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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좋은 기분으로, 아이는 얹짢은 기분으로...... 그래도 괜찮다. 서현역에서 그가 보고 싶어 한대도, 아직은 되었다 말하는 싸늘함에 나름 술꾼 흉내라고 술기운이 좋으니 그저 무방했다. 그렇다면, 여기 와서 장어와 딸기라도 먼저 가져가라고 다시 유혹을 던져도 여전히 되었다는, 큰 아이. 그렇다면 천천히, 더 느린 걸음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너희들의 반응이 시원찮아도 엄마는 수시로 이 변화를 알리고 있는 중. 내겐 편이 생겼거든. 그 편이란 것이 말이야. 얼마나 든든한지. 아마 모를 거야.
오늘은 운길산이었다. 자주 다녀 온 누군가가 말하기를. 운길산에 오를 때는 이상하게 구름이 끼고 보슬비가 내리곤 했단다. 그래서 구름 雲자가 붙었나?
비가 내렸다. 딸기 체험 농장을 찾은 젊은 부부들과 그에 따른 올망졸망 작은 아이들이 왁자지껄 신이 났다. 내게도 저런 시절, 있었지. 훑으며 지나간 시간들은 늘 흑백사진처럼 아득하다.
흐린 날의 진달래, 철쭉은 유난히 투명하게 아름답기가. 수종사 붉은 목련 몽우리는 아직 피어날 것을 미루었다. 구경꾼의 탄성을 제대로 받고 싶은 욕심, 자연의 섭리라지만 아무 때나 함부로 피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겠다.
내려다 보일 북한강변은 뿌연 안개로 뒤덮였어도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려 놔 버린 나의 지금은 이 또한 신비스러운 감사가 되었다.
정상에 오르긴 커녕, 겨우 수종사 종 앞에서 배가 고프다. 게걸스럽게 먹는 것에 집착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식욕이 땡긴다.
마침 그가 배가 고프단 말을 했다. 우린 둘 다 쇠잔한 기운으로..... 이만 가죠?
오르막길 보다 내리막길은 훨씬 수월해서 마음이 가볍다.
기운을 내야 하니, 장어를 먹을까? 부끄러움도 없이 넓죽넓죽 그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신중할 때도, 장난스러울 때도, 가끔씩 다르게 보이지만 그는 같은 사람이다.
날씨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내 주량은 아직 청하 세 잔, 그것으로 정해 두었던지 벌써 취한다. 내게 술을 가르쳐 준 사람. 청하를 사랑하는 그가 이후로 마신 술은 네 병째.
할 이야기가 이만 없을 줄 알아도, 두루말이 휴지처럼 끝이 없다.
내 아이들의 것으로 장어를 챙기는 마음은 나에 대한 배려를 넘어섰다. 여린 마음, 이런 사람 또 있을까?
술을 쉬 깨기 위해 담배 한 대 피워야겠대서 라이터 하나를 얻어 왔다.
그가 담배 두 대에 불을 붙여 그 중 하나를 건넨다. 깜짝 놀라는 나를 가리키며 장난스레 문화적 차이를 일컫는다.
어설프고 서툰 마음, 이럴 때 어찌 해야 하는지.... 쿨한 척 영화의 한 장면을 엿 본 것처럼 멋지게 맞담배라도? 그림이 쉽게 포개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 사람의 끝은 어디 쯤일까? 술을 가르치고, 잔망스런 담배까지.
짓궂은 데도, 올바르고.... 방탕한 듯, 다시 재정비가 깔끔하고....
내친 김에 서현역으로 가자. 사무실에 차를 두고, 내일은 택시로 오면 된단다. 짜 맞추어진듯 사는 삶은 참으로 재미가 없다는데..... 듣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그를 닮아가기로 한다.
막간을 이용해 초대한 손님에게 퇴짜를 맞고, 그 짧은 침묵에 얹짢은 기분까지 내가 할 위로를 그가 한다.
장어구이로 인한 포만감은 숨이 차다. 아마도 이전보다 몸무게가 몇 키로는 늘었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장담 못할 정도로 뚱보가 될 수도....
다시 짬뽕과 술을 사이에 두고, 선잠에 빠져 들다. 에티켓이 빵점이라는 말을 꽤 여러번 들었어도 그 기분까지 따라잡을 수 없을 바엔 나는 나처럼, 이 모습으로 살아 온 것을 이해해 주기를.
기막힌 웃음, 좋은 웃음이다.
그친 줄 알았던 비가 다시 내렸다. 대리운전을 부를까, 발맛사지를 받을까, 노래방을 갈까? 노래방이 낫겠지? 오늘은 오늘 밖에 없을지니,
노래방의 악몽이 있대도, 오늘은 그 날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그 날로부터 많이 해방되어 진 날, 이런 노래, 저런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 보면 이보다 더 많이 친한 우리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른듯 나는 날마다 시공간을 초월해도 좋을 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 그가 있다.
자정을 넘었어도 잠들지 않은 아이 둘이 엄마를 반긴다. 예전같지 않은 다정함으로.... "엄마, 내 파란색 티셔츠 입고 갔었네?" 새침했던 아까와는 많이 다른 반응이었다.
"장어 먹어라." 큰 아이는 맛나게 먹고, 막내는 미끄러운 느낌이 싫다고 조금만 먹고 오늘은 이렇게 무사히...
점점 날이 갈수록, 낯선 풍경 또한 익숙해 지기를 .... "우리는 엄마를 존중한다"는 기밀문서의 약속대로 너희의 마음이 둥그렇게 다듬어지는 날을 기대한다.
2014년 3월 30일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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