다.
1995.4.20일경 도전님께서 1개월간 시료를 받으신 후 환우가 조금 가벼워지시자 "도장으로 가자."하시면서 삼성콘도를 나와 토성도장으로 돌아오셔서 계속 시료를 받으시면서 토성도장 공사현장을 둘러보셨다. 1995년 5월 4일 도전님께서 환우가 다시 극히 심해지시므로 임원들이 원주 기독교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원주 기독교병원에는 도전님의 손자가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외과 인턴의사였다. 도전님께서 "손자와 있고 싶다."하셨으므로 원주 기독교병원에 입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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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8.14
각 도장의 원장 및 총무부장 임명을 하셨다. 도전님께서는 환우를 겪으시고 여주 본부도장의 아래별채에서 요양을 하시고 계시던 중 이셨는데 아침 조회시간에 경석규 원장, 안영일 종의회의장, 부전 정대진 선감, 옥천 이유종 선감, 안동 정훈봉 선감, 공주 유경문 선감, 용암 김찬성 선감, 전호덕 교감, 신용덕 총무부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말씀하시길 "각 도장마다 원장을 둬야겠다. 우리의 규모가 이제는 대단히 큰 규모로 발전하였는데, 대외적으로 볼 때 각 도장에 원장이 없어서는 안 된다."하시고, 그 자리에서 임명을 하셨는데
여주 본부도장 원장 안영일(성주선감)
포천 수련도장 원장 이유종(옥천선감)
토성 수련도장 원장 손경옥(서울선감)」을 임명하셨다.
중곡도장 원장은 임명이 없으셨는데, 당시 기획부가 여주 본부도장에 있지 않고 중곡도장에 있었다. 그리고 제주 수련도장 원장 역시 말씀이 없으셨다. 각 도장의 원장을 임명하시고, 각 도장의 총무부장 임명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원장은 실제 대외적인 업무를 보는 거야, 실질적 살림은 총무부장이 하는 것이다. 각 도장마다 총무부장을 둬야겠다."하시며 임명을 하셨는데
「여주 본부도장 총무부장 김상우(수원방면)
포천 수련도장 총무부장 김진원(금릉방면)
토성 수련도장 총무부장 신동환(서울방면)」을 임명하셨다.
중곡도장 및 제주도 수련도장 총무부장은 말씀이 계시지 않으셨다. 임원들이 나가고 난 후 경석규 원장이 도전님께 여쭈길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라고 묻자 도전님께서 "중곡동 도장 사무실에나 드나들면서 일이나 좀 봐주도록 하라"고 하셨다.
임명을 하신 이틀 후, 조회시에 다시 원장이 개편되었는데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길 "안영일 선감이 몸이 아파서 업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각 도장의 원장을 다시 임명한다."하시고
「여주 본부도장 원장 이유종(옥천선감)
토성 수련도장 원장 정훈봉(안동선감)
포천 수련도장 원장 손경옥(서울선감)」을 임명하시고, 그리고 총무부장도 다시 임명해야겠다 하시면서
「여주 본부도장 총무부장 김진원(금릉방면)
포천 수련도장 총무부장 김상우(수원방면)
토성 수련도장 총무부장 신동환(서울방면)」을 명하셨다.
그러나 10여일이 지난 후 도전님께서 "포천 수련도장 원장이 손경옥 선감인데, 내수로서는 감당하기가 힘이 드니 서울방면에서 외수가 맡도록 하라."하시면서「포천 수련도장 원장을 전호덕 교감」으로 임명하셨다.
35.도전님께서는 옥체가 미령(靡寧) 하심에도 불구하고 토성도장 공사현장으로 자주 납시었는데 도전님께서 임원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둘러보시면서, 현재의 취지문이 적혀있는 그 자리에 납시어 "여기에다 비문을……., 천계탑?"하시고 사무실로 돌아오셨는데,
다음날 사무실에서 말씀하시기를 "미륵을 모셔야겠다."하시며 임원들에게 "누가 그림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느냐?"하시자, 서울 손경옥 선감이 "방면에 박광훈 선감이 그림을 잘 그립니다."라고 상고드리자 데려오도록 하셨다.
도전님께서 박광훈 선감에게 "미륵불을 그려오라."고 하시자 박광훈 선감이 두 번이나 미륵불상을 그려 올렸으나 도전님께서 다시 그려오라고 명하시므로, 다음 번에는 은진미륵불상을 그려 올라갔는데 더 이상 말씀이 계시지 않으셨다. 이때부터 임원들 사이에는 토성도장에 미륵불상을 조상(造像)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도전님께서 임원들을 대동하고 지금의 종각이 있는 자리에 납시어 "여기에다 미륵을 모시는 것이 괜찮겠지?"하셨는데 이후 이 자리에 종각을 짓게 하셨다. 그리고 또 지금의, 향나무로 학을 조경해 놓은 자리를 둘러보시며 "여기에다 미륵을 모실까?"하시고, 또 본전 옆에 야산이 있는 곳에 납시어 "여기에 미륵을 모실 터를 닦아야겠다."라고 하시자 김찬성 선감이 "저희 방면에서 하겠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요."하며 도전님께 말씀드리자 도전님께서 "아니야."하시며 거절하셨으나 김찬성 선감이 몇 번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하며 극구 건의드리자, 도전님께서 "그럼 한번 해봐."라고 하셨다.
그 후 도전님께서 임원들을 대동하고 현재 도전님의 능이 있는 곳에 이르러 바다를 보시고 앉으셔서 "여기가 미륵이 앉을 자리야."하셨으나 당시 임원들은 도전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상도 박성구 선감이 토성도장 연수원 마당의 토목공사현장에서 경산방면 이성열 교감과 함께 대화를 하던 중, 이성열 교감이 "도전님께서 미륵불상을 모신다고 하더라"하므로, 상도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께서 미륵이시잔아. 그 말씀은 당신님을 모셔 달라는 뜻이지 않느냐?"하자 이성열 교감은 "또 그런 말을 하느냐?"면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1995.11.
도전님의 환우가 다시 깊어지자 임원들이 원주 기독교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도전님께서 수임원들에게 "나를 도장으로 데려다 줘! 도장에 가서 할 일이 있어. 여기 있어서 될 일이 아니야."라고 하셨으나 수임원들은 "환우가 깊으시니 움직이시면 안됩니다."하고 도장으로 모시지 않았다. 수임원들이 도전님을 도장으로 모시지 않자 도전님께서 "선미가 보고 싶으니 선미를 불러오라."하시므로 서선미 시봉에게 연락을 하여 서선미 시봉이 병원으로 도전님을 뵙고자 왔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임원들은 도전님을 만나 뵙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수임원들은 정대진 선감, 유경문 선감, 김찬성 선감, 이유종 선감, 정훈봉 선감, 손경옥 선감, 전호덕 교감, 박원균 선감, 정인식 선감 등이었다. 이때 수임원들 외에는 다른 도인들은 일체 도전님을 찾아 뵙지 못하였고, 도전님의 가족들이 간병을 하고 있었다. 이때 수임원들은 도전님께서 무슨 말씀이 계실 것으로 생각하여 병실 밖에서 떠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개별적으로는 도전님을 찾아 뵙지 않았다. 그르던 중 하루는 정대진 선감이 혼자 병실로 들어가 도전님을 배알하자 도전님께서 급히 일어나 앉으시면서 "넌 뭐야! 너 뭐하러 왔어!"하시며 진노하시자, 정대진 선감은 황급히 물러 나왔는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수임원들은 순감들을 시켜 도전님의 환우를 계속 시료보게 하였으나 차도가 없으셨다.
1996.1. 의사가 '더 이상 계셔도 소용없으니 모시고 가라'고 하였다.
1996.1,23(陰 1995.12.4)
옥황상제님 탄강치성을 마치고, 수임원들이 참석한 모든 도인과 임원들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었다. 이날 새벽부터 도전님 환우는 극도로 악화되어 의식이 없으시자, 담당의사가 도전님께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여 낮 12시경에 황급히 여주도장 내정으로 모시었으나 잠시 후 오후 1시 30분(未時)에 화천(化天)하셨다.
그러자 당황한 수임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일체 도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원로임원들과 의논한 후,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각방면 임원들에게 급히 도장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하였다.
1996.1.24(陰 12월 5일) 여주 경찰서에서 대순진리회 종교지도자인 도전님께서 화천하셨다는 제보를 받고 사실을 알아보려고 전화가 걸려왔으나 아무런 일이 없다고 하였다.
1996.1.25.(陰 12월 6일) 본부도장 사무실로 국가 안전기획부에서 전화가 걸려와 "대순진리회 종교지도자인 도전님께서 별세하셨다는데 왜, 사회에 밝히지를 않습니까?"라고 문의하자 그때서야 도전님의 화천 사실을 밝히고 오후에 전 임원들을 회관에 모이게 하여 유경문 선감이 도전님께서 화천하셨음을 알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道라는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도전님께서 대두목인 줄로 알았고, 도전님께서 도통을 주실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무런 말씀없이 화천하셨습니다.
첫댓글 윗글은 미륵세존께서 상도의 박성구도전께 종통계승을 할 당시의 상황들이다.
이글의 요지는 어떻게 종통계승을 인정하며 천자들의 심법전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 볼 수 있다.
대순진리회의 임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난동자 일뿐이나 천자들간에는 심오하고도 분명하게 종통계승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도에서 마지막 수부님께로 종통이 이어짐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 해도 주고 받는 두 분은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 종통계승의 심법전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주변의 임원들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알 수 없는 이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태극도에서 가장 역도로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우당이다.
기존대순에서 가장 배도자로 취급하는 곳이 바로 상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도에서 잡신들린 무당쯤으로 가장 우습게 생각하는 곳이 바로 수부께서 계시는 곳이다.
종통은 이렇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지척에 있어도 모른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그래서 진리는 공부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삼신께 심고 드리면서 알고자 노력한다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이 어찌 진법을 알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